쉼터/가볼만한 곳

이천 三色여행 ①

淸潭 2007. 4. 20. 11:10
 

 

이천 三色여행 ①

 

도자기 빚어 쌀밥 담아 먹고 산수유에 취한 어느 날

 

 

이천의 명물이라면 단연 쌀밥과 도자기다. 이맘때면 덤으로 산수유까지 만끽할 수 있다. 먹어 보고, 만져 보고, 향기 맡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삼색 여행이다.

 

서울에서 1시간 반 거리의 이천은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부담 없는 1박 2일 여행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아이와 함께라면 먼 거리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데다 아이들에게 주구장창 풍경만 보여 주는 여행은 따분하기 십상. 봄내음 밀려오는 이맘때쯤 멀리 가지 않고도, 흙도 만져 보고 꽃향기에 취해 보는 주말 스케줄을 만들 수 있다.  

임금님표 이천 쌀로 속부터 채우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천에 도착하면 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쌀밥집을 모른 척 할 수 가 없다. 이천에서는 작은 식당조차 서울서는 귀한 대접 받는 이천쌀로 밥을 짓는다. 예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이천쌀의 브랜드는 ‘임금님표’. 그래서일까. 굳이 이천 쌀밥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밥맛이 꿀맛이다. 어디서 어떤 반찬으로 밥을 먹든 임금님표 이천쌀이라면 믿을 만한 밥맛을 보장한다.

신둔면사무소 바로 옆에 위치한 임금님 쌀밥집은 이천 사람이 손님 오셨을 때 대접한다는, 밥맛 좋기로 소문난 식당이다. 주인 최향란( ) 씨는 궁중음식 연구원에서 한복려 선생에게 궁중음식과 향토음식을 공부했고, 강의를 할 만큼 전통음식에 남다른 식견이 있다.

반찬 하나, 양념 하나 만드는 것에도 대충이란 없다. 1만원하는 쌀밥정식을 시켰는데 수라상이라도 내는 듯 20가지가 넘는 반찬을 정갈하게 상에 차린다. 반찬 가짓수만 봐도 벌써 배가 부르다. 늙은호박 김치, 부지깽이 나물, 가시오가피 나물, 북어 식해 등 흔히 먹을 수 없는 나물과 독특한 장아찌가 입맛을 돌게 한다. 나물에는 파, 마늘을 사용하지 않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이용해 만든 양념으로 간을 한다.

식당에 들어설 때 먼저 깊고 구수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는데 아마도 이 양념냄새였던 모양이다. 시래기무침과 간장게장은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조미료 맛은 적고 재료 맛이 풍부하다. 조개젓갈 맛 또한 일품. 젓갈인데도 짜지 않으면서도 싱싱한 바다 내음까지 품고 있다. 비결을 물으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짜지 않은 젓갈을 만들기 위해 바닷가에서 방금 깐 조개를 8가지 다른 염도의 소금에 절여 가장 알맞은 염도를 찾아냈단다.

 

계절마다 4계절 특성에 맞는 반찬을 내면서도 반찬 하나하나에 쏟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래서 반찬 하나 설명하는 데에도 주인은 할 말이 많다. 손님은 그저 반찬 골고루 먹는 일이 힘들기만 하다. 반찬은 모두 이천 도자기에 담겨 나온다.

도자기에 담긴 음식은 숨을 쉰다고 하니 반찬 맛의 비결이 주인의 손맛에만 있지는 않은 듯싶다. 밥은 돌솥에 나온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한술 뜨니, 반찬 없어도 밥 한 그릇 먹겠다 싶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구수한 밥맛이 반찬을 대신한다. 냄새 없는 청국장은 젊은 입맛까지 사로잡는다.

“세계 도자기 비엔날레 때 오신 외국 손님들이 식당에서 발꼬락내가 난다면서 인상을 쓰며 돌아간 적이 있었어요. 나름대로는 외국 손님들에게 우리 이천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여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죠.”

그때부터 주인은 냄새 없는 청국장을 띄우기 위해 이런저런 연구를 거듭했다. 시행착오 끝에 구수한 맛은 잃지 않으면서도 냄새는 없는 ‘외국인표’ 청국장을 만들어 냈다. ‘냄새 없는 청국장’은 한국인에게도 인기만점이다. 이천에는 쌀밥집만도 스무 개가 넘는데, 워낙 일상적인 우리네 상차림인데다 반찬이 다양하다 보니 몇 번을 연거푸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흙 농사꾼’에게 배우는 일상의 예술
낚시에만 짜릿한 ‘손맛’이 있는 건 아니다. “만들어 보기 전에는 절대 그 손맛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도예체험자들의 한결같은 체험후기다. 고려청자니 이조백자니 분청사기니 하는 도자기는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유물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터.

하지만 손에 한번 흙을 묻히고 나면 도자기는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비록 전적으로 도예가의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돌아가는 물레 위의 진흙 덩어리가 내 손을 거쳐 점차 도자기의 형태를 갖춰 가면 초심자는 그저 신기할 뿐이다. 연인이 있다면 한번쯤 따라서 해보고 싶던 ‘그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영화 <사랑과 영혼>의 그 유명한 장면, 데미 무어가 물레를 돌리며 흙을 빚고, 그 뒤에서 손을 뻗어 사랑을 속삭이는 패트릭  스웨이지의 그 ‘느끼한’ 장면 말이다. 연인이 없다고 속상할 필요는 없다. 손에 닿는 진흙의 촉감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 그 이상의 부드러움을 선사할 테니까.

도예체험은 도예촌의 40여 개 요장(窯場)에서 할 수 있다. 요장들은 신둔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위치하면서도 크게는 하나의 마을을 형성한다. 3번 국도변의 사음동과 신둔면 수광리가 바로 도예촌이다. 체험의 종류와 가격은 대게 비슷한데 각각의 요장별로 예약을 받고 개별적으로 운영한다. 체험비는 작품의 크기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르며 대개 2만~4만원이다.

 

도예촌 40여 개의 요장 중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심천요(深泉窯)’를 찾았다. 용케도 전통 가마 여는 날을 맞췄다. 억세게 운이 좋다. 동일한 품질을 보장해야 하는 생활자기는 가스 가마로 굽기 때문에 전통 가마는 일 년에 네 번 정도만 불을 땐다. 물론 가마 여는 날도 일 년에 4~5일 뿐이니 우연히 날짜를 맞춘 것에 감동할 만하다.

가스 가마로 구운 것이 천편일률적인 기성복이라면 전통 가마로 구운 것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는 맞춤복이다. 이천에서도 350여 개의 요장 중 40여 개의 요장만이 전통 가마를 고수하고 있다.

전통 가마는 보통 약 1300도의 온도에서 18~24시간 정도 굽는다. 불이 꺼지고 나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가마를 식힌 다음 입구를 허물고 작품을 꺼낸다. 꺼내는 작품을 받아들고 보니 아직 따끈따끈하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도공(陶工)이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들을 바닥에 내리치며 괴로워하는 모습. ‘이게 아니야’를 연발하며 아까운 도자기들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지는 장면 말이다. 하지만 심천요 김진현(49) 작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쉽게 깨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눈에 좋지 않은 작품이라도 그것대로 독특한 예술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간혹 망쳤다고 생각되는 작품에서 빛을 보기도 한다. 그것은 전통 가마가 만들어 내는 의외성이다. 도공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란 불을 때는 것이며, 불 조절 역시 도공의 몫이지만 한번 가마 안에 들어간 작품은 사람의 손을 떠난다.  

“도자기를 만드는 우리 흙 농사꾼들도 가마에서 구워 나오는 도자기가 어떤 색깔로 어떻게 구워질지는 30%밖에 예상할 수 없어요. 그날의 습도, 불의 세기와 온도, 미세한 환경적 영향 등이 도자기의 색깔과 질감을 결정하지요. 야구에 직구, 변화구 등이 있듯 가마 안에서도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요.”

작품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서도, 불 때는 시간과 방법에 따라서도, 가마에 도자기를 놓는 위치며 놓는 방법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물론 노하우는 있다. 작가 개개인에게는 다년간의 실험과 경험으로 축적된 ‘감’이 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다보니 결과가 예상 밖일 때도 태반이다. 그래서 가마 여는 날은 작품 하나하나를 꺼낼 때마다 흥분과 설렘, 불안이 혼재한다.

물레를 돌려 도예 체험을 하고 가마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꺼내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 이제 도자기를 보는 마음과 눈빛이 달라진다. 호기심이 하루 사이에 왕성해진다. 도자기를 분류하는 기준이며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발라 초벌?재벌구이 하는 과정까지, 알고 싶은 것 천지다.  
 

 

온 동네가 노란 산수유 꽃 수채화
도예촌에서 10km 떨어진 백사면의 도립리, 경사리 일대에 산수유 마을이 있다. 100살에서 500살 나이를 자랑하는 산수유나무 수천 그루가 객을 반긴다.

마을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다만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며칠 동안은 시끌벅적하다. 조금 높은 둔덕에 올랐더니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 전체에 노란색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그야말로 봄빛이다. 봄날의 꽃놀이는 겨우내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눈을 밝힌다. 마음속에 꽃나무 한 그루 심고 싶어진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싫다면 축제가 끝나고 가는 것이 더 한적하고 여유롭다. 평일인데도 꽃놀이 나온 중년의 무리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무리들은 사진 동호회며 그림 동호회에 소속해 있는 듯, 마을 골목 곳곳에서 경쟁하듯, 하지만 조용히 자신들만의 세상을 카메라와 화폭에 담는다. 봄꽃의 싱그러움을 못내 부러워하듯이.

산수유 마을 한 바퀴 돌고 할머니들이 파는 산수유즙도 한잔 마셔본다. 10월이 되면 빨간 산수유 열매가 한 번 더 객을 유혹하는데, 그때는 봄의 청순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혹적인 자태를 자랑한다.

이천은 작은 도시지만 쌀밥과 도자기, 산수유꽃 말고도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곳이다. 세계 도자기센터와 더불어 만화박물관과 아트갤러리도 있고 설봉산과 이천온천도 들려봄직하다. 옹기종기 모여 있어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길도 곧 훤해진다. 1박 2일을 알뜰하게 써야 온전히 이천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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