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자살자살자…' 나는 '살자'로 들린다"

淸潭 2007. 2. 8. 10:41
  • '자살자살자…' 나는 '살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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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재판장의 특이한(?) 훈계에 잔잔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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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자살자살자살…”

      7일 오전 경남 창원시 사파동 창원지방법원 315호 법정에서 30대 피고인이 낮은 목소리로 ‘자살’이란 단어를 10번 되뇌는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형사3부 재판장인 문형배 부장판사가 방화미수 혐의로 기소된 백모(32) 피고인에게 “자살이란 단어를 10번 되풀이해 말해 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영문을 모르는 방청객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문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살자’라고 들리지 않느냐”며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고쳐 생각해 새롭게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또 책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피고인에게 건넸다. 중국 작가 탄줘잉이 지은 이 책에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외쳐보기’, ‘고난과 반갑게 악수하기’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문 부장판사는 “책을 읽어 보면서 과거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 보고, 여태껏 하지 못한 일들을 실천하면서 살기 바란다”고 말한 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백 피고인은 카드빚 3000만원을 갚지 못한 것을 비관, 지난해 12월 진해시내 한 여인숙에서 자살하기 위해 방화했다가 신고 받고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진화돼 미수에 그친 혐의로 구속기소 됐었다.

      1986년 사법시험(28회)에 합격, 주로 부산 경남지역에서 근무해온 문 부장판사는 뇌물수수 등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선 서릿발 같은 판결을 내리는 반면 어려운 사정이 있는 피고인에게는 ‘따뜻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로 정평이 나 있다. 1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종규 전 창녕군수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수십 차례 취업에 실패한 뒤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26장과 1만원권 지폐 6장을 위조하고 수표 11장을 유통시킨 혐의로 기소된 20대 대학생에게는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우리 사회의 인재인 피고인이 대학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받은 보살핌을 이제 갚아야 한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통화 위조에 대한 법정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무거운 편이다.

      집행유예 기간 중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에서 문 부장판사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며 벌금형을 선고한 뒤 책 ‘마시멜로 이야기’를 선물하는 등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책을 건넨 것도 여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