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내 속을 열어 봐, 숯검댕이 뿐이지"

淸潭 2007. 1. 9. 15:43

"내 속을 열어 봐, 숯검댕이 뿐이지"

 

다 내어 주고도 또 내어줄 것을 찾으시는 게 이 땅의 어머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어둠은 긴 침묵을 요구합니다. 어머니의 방은 벌써 불이 꺼졌습니다. 잠을 자는지 아니면 살아온 삶을 하루씩 되뇌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너무 조용하다 싶어 밤시간 슬그머니 어머니 방의 문을 열어 보면 아무 기척도 하지 않습니다. 방 구들이 뜨끈한지 손을 이불 밑으로 넣어도 어머니는 가만히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깊은 병은 없지만 그럴 땐 무슨 일인가 싶어 흔들어 깨우고 싶습니다. 잠시 곁에서 지켜보다 가늘게 코 고는 소리라도 들리면 안심을 하고 방문을 닫습니다.

어른이 된 아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도 못하고

지금 시각은 고작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고, 어느 집은 귀가 하는 가장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어머니의 방은 어둠입니다.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 쓰입니다. 단란하게 모여앉아 식사를 하며 웃었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날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동심을 잃어버린 아들은 어머니에게 즐거움을 드리지 못합니다. 덩치만 커다래진 아들은 어느 때인가부터 어머니의 품에 안기질 못합니다. 어른이 된 아들은 아직은 젖이 나올 것 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지도 않습니다.

 

감은 쪼글쪼글 말라가도 제 역할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쓸쓸한 일입니다. 어른은 잊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할 때도 많습니다. 어떨 땐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 어머니와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도 벗기고 집에서 못다 한 얘기 도란도란 하면서 수다도 떨고 싶습니다. 목욕탕을 나와 음식점에 들러 얼큰한 장칼국수 한 그릇씩 시켜놓고 맛있네, 맛없네 하면서 겨울의 한낮을 보내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 슈퍼에 들러 며칠 먹을 음식도 사고 길거리에 있는 호떡이나 어묵도 몇 개씩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그렇게 걷고 싶어도 아들의 키가 너무 커 버렸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떼를 쓰던 아이는 기억 속에서나 찾아야 합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던 어머니도 이젠 기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밤은 깁니다. 잠든 어머니는 개 짖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골짜기를 휩쓸고 내려오는 바람도 어머니의 잠을 깨우지는 못합니다. 이제 잠든 어머니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닭띠입니다. 올해 일흔넷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소띠였습니다. 두 분은 소가 닭 보듯, 닭이 소에게 날아들 듯 그렇게 50년을 살았습니다. 지긋지긋하게 싸우시면서 살아도 고작 50년입니다.

어머니는 16살 나던 해 24살인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큰 산을 두 개나 넘어 토굴 같은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마을을 휩쓸고 간 돌림병으로 부모님과 형제를 잃고 서둘러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결혼기념일도 모르고 사신 어머니의 가슴엔 '숯검댕이뿐'
 

과자 한 봉지에도 행복했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쌀밥만 먹고 살았다던 어머니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나물죽으로 연명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시집살이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할 때마다 어머니는 보따리를 싸야 했습니다.

아편에 빠진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해 하룻밤 왕복 60십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넷이나 가슴에 묻고도 슬퍼할 시간이 없었던 어머니였습니다.

"내 속을 열어봐라, 숯검덩이가 따로 없을 게다"

어머니의 삶은 고난으로 점철된 세월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만 그런 세월을 보낸 건 아닙니다. 그 시절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자식을 묻었고 세월을 묻었습니다.

요즘 사람들 기념일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결혼기념일은 당연히 챙겨야 할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모릅니다. 부모님은 지금껏 결혼기념일을 챙겨본 일이 없습니다.

몇 대조 할아버지의 기일은 중요해도 결혼한 날은 중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남세스럽게 그런 걸 챙기느냐고 부끄러워할지도 모릅니다.

며칠 후면 어머니의 일흔네 번째 생신입니다. 어머니 생신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습니다. 선물이라고 준비할 것도 없는 생신입니다. 어머니에게 선물이라 하면 모든 가족이 모이는 것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번 생신 때는 어머니와 아들 둘이 조촐하게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게 삶인가 봅니다. 생신 상이라 해봤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떡과 홍시 준비하고, 삼겹살에다가 미역국 끓이면 끝납니다. 그리고 식사 후 용돈 든 봉투를 드리면 행사는 끝납니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맨발로 뛰어 나오실 것 같다.

 

보리밥 맛있다는 칭찬에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어머니의 밤은 깁니다. 어머니는 긴 밤을 홀로 보냅니다. 어둠 속에서 자다 깨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긴 밤을 보냅니다. 연속극이라도 보면 좋을 텐데 그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늘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다툼이 있을 땐 더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복잡한 가전제품은 아예 젬병입니다.

집에 세탁기도 없지만 그런 건 사용도 못 합니다. 냉장고 문이 열려도 닫아야 하는 이유를 잘 모릅니다. 복잡한 압력 밥솥은 어머니를 늘 괴롭힙니다. 알면 아무것도 아니고 모르면 전혀 모르는 요즘 사람들의 수준과는 다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또는 백까지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그런 일을 도맡아 하셨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게지요. 오죽하면 아버지 동생인 고모께서 어머니를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라고 하겠는지요.

그런 소리 어머니가 들으면 펄쩍 뜁니다. 내가 없었으면 집안 꼴이 되지도 않았다며 입을 쭉 빼 뭅니다. 그럴 땐 진짜 애기 같습니다. 그래도 보리밥 같은 건 잘합니다. 김치 만들 때 보면 썩썩 잘합니다. 그야말로 옛날식 음식입니다.

연극 하는 조카가 "할머니 보리밥 정말 맛있어요. 보리밥집 하면 장사 잘될 것 같은데요"하며 어머니의 솜씨를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는 날개를 답니다.

"그래도 될까? 근데 이런 촌구석까지 누가 올까?"
"에이, 그런 건 걱정 말아요. 제가 사람들 불러들일게요."


그렇게 말한 조카는 지난 가을 2년 일정으로 남미로 떠났습니다. 조카의 할머니가 내게 고모니까 친조카는 아니지만 친조카보다 더 친합니다. 고모는 무당이셨는데 일대에선 알아주는 만신이었지요. 조카가 연극을 하는 건 고모의 피를 이어받은 듯합니다.

바람소리가 제법 큽니다. 창문을 흔드는 소리도 요란합니다.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이런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꿈속에서라도 많은 이들이 찾아주는 생일상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허망한 꿈일지라도 그 시간만큼은 어머니를 위한 시간입니다. 어머니께서 즐겁고 행복한 꿈만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밤은 오늘도 깊고도 깁니다. 내일쯤이면 눈길이 녹아 어머니와 읍내 나들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밭에서 갓을 뜯는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