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우리 애 파혼했어."

淸潭 2007. 1. 9. 14:57

우리 애 파혼했어."

"왜?"

우린 갑작스런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딸은 지난해 11월 중순경에 결혼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11월이 가고 12월이 지나 해가 바뀌어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친구들은 몇 번이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시원스럽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1월 친구모임에 나와서 그가 딸아이의 결혼이 왜 파혼되었는지를 말해준 것이다. 그의 기가 막힌 이야기가 계속된다.

지난해 봄 27살 된 딸이 결혼하겠다고 예비신랑감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딸이 좋다고 하니깐 그의 부부는 결혼 승낙을 했고, 예비신랑은 부쩍 결혼을 서두르는 눈치였다고 한다.

친구는 신랑감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곤 이해하고 넘어갔다. 결혼 날짜를 잡고 직장에 다니는 딸과 예비사위는 시간만 나면 결혼준비로 바쁘게 지냈다. 자연히 딸과 사윗감의 데이트하는 횟수는 늘어갔고, 귀가시간도 조금씩 늦어졌다. 딸을 둔 친구는 걱정이 되어 일찍 들어오라는 전화를 자주 했다.

데이트 중 친구가 딸아이한테 전화를 하면 사윗감은 전화를 빼앗아 "오늘 ○○는 조금 늦을 겁니다"하고는 전화를 딱 끊어버리고, 밤 12시가 다되어서 집에 들여보냈다. 딸아이가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해도 사윗감은 "내가 오늘 너희 엄마하고 통화해서 괜찮아" 하면서 늦게까지 안 들여보내기가 일쑤였다.

결혼 날짜가 정해졌지만 그동안에라도 걱정이 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인 것을. 사윗감은 한마디로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둘은 결혼할 사이이니깐 같이 있고도 싶겠지 하면서 마음을 달래 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는 장녀인 딸의 결혼이 그의 집안에서는 첫 결혼이라 나름대로 성의 있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 결혼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던 어느 날, 남자 집 어머니가 친구의 딸을 불렀다. 예비며느리를 부른 예비시어머니는 가족과 집안 친척의 명단을 적은 것을 내놓으면서 "여기 적힌 대로 해 와라"라며, 한마디로 당연히 해 와야 한다는 식으로 단호하게 말을 했다고 한다. 친구의 딸은 그 명단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냉장고는 ○○ 거, 장롱은 어디 거, 누구누구의 예단은 무엇으로 등 거기에 적힌 목록을 보니깐 친정기둥 뿌리 하나를 뽑아내도 부족할 듯했다고 한다.

친구의 딸은 며칠 생각하다가 신랑감을 만났다. 그리고는 "난 이대로는 못해가요. 내 성의껏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남자는 "이 X이 어디서 반항이야. 시어머니가 해오라면 해올 것이지 벌써부터…"하면서 뺨을 한 대 때렸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있는 찻집에서.

그대로 찻집을 나와 집으로 온 딸아이가 그동안 엄마한테 이런저런 못다 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것이다. 친구는 딸아이가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들으면서 뺨을 맞았다는 말에 더욱 기가 막혔다.

그리곤 며칠이 지났다. 그러는 사이 신랑감 누이들도 합세를 해 친구 딸에게 더욱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그대로 딸아이를 결혼시켰다가는 딸아이가 마음고생 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친구는 남편과 딸, 모두 함께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번 결혼은 없던 거로 하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리곤 예비신랑감한테 그런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 후 신랑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 집에 찾아와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친구는 신랑감의 그런 태도가 왠지 이상하게 더욱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딸아이한테 무슨 해코지를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찾아오면 아주 좋은 말로 "우리 딸아이는 아직 그런 집안에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면서 달래듯이 말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행히도 신랑감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사윗감은 벌써 그런 문제로 2번의 파혼을 겪었다고 한다.

그의 딸이 세 번째이고 하마터면 평생 빼도 박도 못할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하면서 큰 한숨을 내리 쉰다.

"내가 그 동안은 창피해서 말을 안 했는데 요즘 그런 일이 창피한 것도 아니고, 자기네들도 결혼할 아이들이 아직 남았잖아. 그래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생각하다가 말한 거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우리들은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파혼 잘했다. 그런 결혼시켜 봐야 네 딸 고생할 것이 뻔한 일이다. 요즘은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이나 낳고도 이혼하는데 그게 무슨 창피한 일이니. 현명하게 잘한 거야."

정말 아직도 그런 시어머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벗고 산 것도 아니고, 이불 덮지 않고 산 것도 아닐 텐데. 아들 장가 시키면서 한밑천 단단히 잡을라고 하는 마음이었을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결혼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그런 시어머니가 도처에 숨어 있다는 것이 문제는 문제이다. 시어머니들이 변해야 결혼문화는 좀 더 빨리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친구는 "너희들한테 털어놓았더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의 딸이 나쁜 일을 하루속히 모두 잊어버리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주에는 다른 친구아들이 결혼을 한다. 그는 혼수도 간단히 하고 저희가 살 집부터 예식장 등 모든 것을 그 아이들이 하는 대로 믿고 놔두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시어머니가 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주에 아들을 결혼시킬 친구와 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