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정초부터 시어머니 밥그릇을 깬 며느리

淸潭 2007. 1. 9. 14:52

정초부터 시어머니 밥그릇을 깬 며느리

어머니의 지혜를 오래동안 배우고 싶습니다

 

어제(5일)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살짝 놓치는 바람에 밥그릇과 냉면 대접이 깨지고 컵의 귀가 살짝 떨어졌습니다.하필이면 떨어뜨린 밥그릇이 바로 시어머님 주발이지 뭡니까?

당황한 저는 "어 밥그릇이 왜 깨지지?"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어머니는 얼른 다가 오셔서 제 손가락부터 살피신 후, 깨진 조각들을 살짝 들어내시곤 "어디 다친데 없니? 다른 조각이 또 있나 봐라"하시며 제 손가락을 재차 살피십니다. 손에서 떨어뜨렸으니 그릇을 깼을망정 제 손이야 멀쩡했지요.

어머니는 제 손이 멀쩡한 것을 보시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깨진 그릇을 말없이 다용도실 한 켠에 치우십니다.


제가 시어머니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지혜로움입니다. 삶에서 묻어나는 지혜로 가득하고, 부지런하시고, 남에게 험담을 하지 않으시며 상대방에게 절대 폐를 끼지지 않는 장점을 지닌 분입니다.

결혼 후, 가난한 집 맏며느리인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정파탄의 위기를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가정이라는 틀을 지키게 한 것은 아이와, 한없이 지혜로우신 시어머니였지요.

시어머니는 이미 저질러진 일을 가지고는 절대 야단을 치시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야단을 칠 일이 있어도 일단 밥을 다 먹고 난 뒤 방으로 불러서 조목조목 야단을 치시는 분이지요.


결혼 후 여러 면에서 성격이 바뀐 저는,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못마땅해 보이기에 충분한 실수를 시도 때도 없이 저지르곤 합니다.

세탁기를 돌리며 바지에 휴지, 손수건, 동전이나 돈을 그냥 두고 돌리는 것은 다반사고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날이 개면 어김없이 우산을 지하철이나 어느 장소에 버려두고 빈손으로 덜렁거리며 온 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요.

그때마다 덜렁거림이나 건망증에 속상해 하며 안달하는 것은 제 자신이었고 시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을 하시며 저를 위로하시곤 했습니다.

"사람 무사히 들어 온 것으로 된 거다. 우산이야 누군가 가져다 잘 쓰겠지. 잃어버려야 장사도 먹고 살지. 그런다고 잃어버린 우산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마라."

실수로 그릇을 깨뜨렸을 때도 마찬가지셨지요. 단 한 번도 "왜 그렇게 찬찬하지 못하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안 다쳤니? 그러면 됐다" 하셨지요.

 

제가 시어머니의 인품에 더 반하게 된 것은 시장을 같이 다니면서부터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장을 보실 때 절대 물건 값을 깎아달라거나 덤을 요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주먹 더 얹어 주려는 단골 아주머니께 "그렇게 더 집어 주면 뭐가 남겠느냐"며 손사래를 치시곤 하지요.

전 장에 가서 물건값을 절대 깎지 않거나, 양이 많다고 덜어내려하면 돈을 더 지불하는 분을 시어머니 말고 본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지혜로운 어머니와 17년을 살면서도 전 여전히 아들아이가 실수라도 할라치면 금세 "야, 너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거야?" 혹은 "너 그렇게 덜렁거릴래?"라며 야단을 치거나 똑같은 잔소리를 해대곤 하니 인생 수업에 열등생인 셈인가요? 하지만 저도 언젠가는 어머니의 지혜를 닮아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지요?


어제 저녁에 깨뜨린 밥그릇 대신 꽃 한 송이가 그려진 밥그릇을 한 벌 사다 드렸습니다.

"어머니! 그 지혜를 모두 배워 저도 지혜로워 질 때까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