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스크랩] 아내의 구멍난 속옷!

淸潭 2006. 12. 22. 14:12
 

토요일이어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온 가족이 모여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 아이들과 나는 과일을 먹으면서 TV 속에 빠져드는데, 아내는 눈길만 텔레비전에 두고 재빠르게 손을 놀린다. 아침에 세탁한 마른 빨래를 개는 중이다. 아내의 손이 스치면 큰 빨래나 작은 빨래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기 좋게 네모반듯하게 정리가 되어 서랍장에 들어간다. 무슨 마술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워낙 서툰데다가 눈썰미도 없다. 그래서 아침 출근할 때면 항상 아내가 미리 속옷과 양말, 양복을 챙겨둔다. 어쩌다 아내가 미리 챙겨 놓지 못하면 나는 연신 아내를 찾는다.

“아이고! 만약에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아이들과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아이들도 이 애비를 닮아서인지 물건을 챙길 줄 몰라서 아침이면 아내의 손길은 더 바쁘다.


거실 서랍장의 첫 칸에는 도르르 만 양말을 넣고 두 번째 칸에는 아들의 속옷을 넣고 아래 칸에는 내 속옷이 들어간다. 아내가 정리한 딸애의 속옷을 가지고 딸아이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에는 아내의 속옷만 남았다. 무심히 아내의 속옷에 눈길을 두는데, 기어이 조그맣게 ‘뿅, 뿅, 뽕’ 세 개의 구멍이 난 아내의 팬티를 보고야 말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서 구멍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더 크게 찢어 놓는다. 아내는 무안해서인지 황급히 뺏으려 하는데, 나는 더 성이 났다.

 

“아니, 어떻게 된 사람이 구멍 난 속옷을 입냐! 우리 형편이 그렇게 어렵냐!”

“......  ......”

 

 (생각없이 아내의 가슴을 찢어 놓고야 말았다)


그런데 옆에 앉아있던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딱 들어맞는 노래가 있다며 들어보라고 한다.

 

-엄마의 난닝구-

작은 누나가 엄마 보고 엄마 난닝구가 다 떨어졌다 한 개 사이소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난닝구 구멍이 콩만 하게 뚫려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대접) 만하게 뚫려 있다 뚫려져 있다
아부지는 그걸 보고 엄마 난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이카노)
한다 엄마는 너무 째모 걸레도 몬한다 두 번은 더 입을 수 있을낀데


아들이 부른 이 노래는 오래 전에 대구 쪽(경산)에 사는 시골 아이의 일기 글을 보고 선생님이 노래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20년이나 지난 지금, 시골도 아닌 도회지에서 구멍 난 속옷을 입는 아내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아들의 노래를 듣고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다시 찬찬히 아내의 속옷을 살펴본다. 그런데 또 있다. 이번에는 조금 큰 구멍이 동그랗게 뚫려져 있다.

 

-지나친 댓글들로 사진을 삭제하였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

 

(아내의 가슴속에는  '희생'이란 이름의 이런 생채기가 무수히 나 있을 거야!)

 

“팬티 한 장에 3000원 이상인데, 조금 구멍이 났다고 그냥 버린다면 너무 아깝잖아요? 당신은 궁색하다고 나무라지만 안에 입어서 보이지도 않는, 조금 찢어진 속옷을 입는다고 무슨 허물이 되는가요!”


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이 무능한 남편이 우선이고, 아이들이 그 다음이고 자기는 항상 마지막이었다. 내 옷과 아이들 옷은 백화점 세일할 때 장만하지만 아내의 옷은 동네 할인매장이나 리어카에서 파는 5000원 짜리 옷으로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한 번도 내색하는 법이 없어서 나는 아내가 옷에는 전혀 욕심이 없는 줄만 알았다.


얼마 전에 내 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아내에게 옷을 사라고 슬며시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망설이던 아내가 결심을 한 듯 여성의류매장을 찾았는데 아내는 여러 매장을 돌면서도 끝내 옷을 고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매장 직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료함과 쑥스러움에 아내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이번 연말에는 망년회 한 둘 빠지더라도 그 돈으로 아내의 속옷이나 실컷 사 줄란다. 그리고 큰 맘 먹고 카드를 긁어서라도 백화점 세일할 때 아내의 코트라도 한 번 장만해 봐야지! 

출처 : 내 사랑 서민욱
글쓴이 : 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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