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은혼식 기념일

淸潭 2006. 11. 2. 20:08
 

은혼식 기념일

                                                                  
 
오늘은 결혼한 지 만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생판 모르는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어언 반세기의 반이 지났다. 결혼 기념일은 10주년(석혼식), 25주년(은혼식) 그리고 50주년(금혼식)을 제일 성대하게 치른다고 하는데, 10주년은 세상살이에 바빠 그냥 지나쳤기에 이제 은혼식을 맞이하고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결혼 전 고등학교 교사직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전업주부로 변신한 아내는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었던 필자를 만나 넉넉지 못한 생활형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아내는 몇 푼이라도 벌어 가게에 보탬을 주려고 전공을 살려 어린이 미술지도를 하기도 했고, 학습교재를 판매하기도 했으며, 심심풀이로 한 동안 유행했던 지점토 공예를 익혀 이를 주변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위 다단계라고 불리는 판매조직에 잘 못 들어가 그야말로 몇 천 만원의 돈을 날리기도 하는 등 바람 잘날 없는 삶을 살아왔다. 돈을 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돈을 잃은 아내이기에 그 마음 고생이 오죽 했을까. 나중에 아내가 하는 일이 다단계임을 확인하고는 당장 그만두게 했지만 아내를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돈을 잃은 사람은 아내만이 아니었다. 


  필자도 나름대로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재형저축을 들었고 만기가 되자 이를 주식에 투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은 한 건재할 주식 예컨대 삼성전자와 포항제철 같은 우량주에 묻어 두었더라면 그래도 손해는 보지 않았을 것을 한창 벤처기업 붐이 일어날 때 이에 편성하여 신문광고만 보고 벤처기업 공모주 청약에 참가했고, 또 실제로 유망하다는 코스닥 주식을 매수하였다. 그런 후 공직생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사후관리를 전혀 하지 못해 몇 개월 후 확인했을 때 내가 구입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 있었다. 또한 내가 공모주 청약에 투자한 회사는 지금까지 존속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다. 


  박봉을 쪼개 저축한 피 같은 돈을 부부가 작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날려버렸으니 한번 분양 받은 소형아파트(27평형)에서 18년 간을 살아야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1987년 처음 집을 마련하여 입주했을 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넓은 집이었지만 두 아들의 덩치가 장승처럼 커지자 방이 두 개인 집이 너무나 좁아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지난해 9월 필자가 공직을 명예퇴직하며 받은 명예퇴직금과 퇴직일시금을 모으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방이 네 개인 중형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때 아내가 얼마나 좋았으면 며칠 밤을 꼬박 세우며 짐 정리를 했을까. 그 바람에 심한 몸살이 난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어제 한 신용카드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필자에게 은혼식을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하면서 남편이름으로 아내에게 축하카드를 대신 보내준다고 알려왔다. 이 말을 듣고는 순진하게도 요즈음은 카드회사간 경쟁이 치열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되어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목소리는 아내를 위해 깜짝 선물을 기획하였다는 설명이었다. 우선 목걸이를 보내 줄 테니 아내가 좋아하면 결제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품하라는 것이었는데 가격은 무려 40만원이 넘었다.


  비용부담능력 유무를 떠나 이는 지나친 상술이라고 생각되었고, 처음에 축하카드를 보내주겠다는 고마운 마음도 이제는 싹 가시고 말았다. 그 만한 돈이 있다면 직접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골라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선물 대신 아내에게 보내는 메모를 썼다.

 


사랑하는 여보!

 

오늘이 뜻 깊은 결혼 25주년이 되는 날이오.
유식한 말로하면 은혼식기념일이지요.

 

그 동안 아들 둘 낳아 기르면서
경제력이 부족한 남편을 만나 고생하면서도
지금까지 도망가지 않고 함께 살아준
당신이 고맙소!

 

앞으로 죽을 때까지
뜻을 같이해 한번 잘 살아 봅시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되면
아이들과 함께 산에도 같이 가구려!

 

   2006년 11월 1일
   은혼식 기념일을 맞아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필자는 이 메모를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아내 몰래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사 주지도 않으면서 립 서비스로 때우려 한다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은혼식은 원래 자녀나 친지들이 행사를 마련하며, 은제품을 선물하고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장남이 축하케이크를 사겠다고 하여 그 마음은 고맙지만 만류하였고, 차남은 현재 재수를 하기 때문에 며칠 남지 않은 수능시험(11월 16일)을 앞두고 비상사태에 돌입한 상태라 가족 모두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에 아내로부터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평소의 장난기가 그대로 나타나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영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오. 그래야 복 덩어리 마누라 덕을 볼 테니까! 그리고 돈벌이도 오래오래 해야 되요!"      


  그래도 은혼식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저녁에 외식을 하려고 장남에게 고층건물에 위치한 그럴듯한 식당에 예약을 하라고 부탁했더니 전망이 좋은 자리는 적어도 3일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는 일반 중국집으로 가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큰 녀석이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켠 후 두 녀석에게 한마디씩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


  "지금은 제가 능력이 없지만 앞으로 부모님 환갑에는 외국여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렸을 때 너무 철이 없어 부모님 속을 썩혀 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착한 아들이 되겠습니다."


  마냥 철부지 같기만 했던 녀석들로부터 이런 인사를 받고 보니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사람이 사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제 남은 소망은 아내도 건강하고 아이들도 바르게 성장하여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잘 적응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족 모두가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앞으로 25년 후 더욱 뜻 깊은 금혼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20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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