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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살이면 남도 보살이다.

淸潭 2025. 3. 9. 10:30

내가 보살이면 남도 보살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가지 않는데 어찌 상대가 나를 받아 주겠는가. 

마음이 상응하는 것은 물과 물을 섞는 것과 같다. 

상대가 하찮아 보이고 못나 보이고 밉게 여겨질 때에는 

‘저것이 바로 내가 몰랐던 시절의, 못났던 시절의 내 모습이지!’ 

하고 한생각을 돌려 보라.

 

무수한 세월, 육도를 윤회하는 과정에서 나라고 하여 

어찌 고상한 길만 걸어왔겠는가. 

온갖 모습을 다 해보았을 것이니 상대가 비록 하찮게 보인다 하여 

‘너는 아니다’라고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에 물을 섞듯이 상대와 하나가 되려거든 

먼저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을 열지 않고서는 상대가 내게로 올 수도 없고 

하나가 될 수도 없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수용할 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줄 때, 

상대의 말을 경청할 때 

비로소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한다면, 

강요된 순응이나 복종은 있을지 몰라도 

물과 물이 섞이는 것과 같은 동조, 

공감, 융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수용하는 것은 

부화뇌동하는 일도 아니고 비겁한 일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기 위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의 수순일 뿐이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서도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격의없는 대화가 가능해지고 

대화가 가능해져야 공감대를 넓힐 수 있으며 

공감대가 넓어져가 둘이 하나되는 

동조(同調)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불교의 무주상보시의 첫걸음이 된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고 식물이나 동물이라도 같다. 

내가 그의 속으로 들어가야 그도 내가 된다. 

 

내 몸 속에 들어온 것은 

들어오는 순간에 내 몸의 일부가 되듯이 

내가 그의 속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에 나는 그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그도 나의 한 부분이 된다. 

마음과 마음이 섞인다면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그이겠는가. 그냥 한마음인 것이다. 

 

내가 보살이면 남도 보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