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음악실

10. 송서

淸潭 2022. 11. 21. 10:32

·       10. 송서

 

송서[ 誦書 ]

 

요약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과 이들을 고객으로 하는 기방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서도 송서와 경기 송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송서로는 서도에서 「추풍감별곡」, 「적벽부」 등이고, 경기에서 「삼설기」, 「전적벽부」, 「후적벽부」, 「등왕각서」, 「짝타령」 등이며, 음원만 남아 있는 것이 박헌봉의 「시상부」, 유성옥의 「출사표」이다. 문헌상으로는 「어부사」, 「춘야연도리원서」 등이 남아 있다. 책을 읽는 듯한 소리지만, 상당한 공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창하기 힘든 소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서 [誦書] (창악집성, 2011. 07. 04., 하응백)

 

o   추풍감별곡

 

노랫말과 풀이

어젯밤 부던 바람 금성(金聲)이 완연(宛然)하다

고침단금(孤枕單衾)에 상사몽(相思夢) 훌적 깨어

죽창(竹窓)을 반개(半開)하고 막막히 앉았으니

만리장공(萬里長空)에 하운(夏雲)이 흩어지고

천년강산(千年江山)에 찬 기운(氣運) 새로워라

심사(心思)도 창연(悵然)한데 물색(物色)도 유감(有感)하다

정수(庭樹)에 부는 바람 이한(離恨)을 아뢰는 듯

추국(秋菊)에 맺힌 이슬 별루(別淚)를 머금은 듯

잔류남교(殘柳南郊)에 춘앵(春鶯)이 이귀(已歸)하고

소월동정(素月洞庭)에 추원(秋猿)이 슬피 운다

임 여의고 썩은 간장(肝腸) 하마하면 끊길세라

삼촌(三春)에 즐기던 일 예런가 꿈이런가

세우사창(細雨紗窓) 요적(寥寂)한데 흡흡(洽洽)히 깊은 정()

야월삼경사어시(夜月三更私語時)에 백년(百年) 사자 굳은 언약

단봉(丹峯)이 높고 높고 패수(浿水)가 깊고 깊어

무너질 줄 몰랐으니 끊어질 줄 알았으랴

 

금성(金聲): 가을 바람 소리. 가을이 왔다는 뜻

 

고침단금(孤枕單衾)에 상사몽(相思夢) 훌적 깨어: 고침단금은 홀로 쓸쓸히 자는 여자의 이부자리라는 뜻. 전체적으로는 홀로 자면서 님의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는 뜻.

 

죽창(竹窓)을 반개(半開)하고 막막히 앉았으니: 창을 반쯤 열고(꿈에서 님을 만났으니), 막막하게 앉아 있으니

 

만리장공(萬里長空)에 하운(夏雲)이 흩어지고 천년강산(千年江山)에 찬 기운(氣運) 새로워라: 하늘에는 구름이 흩어지고 강산에는 찬 기운이 도는구나

 

심사(心思)로 창연(悵然)한데 물색(物色)도 유감(有感)하다: 마음을 한탄하니, 풍경도 서글프다

 

정수(庭樹)에 부는 바람 이한(離恨)을 아뢰는 듯: 뜰 앞 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별의 슬픔을 말하는 듯

 

추국(秋菊)에 맺힌 이슬 별루(別淚)를 머금은 듯: 국화에 맺은 이슬 이별의 눈물을 머금은 듯

 

잔류남교(殘柳南郊)에 춘앵(春鶯)이 이귀(已歸)하고: 남문 밖에 버들도 쇠잔하니 꾀꼬리도 돌아가고

 

소월동정(素月洞庭)에 추원(秋猿)이 슬피 운다: 달 밝은 동정호에 원숭이가 슬피운다. 이 구절은 두보의 시에서 연유 한다.

 

삼춘(三春)에 즐기던 일 예런가 꿈이런가: 봄날에 님과 즐기던 일이 옛 일인가, 꿈인가

 

세우사창(細雨紗窓) 요적(寥寂)한데: 창밖에 가는 비 내려 적막하기 그지 없는데

 

흡흡(洽洽)히 깊은 정(): 넘치고 넘치는 깊은 정과

 

야월삼경사어시(夜月三更私語時)에 백년(百年) 사자 굳은 언약 단봉(丹峯)이 높고 높고 패수(浿水)가 깊고 깊어 무너지기 의외(意外)어든 끊어질 줄 짐작하리: 밤 깊어 둘이 속삭인 말에 백년 같이 살자고 한 굳은 언약은 높은 산과도 같고 깊고 깊은 강물과도 같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약속 끊어질 줄 어이 짐작이나 했으리

 

양신(良辰)에 다마(多魔)함은 예로부터 있건마는

지이인하(地邇人遐)는 조물(造物)의 탓이로다

홀연(忽然)히 이는 추풍(秋風) 화총(花叢)을 요동(搖動)하니

웅봉자접(雄蜂雌蝶)이 애연(哀然)히 흩단 말가

진장(秦藏)에 감춘 호구(狐裘) 도적(盜賊)할 길 바이 없고

금롱(金籠)에 잠긴 앵무(鸚鵡) 다시 희롱(戱弄) 어려워라

지척동방천리(咫尺洞房千里)되어 바라보기 묘연(渺然)하고

은하작교(銀河鵲橋) 끊쳤으니 건너갈 길 아득하다

인정이 끊쳤으면 차라리 잊히거나

아리따운 자태거동(姿態擧動) 이목(耳目)에 매양(每樣) 있어

못 보다 병()이 되고 못 잊어 한()이로다

천수만한(千愁萬恨) 가득한데 끝끝이 느끼워라

하물며 이는 추풍(秋風) 심회(心懷)를 붙여 내니

눈앞의 온갖 것이 전혀 다 시름이라

바람 앞에 지는 잎과 풀 속에 우는 짐승

무심히 듣게 되면 관계(關係)할 바 없건마는

유유별한(悠悠別恨) 간절한데 소래소래 수성(愁聲)이라

 

양신(良辰)에 다마(多魔)함은 예로부터 있건마는: 좋은 날에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은 예로부터 있어왔지만

 

지이인하(地邇人遐)는 조물(造物)의 탓이로다: 거리는 가까운데 사람이 먼 것은 조물주의 탓이로다(가까이 있건만 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뜻)

 

홀연(忽然)히 이는 추풍(秋風) 화총(花叢)을 요동(搖動)하니: 홀연히 부는 바람 꽃떨기를 흔드나니

 

웅봉자접(雄蜂雌蝶)이 애연(哀然)히 흩단 말가: 벌과 나비가 슬프게도 흩어진단 말인가

 

진장(秦藏)에 감춘 호구(狐裘) 도적(盜賊)할 길 바이 없고: 튼튼한 장롱에 감춘 여우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흰 털로 만든 옷은 훔쳐올 수도 없고.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없다는 뜻.

 

금롱(金籠)에 잠긴 앵무(鸚鵡) 다시 희롱(戱弄) 어려워라: 새장에 갖힌 앵무 다시 울기 어려우니

 

지척동방천리(咫尺洞房千里)되어 바라보기 망연(茫然)하구나: 지척이란 가까운 거리. 동방은 신방(新房)을 뜻하며 인연을 맺는 방. 가까운 곳에 있는 동방이 천리가 되었다는 뜻인데, 바로 옆에 있으면서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이 구절은 「엮음수심가」에도 나온다.

 

아리따운 자태거동(姿態擧動) 이목(耳目)에 매양(每樣) 있어: 아름다운 님의 자태와 거동이 귀와 눈에 매양 어리어

 

천수만한(千愁萬恨) 가득한데 끝끝이 느끼워라: 천 가지 근심 만 가지 한이 가득하여 끝끝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차다

 

하물며 이는 추풍(秋風) 별회(別懷)를 붙여 내니: 하물며 이는 가을 바람이 이별의 슬픈 마음을 붙여 내니

 

유유별한(悠悠別恨) 간절한데 소래소래 수성(愁聲)이라: 이별의 한 간절한데, 소리 소리 수심이라

 

아희야 술 부어라 행여나 관회(寬懷)할까

()대로 가득 부어 취()토록 먹은 후에

석양사로(夕陽斜路)로 을밀대(乙密臺) 올라가니

풍광(風光)은 예와 달라 만물(萬物)이 소연(蕭然)하다

능라도(綾羅島) ()한 버들 성긴 가지 소슬(蕭瑟)하고

금수봉(錦繡峯) 꽃진 남게 상엽(霜葉)이 표불(飄拂)하다

인정(人情)이 변화함은 측량(測量)하여 이를 건가

애연(哀然)히 눈을 들어 원근(遠近)을 살펴보니

용산(龍山)의 늦은 경()은 창울(蒼鬱)함이 심사(心思) 같고

마탄(馬灘)의 넓은 물은 탕양(蕩漾)함이 회포(懷抱)로다

보통문(普通門) 송객정(送客亭)에 이별(離別) 아껴 설워 마라

초패왕(楚覇王)의 장한 뜻도 죽기로 이별(離別) 설워

옥장비가(玉帳悲歌)에 눈물을 지었으나 오강(烏江) 풍우(風雨)에 운단 말 못 들었네

세상이별남녀중(世上離別男女中)에 날 같은 이 또 있는가

수로문(水路門)에 떴는 배는 행()하는 곳 어디메뇨

만단수회(萬端愁懷) 실은 후에 천리약수(千里弱水) 건너가서

우리 임 계신 곳에 수이수이 풀고지고

성우(城隅)의 늦은 경()을 견디어 못 보리라

장탄단우(長嘆短吁)로 위란(危欄)을 의지러니

바람결에 오는 종성(鐘聲) 묻나니 어늬 절고

초혜(草鞋)를 떨쳐 신고 섬거히 일어 걸어

영명사(永明寺) 찾아가서 중더러 묻는 말이

인간이별(人間離別) 내신 부처 어느 탑상(榻床) 앉았는고

님 그린 일편단심(一片丹心) 불전(佛前)에 발원(發願)하여

님을 다시 못볼망정 차라리 죽어져서

백골은 진토(塵土)되나 영혼은 높이 날아

님 앉어신 난간 앞에 어루화 보리로다

다시금 생각하니 이 또한 정수(定數)로다

죽장(竹杖)을 고쳐 짚고 부벽루(浮碧樓) 올라가니

들 밖에 점점봉(點點峰)은 구름 밖에 솟아 있고

청강(淸江)의 맑은 물은 추천(秋天)과 한빛이라

이윽고 돋는 달이 교교(皎皎)히 비쳤는데

그린 상사(相思) 지리(支離)한 중 옥면(玉面)인 듯 반겼더니

어이 한 뜬구름이 광명(光明)을 가리었네

 

행여나 관회(寬懷)할까: 행여나 근심을 풀어볼까

 

석양사로(夕陽斜路)에 을밀대(乙密臺) 올라가니: 해질 무렵 비탈길로 을밀대에 올라가니

 

만물(萬物)이 소연(蕭然)하다: 모든 것이 호젓하고 쓸쓸하다

 

능라도(綾羅島) ()한 버들 성긴 가지 소슬(蕭瑟)하고: 능라도의 쇠락한 버들가지 으스스하고 쓸쓸하고

 

금수봉(錦繡峯) 꽃진 남게 상엽(霜葉)이 표불(飄拂)하다: 금수봉에 꽃이 진 나무에 이슬맞은 나뭇잎이 바람에 떤다

 

인정(人情)이 변화(變化)함은 측량(測量)하여 이를 건가: 사람의 정이 바뀌는 것을 헤아려 무슨 소용인가

 

애연(哀然)히 눈을 들어 원근(遠近)을 살펴보니: 서글프게 눈을 들어 경치를 살펴보니

 

용산(龍山)의 늦은 경()은 창울(蒼鬱)함이 심사(心思) 같고: 용산은 평양에 있는 산 이름. 용악산. 울창한 숲의 경치가 예로부터 평양 8경 중의 하나였다. 늦게 보는 용산의 경치를 보니 그 숲이 우거짐이 마치 내 마음의 근심이 우거진 듯하여 보이고.

 

평양 8경은 평양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8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① 을밀상춘(乙密賞春) : 모란봉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를 말하는데 주위경치 및 복사꽃과 진달래가 만발한 봄에 산에 오르고 즐기는 모습

② 부벽완월(浮壁翫月) : 부벽루에 올라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달 (또는 대동강물에 잠긴 달) 구경

③ 영명심승(永明尋僧) : 해질무렵 영명사에 중들이 찾아드는 모습, 영명사는 용악산에 소재하였는데 6.25때 소실되고 현재는 부속 건물인 법운암과 영명사 8 5층 석탑 등이 전해지고 있음

④ 보통송객(普通送客) : 버들숲이 우거진 보통강 나루터에서 나그네를 떠나보내는 광경

⑤ 거문범주(車門泛舟) : 맑은 가을날 대동강에서의 뱃놀이 모습

⑥ 연당청우(蓮塘聽雨) : 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복판에 있었던 연못의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⑦ 용산만취(龍山晩翠) : 용악산의 소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른모습

⑧ 마탄춘창(馬灘春漲) : 이른 봄 대동강의 북쪽여울(馬灘)에 해빙이 떠내려 가는 풍경

 

마탄(馬灘)의 넓은 물은 탕양(蕩漾)함이 회포(懷抱)로다: 마탄나루의 넓은 물에 물결이 일렁거림이 마음 속에 품은 정이로다

 

보통문(普通門) 송객정(送客亭)에 이별(離別) 아껴 설워 마라: 보통문 송객정은 평양에서 원래 이별의 장소지만, 이별을 아껴 설워말라는 뜻

 

초패왕(楚覇王)의 장한 뜻도 죽기로 이별(離別) 설워 옥장비가(玉帳悲歌)에 눈물을 지었으나 오강(烏江) 풍우(風雨)에 운단 말 못 들었네: 시조의 변형이다. 원래 시조는 다음과 같다.

 

초패왕(楚覇王) ()한 뜻도 죽기도곤 이별슬허

옥장비가(玉帳悲歌)에 눈물은 지어시나

지금희 오강풍랑(烏江風浪)에 우단 말은 업세라

 

초패왕 항우가 한나라 군대에게 궤멸 당하자 죽기는 어렵지 않으나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 때문에 괴로워하자 우미인이 노래를 부르고(옥장비가)자결했다. 그리고 항우는 강동 자제 800명을 데리고 포위망을 뚫고 오강에 이르렀으나, 거의 전멸하고 20여 명의 병사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보고 자결했다. 이 구절의 뜻은초패왕의 장한 뜻도 죽기보다 이별이 서러워 (우미인의) 옥장비가에 눈물을 지었으나 오강에서 자결할 때 울었다는 말 못 들었네이다.

 

만단수회(萬端愁懷) 실은 후에 천리약수(千里弱水) 건너가서 우리 임 계신 곳에 수이수이 풀고지고: 배에 자신의 여러 근심과 회포를 실어 임 계신 곳에서 풀고 싶다

 

성우(城隅)의 늦은 경()을 견디어 못 보리라: 성우는 성두(城頭). 성 위쪽에서 늦 가을 경치를 보니 견디기 힘들다는 뜻.

 

장탄단우(長嘆短吁)로 위란(危欄)을 의지러니: 길고 잛은 탄식으로 높은 난간을 의지하고 있으니

 

바람결에 오는 종성(鐘聲) 묻나니 어늬 절고: 바람결에 종소리가 들려오나니 어디에 있는 절에서 나는 소리인가

 

초혜(草鞋)를 떨쳐 신고 섬거히 일어 걸어: 짚신을 신고 힘없이 일어나 걸어

 

영명사(永明寺) 찾아가서 중더러 묻는 말이 인간이별(人間離別) 내신 부처 어느 탑상(榻上) 앉았는고: 영명사를 찾아가서 중에게 인간이별을 만드신 부처는 어느 좌대에 앉았는지를 묻고

 

님 앉어신 난간 앞에 어루화 보리로다: 님 앉으신 남간 앞에 어울려 보리로다

 

이 또한 정수(定數)로다: 이 또한 정해진 운수다

 

들 밖에 점점봉(點點峰)은 구름 밖에 솟아 있고 청강(淸江)의 맑은 물은 추천(秋天)과 한빛이라: 평양 교외에는 점점의 봉우리가 구름 속에 펼쳐 있고, 대동강의 맑은 물빛은 가을 하늘 빛과 같다

 

그린 상사(相思) 지리(支離)한 중 옥면(玉面)인 듯 반겼더니 어이 한 뜬구름이 광명(光明)을 가리었네: 그리던 님 생각이 이리저리 찢기는 중에 님의 얼굴인 줄 알고 달빛을 반겼더니 뜬 구름이 달빛을 가리었네

 

어화 이 어인 일고 조물(造物)의 탓이로다

언제나 구름 걷어 밝은 빛 다시 볼꼬

송지문(宋之問)의 명하편(明河篇)을 길이 읊어 배회(徘徊)하니

한로상풍(寒露霜楓)에 취()한 술 다 깨었다

낙엽(落葉)을 깔고 앉아 금준(金樽)을 다시 열고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에 몽롱(朦朧)히 취()케 먹고

짧은 탄식(嘆息) 긴 한숨에 발을 밀어 일어 걸어

지향(指向)없이 가는 길에 애련당(愛蓮堂) 드단 말가

부용일지(芙蓉一枝) 꺾어 들고 유정(有情)히 돌아보니

수변(水邊)에 비친 꽃은 임이 나를 반기는 듯

엽간(葉間)에 듣는 비는 내 심정(心情) 아뢰는 듯

양양백구(兩兩白鷗)는 홍요(紅蓼)변에 왕래(往來)하고

쌍쌍(雙雙) 원앙(鴛鴦)은 녹수(綠水)의 부침(浮沈)이라

이 인생(人生) 가련(可憐)함이 미물(微物)만 못 하도다

홀연(忽然)히 다 떨치고 백마(白馬)에 채를 던져

()이냐 구름이냐 정처(定處)없이 가자 하니

내 말이 허황(虛荒)하야 갈 곳이 아득하다

허희탄식(噓欷嘆息)하고 초려(草廬)로 돌아오니

간 곳마다 보는 물색(物色) 어이 그리 심란(心亂)한고

울 밑에 핀 국화(菊花) 담에 붉은 단풍(丹楓)

임과 함께 볼 양이면 경개(景槪)롭다 하련마는

도도심사(悼悼心思) 울울(鬱鬱)하여 도리어 수심(愁心)이라

 

송지문(宋之問)의 명하편(明河篇)을 길이 읊어 배회(徘徊)하니: 송지문은 당나라 시인. 명하편은 은하수를 두고 쓴 시로밝은 은하수는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할 수 없다(明河可望不可親(명하가망불가친))’ 하여 보기만 하고 갈 수 없는 상태를 이름.

 

한로상풍(寒露霜楓): 늦가을 찬바람에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 한 잔 한 잔 또 한 잔에, 이는 이백의 시에서 연유한다

 

부용일지(芙蓉一枝) 꺾어 들고 유정(有情)히 돌아보니 수변(水邊)에 비친 꽃은 임이 나를 반기는 듯: 연꽃 가지 꺾어 정답게 바라보니 물가에 비친 꽃은 임이 나를 반기는 듯

 

엽간(葉間)에 듣는 비는 내 심정(心情) 아뢰는 듯: 연잎에 떨어지는 비는 내 심정을 아뢰는 듯

 

양양백구(兩兩白鷗)는 홍요(紅蓼)변에 왕래(往來)하고 쌍쌍(雙雙) 원앙(鴛鴦)은 녹수(綠水)의 부침(浮沈)이라: 짝지어 나는 갈매기는 물가에 왕래하고 짝지어 노는 원앙은 푸른물에서 자맥질을 하는데

 

홀연(忽然)히 다 떨치고 백마(白馬)에 채를 던져 산()이냐 구름이냐 정처(定處)없이 가자 하니: 홀연히 다 떨치고 백마에 채찍질을 하여 산과 구름으로 정처없이 가자고하여도

 

내 말이 허황(虛荒)하야 갈 곳이 아득하다: 내 말(마음)이 허황하야 갈 곳이 아득하다

 

허희탄식(噓欷嘆息)하고 초려(草廬)로 돌아오니: 깊이 탄식하며 초가집으로 돌아오니

 

간 곳마다 보는 물색(物色) 어이 그리 심란(心亂)한고: 간 곳마다 보이는 풍경이 어이 그리 심란한고

 

울 밑에 핀 국화(菊花) 담에 붉은 단풍(丹楓) 임과 함께 볼 양이면 경개(景槪)롭다 하면 마는 도도심사(悼悼心思) 울울(鬱鬱)하여 도리어 수심(愁心)이라: 국화와 단풍을 님과 함께 보면 그 풍경이 아름답겠지만, 도도한 심사가 울울하여 도리어 수심이라

 

무정세월(無情歲月) 여류(如流)하야 나날이 깊어 간다

가기(佳期)는 절()을 찾아 구추(九秋)에 늦었에라

() 아래 우는 실솔(蟋蟀) 너는 무삼 나를 미워

지는 달 새는 밤에 잠시도 끊지 않고

긴 소래 짧은 소래 경경(耿耿)히 슬피 울어

다 썩고 남은 간장(肝腸) 어이 마저 썩이느냐

인계(鄰鷄)가 더디 우니 밤도 자못 깊었에라

상풍(霜楓)에 놀란 홍안(鴻雁) 운소(雲霄)에 높이 떠서

옹옹(嗈嗈)한 긴 소래로 짝을 불러 슬피 우니

춘풍호월(春風皓月) 저문 날에 두견성(杜鵑聲)도 느끼거든

오동추야(梧桐秋夜) 단장시(斷腸時)에 차마 어찌 들을 건가

네 비록 미물(微物)이나 사정(私情)은 날과 같다

일폭(一幅) 화전지(華箋紙)에 세세사정(細細私情) 그려 내어

명월사창(明月紗窓) 요적(寥寂)한데 임 계신 곳 전()하려마

인비목석(人非木石)이라 임도 응당(應當) 반기리라

지리한 이 이별이 생각사록 끝이 없다

인연(因緣) 없어 못 보는가 유정(有情)하여 그리는가

인연(因緣)이 없었으면 유정(有情)인들 어이 하리

인연(因緣)도 없지 않고 유정(有情)도 하건마는

일성중(一城中) 함께 있어 어이 그려 못 보는가

오주명월(吳州明月) 밝은 때와 초산운우(楚山雲雨) 성길 적에

설진심중무한사(說盡心中無限事)는 황연(怳然)한 꿈이로다

무진장회(無盡長懷) 강잉(强仍)하여 문()을 열고 바라보니

무심(無心)한 뜬구름은 끊겼다 다시 잇네

우리 임 계신 곳이 저 구름 아래련만

오며가며 둘 사이에 무슨 약수(藥水) 막혔관대

양처(兩處)가 막막(漠漠)하야 소식(消息)조차 끊단 말가

둘 데 없는 이내 심사(心思) 어디다가 지접(支接)할꼬

벽상(壁上)에 걸린 오동(梧桐) 강잉(强仍)하여 내려놓고

봉구황(鳳求凰) 한 곡조(曲調)를 한숨 섞어 길이 타니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야 원()하는듯 한()하는듯

상의(相如)의 옛 곡조(曲調)는 의연(依然)히 있다마는

탁문군(卓文君)의 밝은 지음(知音) 흡흡(洽洽)히 자취 없다

상사곡 옛 글귀는 날 위하여 지었는가

결연한 이 이별이 느낄 일도 많고 많다

창해월영두운(滄海月嶺斗雲)은 임 계신 곳 비추건만

심중소회안전사(心中所懷眼前事)는 나 혼자뿐이로다

갈수록 심란(心亂)한데 해는 어이 쉬이 가노

잘 새는 깃을 찾아 무리무리 날아들고

야색(夜色)은 창망(蒼茫)하야 먼 남기 희미하다

경경(耿耿)히 흐르는 빛 절기(節期) 찾는 형화(螢火)로다

적막(寂寞)한 빈 방 안에 울적(鬱寂)히 홀로 앉아

지난 일 다 떨치고 오는 시름 생각하니

() 밖에 산()이 있고 물 밖에 대해(大海)로다

구의산(九疑山) 구름같이 바라도록 묘연(杳然)하다

장장추야(長長秋夜) 긴긴밤을 이리하여 어이 할꼬

아무쪼록 잠을 들어 꿈에나 보자 하니

원앙침(鴛鴦枕) 서리 차고 비취금(翡翠衾) 냉랭(冷冷)하다

효월잔등(曉月殘燈)에 꿈 이루기 어려워라

일병잔촉(一柄殘燭) 벗을 삼아 전전불매(輾轉不寐) 잠 못 들어

검각령(劍閣嶺) 새벽달에 오경(五更)인 줄 깨닫겠다

이리 헤고 저리 헤도 아마도 원수(怨讐)로다

 

무정세월(無情歲月) 여류(如流)하야: 무정한 세월은 나날이 흐르고 흘러

 

가기(佳期)는 절()을 찾아 구추(九秋)에 늦었에라: 좋은 시절 때를 찾아 구월이나 되었구나

 

() 아래 우는 실솔(蟋蟀) 너는 무삼 나를 미워 지는 달 새는 밤에 잠시도 끊지 않고 긴 소래 짧은 소래 경경(耿耿)히 슬피 울어: 베개 아래 우는 귀뚜라미야 너는 왜 내가 미워 밤새도록 끊이지 않고 슬피 울어

 

린계(鄰鷄)가 더디 우니 밤도 자못 깊었에라: 이웃집 닭도 더디 울어 밤도 자못 깊었구나

 

상풍(霜楓)에 놀란 홍안(鴻雁) 운소(雲霄)에 높이 떠서 옹옹(嗈嗈)한 긴 소래로 짝을 불러 슬피 우니: 가을 바람에 놀란 기러기 하늘 높이 떠서 다정스런 긴 소리로 짝을 불러 슬피 우니

 

춘풍호월(春風皓月) 저문 날에 두견성(杜鵑聲)도 느끼거든: 꽃피는 봄밤에 소쩍새 소리도 슬프지만

 

오동추야(梧桐秋夜) 단장시(斷腸時)에 차마 어찌 들을 건가: 오동잎 지는 가을 밤에는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듯 한데 차마 어찌 들을 것인가

 

네 비록 미물(微物)이나 사정(私情)은 날과 같다: 네 비록 미물이나 사사로운 정은 나와 같다

 

일폭(一幅) 화전지(華箋紙)에 세세사정(細細私情) 그려 내어: 한 폭 종이에 상세한 마음 그려내어

 

명월사창(明月紗窓) 요적(寥寂)한데 임 계신 곳 전()하려마: 달밝은 창 쓸쓸한데 임에게 전해주려마

 

인비목석(人非木石)이라 임도 응당(應當) 반기리라: 임이 목석이 아닌 바에야 응당 반기리라

 

난 인연(因緣) 없어 못 보는가 유정(有情)하여 그리는가: 나는 님과 인연이 없이 못보는가 정이 많아 그리워하는가

 

인연(因緣)이 없었으면 유정(有情)인들 어이 하리: 인연이 없었으면 정이 많은들 어이하리

 

일성중(一城中) 함께 있어 어이 그리 못 보는가: 한 성안에 있으면서도 어이 그리 못보는가

 

오주명월(吳州明月) 밝은 때와 초산운우(楚山雲雨) 성길 적에: 오주(중국의 지명)에 달밝은 때와 초산(중국의 지명)에 비내릴 때

 

설진심중무한사(說盡心中無限事): 가슴 속에 서린 끝없는 사연을 털어놓고 싶지만.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이라는 시에서 연유한다.

 

무진장회(無盡長懷) 강잉(强仍)하여: 끝없는 회포를 억지로 참고

 

약수(藥水): ()을 말함. 중국의 지명인듯함.

 

양처(兩處)가 막막(漠漠)하야 소식(消息)조차 끊단 말가: 두 군데가 다 막막하여 소식조차 없단 말인가

 

지접(支接)할꼬: 의지할까

 

벽상(壁上)에 걸린 오동(梧桐) 강잉(强仍)하여 내려놓고: 벽위의 오동 그림을 억지로 내려놓고

 

봉구황(鳳求凰) 한 곡조(曲調)를 한숨 섞어 길이 타니: 봉구황은 전한 시대 거문고의 명연주가이자 명문장가인 사마상여가 절세 가인이었던 탁문군을 유혹하기 위해 거문고를 타며 불렀다는 노래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야 원()하는 듯 한()하는 듯: 여음(남는 소리)가 요요(소리가 길고 간드러져)하여 원망하듯 한탄하듯

 

상의(相如)의 옛 곡조(曲調)는 의연(依然)히 있다마는: 사마상여의 옛 곡조는 의연히 있지만

 

탁문군(卓文君)의 밝은 지음(知音) 흡흡(洽洽)히 자취 없다: 탁문군처럼 노래를 알아줄 사람이 이제는 자취도 없다. 탁문군은 당시 17세로 과부가 되었는데, 사마상여의 「봉황곡」을 듣고 유혹에 넘어갔다. 둘은 야반도주를 하여 술장사를 했다.

 

창해월영두운(滄海月嶺斗雲)은 임 계신 곳 비추건만: 바다에 뜬 달과 산고개에 걸린 구름은 임 계신 곳 비추건만

 

심중소회안전사(心中所懷眼前事)는 나 혼자뿐이로다: 눈 앞의 일에 마음을 끓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로구나

 

야색(夜色)은 창망(蒼茫)하야 먼 남기 희미하다: 밤 풍경은 쓸쓸하고 멀리 보이는 나무는 희미하다

 

경경(耿耿)히 흐르는 빛 절기(節期) 찾는 형화(螢火)로다: 깜박이는 빛은 때를 찾는 반딧불이다

 

구의산(九疑山) 구름같이 바라도록 묘연(杳然)하다: 구의산은 중국의 산이름

 

원앙침(鴛鴦枕): 젊은 부부가 같이 베는 베개

 

비취금(翡翠衾): 젊은 부부가 같이 덮고 자는 화려한 이불

 

효월잔등(曉月殘燈)에 꿈 이루기 어려워라: 새벽 달 꺼져가는 등에 꿈 꾸기도 어려워라

 

일병잔촉(一柄殘燭) 벗을 삼아: 한 자루 촛불을 벗을 삼아

 

전전불매(輾轉不寐) 잠 못 들어: 앉았다누웠다 잠못 들어

 

검각령(劍閣嶺) 새벽달에 오경(五更)인 줄 깨닫겠다: 검각령은 지명 이름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윽고 알건마는

명천(明天)이 도우시고 귀신(鬼神)이 유의(有意)하여

남교(藍橋)의 굳센 풀로 월로승(月老繩) 다시 맺어

봄바람 가을달에 귓전같이 마주 앉아

이런 일 옛말 삼아 정회중(情懷中)에 넣어 두고

유자생녀(有子生女)하여 한()없이 즐기다가

인심(人心)이 교사(驕邪)하여 어느 누가 시비(是非)커든

추풍오호(秋風五湖) 저문 날에 금범(錦帆)을 높이 달고

가다가 아무데나 산 좋고 물 좋은 데

자좌오향(子坐午向) 제법(製法)으로 수간(數間) 초옥(草屋) 지은 후에

석전(石田)을 깊이 갈아 초식(草食)을 먹을망정

백년(百年)이 다 진()토록 떠나 살지 마쟀더니

상사(相思)로 곤()한 몸이 상() 위에 잠깐 누워

죽은듯이 잠을 들어 호접(蝴蝶)이 나를 몰아

그리던 우리 임을 꿈 가운데 잠깐 만나

희비(喜悲)가 교집(交集)하여 별래사정(別來私情) 다 못하여

수가(誰家) 옥적성(玉笛聲)이 추풍(秋風)에 섞여 불어

처량(凄凉)한 찬 소래로 잠든 나를 깨우는다

[두어라 이산유수(離散有數)하니 후일(後日) 다시 볼까 하노라]

 

[  ] 부분은 후렴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윽고 알건마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은 알기는 알지만은

 

명천(明天)이 도우시고 귀신(鬼神)이 유의(有意)하여: 밝은 하늘이 도우시고 귀신이 알아주어

 

남교(藍橋)의 굳센 풀로 월로승(月老繩) 다시 맺어: 당나라 때 배항이라는 선비가 남교에서 운영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배필로 삼은 고사. 월로승은 월하 노인이 가지고 있다는 부부의 연을 이어주는 주머니의 끈. 이 구절은 인연이라는 굳센 끈으로 임과 다시 맺어라는 뜻.

 

정회중(情懷中)에 넣어 두고: 마음 속에 넣어두고

 

유자생녀(有子生女)하여: 아들 딸 낳고

 

인심(人心)이 교사(驕邪)하여 어느 누가 시비(是非)커든: 인심이 간사하여 누구라도 시비를 걸면

 

추풍오호(秋風五湖) 저문 날에 금범(錦帆)을 높이 달고: 한나라 장한이 가을 바람에 고향 생각나 벼슬을 그만두고 오강으로 돌아갔고, 월나라 범려가 오를 멸하자 벼슬을 내놓고 오호로 돌아갔음. 따라서 이 구절은 가을바람에 날 저물면 돗대를 높이 달고 라는 뜻.

 

자좌오향(子坐午向) 제법(製法)으로 수간(數間) 초옥(草屋) 지은 후에: 남향집 짓는 방식으로 몇 간 초가집 지은 후에

 

석전(石田)을 깊이 갈아 초식(草食)을 먹을망정 백년(百年)이 다 진()토록 떠나 살지 마쟀더니: 돌밭을 깊이 갈아 거친 음식 먹을 망정 백 년이 다 지나도록 같이 살자 하였더니

 

호접(蝴蝶)이 나를 몰아 그리던 우리 임을 꿈 가운데 잠깐 만나: 꿈 속에 나비가 나를 몰아 꿈 가운데 님을 잠깐 만나

 

희비(喜悲)가 교집(交集)하여 별래사정(別來私情) 다 못하여: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어 이별한후의 사정을 다 못하였는데

 

수가(誰家) 옥적성(玉笛聲)이 추풍(秋風)에 섞여 불어: 어느 집 옥피리 소리가 가을 바람에 섞여 불어

 

두어라 이산유수(離散有數)하니 후일(後日) 다시 볼까 하노라: 두어라 헤어짐도 그 정한 운명이 있으니 후일 다시 볼가 하노라

 

해설

「추풍감별곡」은 서도 송서다.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 속에서 채봉이 임을 그리면서 신세한탄을 하는 노래다. 『채봉감별곡』은 19세기 순조(純祖)~철종(哲宗) 연간의 작품으로 짐작되며, 사실적인 묘사로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고, 진취적인 한 여성이 부모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을 그려 조선시대 소설에서는 드물게 보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용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진사의 딸 채봉(彩鳳)과 선천부사(宣川府使)의 아들 강필성(姜弼成)은 약혼한 사이였는데, 벼슬에 눈이 어두운 김진사가 딸 채봉을 허판서의 첩으로 주려고 하여 그녀는 평양 기생이 되는 등 두 남녀가 갖은 고난을 겪은 끝에 마침내 숙원을 이룬다는 줄거리이다. 작자는 알 수 없다.

 

이 소설의 내용 중에 채봉이 지어 부르는 가사체(歌辭體)의 노래가 바로 「추풍감별곡」이다. 이본(異本)이 여럿 있다. 여기서의 노랫말은 죽사(竹史) 김수영(金守英, 1906~1981)의 음원 노랫말과 1916신구서림에서 발간한 『조선잡가집』을 따랐다. 편의상 분절했다.

 

「추풍감별곡」은 대표적인 서도 송서로, 김정연(金正淵, 1913~1987)의 언니인 죽사 김수영이 절창이었다고 한다. 현재(2018), 「추풍감별곡」은 죽사에게 배운 한명순(韓明順)이 유일하게 전곡을 가창(歌唱)한다. 서도 송서 「추풍감별곡」은 수심가조로 끝맺는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삼설기

 

노랫말

() 근진소지의단(謹陣所志矣段)은 의신(矣身)의 평생 소원(所願)을 자감앙소어(茲敢仰訴於)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생도찰(死生都察) 명정지하(明政之下)하옵니다

출어세상(出於世上)하여 법가자제(法家子弟) 되어 나서

슬하(膝下)에 어린 체와 교동(嬌童)으로 자라나서

효행예절(孝行禮節) 어진 집에 생장(生長)하여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하며

쇄소응대(灑掃應待) 진퇴지절(進退之節)과 애친경장(愛親敬長) 융사친우지도(隆師親友之道)를 안 연후에

학발쌍친(鶴髮雙親) 영양(榮養)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 현달(顯達)하고

계초명(鷄初鳴) 함관수(盥水)를 일을 삼아 노래자(老萊子)의 옷을 입고

자로(子路)의 부미(負米)함과 왕상(王祥)의 이어(鯉魚)낚고 맹종(孟宗)의 죽순 꺾어

증자(曾子)의 양지지효(養志之孝)를 주야갈력(晝夜竭力) 즐기다가

차차로 생각하니 부모의 은공이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원득삼산불로초(願得三山不老草)하여 배헌고당백발친(拜獻高堂白髮親)을 평생 갈력(竭力) 다한 후에

사방에 널리 놀아 만물물정(萬物物情) 경력(經歷)하고 삼산(三山) 풍경(風景) 좋은 곳에

청천삭출(靑天削出) 높은 뫼는 천작(天作)으로 생겨 있어 배산임류(背山臨流)하니

춘수(春水)는 만사택(滿四澤)이요 하운(夏雲)은 다기봉(多奇峰)이라

명당(明堂)에 터를 닦아 초당(草堂)을 지어 내니

토계삼등(土階三等)이요 모자(茅茨)를 부전(不翦)이라

계명죽오(鷄鳴竹塢)하고 견폐화촌(犬吠花村)이라 앞내의 고기 낚고 뒷뫼에 약()을 심어

실과(實果)는 절()을 찾고 백곡(百穀)이 풍등()이라

우양자귀촌항(牛羊自歸村巷)이요 동치불식의관(童稚不識衣冠)이라

낙화방초무심처(落花芳草無尋處)에 만학천봉독폐문(萬壑千峯獨閉門)이라

한운담영시수가(閑雲潭影是誰家)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生涯)는 주일배(酒一盃)

서정강상월(西亭江上月)이 뚜렷이 밝았는데 동각(東閣)의 설중매(雪中梅)는 향기(香氣)로이 피었에라

풍성학려(風聲鶴唳)는 사시무진(四時無盡)이요 녹죽창송(綠竹蒼松)은 천고불변(千古不變)이라 세상영욕(世上榮慾) 다 버리고 청라연월(靑蘿烟月) 대사립()에 백운심처(白雲深處) 찾아가니

적적시문(寂寂柴門) 개 짖는데 요요운학(遙遙雲鶴) 그 뉘 알리

인간공명(人間功名) 모르거든 세상시비(世上是非) 어이 알리

황금부다교불심(黃金不多交不深)하니 어느 벗이 날 찾으리

춘림(春林)에 문두견(聞杜鵑)이 어제러니 어느 사이에 추안(秋雁)이 우전성(又傳聲)이라

한왕서래(寒往署來)하니 사시(四時)를 짐작하고 의약복서(醫藥卜筮) 알겠으니 그 무엇이 부족하랴

옛사람 이른 말이 지족(知足)이면 불욕(不辱)이라 하였거니

부귀(富貴)하면 위구(危懼)로다 오경대루화만상(五更待漏靴滿霜)이 위태롭고 괴로워라

공자(孔子) 묵적(墨翟) 언변(言辯)에도 핍박(逼迫)함을 보았나니

오자서(伍子胥)의 촉루검(屬鏤劍)과 함양시상탄황견(咸陽市上嘆黃犬)을 모른다야 관계하랴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이요 좌중담소신상귀(坐中談笑愼桑龜)라 알아내야 무엇하며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지도(治國平天下之道)를 모른다야 관계하랴

팔진미찬(八珍味饌) 만반진수(滿盤珍羞) 아니라도 벽계청류(碧溪淸流) 은린옥척(銀鱗玉尺) 낚은 고기

박주(薄酒) 산채(山菜) 맥반(麥飯)으로 적구충장(適口充腸)하여 가고

고대광실(高臺廣室) 수호문창(繡戶門窓) 주박은병(珠箔銀屛) 아니라도

모옥수삼간(茅屋數三間)에 남창온돌(南窓溫突) 정쇄(淨灑)한데 양생법(養生法) 공부하여 연년익수(延年益壽) 하리로다

금의(錦衣)를 잊었거든 포의(布衣)를 부끄러랴

죽장망혜(竹杖芒鞋)로 기산영수(箕山潁水)에 배회(徘徊)하니

일발천산부취색(一拔靑山復翠色)이라 백운(白雲)은 천리만리(千里萬里) 명월(明月)은 전계후계(前溪後溪)로다

산은 첩첩 만중(萬重)한데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

물은 충충 소()이 되니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바람 불어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피어 학성홍(壑成虹)이라

주걱새 울어나니 천고절(千古節)이요 솥적다 하는 소래 일년풍(一年豊)이라

운무심이출수(雲無心而出岫)하니 다기봉(多奇峯)이 자작(自作)이라

방장봉래삼신산(方丈蓬萊三神山)이 버렸난데 아미산월반륜추(蛾嵋山月半輪秋)와 적벽강상무한경(赤璧江上無限景)을 어디다가 비할소냐

십장생(十長生)이 벌여 있어 천만세를 누리는데

월출낙조(月出落照) 바라보니 무비경개절승(無比景槪絶勝)이라

()나라 강태공(姜太公)은 위수(渭水)에 고기 낚고 강상 풍경 좋은 곳에 만사무심일조간(萬事無心一釣竿)이요

()나라 제갈양(諸葛亮)은 남양(南陽)에 밭을 갈아 초당춘수(草堂春睡) 긴긴 날에 양보음(梁甫吟) 읊으면서 불구문달(不求聞達)하였나니

도당씨(陶唐氏)적 시절에는 영천(潁川)에 귀를 씻고 문답하는 맑은 덕()은 소허(巢許)밖에 또 있는가

문장공명(文章功名)하던 일을 이리저리 헤아리니 아득하고 어려워라

용방비간(比干) 곧은 충절 만세에 유전한들 저마다 어이 하며

위청불패유천행(衛靑不敗由天幸)이요 이광무공연수기(李廣無功緣數奇)라 지용(智勇)으로 못하려니 장수(將帥)되기 어려우며

안자곤어누항(顔子困於陋巷)하고 가의굴어장사(賈誼屈於長沙)하니 도학(道學)인들 무엇하며

사마천(司馬遷) 소동파(蘇東坡)는 만고문장 빛난 말은 하필성장(下筆成章)하건마는 문장궁액(文章窮厄) ()할소냐

왕발(王勃)의 등왕각서(騰王閣序) 명작이라 하건마는 삼척미명(三尺微命) 네 글자가 처량할손 단명구(短命句)라 가련하기 측량 없다

이태백(李太白)의 백두시(白頭詩)와 일일수경(一日須傾) 삼백배(三百盃)는 채석강(采石江)에 빠졌으니

두목지(杜牧之)의 취과양주귤만거(醉過楊州橘滿車)는 호탕(豪蕩)하여 쓸데없고

가소롭다 형경(刑卿)이여 역수한파(易水寒波) 저문 날에 백홍관일(白虹貫日) 모르고서

일검횡장(一劍橫長) 전혀 믿고 태자단(太子丹)을 이별하니 그 아니 위태(危殆)한가

번화(繁華)는 비소원(非所願)이요 부귀(富貴) 권세(權勢) 비웃으며 오동월향회중조(梧桐月向懷中照)요 양류풍래면상취(楊柳風來面上吹)

병 없고 성한 몸이 희황상세(羲皇上世) 한민(閑民)되어 역대성쇠(歷代盛衰) 헤아리니

영웅호걸 일조공(一朝空)이요 고인금인약류수(古人今人若流水)

백이숙제(白夷叔齊) 착한 이와 도척(盜跖) 같은 몹쓸 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

역려건곤(逆旅乾坤)에 부생(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즐거움도 얼만고

병촉야유(秉燭夜遊)하며 독서담론(讀書談論) 자락(自樂)하니 한가하기 측량 없다

만산 풍경 바라보며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하니 흥미가 무궁이라

춘풍도리화개야(春風桃李花開夜)와 추우오동엽락시(秋雨梧桐葉落時)에 남린(南隣) 북촌(北村) 다 청()하여

팽양재우(烹羊宰牛)하고 두주자락(斗酒自樂)이라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進一盃酒)하니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

탄금(彈琴)하고 장소(長嘯)하며 산가촌적(山歌村笛)으로 희유동락(喜遊同樂)하니

부지하조하갑자(不知何朝何甲子)라 일생이 이러하니

상산사호(商山四皓) 죽림칠현(竹林七賢) 한가롭다 이만하면 적송자(赤松子) 안기생(安期生)을 부러하랴

범려(范蠡)의 오호주(五湖舟)와 장자방(張子房)의 사병벽곡(謝病辟穀) 소광(imagefont)의 산천금(散千金)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는 모두 다 작은 일이 아니로다 영귀함이 이에서 더할소냐

이목지소호(耳目之所好)와 심지지소락(心志之所樂)이 이밖에 또 있는가

다남자즉다구(多男子卽多懼)라 하니 아들 형제 딸 하나에 내외손(內外孫)이 번성하여 각색 자미 즐길 적에

곽분양(郭汾陽)의 백자천손(百子千孫)인들 이에서 더할소냐

개경연이좌화(開瓊筵而坐花)하며 열친척지정화(列親戚之情話)하고 서천륜지낙사(序天倫之樂事)로다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하니 의가지락(宜家之樂)이 족하도다 일월성신광음중(日月星辰光陰中)에 부귀(富貴) 인간(人間) 유수(流水)로다

다만 아끼노라 청춘이 빨리 간들 어이 하리

한심할사 건곤(乾坤)이 불로월장재(不老月長在)하니 적막강산금백년(寂寞江山今百年)이라

세상에 어렵고 못할 일이 장생불사(長生不死)뿐이로다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도 채약구선(採藥求仙)하여 연년익수(延年益壽)하려다가 변통무로(便通無路)하였나니 그야 어이 바라리요

지분지명(知分知命) () 없고 성한 몸이 명철보신(明哲保身)하랴 하면 더할 것이 없사오니

수삼갑자(數三甲子) 누리다가 와석종신(臥席終身) 고종명(考終命)이 원()이오니(이로소이다) 복걸삼상교시(伏乞參商敎是) 후에 복망련긍지(伏望憐矜之)하시며 애지중지하사 의소원(依所願) 처치하여 주심을 천만복축(千萬伏祝)하나이다 하였거늘

염왕(閻王)이 남필(覽畢)에 대로(大老)하야 꾸짖어 왈

욕심 많고 무소불측(無所不測)한 놈아 네 들어라

내가 천지개벽 이후로 만물보응(萬物報應) 윤회지과(輪回之科)와 사생화복(死生禍福) 길흉지권(吉凶之權)을 모다 가지고도

억만 창생(蒼生)의 수요장단(壽夭長短)과 선악 시비를 평균히 조석으로 살피는 터에

성현 군자도 하지 못할 일을 모두 달라 하니

그 노릇을 임의로 할 양이면 염라왕(閻羅王)을 떼어 놓고 내 스스로 하리라 하더라

 

풀이

() 근진소지의단(謹陣所志矣段)은 의신(矣身)의 평생 소원(所願)을 자감앙소어(茲敢仰訴於)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생도찰(死生都察) 명정지하(明政之下)하옵니다: 오른쪽(세로쓰기를 할 때 앞으로 나올 글)에 천지만물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염라대왕께 감히 이 몸의 평생소원을 아뢰고자 합니다

 

교동(嬌童)으로 자라나서: 법도 있는 집안에 태어나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나서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하며: 말과 행동이 미덥고 착실하며

 

쇄소응대(灑掃應待) 진퇴지절(進退之節)과 애친경장(愛親敬長) 융사친우지도(隆師親友之道)를 안 연후에: 부모에게 순응하고 어른에게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며 벗과는 우애있게 지내고

 

학발쌍친(鶴髮雙親) 영양(榮養)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 현달(顯達)하고: 부모를 잘 모시고 출세를 하며

 

계초명(鷄初鳴) 함관수(盥水)를 일을 삼아 노래자(老萊子)의 옷을 입고: 첫닭이 울면 세수하고 양치질을 하고 부모를 즐겁게 하고

 

자로(子路)의 부미(負米)함과 왕상(王祥)의 이어(鯉魚)낚고 맹종(孟宗)의 죽순 꺾어 증자(曾子)의 양지지효(養志之孝)를 주야갈력(晝夜竭力) 즐기다가: 모두 부모에게 효행이 깊은 고사를 나열하고 있다. 합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원득삼산불로초(願得三山不老草)하여 배헌고당백발친(拜獻高堂白髮親)을 평생 갈력(竭力) 다한 후에: 삼신산의 불로초를 얻어다가 백발되신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데

 

토계삼등(土階三等)이요 모자(茅茨)를 부전(不翦)이라: 검소하게 산다는 뜻

 

계명죽오(鷄鳴竹塢)하고 견폐화촌(犬吠花村)이라: 대나무밭에서 닭이 울고 꽃핀 마을에는 개가 짖고, 평화로운 이상적인 세계를 말함

 

우양자귀촌항(牛羊自歸村巷)이요 동치불식의관(童稚不識衣冠)이라: 소와 염소들은 스스로 마을로 돌아가고 아이들은 마음대로 뛰어 놀고

 

낙화방초무심처(落花芳草無尋處)에 만학천봉독폐문(萬壑千峯獨閉門)이라 한운담영시수가(閑雲潭影是誰家)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번잡한 세속이 아닌 풍류 멋드러진 곳이라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生涯)는 주일배(酒一盃): 세상사는 삼척의 거문고면 즐겁고 생애는 술 한 잔이라

 

풍성학려(風聲鶴唳)는 사시무진(四時無盡)이요 녹죽창송(綠竹蒼松)은 천고불변(千古不變)이라: 바람소리 학울음 소리 사철 그치지 않고 울창한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는 천고에도 면하지 않는다

 

황금부다교불심(黃金不多交不深)하니: 돈이 없고 친한 벗도 없으니

 

춘림(春林)에 문두견(聞杜鵑)이 어제러니 어느 사이에 추안(秋雁)이 우전성(又傳聲)이라: 봄이 어제러니 어느새 가을이다

 

한왕서래(寒往署來)하니 사시(四時)를 짐작하고: 추위가 가고 더위가 오니 계절을 짐작하고

 

오경대루화만상(五更待漏靴滿霜)이 위태롭고 괴로워라: 새벽 입조할 때 신발에 서리가 가득하니, 즉 벼슬살이가 위태롭고 괴로워라

 

오자서(伍子胥)의 촉루검(屬鏤劍)과 함양시상탄황견(咸陽市上嘆黃犬)을 모른다야 관계하랴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이요 좌중담소신상귀(坐中談笑愼桑龜)라 알아내야 무엇하며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지도(治國平天下之道)를 모른다야 관계하랴: 모든 부귀 공명이 부질없다는 것을 여러 고사를 통해 말하고 있음

 

적구충장(適口充腸)하여 가고: 거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금의(錦衣)를 잊었거든 포의(布衣)를 부끄러랴: 비단옷을 잊었는데 거친 옷을 부끄러워 하겠느냐

 

일발천산부취색(一拔靑山復翠色)이라: 아득한 청산이 푸른 빛 위에 떠 있다

 

양보음(梁甫吟) 읊으면서 불구문달(不求聞達)하였나니: 제갈양이 노래를 읊으면서 출세를 바라지 않았더니

 

도당씨(陶唐氏)적 시절에는: 요임금 시절에는

 

용방비간(比干): 용방과 비간은 충신 이름

 

위청불패유천행(衛靑不敗由天幸)이요 이광무공연수기(李廣無功緣數奇): 위청은 무공이 못해도 지지 않았고 이광은 전쟁에 패하여 자결함을 이르는 말

 

안자곤어누항(顔子困於陋巷)하고 가의굴어장사(賈誼屈於長沙)하니 도학(道學)인들 무엇하며: 안회와 가의가 곤궁하게 삶을 이르는 말

 

그 아니 위태(危殆)한가: 이 대목은 열사 충신이 다 소용 없다든 것

 

부지하조하갑자(不知何朝何甲子)라 일생이 이러하니: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지 못함

 

이목지소호(耳目之所好)와 심지지소락(心志之所樂)이 이밖에 또 있는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대로 좋은 것과 마음과 뜻대로 즐기는 것이 이밖에 또 있는가

 

개경연이좌화(開瓊筵而坐花)하며 열친척지정화(列親戚之情話)하고 서천륜지낙사(序天倫之樂事)로다: 여러 친척과 형제들이 모여서 즐겁게 살고

 

의가지락(宜家之樂): 부부 사이에 즐겁고

 

와석종신(臥席終身) 고종명(考終命)이 원()이오니: 제 명을 다 살고 자리에 누워 편안히 죽음이 원이오니

 

염왕(閻王)이 남필(覽畢)에 대로(大老)하야 꾸짖어 왈: 염라대왕이 그 글을 일고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그 노릇을 임의로 할 양이면 염라왕(閻羅王)을 떼어 놓고 내 스스로 하리라 하더라: 그렇게 다 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내가 하리라

 

해설

송서 「삼설기」는 소설 『삼설기』의 「삼사횡입황천기」 중 일부를 송서화한 것으로 이문원1), 묵계월, 유창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문원 이전에도 계승자가 있었을 것이나 확인할 수 없다. 소설 『삼설기』와 송서 「삼설기」의 선후 관계는 확증할 수 없으나 대개의 송서가 원전 텍스트가 있는 것을 읽는 형태였으므로, 즉 낭송이 기본이므로 이야기가 먼저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목판본 『삼설기』가 출간된 1848년 이전에 이미 삼설기가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더 많기에 송서 「삼설기」는 19세기 초반 정도에 형태를 갖추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원래 「삼설기」는 판각본 소설 『삼설기』와 송서 「삼설기」가 따로 존재한다. 판각본 소설 『삼설기』는 몇 가지 판본이 있는데, 1848년에 간행된 목판본이 있고, 그 이후에도 몇가지 판본이 나왔다. 그 내용은 「삼사횡입황천기」, 「오호대장기」, 「서초패왕기」, 「삼자원종기」, 「황주목사계」, 「노처녀가」 등이다. 즉 당시에 떠도는 여러 짧은 이야기를 상업적 목적으로 출판한 요즘말로 하면 단편소설집에 해당하는 셈이다.

 

송서 「삼설기」는 소설 『삼설기』의 「삼사횡입황천기」에 나오는 세 선비의 소원 중 마지막 선비의 소원을 말하는 대목만을 읽고 있다.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낙양 동촌에 살던 세 선비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이 때 저승사자가 이들을 잘못 잡아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이들의 명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염라대왕이 이들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한 가지씩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첫째 선비는 뛰어난 장군이 되게 해달라고 하고 둘째 선비는 일대 문장가로 태어나 문신이 되게 해달라고 했고 염라대왕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마지막 선비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효행예절을 익히며 올바르게 성장하여 부모에 효도하고 명당에 초당을 지어 세상영욕을 물리치고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즐기며 한가하게 살기를 원한다. 더불어 슬하에는 21녀를 두고 내외손이 번창하고 친척간에 화목하게 지내며, 몸에 병 없이 살다가 천수를 다하는 것이 원이라고 말한다. 이에 염라대왕이 대노하여 욕심이 많은 자라고 욕을 하며 그렇게 임의대로 다할 것이면 차라리 자기 자신이 하겠노라고 말하면서 끝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상적(理想的)인 삶에 대한 염원을 닮고 있는 내용이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적벽부

 

노랫말

임술지추칠월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에 적벽강(赤壁江) 배를 띄워 임기소지(任其所之) 노닐 적에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술을 들어 객을 주며 청풍명월(淸風明月) 읊조리고 요조지장(窈窕之章) 노래할 제

이윽고 동산(東山)에 달이 돋아 두우간(斗牛間)에 배회(徘徊)하니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가는 곳 배에 맡겨 만경창파(萬頃蒼波) 떠나가니

호호(浩浩)한 빈 천지(天地)에 바람 만난 저 돗대는

그칠 바를 몰라 있고 표표(飄飄)한 이내 몸은 우화등선(羽化登仙)되었세라

취흥(醉興)이 도도(陶陶)하여 뱃전 치며 노래할 제

그 노래에 하였으되 계도혜란장(桂棹兮蘭槳)으로 격공명혜소류광(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묘묘혜여회(渺渺兮余懷)여 망미인혜천일방(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퉁소(洞簫)로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 오오(嗚嗚)하여

여원(如怨) 여모(如慕) 여읍(如泣) 여소(如訴)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여 실같이 흐르나니 유학(幽壑)에 잠긴 어룡(魚龍) 흥에 겨워 춤을 추고

고주(孤舟)의 이부(嫠婦)들은 망부한(亡夫恨)을 못 이겨라

초연(愀然)히 일어 앉아 옛일을 생각하니 만사(萬事)가 꿈이로다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하니 조맹덕(曹孟德)이 지은 시()

서망하구(西望夏口) 동망무창(東望武昌) 산천(山川)이 상유(相繆)하여 울호창창(鬱乎蒼蒼)하였으니 맹덕(孟德)의 패()한 데요

형주(刑州)를 파()한 후에 강릉(江陵)으로 나려가니 축로(舳艫)는 일천리(一千里)

정기(旌旗)는 패공()이라 창()을 비껴 술 마시고 글을 지어 읊을 적에

일세영웅(一世英雄)이언마는 이제 간 곳 모를레라

후세(後世)에 태인 몸이 강상(江上)에 고기 낚고 산간(山間)에 나무할 제

어하(魚鰕)로 짝을 하고 미록(麋鹿)으로 벗을 삼아

울울(鬱鬱)한 장부(丈夫) 뜻이 술잔()을 의지(依支)코자

기부유어천지(寄蜉於天地)하니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무궁한 천리장강(千里長江) 어이 아니 부러우리

이 몸이 신선(神仙)되어 강상명월(江上明月) 이 가운데 장생불로(長生不老) 못할 일 한()없이 슬퍼하랴

흉중(胸中)에 쌓인 한()을 퉁소(洞簫)로 붙임이라

아서라 모두 다 취담(醉談)일다 유유(悠悠)한 세상사(世上事)를 덧없다 한()을 말고

이윽히 눈을 들어 우주(宇宙)를 살펴보라

쉬지 않고 흐르는 물 간다 한들 끊어지고

기울었다 돋는 달도 아주 소장(消長)되단 말가

덧없다 볼작시면 천지(天地)가 일순(一瞬)이요

()함없다 생각하면 만물(萬物)이 무궁(無窮)이라

강상청풍(江上淸風)과 산간명월(山間明月)은 귀로 들어 소리 되고 눈에 뵈어 경개(景槪)로다 취지무금(取之無禁) 용지불갈(用之不竭) 하나님의 무궁조화(無窮造化)

무엇이 서러워 탄식(嘆息)인가 허무(虛無)한 인생(人生)이 덧없이 늙어

과거지사(過去之事)가 꿈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 서러워 나 어이나 할거나]

 

[  ] 부분은 수심가조

 

풀이

임술지추칠월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 1082 7 16일 밤. 이 때 소동파는 47세로 황주로 귀양을 와 있었고, 마침 친구인 양세창이 소동파를 방문하자 밤에 뱃놀이를 하였다.

 

임기소지(任其所之): 바로 그기에 임하는 대로, 즉 배가 흘러가는대로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파도는 일어나지 않는데, 즉 바람도 거의 없고, 물결은 잔잔한데. 한여름 밤 솔솔 바람은 불고 물결은 잔잔하니 뱃놀이 하기는 딱 좋을 때이다.

 

술을 들어 객을 주며 청풍명월(淸風明月) 읊조리고 요조지장(窈窕之章) 노래할 제: 술 한 잔을 벗에게 주며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요조지장을 노래하고. ‘청풍명월을 읊조리고는 「시경」 진풍(陣風) 월출편(月出篇)을 노래한다는 뜻. ‘요조지장은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 관저편(關雎篇)를 말함. 뜻으로는 깊고 그윽한 경지를 노래한다는 것.

 

동산(東山)에 달이 돋아 두우간(斗牛間)에 배회(徘徊)하니: 달이 떠서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있고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백로는 강을 건너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구나

 

호호(浩浩)한 빈 천지(天地): 넓고넓은 빈 천지에

 

표표(飄飄)한 이내 몸은 우화등선(羽化登仙)되었세라: 가볍게 떠다니는 이 몸은 신선이 되었구나

 

계도혜란장(桂棹兮蘭獎)으로 격공명혜소류광(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계수나무로 만든 노와 목란나무로 만든 상앗대1), 물에 비친 달을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묘묘혜여회(渺渺兮余懷)여 망미인혜천일방(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서 바라보네. 여기서 미인이란 직접적으로는 달을 가리키지만, 근본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 소리 오오(嗚嗚)하여: 퉁소 소리가 매우 슬퍼서

 

여원(如怨) 여모(如慕) 여읍(如泣) 여소(如訴)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여: 원망과도 같고, 그리움과도 같고, 울음소리와도 같고, 원통한 소리와도 같아 그 소리가 가냘픈 실같이 흘러나오고

 

유학(幽壑)에 잠긴 어룡(魚龍) 흥에 겨워 춤을 추고: 그윽한 강물 속에 있는 물고기도 춤을 추고

 

고주(孤舟)의 이부(嫠婦)들은 망부한(亡夫恨)을 못 이겨라: 외로운 배의 여인들은 낭군에 대한 그리움을 못 이겨라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하니: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한 밤에 까마귀가 남쪽으로 날아가자 지었다는 시 「횡삭부시」(橫朔賦詩: 창을 비껴 들고 읊은 시라는 뜻)에 나오는 구절.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마귀 한 마리 남쪽으로 날아가니. 여기서 조조는 자신을 드문 별로, 손권이나 유비는 까마귀로 해석했다.

 

서망하구(西望夏口) 동망무창(東望武昌) 산천이 상유(相繆) 울호창창(鬱乎蒼蒼)하였으니 맹덕(孟德)의 패()한 데요: 서쪽으로는 하구2)를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무창3)을 바라보니 산천 경치가 서로 얽혀 빽빽하고 푸른데, 바로 여기가 조조가 패한 곳이구나

 

형주(刑州)를 파()한 후에 강릉(江陵)으로 나려가니 축로(舳艫)는 일천리(一千里)요 정기(旌旗)는 패공(蔽空)이라: 바야흐로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감에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었네. 조조 군대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을 비껴 술 마시고 글을 지어 읊을 적에 일세영웅(一世英雄)이언마는 이제 간 곳 모를레라: 역시 조조의 행동을 말한다. 조조가 까마귀가 남쪽으로 날아가자 창을 비껴 세워 두고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던 일세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역사의 한 자락이 되었을 뿐 영웅의 풍모는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후세(後世)에 태인 몸이: 후세에 태어난 몸이

 

어하(魚鰕)로 짝을 하고 미록(麋鹿)으로 벗을 삼아: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을 삼아

 

울울(鬱鬱): 마음이 매우 답답한

 

기부유어천지(寄蜉於天地)하니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의지하니 아득히 넓은 바다의 한 알의 좁쌀알이구나

 

흉중(胸中)에 쌓인 한()을 퉁소(洞簫)로 붙임이라 아서라 모두다 취담(醉談)일다: 흉중에 쌓인 한을 퉁소를 불어 달래보자, 아니다, 그것 또한 다 취해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소장(消長)되단 말가: 돋는 달도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는 것

 

덧없다 볼작시면 천지(天地)가 일순(一瞬)이요 변()함없다 생각하면 만물(萬物)이 무궁(無窮)이라: 덧없다고 생각하면 천지가 다 한 순간이고 변함없다 생각하면 만물이 끝이 없는 것이다

 

강상청풍(江上淸風)과 산간명월(山間明月)은 귀로 들어 소리 되고 눈에 뵈어 경개(景槪)로다: 강에 부는 맑은 바람 산간의 밝은 달이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보이면 좋은 경치가 되니

 

취지무금(取之無禁) 용지불갈(用之不竭): 취하여도 금하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즉 자연을 감상하는 것에는 취하여도 상관없고 아무리 즐겨도 산천이나 청풍명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

 

하나님의 무궁조화(無窮造化) 무엇이 서러워 탄식(嘆息)인가: 그런 것이 다 자연의 조화인데, 무엇을 서러워 하는가

 

해설

「적벽부」는 원래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 1082년 귀양을 가서 쓴 「적벽부」에서 유래한다. 원래의 「적벽부」는 7월에 쓴 「적벽부」(흔히전전벽부라 한다) 10월에 쓴 「적벽부」(이를후적벽부라 한다)가 있는데, 한문 원본 그대로에 토만 달아서 송서(誦書)로 부르는 경우(경기 송서)도 있고, 「적벽부」의 원문을 우리 말 식으로 재구성하여 가사를 새롭게 만든 서도 송서도 있다. 누가 우리 말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도 송서로는 오래전부터 불려왔던 듯하다. 끝은 수심가조로 마무리한다.

 

내용은 소동파가 벗(양세창)과 술잔을 기울이며 뱃놀이를 하면서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의 대군이 일전을 겨룬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서도좌창으로 분류할 수도 있으나 곡의 흐름 상 송서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1972년 발매된 김정연과 오복녀의 음반 <서도소리대전집>에도 「적벽부」는 송서로 분류하고 있다. 「적벽부」는 묵계월 등에 의해 경기 송서로도 전승되었는데 노랫말은 소동파의 「적벽부」 원문에 토만 단 것으로 서도 송서와는 다르다. 구분하기 위해 여기서는 「전적벽부」라 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전적벽부

 

노랫말

임술지추칠월(壬戌之秋七月) 기망(旣望)

소자여객(蘇子與客)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泛舟遊於赤壁之下)할 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다

거주속객(擧酒屬客)하여 송명월지시(誦明月之詩)하며 가요조지장(歌窈窕之章)이러니

소언(少焉)에 월출어동산지상(月出於東山之上)하여 배회어두우지간(徘徊於斗牛之間)하니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종일위지소여(縱一葦之所如)하여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이니 호호호여(浩浩乎如) 빙허(憑虛) 어풍이(御風而) 부지기소지(不知其所止)하고

표표호여(飄飄乎如) 유세독립(遺世獨立)하여 우화이등선(羽化而登僊)이라

어시(於是)에 음주낙심(飮酒樂甚)하여 구현이가지(扣舷而歌止)하니

()에 왈() 계도혜난장(桂櫂兮蘭槳)으로 격공명혜소류광(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묘묘혜여회(渺渺兮余懷)여 망미인혜천일방(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객유취통소자(客有吹洞簫者)하여 의가이화지(倚歌而和之)하니

기성(其聲)이 오오연(嗚嗚然)하여 여원(如怨) 여모(如慕) 여읍(如泣) 여소(如訴)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여

부절여루(不絶如縷)하니 무유학지잠교(舞幽壑之潛蛟)하고 읍고주지이부(泣孤舟之嫠婦)

소자(蘇子) 추연() 정금(正襟)하고 위좌(危坐) 이문객왈(而問客曰)

하위기연야(何爲其然也)오 객왈(客曰)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하니 차비조맹덕지시호(此非曹孟德之詩乎)아 서망하구(西望夏口)하고 동망무창(東望武昌)하니 산천(山川)이 상유()하여 울호창창(鬱乎蒼蒼)이라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아 방기파(方其破) 형주(刑州) 하강릉(下江陵)하여

순류이동야(順流而東也)에 축로천리(舳艫千里)오 정기(旌旗) 폐공(蔽空)이라

쇄주() 임강(臨江)하고 횡삭부시(橫槊賦詩)하니 고일세지웅야(固一世之雄也)러니

이금(而今)에 안재재(安在哉)오 항오여자(吾與子)로 어초어강저지상(漁樵於江渚之上)하여 여어하우미록(侶魚鰕而友麋鹿)이라

가일엽지편주(駕一葉之扁舟)하여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하니

기부유어(寄蜉) 천지(天地)에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니

애오생지수유(哀吾生之須臾)하고 선장강지무궁(羨長江之無窮)이라

협비선이오유(挾飛仙以遨遊)하고 포명월이장종(抱明月而長終)이라

지불가호취득(知不可乎驟得)일새 탁유향어비풍(託遺響於悲風)하노라

소자왈(蘇子曰) 객역지부수여월호(客亦知夫水與月乎)아 서자여사(逝者如斯)로되

이미상왕야(而未嘗往也)며 영허자(盈虛者) 여피(如彼)로되

이졸막소장야(而卒莫消長也)니 개장자기변자이관지즉천지(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도 증불능이일순(曾不能而一瞬)이요

자기불변자이관지즉물여아(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 개무진(皆無盡)이니 이우하선호(而又何羨乎)리요

차부천지간(且夫天地間)에 물각유주(物各有主)

구비오지소유(苟非吾之所有)인댄 수일호이막취(雖一毫而莫取)어니와 유강상지청풍(惟江上之淸風)과 여산간지명월(與山間之明月)은 이득지이위성(耳得之而爲聲)하고

목우지이성색(目寓之而聲色)하여 취지무금(取之無禁)이요 용지불갈(用之不竭)이니

()는 조물자지무진장야(造物者之無盡藏也)라 이오여자지소공락(而吾與子之所共樂)이니라 객()이 희이소(喜而笑)하고 세잔(洗盞) 갱작(更酌)하니 효핵(肴核)이 기진(旣盡)이요 배반(杯盤)이 낭자(狼藉)

상여(相與) 침자호주중(枕藉乎舟中)하여 부지동방지기백(不知東方之旣白)일러라

 

풀이

임술지추 칠월기망 (壬戌之秋 七月旣望)   임술년 가을 7월 보름 다음날에

소자여객범주 (蘇子與客泛舟)   나 소동파 손님들과 배를 타고

유어적벽지하 (遊於赤壁之下)   적벽 아래로 놀러갔다

청풍서래 수파불흥 (風徐來 水波不興)   시원한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거주속객 송명월지시 (酒屬客 誦明月之詩)   술을 들어 손님을 재촉하고 명월의 시를 읊고

가요조지장 (歌窈窕之章)   요조지장을 노래했다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로 떠올라

배회어두우지간 (徘徊於斗牛之間)   두성과 우성 사이를 배회하고

백로횡강 수광접천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이 하늘에 닿는다

종일위지소여 (縱一葦之所如)   조각배가 가는 곳을 따라

능만경지망연 (凌萬頃之茫然)   막막한 물결을 넘어

호호호여풍허어풍 (浩浩乎如馮虛御風)   허공에 의지해 바람을 부리듯 광활해

이부지기소지 (而不知其所止)   그 멈출 곳을 몰랐네

표표호여유세독립 (飄飄乎如遺世獨立)   표표히 세상에서 떨어져

우화이등선 (羽化而登仙)   날개가 돋아 신선으로 올라가는 듯

어시음주낙심 (於是飮酒樂甚)   이에 술마시는 즐거움이 깊어

구현이가지 (扣舷而歌之)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네

가왈 (歌曰)   노래에 이르기를

계도혜난장 (桂棹兮蘭)   계수나무 노와 난나무로 만든 상앗대여

격공명혜소류광 (擊空明兮溯流光)   투명한 물을 치고 달빛을 거슬러 올라가노라

묘묘혜여회 (渺渺兮予懷)   아득하구나 나의 그리움이여

망미인혜천일방 (望美人兮天一方)   하늘 끝 미인을 기다리네

객유취통소자 (客有吹洞簫者)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의가이화지 (倚歌而和之)   노래에 기대어 화답한다

기성오오연 (其聲嗚嗚然)   그 소리는 처연하여

여원여모 여읍여소 (如怨如慕 如泣如訴)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훌쩍거리며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여음뇨뇨 부절여루 (餘音嫋嫋 不絶如縷)   남은 소리는 실처럼 끊어지지 않네

무유학지잠교 (舞幽壑之潛蛟)   그윽한 골짜기 교룡이 춤을 추고

읍고주지리부 (泣孤舟之嫠婦)   외로운 배의 과부가 눈물 짓겠네

소자초연 정금위좌 (蘇子愀然 正襟危坐)   소동파가 슬피 놀라 옷깃을 바로잡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

이문객왈 (而問客曰)   손님에게 묻기를

하위기연야 (何爲其然也)   어떻게 소리가 그럴 수 있습니까

객왈 (客曰)   손님이 말하기를

월명성희 오작남비 (月明星稀 烏鵲南飛)   달을 밝고 별은 드물고 까마귀와 까치는 남으로 날아가네

차비조맹덕지시호 (此非曹孟德之詩乎)   이것이 조조의 시 아닙니까

서망하구 동망무창 (西望夏口 東望武昌)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으로 무창을 바라보고

산천상무 울호창창 (山川相繆 鬱乎蒼蒼)   산천은 서로 얽혀 울창하니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此非孟德之困於周者乎)   여기가 조조가 주유에게 당하던 곤욕을 치러던 곳이지요

방기파형주 하강릉 (方其破荊州 下江陵)   막 형주를 공격하고 강릉으로 내려와

순류이동야 (順流而東也)   물을 따라 동으로 갔지요

축로천리 정기폐공 (舳艫千里 旌旗蔽空)   배는 천 리에 달하고 깃발은 하늘을 덮었고

시주임강 횡삭부시 (釃酒臨江 橫槊賦詩)   강가에서 술을 마시며 창을 옆에 두고 시를 지었지요

고일세지웅야 (固一世之雄也)   (조조는) 진실로 일세의 영웅이지요

이금안재재 (而今安在哉)   그러나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황오여자 어초어강저지상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하물며 나와 그대(소동파)는 섬에서 고기 잡고 땔나무 하며

려어하이우미록 (侶魚蝦而友麋鹿)   고기와 새우와 함께하며 노루와 사슴과 벗하며

가일섭지편주 (駕一葉之扁舟)   작은 배를 타고

거포준이상속 (匏樽以相屬)   표주박과 술동이 들고 서로 권하니

기부유어천지 (寄蜉於天地)   천지에 하루살이가 붙어있는 것 같고

묘창해지일속 (渺滄海之一粟)   창해의 좁쌀같이 미미할 뿐이지요

애오생지수유 (哀吾生之須臾)   오직 우리의 짧은 생을 슬퍼하며

선장강지무궁 (羨長江之無窮)   장강의 무궁함을 흠모하고

협비선이오유 (挾飛仙以遨遊)   신선을 끼고 즐겁게 놀고

포명월이장종 (抱明月而長終)   밝은 달을 안고 오래 가고자 하나

지불가호취득 (知不可乎驟得)   갑자기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탁유향어비풍 (托遺響於悲風)   소리를 슬픈 바람에 맡겨 보내는 것이오

소자왈 (蘇子曰)   소동파가 말하기를

객역지부수여월호 (客亦知夫水與月乎)   손님은 대저 물과 달을 아시오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강이 흐르는 것이 저렇지만 일찍이 다 흘러가버린 적 없고

영허자여피 (盈虛者如彼)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저렇지만

이졸막소장야 (而卒莫消長也)   별안간 소멸하거나 늘어나지도 않는다오

개장자기변자이관지 (蓋將自其變者而觀之)   무릇 변화라는 쪽에서 그것을 본다면

칙천지증불능이일순 (則天地曾不能以一瞬)   천지는 한 순간이라도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기불변자이관지 (自其不變者而觀之)   변화하지 않는다는 쪽에서 그것을 보면

칙물여아개무진야 (則物與我皆無盡也)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오

이우하선호 (而又何羨乎)   그러니 또 어떤 것을 흠모하겠오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대저 천지지간에 모든 물질은 각각 주인이 있으니

구비오지소유 (苟非吾之所有)   만약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수일호이막취 (雖一毫而莫取)   비록 털 하나라도 함부로 취하지 못하지만

유강상지청풍 (惟江上之)   강위의 시원한 바람과

여산간지명월 (與山間之明月)   산간의 명월은

이득지이위성 (耳得之而爲聲)   귀로 그것을 들으면 소리가 되고

목우지이성색 (目遇之而成色)   눈으로 보면 그림을 이루지요

취지무금 용지불갈 (取之無禁 用之不竭)   그것을 취해도 누가 막지도 않고 사용해도 마르지 않습니다

시조물자지무진장야 (是造物者之無盡藏也)   이것이 조물주의 무궁한 보물이기에

이오여자지소공적 (而吾與子之所共適)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것들입니다

객희이소 (客喜而笑)   객이 기쁘게 웃으며

세잔갱작 효핵기진 (洗盞更酌 肴核旣盡)   잔을 씻고 다시 따르며 포와 과일은 모두 없어지고

배반낭자 (杯盤狼藉)   술상은 어지러워졌네

상여침자호주중 (相與枕藉乎舟中)   선상에 서로 포개어 누워

부지동방지기백 (不知東方之旣白)   동쪽하늘이 밝아 옴을 알지 못했다

 

해설

「전적벽부」는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 湖北省)에 유배되었던 송나라의 소동파가 1082년의 7월과 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후적벽부

 

노랫말

시세시월지망(是歲十月之望)에 보자설당(步者雪堂)하여 장귀우(將歸于) 임고(臨皐)할 새

이객(二客)이 종여(從予)라 과항니지판(過黃泥之坂)하니

상로기강(霜露旣降)하고 목엽(木葉)이 진탈(盡脫)이라

인영(人影)이 재지(在地)어늘 앙견명월(仰見明月)이라

고이락지(顧而樂之)하여 행가상답(行歌相答)이러니 이이(已而)오 탄왈(嘆曰)

유객(有客)이면 무주(無酒)요 유주(有酒)면 무효(無肴)

월백풍청(月白風淸)이라 여차양야(如此良夜)에 하()오 객왈(客曰)

금자(今者) 박모(薄暮)에 거망득어(擧網得魚)하니 거구세린(巨口細鱗)이 상여송강지로(狀如松江之鱸)

고안소득주호(顧安所得酒乎)오 귀이모(歸而謀) 저부(諸婦)하니 부왈(婦曰)

아유두주(我有斗酒)하여 장지구의(藏之久矣)라 이대자(以待子) 불시지수(不時之需)로다

어시(於是)에 휴주여어(酒與魚)하고 부유어적벽지하(復遊於赤壁之下)하니

강류유성(江流有聲)이요 단안(斷岸)이 천척(千尺)이라

산고월소(山高月小)하고 수락석출(水落石出)이로다

증일월지기하(曾日月之幾何)오 이강산(而江山)을 불가부식의(不可復識矣)

여내섭의이상(予乃攝衣而上)하여 이참암(履巉巖) 피몽용(披蒙茸)하고 거호표(踞虎豹) 등규룡(登龍)하여

반서골지위소(攀棲鶻之危巢)하고 부풍이지유궁(俯馮夷之幽宮)하니 개이객(盖二客)이 불능종언(不能從焉)이라

획연장소(劃然長嘯)하니 초목(草木)이 진동(震動)하고 산명곡응(山鳴谷應)이요

풍기수용(風起水涌)이라 여역초연이비(予亦俏然而悲)하고 숙연이공(肅然而恐)하여 늠호(凜乎) 기불가유야(其不可留也)

반이등주(反而登舟)하여 방호중류(放乎中流)하여 청기소지이휴언(聽其所止而休焉)하니 시야장반(時夜將半)이라

사고적요(四顧寂寥)러니 적유고학(適有孤鶴)하고 횡강동래(橫江東來)하여

시여거륜(翅如車輪)하니 원상호의(元裳縞衣)하여

알연장명(然長鳴)하니 약여주이서야(掠予舟而西也)

수유객거( 須臾客去)하고 여역취수(予亦就睡)러니

()에 일도사(一道士) 우의편선(羽衣翩僊)하여 과임고지하(過臨皐之下)하여

읍여이언왈(揖予而言曰) 적벽지유락호(赤壁之遊樂乎)아 문기성명(問其姓名)호대 면이부답(俛而不答)이니

오호희희(嗚呼噫嘻)라 아지지의(我知之矣)왜라 주석지야(疇昔之夜)에 비명이과아자(飛鳴而過我者) 비자야야(非子也耶)아 도사고소(道士顧笑)하고 여역경오(予亦驚悟)하여 개호시지(開戶視之)하니 불견기처(不見其處)

 

풀이

시세십월지망 (是歲十月之望)   그해 10월 보름에

보자설당 장귀우 임고 (步自雪堂 將歸于 臨皐)   설당에서 걸어 나와 임고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객종여 (二客從予)   두 손님은 나를 따라 왔다.

과황니지판 (過黃泥之板)   황니 언덕을 지나는데

상로기강 목엽진탈 (霜露降 木葉盡脫)   서리는 이미 내려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인영재지 앙명월 (人影在地 仰明月)   사람 그림자는 땅에 있고 고개들면 밝은 달

고이락지 행가상답 (顧而樂之 行歌相答)   돌아보며 즐기며 노래하며 서로 화답했다

이이탄왈 (已而歎曰)   그리고는 탄식하기를

유객무주 유주무효 (有客無酒 有酒無肴)   객이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이 있어도 안주 없네

월백풍청 여차양야하 (月白風 如此良夜何)   달은 밝고 바람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이 있겠소

객왈 (客曰)   손님이 말하기를

금자박모 거망득어 (今者薄暮 網得魚)   오늘 초저녁에 그물 들어 고기 잡았으니

거구세린 상사송강지로 (巨口細鱗 狀似松江之鱸)   큰 입과 가는 비늘 송강의 농어 같은데

고안소득주호 (顧安所得酒乎)   어디 술을 얻을 곳은 없소

귀이모제부 (歸而謀諸婦)   돌아와서 아내와 의논하니

부왈 (婦曰)   아내가 말하기

아유두주 장지구의 (我有斗酒 藏之久矣)   술 한 말을 가지고 있는데 저장한지 오래 되었소

이대자불시지수 (以待子不時之須)   언젠가 필요할 때를 기다렸지요

어시휴주여어 (於是酒與魚)   이에 술과 고기를 들고

부유어적벽지하 (復游於赤壁之下)   다시 적벽 아래로 놀러나갔다

강류유성 단안천척 (江流有聲 斷岸千尺)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높은 절벽은 천척이라

산고월소 수락석출 (山高月小 水落石出)   산이 높으니 달은 작고 물 떨어지니 돌이 나오네

증일월지기하 (曾日月之幾何)   일찍이 세월이 얼마나 흘렀으리

이강산불가부식의 (而江山不可復識矣)   강산은 원 모습을 알 수 없다

여내섭의이상 (予乃攝衣而上)   나는 옷을 걷어 올리고

이참암 피몽용 (履巉巖 披蒙茸)   가파른 바위를 밟고 풀을 헤치는데

거호표 등규룡 (踞虎豹 登虯龍)   호랑이 표범이 웅크리듯 규룡이 하늘로 오르듯

반서골지위소 (攀栖鶻之危巢)   송골매의 위태로운 둥지 붙잡고

부풍이지유궁 (俯馮夷之幽宮)   하백의 시퍼런 용궁을 내려보는데

개이객불능종언 (蓋二客不能從焉)   두 손님은 쫒아오지 못하네

획연장소 초목진동 (劃然長嘯 草木震動)   한 번 긴 휘파람 소리 내니 초목이 진동하고

산명곡응 풍기수용 (山鳴谷應 風起水湧)   산은 울리니 계곡이 화답하고 바람 일고 물이 솟구친다

여역초연이비 (予亦悄然而悲)   나 또한 근심스럽고 슬퍼서

숙연이공 (肅然而恐)   엄숙해지고 두려워

늠호기불가류야 (凜乎其不可留也)   오싹하네 어찌 머물러 있겠는가

반이등주 방호중류 (反而登舟 放乎中流)   도로 배에 올라 중류로 흘러갔다

청기소지이휴언 (聽其所止而休焉)   그 소리가 멈춘 것을 듣고는 쉬었다

시야장반 사고적요 (時夜將半 四顧寂寥)   한밤중이 되니 사면이 적막하고

적유고학 횡강동래 (適有孤鶴 橫江東來)   마침 학 한마리 강을 가로 질러 동으로 간다

시여거륜 원상호의 (翅如車輪 元裳縞衣)   날개는 차바퀴 같고 치마에 흰 옷을 입은 듯

알연장명 (然長鳴)   갑자기 길게 울며

량여주이서야 (掠予舟而西也)   우리 배를 스치듯 서쪽으로 날아갔다

수유객거 여역취수 (須臾客去 予亦就睡)   잠시 후 손님은 가고 나 역시 잠을 잤다

몽일도사 우의편선 (夢一道士 羽衣翩僊)   꿈에 한 도사 나타나 날개 옷 펄럭이며

과임고지하 (過臨皋之下)   임고 마을을 지나

읍여이언왈 (揖予而言曰)   나에게 읍을 하고 말하기를

적벽지유 락호 (赤壁之遊 樂乎)   적벽의 놀이 즐거웠소

문기성명 면이부답 (問其姓名 俛而不答)   그 이름을 물었으나 허리를 숙이고는 답하지 않았다

오호희희 (鳴呼噫嘻)   아하 놀라워라

아지지의 주석지야 (我知之矣 疇昔之夜)   나는 알겠다 전날 밤

비명이과아자 (飛鳴而過我者)   울면서 나를 스쳐 날아간 것이

비자야야 (非子也耶)   그대 아닌가

도사고소 (予亦驚悟 道士顧笑 予亦驚悟)   도사가 돌아보며 웃어, 나 역시 놀라 깨어

개호시지 (開戶視之)   문을 열고 그를 보았으나

불견기처 (不見其處)   그 간 곳을 모르겠더라

 

해설

「후적벽부」는 소동파가 10월에 지은 것이다. 「전적벽부」는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 湖北省)에 유배되었던 송나라의 소동파가 1082년의 7월과 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후반에 조금 생략된 부분이 있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어부사(송서)

 

노랫말

굴원(屈原)이 기방(旣放)에 유어강담(遊於江潭)하고 행음택반(行吟澤畔)할 새

안색(顔色)이 초췌(憔悴)하고 형용(形容)이 고고(枯槁)러니

어부 견이문지왈(見而問之曰) 자비삼려대부여(子非三閭大夫與)아 하고지어사(何故至於斯)오 굴원(屈原)이 왈()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날 아독청(我獨淸)하고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늘 아독성(我獨醒)이라 시이견방(是以見放)이로다

어부왈(漁夫曰) 성인(聖人)은 불응체어물(不凝滯於物)하고 이능여세추이(而能與世推移)하나니 세인(世人)이 개탁(皆濁)이어든 하불굴(何不淈) 기이양기파(其泥揚其波)하며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든 하불포기조이(何不餔其糟而) 철기리(歠其醨)하고

하고(何故)로 심사고거(深思高擧)하여 자령방위(自令放爲)요 굴원(屈原)이 왈()

오문지(吾聞之)니 신목자(新沐者)는 필탄관(必彈冠)이요 신욕자(新浴者)는 필진의(必振衣)

안능이신지찰찰(安能以新之察察)로 수물지문문자호(受物之汶汶者乎)아 영부상류(寧赴湘流)하여

장어강어지복중(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안능이호호지백(安能而皓皓之白)으로 이몽세속지진애호(而蒙世俗之塵埃乎)

어부(漁夫) 완이이소(莞爾而笑)하고 고예이거(而去)하여 내가왈(乃歌曰)

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어든 가이탁오영(可以濯吾纓)이오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어는 가이탁오족(可以濯吾足)이로다 수거불부여언(遂去不復與言)하다

 

풀이

굴원(屈原)이 기방(旣放)에 유어강담(遊於江潭)하고 행음택반(行吟澤畔)할 새 안색(顔色)이 초췌(憔悴)하고 형용(形容)이 고고(枯槁)러니: 굴원이 쫓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은 야위어 보였다

 

어부 견이문지왈(見而問之曰) 자비삼려대부여(子非三閭大夫與)아 하고지어사(何故至於斯):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렀소?

 

굴원(屈原)이 왈()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날 아독청(我獨淸)하고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늘 아독성(我獨醒)이라 시이견방(是以見放)이로다: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 모두가 다 흐려있는데 나 혼자 맑고 깨끗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 맑게 깨어 있어서 이것 때문에 추방되었소

 

어부왈(漁夫曰) 성인(聖人)은 불응체어물(不凝滯於物)하고 이능여세추이(而能與世推移)하나니 세인(世人)이 개탁(皆濁)이어든 하불굴(何不淈) 기이양기파(其泥揚其波)하며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든 하불포기조이(何不餔其糟而) 철기리(歠其醨)하고 하고(何故)로 심사고거(深思高擧)하여 자령방위(自令放爲):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능히 세상과 함께 변화할 수 있소. 모든 사람이 다 흐리다면 그 흙탕물을 흔들어 그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다 취했다면 그 지게미를 먹고 그 술을 마시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깊이 생각하여 고상하게 행동하여 추방되었는가?

 

굴원(屈原)이 왈() 오문지(吾聞之)니 신목자(新沐者)는 필탄관(必彈冠)이요 신욕자(新浴者)는 필진의(必振衣)라 안능이신지찰찰(安能以新之察察)로 수물지문문자호(受物之汶汶者乎)아 영부상류(寧赴湘流)하여 장어강어지복중(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안능이호호지백(安能而皓皓之白)으로 이몽세속지진애호(而蒙世俗之塵埃乎): 굴원이 말하기를 내 들으니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을 털고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이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漁夫) 완이이소(莞爾而笑)하고 고예이거(而去)하여 내가왈(乃歌曰): 어부는 빙그레 웃고서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어든 가이탁오영(可以濯吾纓)이오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어는 가이탁오족(可以濯吾足)이로다 수거불부여언(遂去不復與言)하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겠네, 라고 노래하며 다시 말하지 않고 가버렸다

 

해설

「어부사」는 굴원(屈原, BC 343?~BC 278?)이 지었다는 「어부사」를 송서로 읽는 것이다. 굴원은 초나라사람으로 그는 초나라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창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작품은 한부(漢賦)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이 이야기체로 쓴 「어부사」는 굴원 스스로가 지었다고도 하나 후세 사람이 지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조국에서 추방되어 초조히 강가를 방황하는 굴원이 어부의 물음에 답하여 이 세상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으려는 깨끗한 자기의 의지를 말하는데, 은자(隱者)인 어부는 이 세상의 청탁(淸濁)에 구애받지 마라 하며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면서 떠나간다는 내용이다.

 

「어부사」는 기록에만 남아 있고 전승이 단절된 송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춘야연도리원서

 

노랫말

노랫말풀이해설관련항목

부천지자(夫天地者)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

광음자(光陰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이부생(而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위환(爲歡)이 기하(幾何)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는 양유이야(良有以也)로다

황양춘(況陽春)이 소아이연경(召我以烟景)하고 대괴일가아이문장(大塊一假我以文章)이라

회도리지방원(會桃李之芳園)하여 서천륜지낙사(序天倫之樂事)하니 군계준수(群季俊秀)는 개위혜련(皆爲惠連)이어늘

오인영가일독참강락(吾人詠歌一獨慚康樂)가 유상(幽賞)이 미기(未己)에 고담(高談)이 전청(轉淸)이라

개경연이좌화(開瓊筵以坐花)하고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하니 불유가작(不有佳作)이면 하신아회(何伸雅懷)리요

여시불성(如詩不成)이면 벌의금곡주수(罰依金谷酒數)하리라

 

풀이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무릇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숙소요

광음자 백대지과객 (光陰者 百代之過客)   세월이라는 것은 영원한 나그네라

이부생약몽 위환기하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덧없는 인생 마치 꿈과 같으니 이 세상 즐거움이 얼마나 될까

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옛사람 촛불을 켜고 밤에 놀았다 하니 과연 그 까닭이 있네

황양춘 소아이연경 (況陽春 召我以煙景)   더구나 따뜻한 봄이 아지랑이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괴가아이문장 (大塊假我以文章)   조물주가 나로 하여금 대신 글을 쓰게 하는구나

회도리지방원 (會桃李之芳園)   오얏나무 향기로운 정원의 모임에서

서천륜지낙사 (序天倫之樂事)   형제들이 모여 노는 즐거운 일을 쓰려하니

군계준수 개위혜련 (群季俊秀 皆爲惠連)   준수한 여러 아우들은 모두 혜련 처럼 뛰어나거늘

오인영가 독참강락 (吾人詠歌 獨慙康樂)   내 노래 부르니 홀로 점점 강락이 부끄러워진다

유상미이 고담전청 (幽賞未已 高談轉淸)   그윽한 감상은 그치지 않고 고고한 얘기는 갈수록 맑아지네

개경연이좌화 (開瓊筵以坐花)   화려한 연회를 열고 꽃 사이에 앉아

비우상이취월 (飛羽觴而醉月)   새 깃 모양 술잔을 날리며 달빛에 취하니

불유가작 하신아회 (不有佳作 何伸雅懷)   아름다운 문장으로 고상한 회포를 펴네

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는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리라

 

해설

「춘야연도리원서」는 이백의 시를 그대로 부른 송서이다. 이백은 봄 밤에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한 동산에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 각기 시를 짓고서 그 시의 머리에 싣고자 그 때의 경위를 서술한 시를 지었고 그것이 바로 봄 밤 도리원 연회의 서시에 해당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등왕각서

 

노랫말

남창(南昌)은 고군(故郡)이요 홍도(洪都)는 신부(新府)

성분익진(星分翼軫)하고 지접형려(地接衡廬)하며 금삼강이대오호(襟三江而帶五湖)하고 공만형이인구월(控蠻荊而引甌越)이라 물화(物華)는 천보(天寶)

용광(龍光)이 사두우지허(射斗牛之墟)하고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서유(徐孺)이 하진번지탑(下陳蕃之榻)이라 웅주무열(雄州霧列)하고 준채성치(俊彩星馳)

대황(臺隍)은 침이하지교(枕夷夏之交)하고 빈주(賓主)는 진동남지미(盡東南之美)

도독염공지아망(都督閻公之雅望)은 계극요임(棨戟遙臨)하고 우문신주지의범(宇文新州之懿範)은 첨유잠주(襜帷暫駐)로다 십순휴가(十旬休暇)하니 승우여운(勝友如雲)이요

천리봉영(千里逢迎)하니 고붕(高朋)이 만좌(滿座)라 등교기봉(登蛟起鳳)은 맹학사지조종(孟學士之詞宗)이요 자전청상(紫電淸霜)은 왕장군지무고(王將軍之武庫)

가군(家君)이 작재(作宰)하니 노출명구(路出名區)라 동자(童子)이 하지(何知)오 궁봉승전(躬逢勝餞)이라

시유구월(時維九月)이요 서속삼추(序屬三秋)라 요수진이한담청(료水盡而寒潭淸)하고 연광응이모산자(煙光凝而暮山紫)

엄참비어상로(儼驂騑於上路)하야 방풍경어숭아(訪風景於崇阿)라 임제자지장주(臨帝子之長洲)하여 득선인지구관(得仙人之舊館)이라

층만(層巒)이 용취(聳翠)하니 상출중소(上出重霄)하고 비각(飛閣)이 상단()하니 하림무지(下臨無地)로다

학정부저(鶴汀鳧渚)난 궁도서지영회(窮島嶼之영廻)하고 계전난궁(桂殿蘭宮)은 즉망만지체세(列崗巒之體勢)

피수수달(綉綉)하고 부조맹(俯雕甍)하니 산원광기영시(山原曠其盈視)하고 천택우기해촉(川澤盱其駭矚)이라 여염(閭閻)이 박지(撲地)하니 종명정식지가(鐘鳴鼎食之家)

가함(舸艦)이 미진(迷津)하니 청작황룡지축(靑雀黃龍之舳)이라 홍소우제(虹銷雨霽)하니 채철운구(彩徹雲衢)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어주(漁舟)는 창만(唱晩)하니 향궁팽려지빈(響窮彭蠡之濱)하고 안진(雁陣)이 경한(驚寒)하니 성단형양지포(聲斷衡陽之浦)로다

요음부창(遙吟俯暢)하니 일흥(逸興)이 천비()라 상뢰(爽籟)이 발이청풍생(發而淸風生)하고 섬가(纖歌)이 응이백운알(凝而白雲遏)이라

휴원록죽(睢園綠竹)은 기릉팽택기준(氣凌彭澤之樽)이오 업수주화(鄴水朱華)는 광조임천지필(光照臨川之筆)이라

사미구(四美具)하고 이난(二難)이 병()하니 궁제면허중천(窮睇眄於中天)하고 극오유어가일(極娛遊於暇日)이라

천고지형(天高地逈)하니 각우주지무궁(覺宇宙之無窮)이요 흥진비래(興盡悲來)하니 식영허지유수(識盈虛之有數)

망장안어일하(望長安於日下)하고 지오회어운간(知吳會於雲間)이라 지세(地勢)이 극이남명(極而南溟)이 심()하고 천주고이북신원(天柱高而北辰遠)이라

관산(關山)을 난월(難越)하니 수비실로지인(誰悲失路之人)고 평수상봉(萍水相逢)하니 진시타향지객(盡是他鄕之客)이라 회제혼이불견(懷帝閽而不見)하니 봉선실이하년(奉宣室以何年)

오호(嗚呼)라 시운(時運)이 부제(不齊)하고 명도(命途)이 다천(多舛)하야 풍당(馮唐)이 이로(易老)하고 이광(李廣)이 난봉(難封)이라

굴가의어장사(屈賈誼於長沙)는 비무성주(非無聖主)요 찬양홍어해곡(竄梁鴻於海曲)은 기핍명시(豈乏明時)아 소뢰군자(所賴君子)난 안빈(安貧)하고 달인(達人)은 지명(知命)이라

노당익장(老當益壯)하니 영이백수지심(寧知白首之心)이며 궁차익견(窮且益堅)하니 불추청운지지(不墜靑雲之志)라 작탐천이각상(酌貪泉而覺爽)하고 처학철이유환(處涸轍以猶懽)이라

북해수사(北海雖賖)나 부요(扶搖)를 가접(可接)이오 동우(東隅)이 이서(已逝)나 상유(桑楡)이 비만(非晩)이라

맹상고결(孟嘗高潔)은 공회보국지심(空懷報國之心)이오 완적창광(阮籍猖狂)하니 기효궁도지곡(豈效窮途之哭)

()은 삼척미명(三尺微命)이오 일개서생(一介書生)이라 무로청영(無路請纓)하니 등종군지약관(等終軍之弱冠)이요 유회투필(有懷投筆)하니 모종각지장풍(慕宗慤之長風)이라

사잠홀어백령(舍簪笏於百齡)하고 봉신혼어만리(奉晨昏於萬里)라 비사가지보수(非謝家之寶樹)나 접맹씨지방린(接孟氏之芳隣)이라

타일(他日)에 추정(趨庭)하야 도배리대(叨陪鯉對)하고 금신(今晨)에 봉메(捧袂)하니 희탁용문(喜託龍門)이라 양의(楊意)를 불봉(不逢)하니 무릉운이자석(撫凌雲而自惜)이오 종기(鍾期)를 기우(旣遇)하니 주류수이하참(奏流水而何慙)

오호(嗚呼)라 승지(勝地)는 불상(不常)이요 성연(盛筵)은 난재(難再)니 난정(蘭亭)이 이의(已矣)오 재택(梓澤)이 구허(丘墟)라 임별증언(臨別贈言)하니 봉승은어위전(幸承恩於偉餞)이오 등고작부(登高作賦)하니 시소망어군공(是所望於群公)이라 감갈비승(敢竭鄙誠)하니 공소단인(恭疏短引)이라 일언균부(一言均賦)하니 사운구성(四韻俱成)이라

등왕고각임강저(騰王高閣臨江渚)하니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란罷歌舞)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오 주렴모권사산우(朱簾暮捲西山雨)

한운담영일유유(閒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

 

풀이

남창고군 (南昌故郡)   옛 남창군(南昌郡)이었던 이곳은

홍도신부 (洪都新俯)   새로이 홍도(洪都)가 되었다

성분익진 (星分翼軫)   별자리로는 익(), ()에 해당하는 땅으로

지접형려 (地接衡廬)   서쪽으로는 형산(衡山)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여산(廬山)에 접해 있네

금삼강이대오호 (襟三江而帶五湖)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러져 있네

공만형이인구월 (控蠻荊而引甌越)   이 곳은 형만을 누르고 구월을 끌어 당기는 위치이기도 하다

물화천보 (物華天寶)   이곳 물산의 정화는 하늘이 내린 보배이니

용광사우두지허 (龍光射牛斗之墟)   용천검의 광체가 견우성과 북두성 사이를 쏘았고

인걸지령 (人傑地靈)   인물 걸출하고, 땅은 영기가 있어

서유하진번지탑 (徐孺下陳蕃之榻)   서유는 태수인 진번(陳蕃)이 걸상을 내려주며 맞아들였다

웅주무열 (雄州霧列)   경치 좋은 주()와 군()이 안개처럼 즐비하고

준채성치 (俊彩星馳)   문채가 뛰어난 인물들이 밤하늘의 뭇 별처럼 찬란하게 활약하니

대황침이하지교 (臺隍枕夷夏之交)   이 곳 누대(樓臺)와 성 밑의 못은 초나라와 중화(中華) 사이에 자리하고

빈주진동남지미 (賓主盡東南之美)   이 곳에 모인 많은 손님과 주인은 동남의 인물이라

도독염공지아망 (都督閻公之雅望)   도독 염공의 고상한 인망을 갖추어

계극요임 (棨戟遙臨)   게극을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왔다

우문신주지의범 (宇文新州之懿範)   우문은 신임태수로 부임하던 중에

첨유잠주 (襜帷暫駐)   이곳에서 수레를 멈추었다

십순휴가 (十旬休暇)   마침 십순의 휴가날이라

승우여운 (勝友如雲)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천리봉영 (千里逢迎)   천리 먼 곳의 사람들도 맞아들이니

고붕만좌 (高朋滿座)   인품이 높은 친구들이 자리에 가득했다

등교기봉 (騰蛟起鳳)   솟아오르는 교룡같고 날아오르는 봉황새 같은 친구들은

맹학사지사종 (孟學士之詞宗)   맹학사는 문장의 대가이고

자전청상 (紫電淸霜)   자줏빛 번개같고 차가운 서리 같은 지조를 갖춘 인물들은

왕장군지무고 (王將軍之武庫)   왕장군의 무기고처럼 유능하다

가군작재 (家君作宰)   우리 아버님이 현령이 되시니

노출명구 (路出名區)   가는 길에 유명한 이곳을 지나게 되었네

동자하지 (童子何知)   어린 제가 무엇을 알아서

궁봉승전 (躬逢勝餞)   이 훌륭한 잔치를 만났겠는가

시유구월 (時維九月)   때는 구월

서속삼추 (序屬三秋)   계절은 가을이고

요수진이한담청 (潦水盡而寒潭淸)   길에 고인 빗물은 다 마르고 차가운 못물은 맑고

연광응이모산자 (煙光凝而暮山紫)   안개는 피어 저문 산은 자색으로 빛나네

엄참비어상로 (儼驂騑於上路)   길가에 말 네 필을 위엄있게 치장하여

방풍경어숭아 (訪風景於崇阿)   높은 산으로 풍광을 찾아간다

임제자지장주 (臨帝子之長洲)   제자의 땅 장주에 임하니

득선인지구관 (得仙人之舊館)   선인의 옛 관저가 있었네

층만용취 (層巒聳翠)   중첩한 산봉우리들은 비취빛을 띠고 솟아있고

상출중소 (上出重霄)   위로 솟아올라 높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비각류단 (飛閣流丹)   나는 듯 한 누각에 단청빛이 흐르고

하림무지 (下臨無地)   아래를 보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학정부저 (鶴汀鳧渚)   학이 노는 물가와 오리가 노니는 물가는

궁도서지영회 (窮嶋嶼之縈廻)   섬을 둘러 끝없이 이어져 있고

계전난궁 (桂殿蘭宮)   계수나무 궁전과 목란 궁궐이

열강만지체세 (列岡巒之體勢)   언덕과 산봉우리의 형세를 따라 줄지어 있네

피수수달 (綉綉)   채색한 작은 문을 열고

부조맹 (俯雕甍)   조각한 용마루 얹은 누각을 굽어보니

산원광기영시 (山原曠其盈視)   산과 들은 광활하여 그것이 시야에 가득하고

천택우기해촉 (川澤盱其駭矚)   시내와 못은 광대하여 보는 이의 눈을 놀라게 하네

여염박지 (閭閻撲地)   촌락이 땅에 늘어서 있어

종명정식지가 (鍾鳴鼎食之家)   종을 울려 모으고 솟을 걸어놓고 식사하는 큰 집안도 있네

가함미진 (舸艦迷津)   큰 배와 전함들이 나루터에서 왔다갔다 하니

청작황룡지축 (靑雀黃龍之舳)   청작과 황룡을 그린 뱃고물이 보인다

홍소우제 (虹銷雨霽)   무지개 사라지고 비도 개니

채철운구 (彩徹雲衢)   햇살이 구름 사이에서 드러난네

낙하여고목제비 (落霞與孤騖齊飛)   저녁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추수공장천일색 (秋水共長天一色)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네

어주창만 (魚舟唱晩)   고기잡이 배에서 저녁에 노래부르니

향궁팽려지빈 (響窮彭蠡之濱)   그 울림이 팽려의 물가까지 들려오고

안진경한 (鴈陣驚寒)   기러기떼 추위에 놀라

성단형양지포 (聲斷衡陽之浦)   그 소리가 형양의 포구까지 멀어진다

요음부창 (遙吟俯暢)   아득히 읊조리며 구부리며 펴고하니

일흥천비 (逸興)   편안한 흥취가 재빨리 날듯이 일어난다

상뢰발이청풍생 (爽籟發而淸風生)   상쾌한 소리 들려오니 맑은 바람 일고

섬가응이백운알 (纖歌凝而白雲遏)   고운 노랫소리 엉기어 흰 구름까지 닿네

휴원록죽 (睢園綠竹)   휴원의 푸른 대나무

기릉팽택지준 (氣凌彭澤之樽)   그 기상은 팽택령 도연명의 술잔을 능가하고

업수주화 (鄴水朱華)   업수가의 붉은 꽃은

광조임천지필 (光照臨川之筆)   그 빛 임천내사의 붓을 비춘다

사미구 (四美具)   오늘 이 자리가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이난병 (二難幷)   두 가지 어려운 것도 함께 갖추었으니

궁제면어중천 (窮睇眄於中天)   하늘 중천까지 눈길 다 주고

극오유어가일 (極娛遊於暇日)   한가한 날에 마음껏 즐겨 논다

천고지형 (天高地逈)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각우주지무궁 (覺宇宙之無窮)   우주가 무궁광대함을 깨닭았네

흥진비래 (興盡悲來)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식영허지유수 (識盈虛之有數)   차고 비는 것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 알았네

망장안어일하 (望長安於日下)   멀리 태양아래 있는 장안을 바라보며

지오회어운간 (指吳會於雲間)   구름 사이에 있는 오군과 회계군을 가리켜본다

지세극이남명심 (地勢極而南溟深)   지세가 다하니 남쪽 바다가 깊고

천주고이북신원 (天柱高而北辰遠)   하늘기둥은 높고 북극성은 멀기도 하다

관산난월 (關山難越)   관산은 넘기가 어려우니

수비실로지인 (誰悲失路之人)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주리오

평수상봉 (萍水相逢)   부평초와 물이 만났으니

진시타향지객 (盡是他鄕之客)   이들 모두가 타향의 길손이로다

회제혼이불견 (懷帝閽而不見)   제왕의 궁문을 그리워해도 보이지 않으니

봉선실이하년 (奉宣室以何年)   어느해라야 선실에서 봉명할까

오호 (嗚呼)   아아

시운부제 (時運不齊)   시운이 고르지 못하고

명도다천 (命途多舛)   운명은 어긋나는 일이 많구나

풍당이로 (馮唐易老)   풍당은 등용되기 전에 늙기 쉬웠고

이광난봉 (李廣難封)   이광은 공적이 있어도 봉해지기 어려웠다

굴가의어장사 (屈賈誼於長沙)   굴원과 가의가 장사에 지내야 했음은

비무성주 (非無聖主)   성군이 없었음이 아니도다

찬양홍어해곡 (竄梁鴻於海曲)   양홍의 바닷가에서 숨어산 것은

기핍명시 (豈乏明時)   어찌 밝은 시대가 부족한 것이겠는가

소뢰군자안빈 (所賴君子安貧)   내가 믿는 바, 군자는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달인지명 (達人知命)   달인은 자기의 천명을 안다

노당익장 (老當益壯)   늙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영지백수지심 (寧知白首之心)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겠는가

궁차익견 (窮且益堅)   가난할수록 더욱 굳세어진다면

불추청운지지 (不墮靑雲之志)   청운의 뜻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작탐천이각상 (酌貪泉而覺爽)   탐천의 물을 마셔도 상쾌함을 느끼고

처학철이유환 (處涸轍以猶懽)   곤궁함에 처해도 오히려 기쁠 것이다

북해수사 (北海雖)   북해가 비록 아득하여도

부요가접 (扶搖可接)   회오리 바람을 타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동우이서 (東隅已逝)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상유비만 (桑楡非晩)   노년기는 아직 아니도다

맹상고결 (孟嘗高潔)   맹상은 성품이 고결하나

공회보국지심 (空懷報國之心)   공연히 나라에 보답할 마음만 가졌고

완적창광 (阮籍猖狂)   완적은 미친 듯이 행동하였으니

기효궁도지곡 (豈效窮途之哭)   어찌 길 끝난 시골에서의 통곡을 본받겠는가

()   나 왕발은

삼척미명 (三尺微命)   삼척의 미천한 사람으로

일개서생 (一介書生)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는지라

무로청영 (無路請纓)   벼슬을 청할 길 하나 없으니

등종군지약관 (等終軍之弱冠)   종군의 약관 때의 일을 기다렸다

유회투필 (有懷投筆)   붓을 던질까 생각해 보았으니

모종각지장풍 (慕宗慤之長風)   종각의 장풍을 부러워도 했다

사잠홀어백령 (舍簪笏於百齡)   백 살이 될 때까지 벼슬할 생각 버리고

봉신혼어만리 (奉晨昏於萬里)   만리 먼 곳에 계신 부모님 안부를 받들리라

비사가지보수 (非謝家之寶樹)   나는 사씨 집안에서 받드는 보배로운 나무는 아니지만

접맹씨지방린 (接孟氏之芳隣)   맹자처럼 좋은 이웃은 만나리라

타일추정 (他日趨庭)   훗날 뜰을 종종걸음으로 지날 때

도배리대 (叨陪鯉對)   공자의 아들인 이가 배운 것처럼 나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금신봉몌 (今晨捧袂)   오늘 소매를 받쳐 들고

희탁용문 (喜托龍門)   용문에 기탁하니 기쁘도다

양의불봉 (楊意不逢)   양운을 만나지 못해여

무릉운이자석 (撫凌雲而自惜)   능운부를 어루 만지며 스스로 애석해하네

종기기우 (鍾期旣遇)   종자기는 이미 만났으니

주류수이하참 (奏流水以何慙)   흐르는 강물을 연주하여 무엇이 부끄러운가

오호 (嗚呼)   아아

승지불상 (勝地不常)   명승지는 항상 있지 않고

성연난재 (盛筵難再)   성대한 잔치는 다시 맞기 어렵나니

난정이의 (蘭亭已矣)   난정은 이이 버려졌고

재택구허 (梓澤丘墟)   재택은 페허가 되었도다

임별증언 (臨別贈言)   이별에 임하여 말씀을 올림은

행승은어위전 (幸承恩於偉餞)   다행히 큰 잔치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네

등고작부 (登高作賦)   높은 곳에 올라 부를 짓는 것

시소망어군공 (是所望於群公)   이것이 여러 공들에게 바라는 바이니

감갈비성 (敢竭鄙誠)   감히 저의 보잘 것 없는 정성을 다하여

공소단인 (恭疎短引)   공손히 짧게 지으니

일언균부 (一言均賦)   한 마디 부를 고루어

사운구성 (四韻俱成)   사운으로 서문과 함께 시를 읊노라

등왕고각임강저 (滕王高閣臨江渚)   등왕의 높은 누각은 강가에 있는데

패옥명란파가무 (佩玉鳴鑾罷歌舞)   패옥소리 방울소리 울리던 가무도 끝이 났구나

화동조비남포운 (畵棟朝飛南浦雲)   아름다운 누각 용마루 위로 남포의 아침 흰 구름 흐르고

주렴모권서산우 (朱簾暮捲西山雨)   붉은 발 저녁 때 걷으면 서산에 비가 내리네

한운담영일유유 (閑雲潭影日悠悠)   한가로운 구름 연못 속에 잠기고 해는 유유히 지나가는데

물환성이도기추 (物換星移度幾秋)   만물은 바뀌고 별자리 옮겨가니 몇 해나 지났는고

각중제자금하재 (閣中帝子今何在)   누각의 황자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함외장강공자류 (檻外長江空自流)   난간 밖의 장강은 저렇게 흐르는데

 

해설

「등왕각서」는 송서다. 이문원의 옛 음반이 남아 있고, 이를 바탕으로 묵계월, 유창, 박윤정 등이 맥을 잇고 있다.

 

「등왕각서(滕王閣序)」는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이 등왕각에 대해 지은 시인데 그 옛터가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난창시[南昌市]에 있다. 왕발은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나 성년이 되기도 전에 벼슬을 하였지만 일찍 관직에서 물러나 도처를 유랑했다. 당 고종(高宗) 때인 676년 중양절에 홍주도독 염공(閻公)이 등왕각에서 주연을 열고 손님들을 청했는데 마침 왕발이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이 연회에 참석하여 즉석에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o   짝타령

 

노랫말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한 짝하고

삼년적리(三年笛裏) 관산월(關山月)이요 만국병전(萬國兵前) 초목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하고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하던 왕자안(王子安)으로 웃짐 치고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하던 소동파(蘇東坡)로 말 몰리고 좌무수이(坐撫樹而) 종일(終日)하고 탁청천이자결(濯淸川而自潔)이라 하던 한퇴지(韓退之)로 한 짝하고

삼입낙양(三入洛陽) 인불식(人不識)하니 낭음비과(朗吟悲過) 동정호(洞庭湖)라 하던 여동빈(呂洞賓)으로 한 짝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에 혜풍(惠風)이 화창(和暢)이라 하던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쳐서 부광(浮光)은 탁금(濯金)하고 정영(靜影)은 침벽(沈璧)이라 하던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고 어양비고(漁陽鼙鼓) 동지래(動地來)하니 경파예상(驚罷霓裳) 우의곡(羽衣曲)이라 하던 백낙천(白樂天)으로 한 짝하고

분수탈상증(分手脫相贈)하니 평생일편심(平生一片心)이라 하던 맹호연(孟浩然)으로 한 짝하고

청산(靑山)은 수첩(數疊)이요 벽계(碧溪)는 일곡(一曲)이라 하던 도연명(陶淵明)으로 웃짐 쳐서 통만고지(通萬古之) 득실(得失)하고 감백왕지흥망(鑑百王之興亡)이라 하던 사마천(司馬遷)으로 말 몰리고

위빈어부(渭濱漁父)로서 주천하(周天下) 팔백기업(八百基業)을 창개(創開)하던 강태공(姜太公)으로 한 짝하고

운주유악지중(運籌帷幄之中)하며 결승천리지외(決勝千里之外)하던 장자방(張子房)으로 한 짝하고

대몽(大夢)을 수선각(誰先覺)고 평생(平生)을 아자지(我自知)라 하던 제갈양(諸葛亮)으로 웃짐 쳐서 백일공사(百日公事)는 뇌양일조(耒陽一朝)요 연환묘계(連環妙計)는 적벽(赤壁)의 수공(首功)이라 하던 방사원(龐士元)으로 말 몰리고 용성오채(龍成五彩) 망기(望氣)하고 옥결(玉玦)을 자주 들던 범아부(范亞父)로 한 짝하고

백등해위(白登解圍)하고 육출기계(六出奇計)하던 진평(陳平)으로 한 짝하고

팔십만 수륙대도독(水陸大都督) 적벽오병(赤壁鏖兵)하던 주공근(周公瑾)으로 웃짐 쳐서 강남(江南)에 개가(凱歌) 불러 금릉(金陵)으로 돌아오던 조빈(曹彬)으로 말 몰리고 백수변정(白首邊庭)에 탕소요진(蕩掃妖塵)하던 마원(馬援)으로 한 짝하고

광초구군(誑楚救君)하여 망사보국(忘死報國)하던 기신(紀信)으로 한 짝하고

미보국은(未報國思)하고 공사절의(空死節議)하던 장순(張巡)으로 웃짐 쳐서 신사수절(身死守節)하여 충관백일(忠貫白日)하던 허원(許遠)으로 말 몰리고 연백만지수(連百萬之帥)하여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 한 짝하고

두발(頭髮)이 상지(上指)하고 목자진렬(目眦盡裂)하던 번쾌(樊噲)로 한짝하고

남궁운대(南宮雲臺) 중흥공신(中興功臣) 이십팔장(二十八將) 중 제일공신(第一功臣) 등우(鄧禹)로 웃짐 쳐서 충의정성(忠義精誠) 앙관백일(仰貫白日)하던 곽자의(郭子儀)로 말 몰리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초패왕(楚覇王)의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 우희로다

봉금괘인(封金掛印)하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던 관운장(關雲長)으로 한 짝하고

장판파변(長板坡邊)에 퇴병백만(退兵百萬)하던 장익덕(張翼德)으로 한 짝하고

당양장판(當陽長板) 만군중(萬軍中)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백만진중(百萬陣中) 횡행(橫行)하여 도시담(都是膽)이라 하던 조자룡(趙子龍)으로 웃짐 쳐서 서량명장(西涼名將)으로 보전육장(步戰六將)하던 마맹기(馬孟起)로 말 몰리고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범소백(范少伯)을 따라 가던 서시(西施)로 한 짝하고

회두일소백미생(回頭一笑百媚生)하니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이라 하던 양귀비(楊貴妃)로 한 짝하고

월궁옥장하(月宮玉帳下)에 추파(秋波)에 눈물 짓던 우미인(虞美人)으로 웃짐 쳐서 영웅의 친근지의(親近之義) 일조(一朝)에 이간(離間)하던 초선(貂嬋)으로 말 몰리고 사마상여(司馬相如) 봉구황(鳳求凰)에 깨달아서 들어가던 정경패(鄭瓊貝)로 한 짝하고

춘심궁액백화번(春心宮掖百花繁)한데 영작비래보희언(靈鵲飛來報喜言)하던 이소화(李蕭和)로 한 짝하고

안소부대남비거(安巢不待南飛去)하니 삼오성희정재동(三五星稀正在東)이라 하던 진채봉(秦彩鳳)으로 웃짐 쳐서 위주충심(爲主忠心)은 보보상수(步步相隨) 부점사(不暫捨)라 위선위귀(爲仙爲鬼)하던 가춘운(賈春雲)으로 말 몰리고 월중단계(月中丹桂)를 수선절(誰先折)이냐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有眞)이라 하던 계섬월(桂蟾月)로 한 짝하고

하북명창(河北名唱)으로 삼절색천명(三絶色擅名)하던 적경홍(狄驚鴻)으로 한 짝하고

북파영중(伏波營中)에 월영(月影)이 정류(正流)하고 옥문관(玉門關)의 춘색(春色)이 의희(依稀)라 하던 심요연(沈嫋烟)으로 웃짐 쳐서 청수담(淸水潭)에 수절(守節)하여 음곡(陰谷)에 생춘(生春)이라 하던 백릉파(白綾波)로 말 몰릴까 하노라

 

풀이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이백의 시 「양원음(梁園吟)」의 한 구절. 폐허된 성은 비었는데 푸른 산 달이 비치고, 고목은 창오의 구름으로 다 들어갔네.

 

삼년적리(三年笛裏) 관산월(關山月)이요 만국병전(萬國兵前) 초목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 두보의 「세병마행(洗兵馬行)」의 한 구절. 삼년 동안 국경의 달밤엔 피리소리, 여러 군사들은 초목에 부는 바람을 맞네.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왕발의 「등왕각서」의 한 구절. 저녁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네.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하던: 소동파의 「적벽부」의 한 구절. 백로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이 하늘에 닿는다.

 

좌무수이(坐撫樹而) 종일(終日)하고 탁청천이자결(濯淸川而自潔)이라: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 자가 퇴지)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의 한 구절. 숲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시내에서 씻으며 스스로를 깨끗이 하네.

 

삼입악양인불식(三入岳陽人不識)하니 낭음비과(朗吟悲過) 동정호(洞庭湖): 당나라의 신선이었다는 여동빈의 「절구」 한 구절. 악양루에 세 번 올랐으나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고, 낭랑히 읊조리며 날듯이 동정호를 지나가네.

 

유상곡수(流觴曲水)에 혜풍(惠風)이 화창(和暢)이라: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의 한 구절. 굽이진 물에 잔을 띄우니, 온화한 바람이 화창하였다.

 

부광(浮光)은 탁금(濯金)하고 정영(靜影)은 침벽(沈璧)이라: 송나라 시인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의 한 구절. 달빛 받은 물결이 금빛으로 일렁거리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흰 구슬을 담가놓은 듯.

 

어양비고(漁陽鼙鼓) 동지래(動地來)하니 경파예상(驚罷霓裳) 우의곡(羽衣曲)이라: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의 한 구절. 어양의 북소리 대지를 울리며 다가오니, 우의곡 곡조는 놀라서 멈춰버렸네.

 

분수탈상증(分手脫相贈)하니 평생일편심(平生一片心)이라: 맹호연(孟浩然)의 「송주대인진(送朱大入秦)」의 한 구절. 손으로 풀어서 그대에게 주노니, 평생 우정의 한 조각 마음이라네.

 

청산(靑山)은 수첩(數疊)이요 벽계(碧溪)는 일곡(一曲)이라: 청산은 겹겹이오, 푸른 시내는 한 줄기. 도연명의 시라 하고 있으나 불분명하다.

 

통만고지(通萬古之) 득실(得失)하고 감백왕지흥망(鑑百王之興亡)이라: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史記)』 서문에 나오는 말. 지난 일의 득실을 통해 제왕의 흥망을 살펴본다.

 

위빈어부(渭濱漁父)로서 주천하(周天下) 팔백기업(八百基業)을 창개(創開)하던 강태공(姜太公)으로: 위빈의 어부로 주나라 8백년의 왕업을 열었던 강태공으로

 

운주유악지중(運籌帷幄之中)하며 결승천리지외(決勝千里之外)하던 장자방(張子房)으로: 군막 안에서 전략을 짜 천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장자방으로

 

대몽(大夢)을 수선각(誰先覺)고 평생(平生)을 아자지(我自知)라 하던 제갈양(諸葛亮)으로: “큰 꿈에서 누가 먼저 깨어날까, 평생을 스스로 아네라 했던 제갈공명

 

백일공사(百日公事)는 뇌양일조(耒陽一朝)요 연환묘계(連環妙計)는 적벽(赤壁)의 수공(收功)이라 하던 방사원(龐士元)으로: 방통이 작은 고을 뇌양에 부임하자 100일이나 술만 마시고 있다가 장비가 감찰을 나오니 하루아침에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그 방통이 적벽대전에서연환계’1)를 내어 적벽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용성오채(龍成五彩) 망기(望氣)하고 옥결(玉玦)을 자주 들던 범아부(范亞父): 항우의 참모 범증은 유방에 대해 점을 치니용성오채’, 즉 천하의 주인이 될 점괘가 나와서 홍문연에서 옥결(옥으로 된 패물)을 들면 그 신호에 맞추어 유방을 죽이려고 짰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백등해위(白登解圍)하고 육출기계(六出奇計)하던 진평(陳平)으로: 한의 고조 유방이 위기에 처할 때 여섯 번의 계략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한 진평으로. 유방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백등(지명)에서 흉노에게 포위당했지만 진평이 계책을 내어 포위망을 뚫었다.

 

팔십만 수륙대도독(水陸大都督) 적벽오병(赤壁鏖兵)하던 주공근(周公瑾)으로: 오나라 도독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적군을 무찌른 일을 말함

 

강남(江南)에 개가(凱歌) 불러 금릉(金陵)으로 돌아오던 조빈(曹彬)으로: 조빈은 송나라 장군. 강남을 정벌하고 송나라의 수도로 돌아온 사건을 말함.

 

백수변정(白首邊庭)에 탕소요진(蕩掃妖塵)하던 마원(馬援)으로: 마원은 후한 사람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칠순이 넘어서까지 변방을 지켰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광초구군(誑楚救君)하여 망사보국(忘死報國)하던 기신(紀信)으로: 기신은 유방의 장군으로 항우가 유방을 포위했을 때 자신이 유방으로 위장하여 유방을 탈출시켰다. 항우는 기신을 불태워 죽였다.

 

미보국은(未報國思)하고 공사절의(空死節議)하던 장순(張巡)으로: 장순은 당나라의 장군으로 안록산의 난 때 장렬히 싸우고 식량이 떨어져 죽은 일을 이르는 것

 

신사수절(身死守節)하여 충관백일(忠貫白日)하던 허원(許遠)으로: 당나라의 충신으로 자신의 종복을 죽여 병사들에게 식량으로까지 주었으나 결국 포로가 되어 사형당했다

 

연백만지수(連百萬之帥)하여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 백난대군의 원수가 되어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취했던 것을 이르는 말

 

두발(頭髮)이 상지(上指)하고 목자진렬(目眦盡裂)하던 번쾌(樊噲): 홍문연에서 번쾌가 유방을 탈출 시킨 사건을 두고 하는 말

 

남궁운대(南宮雲臺) 중흥공신(中興功臣) 이십팔장(二十八將) 중 제일공신(第一功臣) 등우(鄧禹): 후한의 광무제를 도와 후한을 중흥시킨 등우를 이르는 말

 

충의정성(忠義精誠) 앙관백일(仰貫白日)하던 곽자의(郭子儀): 곽자의는 당나라의 무장으로 하늘을 우러러 오로지 전쟁에 임해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초패왕(楚覇王)의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 우희로다: 힘이 산을 들고 기운이 세상을 덮은 초패왕 항우와 버금이오, 추상같은 절개와 뜨거운 충성은 오자서 보다 윗길이라

 

봉금괘인(封金掛印)하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던 관운장(關雲長)으로: 관우가 조조에게 포로로 잡혀 후대를 받았지만, 받은 것을 다 봉하여 인끈을 묶어놓고 천리를 탈출한 사건을 말함

 

장판파변(長板坡邊)에 퇴병백만(退兵百萬)하던 장익덕(張翼德)으로: 장판교 싸움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막아내던 장비

 

당양장판(當陽長板) 만군중(萬軍中)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백만진중(百萬陣中) 횡행(橫行)하여 도시담(都是膽)이라 하던 조자룡(趙子龍)으로: 장판교 싸움에서 아두를 구출하여 온 조자룡을 두고 유비가 온몸이 담이다 하였다는 말에서 온 말. ‘도시담은 담이 매우 큰 것을 말함.

 

서량명장(西涼名將)으로 보전육장(步戰六將)하던 마맹기(馬孟起): 마초를 이름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범소백(范少伯)을 따라 가던 서시(西施): 서시는 월나라의 미인. 범려가 오나라 왕 부차에게 서시를 보내 미인계를 썼다.

 

회두일소백미생(回頭一笑百媚生)하니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이라 하던 양귀비(楊貴妃):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의 한 구절. 머리를 돌려 한 번 웃자 백가지 교태가 생겨나고, 육궁의 후궁들이 얼굴빛을 잃었구나.

 

월궁옥장하(月宮玉帳下)에 추파(秋波)에 눈물짓던 우미인(虞美人)으로: 우미인은 항우의 여인. 항우가 패하자 눈물을 흘리며 자결했다.

 

영웅의 친근지의(親近之義) 일조(一朝)에 이간(離間)하던 초선(貂嬋)으로: 초선은 후한 때 왕윤이 동탁과 여포를 갈라놓기 위해 심었던 여인.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만들었다.

 

사마상여(司馬相如) 봉구황(鳳求凰)에 깨달아서 들어가던 정경패(鄭瓊貝): 정경패는 『구운몽』에 나오는 여인. 『구운몽』에서 양소유가 여장하여 거문고를 타는데 마지막 곡이 사마상여의 「봉구황곡」이었고, 이는 곧 유혹하는 곡임을 깨달은 정경패가 자리를 피한다.

 

춘심궁액백화번(春心宮掖百花繁)한데 영작비래보희언(靈鵲飛來報喜言)하던 이소화(李蕭和): 봄 깊은 궁궐에 온갖 꽃 무성하니 까치가 날아와 기쁜 소식 전하는구나. 『구운몽』의 이소화가 지은 시.

 

안소부대남비거(安巢不待南飛去)하니 삼오성희정재동(三五星稀正在東)이라 하던 진채봉(秦彩鳳)으로: 어찌 깃들어 남으로 날아가길 기다리지 않는가, 삼오성이 드물게 정히 동녘에 있구나 하던 진채봉으로. 역시 『구운몽』에 나오는 시.

 

위주충심(爲主忠心)은 보보상수(步步相隨) 부점사(不暫捨)라 위선위귀(爲仙爲鬼)하던 가춘운(賈春雲)으로: ‘주인을 위한 충심으로 걸음걸음 따르며 잠시도 버리지 않네가춘운이 자신의 주인인 정경패를 향한 마음을 짚신에 비유하여 읊은 것. ‘위선위귀(爲仙爲鬼)’는 귀신으로 선녀로 가춘운을 변장시켜 양소유를 골탕 먹인 일을 말하는 것. 모두 『구운몽』에 나오는 것이다.

 

월중단계(月中丹桂)를 수선절(誰先折)이냐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有眞)이라 하던 계섬월(桂蟾月): 달 가운데 붉은 월계화를 누가 먼저 꺾으려나, 지금 문장에 저절로 진실함이 있구나 하던 계섬월로. 양소유가 한 잔치에서 계섬월을 만나 지은 시.

 

하북명창(河北名唱)으로 삼절색천명(三絶色擅名)하던 적경홍(狄驚鴻)으로: 『구운몽』에서 적경홍은 하북의 명기(名妓)로 양소유의 아내 중의 하나. 삼절색은 진채봉, 계섬월, 적경홍.

 

북파영중(伏波營中)에 월영(月影)이 정류(正流)하고 옥문관외(玉門關外) 춘색(春色)이 의희(依稀)라 하던 심요연(沈嫋烟)으로: 북파영중에 달빛이 뚜렷하고 옥문관 밖에는 봄빛이 뚜렷하다고 하던 심요연으로. 심요연 역시 양소유의 아내가 된다.

 

청수담(淸水潭)에 수절(守節)하여 음곡(陰谷)에 생춘(生春)이라 하던 백릉파(白綾波): 청수담에 수절하니 그윽한 골짜기에 봄기운이 나타난다고 하던 백능파. 백능파 역시 양소유의 아내가 된다.

 

해설

「짝타령」은 송서다. 『변강쇠 타령』, 『심청가』, 『춘향전』 등의 삽입 타령에도 엇비슷한 형태가 보이고 있다. 특히 『춘향전』에는 「바리가」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송서 원본은 개인의 창작이나, 「짝타령」은 개인 창작으로 보기 어렵고 판소리에서 온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문원의 송서 음원이 남아 있고 묵계월 등으로 전승되고 있어 송서로 분류한다. 내용은 고금(古今)의 시문(詩文)과 역사 등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       출사표

 

노랫말

선제창업미반(先帝創業未半) 이중도붕조(而中道崩殂)하시고 금천하삼분(今天下三分)에 익주파폐(益州罷弊)하니 차성위급존망지추야(此誠危急存亡之秋也)

()이나 시위지신(侍衛之臣)이 불해어내(不懈於內)하고 충지지사망신어외자(忠志之士忘身於外者)는 개추선제지수우(蓋追先帝之殊遇)하야 욕보지어폐하야(欲報之於陛下也)니이다

성의개장성청(誠宜開張聖聽)하사 이광선제유덕(以光先帝遺德)하며 회홍지사지기(恢弘志士之氣)오 불의망자비박(不宜妄自菲薄)하야 인유실의(引喩失義)하야 이색충간지로야(以塞忠諫之路也)니이다

궁중부중(宮中府中)이 구위일체(俱爲一體)니 척벌장비(陟罰臧否)를 불의이동(不宜異同)이라

약유작간범과(若有作姦犯科)와 급위충선자(及爲忠善者)어든 의부유사(宜付有司)하야 논기형상(論其刑賞) 이소폐하평명지리(以昭陛下平明之理)

불의편사(不宜偏私) 사내외이법야(使內外異法也)니이다

시중시랑(侍中侍郞) 곽유지비위동윤등(郭攸之費褘董允等)은 차개양실(此皆良實)하고 지려충순(志慮忠純)이라

시이(是以)로 선제간발(先帝簡拔)하사 이유폐하(以遺陛下)하시니

우이위궁중지사(愚以爲宮中之事)는 사무대소(事無大小)히 실이자지연후(悉以咨之然後)에 施行(시행)이면 필능비보관루(必能裨補闕漏)하야 유소광익(有所廣益)이리이다

장군향총(將軍向寵)은 성행(性行)이 숙균(淑均)하고 효창군사(曉暢軍事)하야 시용어석일(試用於昔日)에 선제칭지왈능(先帝稱之曰能)이라 하사 시이(是以)로 중의거총위독(衆議擧寵爲督)하니 우이위영중지사(愚以爲營中之事)는 사무대소(事無大小)히 실이자지(悉以咨之)하시면 필능사행진화목(必能使行陣和睦)하고 우열득소야(優劣得所也)리이다

친현신원소인(親賢臣遠小人)은 차선한소이흥륭(此先漢所以興隆)이요 친소인원현신(親小人遠賢臣)은 차후한소이경퇴야(此後漢所以傾頹也)

선제재시(先帝在時)에 매여신(每與臣)으로 논차사(論此事)에 미상불탄식통한어환령야(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니다

시중상서장사참군(侍中尙書長史參軍)은 차실정량사절지신(此悉貞亮死節之臣)이니 원폐하(願陛下)는 친지신지(親之信之)하시면 즉한실지륭(則漢室之隆)을 가계일이대야(可計日而待也)니이다

신본포의(臣本布衣)로 궁경어남양(躬耕於南陽)하야 구전성명어난세(苟全性命於亂世)하고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候)러니 선제불이신비비(先帝不以臣卑鄙)하시고 외자왕굴(猥自枉屈)하사 삼고신어초려지중(三顧臣於草廬之中)하시고 자신이당세지사(諮臣以當世之事)하시니

유시감격(由是感激)하야 수허선제이구치(遂許先帝以驅馳)러니 후치경복(後値傾覆)하야 수임어패군지제(受任於敗軍之際)하고 봉명어위난지간(奉命於危難之間)이 이래이십유일년의(爾來二十有一年矣)

선제지신근신(先帝知臣謹愼)이라 고()로 임붕(臨崩)에 기신이대사야(寄臣以大事也)니이다

수명이래(受命以來)로 숙야우탄(夙夜憂嘆)하며 공탁부불효(恐託付不效)하야 이상선제지명(以傷先帝之明)이라.

()로 오월도려(五月渡瀘)하야 심입불모(深入不毛)러니 금남방(今南方)이 이정(已定)하고 갑병(甲兵)이 이족(已足)하니 당장솔삼군(當奬率三軍)하야 북정중원(北定中原)하고 서갈노둔(庶竭駑鈍)하야 양제간흉(攘除姦凶)하야 흥복한실(復興漢室)하야 환어구도(還於舊都)니 차신소이보선제(此臣所以報先帝) 충폐하지직분야(忠陛下之職分也)요 지어짐작손익(至於斟酌損益)하고 진진충언(進盡忠言)은 즉유지의윤지임야(則攸之褘允之任也)이다. 원폐하(願陛下)는 탁신이토적흥복지효(託臣以討賊興復之效)하사 불효칙치신지죄(不效則治臣之罪)하야 이고선제지령(以告先帝之靈)하시고 약무흥덕지언(若無興德之言)이어든 즉책유지의윤등지구(則責 攸之禕允等之咎)하사 이창기만(以彰其慢)하시며 폐하(陛下)도 역의자모(亦宜自謀)하야 이자추선도(以諮諏善道)하고 찰납아언(察納雅言)하야 심추선제유조(深追先帝遺詔)하소서

신불승수은감격(臣不勝受恩感激)이라 금당원리(今當遠離)에 임표체읍(臨表涕泣)하야 부지소운(不知所云)이로소이다

 

풀이

선제(유비)께서 나라를 연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익주가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으니, 이는 진실로 위급하여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뜻이 있는 장군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 대개 선제의 특별한 후의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갚고자 함입니다.

 

진실로 폐하의 귀를 열고 펴,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뜻 있는 선비의 의기를 넓고 크게 해야 하고, 망령되이 스스로 덕이 없다고 여겨 의를 잃고, 충간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궁중과 승상부가 모두 일체이니 선과 악을 척벌함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이요, 만일 간사한 짓을 하여 죄과를 범하는 자와 성실하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으면 마땅히 형벌과 상을 논하여 그것으로 폐하의 공정하고 밝은 다스림을 밝혀야 할 것이요, 사사로움에 치우쳐 내외로 하여금 법을 달리 해서는 안 됩니다.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 · 비위 · 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생각이 참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선제께서 뽑으시어 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물은 연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부족하거나 빠진 것을 도와주고 보충하여 널리 이익이 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위가 선량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군대의 일에 밝아 두루 아는지라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으니,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상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부대들로 하여금 화목할 수 있게 되어 우수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마땅한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이것이 선한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이 기울어지고 쇠한 까닭입니다.

 

선제께서 계실 때에 매번 저와 함께 이일을 의논하며 일찍이 후한의 환제와 영제의 일을 탄식하고 몹시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시중, 상서, 장사, 참군 이들은 모두 곧고 어질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오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이들을 믿어 주시면 곧 촉한의 황실이 흥륭하다는 것을 날을 세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갈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구하지 않았더니, 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힘써 일할 것을 약조하였더니 그때 국운이 기울어짐을 만나 패군의 때에 임무를 받고 위급한 때에 명령을 받은 것이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 지라 돌아가심에 임하여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으니 명령을 받은 이래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탄식하며 부탁하신 일에 효과가 없어서 선제의 밝으심을 해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오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들어갔더니 지금은 남쪽이 이미 평정이 되고 무기와 갑옷이 풍족하니 마땅히 삼군을 권려하여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고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손해와 이익을 짐작하고 나아가 충성스러운 말을 다하는 것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임무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도적을 토벌하고 왕실을 부흥시키는데 실효를 거둘 일을 맡기시어 효과가 없으면 곧 신의 죄를 다스리어 그렇게 함으로써 선제의 영앞에 고하시고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 태만을 밝히십시오.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꾀하시어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신이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지라, 지금 멀리 떠나게 됨에 표를 올리매 눈물이 앞을 가려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해설

「출사표」는 송서다. 제갈량(諸葛亮)이 출정하면서 황제 유선에게 올린 글로 유비에 대한 충성과 나라에 대한 걱정을 나타낸 천하의 명문(名文)으로 알려져 있다. 227년에 올린 것이 「전출사표(前出師表)」이며 이듬해 올린 것이 「후출사표(後出師表)」이다. 「전출사표」를 노래한 것이 송서다.

 

「출사표」는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함흥기생이 잘 불렀다고 했고, 장사훈도 송서의 목록 중에 「출사표」가 있음을 『국악대사전』에서 밝혀놓고 있다. 또한 <경성방송국 국악방송 목록>을 보면 1937 11 18일 유성옥(劉聖玉)이 「출사표」를 방송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출사표」의 전수자도 없고 음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음원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고, 또 음원이 없다 해도 추정 복원이 가능하기에 노랫말을 남겨둔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에서 향유되었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대학」을, 영흥 기생은 「용비어천가」를, 함흥 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송서의 출발은 글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한적(漢籍: 한문으로 된 책)을 외는 고전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들면서 한문 서적을 외는 교육 방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송서도 그 빛을 잃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서도 송서와 경기 송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송서로는 서도에서 「추풍감별곡」, 「적벽부」 등이고, 경기에서 「삼설기」, 「전적벽부」, 「후적벽부」, 「등왕각서」, 「짝타령」 등이며, 음원만 남아 있는 것이 박헌봉의 「시상부」, 유성옥의 「출사표」이다. 문헌상으로는 「어부사」, 「춘야연도리원서」 등이 남아 있다. 책을 읽는 듯한 소리지만, 상당한 공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창하기 힘든 소리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출사표 (창악집성, 2011. 07. 04.,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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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송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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