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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산 산신령의 분노

淸潭 2016. 11. 9. 11:20

부엉산 산신령의 분노(부엉山 山神靈憤怒)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지금 제황산(帝皇山)의 옛 이름은 부엉등 또는 부엉산이라 했다. 이 산의 북방에서 제황이 탄생한다는 속설이 전하여지면서 제황산(帝皇山)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산 정상에는 진해탑이 세워져 있지만 진해탑을 세우기 전에는 일제의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露日戰爭 戰勝記念塔)이 서 있었다.

 

이 탑을 세울 때의 일이었다. 부엉산 아래에는 묘법사(妙法寺), 선광사(光寺), 안국사(安國寺) 등의 일본 사찰이 있었는데(지금은 묘법사만 남아 있다) 탑을 세우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던 어느 날 묘법사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무도한 일본 놈들이 나의 두상을 깎아 버려서 이렇게 피를 흘리고 있다. 너는 도를 닦는 승려이니 일본 해군 사령관에게 공사를 즉시 중지하도록 하고 본래대로 산봉우리를 복구할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무례한 짓을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라. 만약 내 말을 그대로 이행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를 것이니 잊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묘법사 주지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일본 해군 진해요항부의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으나 듣지를 않았다.

그러자 진창선(鎭昌線) 철도 개설 기념회가 서기 19274월에 열렸는데 이를 관람하기 위하여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배를 타고 현동부두로 입항하려다가 전복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그 후에 부엉산 산신령은 묘법사 주지에게 다시 나타나서

내가 너에게 부탁을 하여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아 내 영험을 바다에서 보였는데도 믿지 않으니 다시 경고한다. 공사를 즉각 중지하고 본래대로 다듬어 놓지 않으면 큰 변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묘법사 주지는 또 다시 해군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산에서 변이 생겼다. 케이블카 5대에 석재를 실어 산정으로 끌어올리다가 와이어 로프가 끊어지면서 케이블카가 산산조각이 났는데 일을 하던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치지 않고 일본인들만 사상자를 내었다. 그러나 공사는 계속 되어 서기 1929년 기념탑을 준공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엉산 산신령의 분노[부엉山 山神靈憤怒]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자봉의 설화

 

장천동 뒷편에 해발 510 미터의 산이 있는데 이 봉우리를 천자봉이라 부른다.

 

옛날 이곳에는 못이 있고 이 못에는 용이 못된 강철이 살고 있었는데 언제나 인가에 내려와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가축을 해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이것을 안 염라대왕은 사자를 보내 등천화룡도 되지 못하면서 못된 짓만 하는 강철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워낙 사납게 생긴 강철인지라 사자가 잡아오지 못하자 염라대왕은 노하여 기어이 데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할 수 없이 강철을 사로잡을 수 없음을 안 사자는 한 가지 꾀를 내어 강철을 타이르기 시작하였다.

용이 못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대국의 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는가?” 했다.

그 말을 들은 강철은 기꺼이 응하면서 스스로 바위에 머리를 부딛혀 죽고 말았는데 죽은 강철의 입에서 파랑새가 한 마리 날아 나와 천자봉 지붕 아래에 있던 백일 마을의 외딴집으로 날아 들어갔는데 그 집이 주씨의 집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주씨 부인은 잉태를 하게 되었고 열 달 후는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산수도 생활하였는데 머리가 영특하며 노는 것도 남 다른 데가 있었다. 무술놀이를 즐겼고 언제나 장수노릇을 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왼손을 쥐고 있었다. 놀이를 할 때나 쌈을 할 때나 왼손 주먹만은 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동무들은 그가 잠자는 틈에 그의 왼손을 펴본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왼손 바닥에는 대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을 깬 그 아이는 매우 놀라 하며 같이 놀던 아이를 죽여 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명나라에 가서 무술을 닦아 명 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천자봉 아래에 있는 넓은 평지를 마당재라 하는데 주천자가 어릴 때 무술을 닦고 전쟁놀이를 하던 장소라 전하고 있으며 그가 태어진 집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을 장군목이라 한다.

이러한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 천자봉과 천자암이며 장군천과 장천동, 자은동이란 지명이 붙여졌다. 장군천은 천자봉 골짜기로부터 흐르는 내의 천자가 놀았다고 해 붙여졌으며 장군천 주변에 생긴 취락을 장천도이라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주천자가 스스로 자취를 감춘 곳이라 하여 자은동이란 지명이 생겼다.

[출처] [본문스크랩] [진해시] 부엉산 산신령의 분노 |작성자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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