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面書生(백면서생)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 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 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 (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일은 종에게 물어야 하고, 길쌈질은 하녀에게 물어야 잘 알 수 있습니다. 북위를 징벌하고자 하시면서, 얼굴 흰 선비들과 그 일을 도모하시니, 일이 어찌 성공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耕當問奴하고 織當問婢니이다. 欲伐國한대 而與白面書生으로 謀之하시면 事何由濟리오.)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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