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에게 쫓긴 유방이 고전하고 있을때의 일이다. 유방은 군량 수송로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어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이 제의를 받아들일 생각이었으나 범증(范增)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안 유방은 전에 항우의 부하였던 진평(陳平)의 책략에 따라 항우 진영으로 간첩을 잠입시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범증이 유방과 몰래 내통하고 있다."
계략은 적중하여 성급하고 단순한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게 되었다. 항우는 은밀히 유방의 진영으로 사신을 보냈다. 유방은 푸짐한 요리를 준비시키고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였다. 사자를 대하자 짐짓 놀란 체하며 말했다.
"아니, 아부(범증을 말함)가 보낸 사자인 줄 알았더니, 초패왕이 보낸 사자로군."
그러고는 일부러 정성들여 차린 요리상을 물리고 초라한 밥상으로 바꾸게 하였다.
사신은 돌아가서 항우에게 이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 후부터 항우는 범증을 믿지 않게 되었다. 범증이 아무리 유방을 급습하라고 권해도 전혀 못 들은 체했다. 범증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결국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화를 냈다.
"이제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후로는 혼자서 처리하십시요. 이제껏 주군에게 바쳤던 해골을 돌려받아(乞骸骨)고향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 가던 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은 인간관리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유방이 모신과 용장들을 잘 통솔한 반면,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말려들어 단 한사람의 현명한 신하를 잃고 결국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