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貫滿盈(악관만영)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도읍의 남쪽에 길이 3리, 높이 1000척의 녹대(鹿台)와 적성루(摘星樓)를 지었다. 이 높은 곳에서 달기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 웃음을 터뜨렸다. 포학한 주왕 역시 달기의 웃음을 보기 위하여 잔악한 일을 서슴지 않았다.
예를 들면, 활로 사람을 쏘기, 호랑이에게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 산채로 사람의 가슴을 가르는 일,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걷게 하여 미끄러져서 타 죽게 하는 포락(포烙)의 형을 구경하면서 웃고 즐겼다.
주왕(紂王)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달기(달己)라는 요부에 빠져 그만 극악무도한 폭군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 내어 자신을 반대하는 관리나 백성들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 여기에서 쾌락을 느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주왕은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깃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한 다음, 많은 젊은 남녀들로 하여금 발가벗고 서로 희롱하고, 음탕한 음악과 음란한 춤을 추게 하며, 자신도 먹고 마시면서 이러한 광란의 잔치를 감상하였다. 이른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주왕의 음탕하고 잔혹한 정치는 왕공대신(王公大臣)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일어섰다. 그는 황하(黃河)를 건너 은나라 도읍지 조가(朝歌)를 치기 직전 군사들에게『주왕의 죄악이 너무 많아 천벌을 내린다(商罪貫盈상죄관영, 天命誅之천명주지)』고 선언했다.
기원전 1039년,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친히 대군(大軍)을 이끌고 주왕(紂王)을 토벌하였다. 당시 주왕(紂王)의 군대는 동이(東夷)와 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므로, 주왕은 노예들을 데리고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예들은 주왕의 명령을 듣지 않고 주나라 무왕의 편에 섰다. 대세를 판단한 주왕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녹대(鹿台)에 올라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었다. 달기도 그를 따라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출처 :광산김씨 전북 종친회 원문보기▶ 글쓴이 : 孤巖/準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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