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스님과 문태준 시인은 닮았다.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언제나 자기얘기보다 다른 사람들 말에 귀기울인다. 입가엔 웃음을 머금고 말이다. 제아무리 아프고 힘겹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한바탕 웃음으로 씻어주는 스님과 시인이다.
문 시인이 PD가 되고 성전스님이 DJ로 변신하는 불교방송 아침프로그램 ‘행복한 미소’의 수만명의 청취자 중 불자(佛子) 이상으로 타종교인들이 많은 이유다. 시인과 스님이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이심전심으로 라디오를 해온지도 벌써 5년째다.
스님은 홀로 마이크 앞에 앉아 유리문 밖 문 PD의 표정과 손짓을 읽으면서 청취자들의 마음을 함께 읽어준다. 스님은 문 PD를 “허술해보이지만,(웃음) 상당히 촘촘하고 부지런한 선비시인”이라고 했고, 문 PD는 “단 한번도 성내는 모습을 뵌 적이 없을 정도로 긍정에너지가 충만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문 PD에 따르면 스님의 놀라운 치유력은 라디오 생방송 두시간만에 1만5000건의 문자가 기록될 정도다. 두 사람이 최근 동시에 책을 냈다. 시인은 ‘느림’을 예찬하면서 <느림보 마음>이라는 산문집을 냈고, 스님은 ‘비움’을 이야기하면서 수행에세이집 <비움, 아름다운 채움>을 출간했다. 출판사(마음의숲)도 같다. 10월24일 마포의 한 찻집에서 닮아도 너∼무 닮은 스님과 시인의 ‘대화’에 끼어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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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느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성전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사진 오른쪽)과 문태준 시인. 성전스님과 문 시인은 5년간 불교방송에서 PD와 DJ로 손발을 맞추고 있다. 10월24일 마포의 한 공원에서 산보를 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성전스님= “산중에 살면서 내 최대의 숙제는 언제나 ‘나 없는 나’를 만나는 일이죠. 하지만 아직은 요원합니다. 나는 언제나 나에 걸려 분노하고 절망하고 슬퍼합니다. 내가 없다면 나는 바람처럼 별처럼 혹은 부처처럼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나를 향한 눈을 감고 사람들을 향해서만 눈을 엽니다. 나를 향한 눈을 감으면 상대방의 행동이 내게 걸림이 되지 않지요.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타인이 내 안에 스며와 상대가 나임을 알게 합니다. 모습은 다르나 그 생명의 흐름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슴으로 만나는 순간이죠.”
들꽃처럼 미소 짓는 성전스님
탐욕 비우면 자비 채워지고
분노 내려놓으면 사랑 찾아와
허공같은 마음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채움’…
스님과 시인의 닮은 마음에는 그 옛날 어머니의 향기가 은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시인= “제 어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용화사엘 가셨는데, 절에 가기 며칠 전부터 채식을 하셨어요. 소찬으로 절욕의 식단을 차렸고 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깨끗하게 하신 다음에야 절에 가셨어요, 그 며칠 동안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입에 담지 않았고 큰소리로 말하는 법도 없었어요.
경전의 말씀처럼, 어머니는 말을 할 때 종이나 경쇠를 고요히 두들기듯 하셨죠. 어머니는 계율에 계합하는 조행의 덕목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신 성심껏 신앙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위대한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등 뒤에서 조용히 어머니를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감화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님= “이북에서 아버지와 함께 월남하신 내 어머니는 음식을 하면 마을사람들과 함께 먹을 정도로 인심이 후하셨어요. 뒷산 절에 비구니 스님이 내려오시면 어머니는 아주 넉넉히 보시하셨죠. 내가 이렇게 출가해 사는 것도 어찌보면 어머니 덕입니다.
옛날 어머니께서 그렇게 보시한 공덕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렇게 출가수행자가 되어 살아갈 수 있겠어요? 나눔과 하심,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임을 어릴 때 알아버렸지요. 하지만 내 것을 준다는 것, 나를 낮춘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내 삶의 스승이지요.”
‘비움’의 참맛은 무엇일까.
시인= “절을 찾아가는 것은 어떤 큰 것을 얻으려는 목적에 있지 않아요. 다만 내 삶의 속도를 잠깐 돌아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죠. 삶을 다소 느릿하게 살면 그만큼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음을 쉬게 하고 잠깐이나마 골짜기를 내려오는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
그래서 절에 한번 다녀오면 절마당같이 텅 빈 공간이 하나 마음에 생긴 것 같아요, 맑은 물이 돌돌 흘러나오는 샘 하나 가슴 속에 생긴 것 같아요.”
스님= “그래서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쁨에 눈뜨게 하기 때문이죠. 비우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고 또한 즐거움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날마다 새날을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비운 사람입니다.
마음 속에 자리한 탐욕을 비우면 그 자리에 자비가 채워지고, 분노를 비우면 그 자리에는 사랑이 찾아옵니다. 다시 마음속의 사념을 비우면 그 자리에는 무심의 평화가 찾아오지요.”
된장처럼 구수한 문태준 시인
다소 느릿하게 살아가면
넓은 시야 얻을 수 있어
절에 다녀오면 절마당같은
텅 빈 공간 마음에 생겨
‘느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시인= “지금까지는 참 서둘러 걸어왔어요. 두서도 없이 까닭도 없이, 마치 여름날 천둥이 굴러가는 것처럼 요란하게만. 누군가 나를 뒤에서 보았다면 대단히 급한 용무가 있겠거니 했을 겁니다. 당장의 물을 피하고 당장의 불을 피하겠다는 반딧불같은 소견만 있었던 것이죠.
견고하게 고집한 것이므로 스스로 피곤함만 얻었을 뿐입니다. 이제 강을 만나면 강의 속도로 걸어갈 줄 알게 될 것 같아요, 새를 만나면 새를 먼저 보낼 줄 알게 될 것 같아요, 누군가 뒤따라오며 나의 이름을 부르면 서서 기다릴 줄도 알게 될 것 같아요.”
스님= “길을 가다가 바람 한 줄기에 걸음을 멈추어 본 적이 있는가. 비가 내리는 날 창을 열고 빗줄기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별을 보고 가만히 탄성을 발한 적이 있는가. 아픈 누군가에게 마음의 수건을 꺼내어 그의 가슴을 덮어준 적 있는가….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우린 왜 멋진 일들을 포기하고 서로 등돌리고 살아가려 할까요.”
시인= “살아갈수록 덜어내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도 소식(小食)이 필요합니다. 덜어내는 것이 가장 번창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텐데…. 말을 덜어내면 허물이 적어진다고도 합니다. 덜어내는 일이 보태는 일보다 어렵지만, 덜어내는 일이 나중을 위하는 일임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스님= “산다는 것은 비우고 비워서 마침내 사랑과 자비가 되는 것입니다. 비우고 비워 허공과 같은 마음의 크기를 깨닫게 될 그날의 아름다운 채움을 기다릴 뿐입니다.”
스님에게 라디오는 어떤 의미일까.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청취자들은 나에게 죽비이자 스승입니다. 나의 한마디가 그들에게 의미가 될 때 나 또한 그들로부터 날마다 맑은 가르침을 받지요. 그들이 내게 수행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셈입니다. 진실한 말, 진리 그대로인 말, 그리고 속이지 않는 말…. 부처님이 당신의 말씀을 그렇게 표현하셨듯이, 어렵지만 그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 두 책에 실린 명구
“나를 버리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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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좌절은 쉽게 찾아오고 근심에 날을 새우고는 한다. 나를 버린 사람만이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 미움에서 사랑을 보고 번뇌에서 열반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성전스님)
O…생명은 채움이다. 내가 없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아의 구현이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곳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만날 수가 있다.
새벽하늘을 보라. 그리고 암수로도 모자라 벌레와 바람의 중매까지도 받아들이는 꽃을 보라. 거기 삶의 길이 있지 않은가. (성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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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의 사람을 만나거든 사귀고, 사랑을 약속하고, 그이를 푸릇푸릇 생동하게 하면서, 그이의 삶에도 나의 삶에도 씨앗을 움트게 하면서…. (문태준)
O…어릴 때 용화사에 가서 미륵부처님을 뵙고 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뭐라 뭐라 들릴 듯 말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 조근조근하고 얼금얼금한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말씀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제일로 간곡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문태준)
[불교신문 2864호/ 11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