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7회 <32.응화비진분>-1
금강경 마지막 장으로 회향할 차례다. 그 동안 힘들었다. 잘 모르는 것 공부해서 한 것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스님들 비난도 많이 했고 불교 집안의 답답한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정확하지 않은 비난으로 속 상했던 분들도 많이 계셨을 것이다. 마지막 녹화하면서 그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 모두 세상을 보는 저의 단점 때문이다. 강의 시작 전 반야심경 다 독송하셨지만 불교 가르침은 관자재보살로 시작한다. 세상 법계를 보는 관점 자체가 자재해야 하는데 내 입장 내 지식 내 생각 내 범위 내에서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오늘은 금강경 마지막 장인 응화비진분이다.
應化非眞分 응신과 화신은 진짜가 아니다. 사실 소명태자가 붙인 이름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있다부터 시작한다. 있다고 생각하는 有病에 걸린 환자들에게 있는 게 아냐 없어 하고 구경무아분으로 올라갔다 구경무아분에서 밝은 눈으로 세상을 다시 봐! 그러면서 육안 혜안 천안 법안 불안이 나오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다. 끝이 허망하게 끝나니 좀 이상하다. 그러나 금강경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정상에 올라서는 空을 말씀하지만 끝의 여몽환포영은 不空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허망하니 제대로 봐! 제대로 해! 하고 空의 세계에서 다시 不空의 세계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반야심경의 진공묘유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진정으로 비어 있음은 묘하게 존재한다.
저 월급쟁이로 화탕지옥에 근무한다. 사실 알고 보면 금강경 모를 때도 화탕지옥에 있었고 금강경 32분까지 공부했어도 화탕지옥은 그대로 화탕지옥이다. 그러나 지금은 화탕지옥에 있다고 느끼진 않는다. 아! 이게 화탕지옥이 아니구나 범인은 내 마음에 있었구나 그것이 금강경 가르침이다. 아마 허망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금강경 공부하면 잘못 보냈던 과거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가 막힌 부처님 신통이 우리에게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8정도의 정견으로 다시 보라는 말이다. 무위법과 유위법. 금강경 32분에 유위법이 나오고 무위법은 금강경 전반에 걸쳐 나온다. 유위법은 의도가 있는 법이고 무위법은 의도가 없는 법이다. 무위법은 7분에 나온다. 유위와 무위의 세상에서 지금 있는 그대로 어떻게 다시 정견을 세우고 살아야 하는가? 유마경 제 11장 보살행품을 통해 보라.
금강경을 화향하며
금강경을 같이 공부해 오신 우리 도반님들께 두 손 모아 합장공경예배 올립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꿈속의 도반이었습니다. 같이 낮꿈을 오랫동안 꾸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생각이 제 생각으로 들어오고 제 생각이 여러분들 생각으로 들어가서 8개월 동안의 긴 꿈을 꾸었습니다. 때로는 아슬아슬한 때도 있었고 때로는 의심과 분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금강경의 마지막 분인 32분은 응화비진분입니다. 과보로 받은 응신과 순간순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화신이 다 진짜가 아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32분입니다. 그러면서도 법을 전하라고 하셨고 그러면서도 일체 모든 것이 다 유위법이기에 허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허망함은 이미 앞에서 진실된 법을 다 보여주셨기에 다시 한 번 우리가 8정도의 첫 걸음인 정견을 하라는 의미에서 기가 막힌 가르침을 주십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제 우리는 속임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유위법이고 유위임을 알면서도 무위를 행하고 무위를 알면서도 유위를 행하는 것이 대승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보살의 행동입니다. 이제 보살의 행을 하시어 금생에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셨던 것 다 이루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자 스스로 금생의 삶에 큰 복덕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시고 확인하시고 금생의 여행 마치면서 함빡 웃으시며 다음 생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행복한 여행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으로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부처님이 우리 도반들에게 바라는 것이며 제가 우리 도반님들에게 바라는 것이며 도반님들이 제게 바라는 것이며 제가 제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금강경 가르침 대로 세상 살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사회생활 왕따 당한다. 잘못하면 거지도 될 수 있다. 정토삼부경의 관무량수경 보면 16관법 수행과 부처님 지혜로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나 하는 것이 다 나와 있다. 이 경을 설하시게 된 사연은 실존 인물인 빔비사라왕이 부처님 수행자 시절 멀쩡한 집 아들이 왜 이렇게 사나 묻자 왕이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다르다면서 법계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준 것이 인연이 된다. 그래도 빔비사라왕이 선근 공덕이 있어 알겠다 민약 당신이 부처가 되면 나에게 큰 깨달음을 달라 그러면 중생들에게 당신 법이 널리 퍼지도록 하겠다 그러면서 실제 부처님 성도 후 그 약속을 지켜 죽림정사를 세워 포교의 기반을 만든다.
淨土三部經 –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빔비사라<Bimbisara>왕 - 기원 전 6C 후반 경 마가다국의 왕. 불교에 귀의하여 죽림정사를 세웠다.
위제희<Vedehi> - 마가다국의 왕비로서 남편인 빔비사라왕과 함께 독실한 불자였다.
아사세<Ajatasatru>왕 - 데바닷타의 말을 듣고 부왕을 죽이고 즉위하였으나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교를 보호하였다.
데바닷타<Devadatta> - 부처님 사촌동생. 출가해 제자가 되었다 뒤에 이반하여 불교 교단에 대항.
기바<Jivaka> - 부처님 당시 유명한 의사로서 부처님의 시의
빔비사라왕 부인은 위제희요 아들은 아세사왕이다. 아사세왕은 부처님 사촌동생이고 금강경을 그대로 전해준 아난존자의 형이기도 하다. 다바닷타 꼬임에 빠져 아버지를 가둬 굶어 죽이려 감옥에 유폐시킨다. 그러자 위제희 부인이 몸에 꿀과 밀을 붙여 왕을 살린다. 그러자 이번엔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 그러자 부처님 시의인 기바가 역사상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경우는 너무나 많지만 어느 경우도 어머니를 죽인 경우는 없다 만약 당신이 어머니를 죽인다면 추한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설득하자 어머니를 못 죽인다. 이때 신통제일 목련존자와 설법제일 부르나존자가 나타나 법문을 해준다. 이 글을 읽고 그렇게 신통력이 있으면 저절로 감방이 다 허물어져 탈출시키고 그 나쁜 왕놈은 벌을 줘야지 말이 안 된다 이 이야기의 의도가 도대체 뭔가 생각했었다.
부처님 법이란 결국 연기법 인연법이다. 과거 빔비사라왕은 아들이 없었다. 용한 점쟁이를 불러 묻는다. 그러자 3년 후 아드님이 태어나서 왕위를 잇게 된다고 말한다. 3년이나 기다려야 하나? 그래서 수소문 해 어느 선인을 찾는다. 당신이 죽어 환생해야 내 아들로 태어난다는데 언제까지 살 것인가? 아직은 3년이 더 남았다. 그러자 신하를 시켜 죽여버린다. 선인은 죽으면서 왕이 입과 몸과 뜻으로 해를 가했으니 나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 입과 몸과 뜻으로 당신을 해하겠다는 발원을 하고 죽는다. 그런 인연으로 아사세 왕이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과로 자신도 피부병으로 굉장히 고생한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말씀 듣고 참회한다는 스토리다.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인과가 모두에게 있다. 제가 한국불교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불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기 때문에 과거의 업도 소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여 병이 걸렸지만 진심으로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말처럼 죄 자체도 공이였구나 하고 참회하는 순간 모든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음 바꾸는 참회를 하는 것이다. 대승불교 이론은 모든 것이 실제하는 것이 아니고 조건 따라 인연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죄도 그렇다는 가르침이다. 불법을 알면 아 내가 모르고 짓는 죄가 너무나 많구나 알게 된다. 그러니까 알고 짓는 죄는 알고 받고 모르고 짓는 죄는 모르고 받고 알고 지은 복은 알고 받고 모르고 지은 복은 모르고 받는구나 맨날 그러면서 우리가 온탕 냉탕 왔다갔다 하는데 정견을 갖게 되면 그러지 않게 된다.
○ 應化非眞分 第三十二 <응화신은 참된 것이 아니다>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一切世間天人阿修羅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있어 무량 아승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서 가져다 보시에 썼다 할지라도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심을 발한 자가 있어 이 경을 수지하거나 4구게만이라도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해 설해준다면 그 복은 앞의 복덕보다 훨씬 더 수승한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한 설함인가 하면 일체 상을 취하지 않고 여여부동 한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일체 함이 있는 법은 꿈이요 환이요 거품이요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마치자 장로 수보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일체 세간 천 인 아수라가 이 경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이 경을 믿고 받들었다.
心想事成. 일체유심조처럼 심상사성도 얼마든지 좋게도 쓸 수 있고 나쁘게도 쓸 수 있다. 想은 相과 똑 같은 의미다. 먼저 이 相으로 이해하면 훨씬 더 빠르다. 상이란 것은 내 마음 속에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 한 생각을 내는 것이다. 내가 이렇다고 믿는 것 내가 이렇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에서 상이 그려지면 사단이 난다. 그러니까 한 마음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이미지가 그려지면 위대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이 생긴다. 보시해야 하겠다 혹은 복수해야 하겠다 해서 자기 마음에 상을 하나 그리면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8만대장경의 마음 心자는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결국 중생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마음을 부처님께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이라 그러시는 것이다. 의도를 가지고 함이 있는 것으로 마음 일으켜 봤자 그것 다 개떡이야! 꿈 같고 물거품 같고 이슬 같고 번개불 같은 거야 그러시는 것이다. 맞다. 지금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지나가면 모두 잊혀진다. 시간이 지나면 다 된다는 불교의 원래 의미는 조건이 흩어져 인연관계가 끝난 것이다.
어떤 아토피 환자 분이 기도를 해야 하는데 어떤 기도가 좋겠냐고 물었다. 병원에 가시겠지만 일단 아토피 별 것 아니라 답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에 모든 병은 4가지 원인에서 온다 그랬다. 첫째는 지수화풍 4대 부조화에서 오고 두 번째는 입으로 드는 섭생 잘못으로 오고 세 번째는 귀신 장난으로 오고 네 번째는 업에 의해 온다 그랬다. 아토피는 지수화풍 4대 부조화니까 지수화풍 조절 잘 해야지 기도한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아파 봤냐? 아토피 싸이트에 들어가 보기나 했냐? 목숨 반 하고 고통 반 바꾸자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냐? 공격해서 죄송하다고 답장 드렸다.
돈 점 병.
누가 돈 벌어준다 누가 점 봐 준다 누가 병 고쳐준다 그러면 거리 상관 없이 달려간다. 그런데 알고보면 돈은 경제적 고통이고 점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인연적 고통이고 병은 육체적 고통이다.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핵심만 놓고 보면 이 3가지다. 부처님은 이 3가지 중 인연적 고통을 주로 말씀하셨다. 경제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어떤 면에서 보면 기술이다. 너희들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거운 것 아니고 영원하다 생각하지만 영원한 것 아니고 내가 있다 생각하지만 내가 있는 것이 아니 거든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3법인이다. 그런데 苦 라고? 사실은 돈 없어 죽겠고 저 사람과 사이가 안 좋아 죽겠고 몸도 아파 죽겠는데 부처님은 그런 것 없다 그러니 참 환장할 일이다.
삼법인 –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그래서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모든 중생을 다 구하겠습니다 모든 번뇌를 다 끊겠습니다 모든 법문 다 듣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불도를 다 이루겠습니다 하는 발사홍서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나? 마음 속 자기 자성이 중생을 구하는 것이고 자성번뇌서원단이고 자성법문서원학이고 자성불도서원성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성이 고치는 것이다. 이 자성이 바로 법계고 법신불이고 거울 본바탕이고 진여 자리다.
죽비와 소리.
스님들께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 죽비 소리가 내 손에서 나왔느냐 대나무에서 나왔느냐 아니면 내리치는 내 힘에서 나왔느냐? 내 손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내리치는 힘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대나무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인연 따라 조건 따라 생긴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탁 하는 소리는 있다. 그 소리가 너희들 몸이고 너희들이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장 몸 아파 죽겠고 돈 없어 죽겠고 괴로워 죽겠다. 그렇다면 저 苦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28천과 육도윤회의 바다 – 화엄경과 법화경의 화두 삼매와 해탈
도리는 33의 음사이며 33천으로 의역한다.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Sumeru>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Indra>의 인궁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으며 그 봉우리마다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해 33천이 된다. 이 33이란 숫자는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이미 베다<Veda>에 천공지의 3계에 33신이 있다고 기록돼 있었다. 이런 사상이 불교에 수용되어 하나의 우주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 대승불교의 정토신앙은 이 도리천 사상이 발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아침엔 종을 33번 저녁엔 28번 친다. 저녁에 28번 치는 것을 人定이라 한다. 왜 28번 치냐 하면 낮엔 우리가 제 잘난 맛에 의식으로 막 다니지만 밤이 되면 의식이 끊어지고 꿈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밤엔 하늘나라 돌아다닌다. 밤엔 대부분 자기 몸도 잊어버린다. 그래서 밤엔 우리 28천의 세계에 산다.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 5개가 빠지기 때문에 28번을 치는 것이다. 아침 33번 치는 이유는 인간 바로 위 사대왕천 다음 도리천 이름이 33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 다 모르지만 도리천이 33천이다. 그런 의미도 있고 지옥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 욕계 색계 무색계가 또 33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잘 때 이 영향 다 받는다. 비상비비상처까지 넘어가야 아라한이 된다. 보살 부처 아라한들은 다 이런 세상으로 넘어가 오지 않기 때문에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33천 중 맨 밑에서 5번째 별에 살고 있다. 금강경 대로 세상 살면 어떻게 되나? 왕따 당한다. 잘못하면 미움 받는다. 5 나누기 33하면 0.1515… 나온다. 그러니까 인간 세상 우리들은 부처님 가르침이 15% 정도 밖에 안 된다. 부처님이 우리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 감인토라고 한 이유는 참아야지만 살 수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 꼴 저 꼴 다 봐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수치로 보면 지구 상에 벌어지는 인간사의 85% 정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통제권 밖 일이다. 아무리 관음정진 하고 3천 배 하고 금강경 외우고 수많은 수행을 해도 대상을 다 바꿀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하는 공양보다 사구게나 금강경을 가르쳐주는 공덕이 훨씬 크다 그러시는 것이다.
금강경 일체동관분에 나오는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있다. 그러나 금강경 이치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잘 모르면서 100개 다 쓰면 16분 능정업장분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멸시 받아 전생 업이 다 소멸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멸시 받을 때 대부분 저걸 콱 하면서 다시 과보를 일으킨다. 누구에게 멸시받고 천대받고 당하면 그것이 업장을 소멸하는 무지 빠른 지름길임에도 불구하고 당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당해도 밝히지 말라는 보왕삼매론 말에도 불구하고 억울해 하는 이유는 우린 아직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서 콱 하고 다시 연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능정업장분처럼 엄청나게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든지 아니면 욕도 허망한 것이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하면서 누가 때려도 고맙습니다 해야 한다. 업장 소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 먹으면 되레 기분이 좋아져야 85%의 맛을 조금 느끼는 것이다.
보왕삼매론 –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10가지 지침을 담고 있는 글
그러면 법계는 어떻게 돼 있나? 법계는 수학으로 말하면 Z=A+Bi 복소수의 세계다. A는 진짜로 있는 실수고 Bi는 없는 허수다. 원자폭탄도 생기고 인공위성도 쏘아 올리는 것이 다 이 가우스의 복소수 때문이다. i자승을 하면 +가 돼야 하는데 –가 되는 가공의 숫자 때문이다. 이것이 법계의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 생각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순환소수의 세계에 산다. 우린 지금 바닥에서 5번째 별로 잘난 것 없는 별에 살고 있다. 대우주의 주재자 그런 말 다 사기다. 그런 말에 속으면 안 된다. 5 나누기 33 하면 0.151515…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런 수를 순환소수라 한다. 이 순환소수를 증명할 때 복소수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ss 1777~1855> - 독일의 처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순환소수 – 소수 부분에 몇 가지의 수가 같은 순서로 되풀이 되는 소수
그래서 수학적으로 보면 인간세계는 인간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불교로 많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목사님은 발음도 이상한데 영어로 외국인에게 포교한다. 기독교가 한국 왔다 다시 역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달라이 라마 같은 외국 유명 스님이 한국 오시게 되면 우리나라 사찰 앞으로 한 30년 텅텅 빌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상 알고 보면 우리나라 불교가 훨씬 좋다. 그런 분들 말씀은 좋지만 돌아서면 문제해결은 하나도 안 된다. 기독교가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것처럼 앞으로 불교가 미국에서 역수입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 우리나라 불교부터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서양불교도 좋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 반면 한국은 통불교다. 대승 소승 밀교 다 있다.
공주 갑사 3신불 괘불탱화
1.청정법신 비로자나불 2.원만보신 노사나불 3.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법신의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이고 전생의 수많은 수행 과보로 받은 부처님이 노사나불이다. 보통 노사나불은 설법하는 모습을 비로자나불은 왼손 검지를 오른 손으로 감싸 쥔 손 모양 모습을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진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우리 부름에 응신보신화신으로 나타나시는 부처님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도 법신이 있고 지금 받은 몸은 보신이니 금강경 가르침 배워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돈에 응하던 응신도 바뀌고 거기 화하는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금강경 32분에서 응신과 화신은 진짜가 아니라 그러셨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와 다른 응신과 화신을 만들어 살라는 말씀이다. 예전 생각대로 느낌대로 그냥 살면 금강경 아무리 읽어봐야 하나 도움 안 된다.
37회. 우승택 금강경 응화비진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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