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6회 <30.일합이상분 31.지견불생분>
저만 해도 부처님 법을 너무 늦게 알았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 시작했다. 조선시대 때 불교는 허무적멸지도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1960년대부터 청담스님 성철스님 등 많은 스님들이 불교는 무가 아니라고 설하셨다. 고등학교 때 시조 외우는 것 좋아했다. 옛날 대중 목욕탕 가면 탕 안에서 할아버지들이 청산리~ 하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도 좋아하는 시조가 있다.
저마다 벼슬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김창업>.
멋진 시라고? 멋있긴 뭐가 멋있나? 재수생 때 맨날 이 시조하다 3수하고 또 떨어지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굉장히 적극적인 분이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불법 만나기도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불법 제대로 만나면 확 바뀐다. 앞으로 내가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어야지 나부터 웃어야지 하고 집에 갔는데 마누라가 인상을 박박 쓴다든지 갑자기 왜 이래? 그렇게 대상이 안 바뀌면 나도 바뀌기 어렵다. 우리는 자꾸 대상에 끌려다닌다. 내가 생각하는 마누라 자식 상사 보스 다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법계의 살림살이 법계의 이치 연기의 이치를 봐야 한다.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 보면 다음과 같이 3승의 길을 말한다.
성문<Sravaka> - 부처님이 가르치는 음성을 듣고서 수행하는 사람
연각<Pratyeka-buddha> - 부처의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도를 깨달은 성자
아난존자 가섭존자 같은 성문과 혼자 세상 이치를 깨달은 연각<독성각>과 보살 해서 3승의 길이 있다. 그 다음 법화 화엄에 오면 一佛의 가르침이 나온다. 단계적으로 보면 아함경에서 방등경 반야경 법화경 열반경으로 오는 것이다. 아마 여기 계신 노보살님 아마 저보다 훨씬 더 많이 부처님 법문 듣고 가르침 받았을 것이다. 법문 듣고 법당 밖 나가거나 Tv 끄면 다시 깜깜 절벽 돼서 그렇지 사실 굉장히 많이 들었을 것이다. 저희 집에 그런 노 보살님이 한 분 계시다. 제가 근무하는 금융시장이나 경제계 정치계 미술계 출판계 보면 연기의 이치를 아는 연각들이 굉장히 많다. 기자들 그리고 어떻게 광고해야 사람들이 빨려드는지 잘 아는 광고계 사람들이 사실은 작은 의미의 연각들이다.
저도 부하들 평가하고 어떤 때는 저 자신 상사들로부터 평가 받고 그래서 연봉도 달라지고 승진도 하고 그 중 하위 10%는 집에 가기도 한다. 그런 생활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하셨을 것이다. 그러다 자기 힘으로 안 되면 새벽기도도 가고 3천 배 108배도 하고 사경 독경도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빌린다. 반면 급이 좀 낮은 사람들은 점도 보고 푸닥거리 굿도 한다. 그러면서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신통이다. 6신통 부처님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금강경 공부하시는 도반님들은 신통 찾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신통은 찾으면 찾을수록 지혜와 멀어지기 때문이다.
6신통 –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 누진통
신통은 나를 강화시키는 짓이다. 무아여야 하는데 나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지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처음 보면 늘어난 것 같지만 일정시점이 지나면 고무줄처럼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신통도 하려면 다 단계라는 것을 알고 해야 한다. 성문의 길을 가든 연각의 길을 가든 다라니를 하든 언제부터 언제까지 기일을 정해 놓고 해야 한다. 신통 얻어 봐야 결국 사이비 종교지도자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신통 구하지 말라. 금강경 지견불생분과 관계 있다. 임제스님도 신통에 대해 말씀하셨다. 잘못된 길로 가지 말자. 불교신자라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불교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우리 이웃 종교는 열심히 일해서 국민연금 의료보험 많이 낸다. 결국 베푸는 일이다. 스스로 복 짓는 일이다. 그래서 감정에 끄달려 가지 말고 열심히 쑈하고 연극하면서 적극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원래 의상대사님의 화엄법계도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화엄일승법계도 – 갖가지 꽃으로 장엄한 일승의 세계<총 210자>
3종세간<1.기세간-물질세계 2.중생세간-인간세계 3.지정각세간-지혜의 세계>
화엄성중은 산과 강 등 기세간이라고 말씀드렸다. 여기 보이는 칠판의 흰 바탕이 기세간이다. 물질세계다. 칠판에 쓰인 글자의 까만 색이 우리 인간세계다. 그리고 글자 사이에 줄친 빨간색은 지정각세간이다. 210자로 법계의 돌고 도는 이치를 다 표현했다. 법계도는 부적으로도 쓰인다. 왜냐하면 기세산 중생세간 지정각세간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세계 물질세계 신의 세계가 다 들어가 있으니 안 쓸 수 있나? 틀림없이 효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쓰자는 것이다. 나와 자연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다 합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이치냐 하는 것을 의상대사님께서 이렇게 정리해 놓으신 것이다. 알고 쓰면 모든 것이 약이다. 법계는 우리 사는 세상이다. 모두 망이고 그림자고 물거품이고 번갯불이고 그림자 라지만 그래도 우리가 몸 가지고 생활해야 하니 이치를 알아야 한다.
작년 다윈 탄생 200주년이었다. 불교계도 다윈에 관한 행사를 많이 한다. 다윈은 진화를 주장한 학자로 불교계도 다윈을 많이 공부하고 있다. 다윈이 가르쳐준 것은 고정된 것은 없다 항상 변화한다 라는 것인데 제 생각은 좀 다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는 우리의 몸이다. 동물과 식물을 대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다. 우리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눈에 줌 렌즈를 달고 두 다리로는 시속 60마일로 달리고 오른쪽 팔은 불도저의 힘을 능가하는 초인간이 갑자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인간들 생각은 아주 무변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만드는 기세간은 절대 다윈식이 아니다. 그러니 불자들은 달리 알아야 한다.
패러다임 쉬프트와 대약진
물리학 용어로서 Quantum Jump는 대약진을 의미한다.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낮은 궤도에서 높은 궤도로 점프하면서 에너지 준위가 계단을 오르듯 불연속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양자화된 도약을 Quantum Jump라고 한다.
이 말은 A 장소에 있던 입자가 갑자기 B장소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A와 B 사이의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 이 비약은 아주 이상한 현상이어서 A와 B 2지점 사이에서는 입자를 볼 수 없다. 원자 내의 전자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면 전자는 정상적인 에너지 준위들 사이를 마치 도약하듯이 순간적으로 상태가 전이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개념을 차용해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실적이 호전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약적 도약적으로 간다는 말이다. 일정부분 수평으로 갔다 어느 순간 점프한다. A와 B 사이의 경로는 눈에 보이는 경로가 절대 아니다. A와 B 사이에 어떤 것이 연속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물질세계 인간세계 법계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팍 튄다는 것이다. 패러다임 쉬프트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아마 기독교가 제일 많이 쓰고 있을 것이다. 인간중심 지구중심의 기존 기독교 논리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고 해가 돈다 그랬다가 과학이 발달하니 또 바꾸고 지구는 평평하다 그랬다 지구가 둥근 걸 아니 또 바꾸고 이젠 유전공학이 발달하고 달나라도 막 가고 하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패러다임을 또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 쉬프트를 가장 많이 써야 할 종교는 불교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부처님 뜻을 뒤집고 위반하는 이론이 아니다. 중생이 갑자기 부처로 패러다임 쉬프트가 되는 것이다. 어제까지 한심했던 놈이 갑자기 기가 막힌 놈으로 바뀌는 것이다. 어제까지 게으르던 놈이 새벽 3시에 일어나 문수보살 기도를 하는 식으로 홱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파러다임 쉬프트를 하면 내가 좋아진다 그것은 생각하는 힘이다. 바꾼 뒤 쭉 밀고 나가는 것은 참는 힘이다. 그 다음 자신이 바뀌고 참지만 시절인연이 닿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힘이다. 그래서 옛날 스님들이 행각하는 힘 참는 힘 기다리는 힘 3가지만 있으면 금생에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시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 패러다임 쉬프트가 안 되는 것이다. 신심이 흔들리니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니 과실을 따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 장가 갈 때 말 타면 말 탄 기분으로 그냥 가면 된다 아버님이 그러셨다. 말 타고 색시 보러 갈 때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달려갈 수도 없는 일이다. 말 위에 올라 탔으면 말이 가는 대로 놓아 두고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뜻이다. 기도도 하고 절도 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빨리 바뀌게 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란다. 사실 바뀌고 있는데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전자 밥솥으로 다 밥을 하지만 예전엔 뜸 들일 때까지 기다렸다 먹었다. 좀 맛 있는 밥 먹고 싶으면 기다리는 일도 필요하다. 그런 것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3가지 힘 중 틀림 없이 들어간 힘이다. 금강경 배워 나도 없고 세상도 없는 도리 알지만 확 바뀌어야 하는 것이 패러다임 쉬프트이다. 우리 몸은 다윈의 진화론처럼 서서히 바뀌지만 대상인 물질세계인 기세간은 사람들의 변덕스런 마음처럼 급격히 바뀌기 때문에 우리 생각도 사실은 그처럼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나도 알고 세상도 아니 이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Better? 똑 같은 것을 지난 번보다 잘 한다. : Differently? 똑 같은 것을 지난 번과 다르게 한다. Different method? 똑 같은 것을 지난 번과 다른 방법으로 한다.
Better? 똑같은 것을 지난 번보다 잘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진짜 불교는 그것이 아니다. 진짜 불교는 똑같은 것을 지난 번과 다르게 Differently 하게 하는 것이다. 옛날에 이 방법 썼다 안 됐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 내 생각의 결과이며 미래의 내 모습은 현재 내 생각의 결과로 아뢰야식 종자식에 저장돼 돌고 돌기 때문에 사실 바뀌려면 지금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과거와 다르게. 어떤 방법으로? 지난 번과 다른 방법으로. 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회사에서 맨날 이런 교육만 받는다. 교육 받다 보면 부처님 가르침과 같은 내용이 제법 많다. 성공하는 기업 법인 사람 방법은 다 같고 너무 쉬운데 바보 같이 내가 안 해서 그렇다.
1등은 입장이 다르다. 1등은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닌 사람은 1등처럼만 하면 된다. 1등이 되면 창조를 해야 한다. 그러나 1등이 아니면 빨리 내 스타일 버리고 1등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뀐다고 촐싹대고 마음까지 바뀌느냐? 아니다. 위의가 적정하게 바뀌어야 한다. 하되 함이 없이 하고 몰아 치되 몰아 치지 않는 방법으로 하고 그것은 止觀修行<止는 멈추어 모든 번뇌를 그치는 것이고 觀은 본래 마음을 관찰하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 배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던 방법이 안 되니 신통으로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 많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신 신통을 보자.
신통력?
14-11 땅으로 걸어다니는 신통
그대들이 부처님께서는 5가지 신통력이 있으시니 참으로 불가사의 라고 하는데 여러 천신들과 신선과 아수라와 힘 센 귀신들도 역시 신통이 있다. 그러면 이들도 마땅히 부처님이겠구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아수라들이 제석천신들과 싸우다 지게 되면 8만4천의 권속을 거느리고 연근 뿌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하니 이들도 성인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예를 든 것은 모두가 업의 신통이거나 의지한 신통들이다.
직장을 다니든 요식업을 하든 한 분야에 쭉 빠져들게 되면 세상사 이치가 어느 정도 보인다. 그것이 바로 업으로 인한 업통이다. 요즘은 집중 몰입으로 교육 많이 시킨다. 몰입하면 답이 나온다. 그러니 되려 다른 종교에서 불교 수행법 가져다 많이 쓴다. 다른 종교에서 템플 스테이 하고 간화선 수행법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 업통이 열려버린다. 방하착! 번뇌를 자꾸 가라 앉히고 생각도 내 생각이 아냐 착각일 뿐이야 하고 자꾸 내려 놓다 보면 어떤 생각이 딱 떠오르는데 그것이 바로 업통이다.
의통은 제 힘이 아닌 것이다. 귀신이 씌었거나 아니면 화엄성중님 관세음보살님께서 도와주셨거나 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이다. 살다 생의 리듬이 끊어졌을 때 보통 기도하는데 기도는 연결시켜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것 연결됐다고 부처님 선택받은 것처럼 껍죽대다 들어먹는 사람 많이 봤을 것이다. 그게 의통이다. 자기 힘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지해서 나온 힘이다. 그러나 지속될 수 없다. 임제스님 말씀은 부처님 신통이란 것은 일에서 나오는 업통도 아니고 귀신들 성인들께 빌어서 나오는 의지통도 아니란 말씀이다. 이런 것이 있으면 진짜 힘이 안 생긴다. 진짜 힘은 이런 것이다.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소리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성향미촉법 6가지 모두 텅 비어 있음을 통달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위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비록 5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이것이 바로 땅으로 걸어다니는 신통<地行神通>이니라.
이것이 29분에 나온 여래 若來 若去 若座 若臥 이다. 하되 함이 없는 것이다. 패러다임 쉬프트도 우리가 인식하는 생각의 체계다. 생각의 체계를 진짜로 믿지 않고 빨려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분 나쁘고 속상하고 내일 되면 당장 박살날 것 같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생각이다. 내일 당장 100만원 없으면 집안이 당장 뿔뿔이 흩어질 것 같고 완전히 망할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상황 오늘부터 그랬나? 솔직히 말하면 아마 한 달전 혹은 3년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모두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어느 한 순간 딱 끊고 부처님 가르침 대로 훗날을 도모하며 그림 자체를 다시 그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맨날 푸닥거리면 그림 못 그린다. 부모가 애들 닥달하면 절대 창의력 안 생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닥달하고 스승이 제자 닥달하면 절대 창의력 안 생긴다. 왜냐하면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들은 항상 자기 목숨과 타협하고 행복과 타협하고 안정과 타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부하고 맞추는 척 하게 돼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대상에 끌려가게 돼 있다. 그러니 무슨 창의력이 생기고 무슨 활로를 찾고 무슨 밝은 지혜가 열리겠나? 그러니 자녀들 부하 직원들 너무 혼내지 말라. 부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당장 복장 터지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요? 그러나 실제 복장 안 터진다. 그래도 그런 생각하는 힘과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말이다. 부처님 6신통 가지셨지만 우리도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다 내려놓으면 그때부터는 다 보인다.
매일 누군가 불행한 일로 혹은 급박한 일 당해 죽었다 그런다. 그러나 부처님은 당장 발등에 피가 나고 위가 뒤집히는 고통이 와도 그것은 단지 상황일 뿐 마음은 항상 편안하셨다는 것이다. 의사가 와서 치료하고 약 먹으면 낫는다 해도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셨다. 그러니 위의적정이다. 부처님 아니더라도 당장 큰 절 가보면 노보살님들 중에도 그런 분들 많다. 무릎이 아파 절도 못하고 남편도 먼저 가고 자식도 속 썩이고 그래도 그것은 단지 상황일 뿐 나는 나의 길을 간다 하시는 분들 많이 계신다.
○ 一合理相分 第三十 <하나의 이치> 一合之理實無有相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루로 부수어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에 어떠하뇨? 이 티끌은 많다고 하겠느냐? 아주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일 이 티끌들이 그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티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미진이라는 것은 그런 고정불변의 존재로서의 티끌이 아니라 단지 相으로서의 티끌을 말씀하신 것이기에 이름하여 티끌일 따름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말하는 바 삼천대천세계도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세계라고 이름하신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만일 세계가 고정된 실체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일합상 즉 마음과 물질이 하나인 세계일 것입니다. 여래가 설하시는 바 일합상이라는 것은 물질덩어리만의 일합상이 아니라 마음 덩어리의 일합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이름하여 일합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수보리야! 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범부중생들은 그러한 일합상을 탐내고 집착하는 것이니라.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니고 별 볼 일 없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것이 아니고 사소한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나가 전부야 그 소리다. 하나가 전부고 전부가 하나야 그러면 우리 생각은 또 찰카닥 돌아간다. 나 하나 포기하면 전체를 갖나 보다 그래 가지고 전체에 덜커덩 갖다 붙는다. 우린 그렇게 돼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훈련이 안 돼 그렇다. 불전함에 천 원 넣으면 나중에 천 억 벌어 그러면 천 원 포기는 좋은데 이미 생각은 천 억에 가 매어 있다. 그러니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것이 큰 것이 아니고 큰 것이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더라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 무주상 보시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100원이 100억도 되고 100만 원도 되는데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먹듯 100원짜리 넣고 고장난 자판기에서 100원짜리가 수만 개 쏟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일합지상이다. 이치로는 그렇지만 그런 일은 없느니라 하고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일합이상분을 지구와 은하계 별들의 관계로 생각했었다. 현각스님은 금강경 강의할 때 일합이상분을 천체 물리학의 세계라고 알기 쉽게 말씀해 놓으셨다. 진실은 몸도 마음도 무아지만 현실로 보이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세계라 여기 계신 250명 모든 분의 생각이 나에게 다가와 알게 모르게 서로 주고받고 해서 그 세계가 이렇게 있는 것이다. 한 생각이 전체 생각이고 전체 생각이 한 생각이다 어느 것도 고정불변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 일합이상분이다. 이렇게 결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知見不生分에서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법문을 하신다. 이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도 알고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도 알고 법성게도 알고 세상이 존재하는 이치도 알고 기도도 좀 알기 시작했는데 부처님이 그러는 우리들에게 경고를 내린다.
○ 知見不生分 第三十一 <如此知見 法相不生>
須菩提 若人 言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 解我所說義不 不也 世尊 是人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가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말했다고 하자.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한가?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라는 것은 곧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기 때문입니다.
진여 불성 자리가 있고 그 거울에 비친 내가 있고 갖고 싶은 대상도 있지만 모두 실제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모두 범소유상 개시허망 생각한다고 저절로 법신 진여불성의 자리가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붙어 모든 것을 얻게 되는구나 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놓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나에게 오게 돼 있구나 그러지 말란 말이다. 절 삼매 사경 삼매 독경 삼매에 빠진 분들 말 들어보면 사경을 딱 끝냈는데 자신도 끝난지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 하면서 한 시간 다 됐을 텐데 그러고 삼매에 드신 분들 보면 그게 그 다음 날 새벽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완전히 놓아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갖는구나 하는 생각도 놓아지는 것이다. 지금 안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만 버리면 된다고 부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단지 그 이름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란 말이다. 아상을 버렸다는 생각조차 갖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자는 모든 일체만상의 법을 마땅히 이와 같이 알 것이며 이와 같이 볼 것이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해야 하느니라. 꼭 이것이 맞다고 하는 법상을 내지 말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른 바 법상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가 설하는 바 눈에 보이는 대로의 고정된 법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조작되는 법상이며 그래서 단지 그 이름이 법상이니라.
핵심 포인트는 不生法相 이다. 불교 믿으면 다 잘 돼 부모에게 효도하면 다 잘 돼. 그런 말이 다 법상이다. 그 생각마저도 내려놓으란 말이다. 불교는 참 좋은 종교야 종불사 기와불사 개금불사하면 복 받을 거야 그런 생각 내려놓으란 말이다. 사실 부처님 법 없다. 부처님 법이란 29분에 나온 여래 若來 若去 若座 若臥처럼 함이 없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은 밥 먹고 생활하고 회사 다니고 경쟁하고 돈 벌고 우리 생활 자체가 그냥 법이다. 다만 빨려들지 말라는 말이다. 돈 버는 것 잘 하려면 이렇게 해라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라 몸 건강하려면 이렇게 해라 그런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한다고 모두 다 맞든가? 아침에 냉수 먹으면 장이 긴장 돼서 하루 건강하다고?
부처님 경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법문도 정말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제 강의는 미리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준비는 한다. 준비한 것 항상 다 쓰지 못한다. 왜 그렇게 바뀌냐 하면 여기 계신 분들과 눈이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이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조사님들 법문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백제시대든 미국 일본 어디든 스님들 법문하실 때는 거기 앉아 있는 중생들과 섞여 그 업에 맞는 법문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그 법문 테이프로 듣고 맞는다 안 맞는다 그런다. 맞는 경우도 있고 안 맞는 경우도 있다. 큰스님이 하셨으니 맞다 생각하면 그게 법상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대로 나의 느낌을 스스로 점검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 봐야 한다.
불교는 선과 교로 나눠져 있다. 기독교도 문자주의 성서와 영성주의 성서로 나눠져 있다. 문자주의 성서에 빠지게 되면 부시 대통령처럼 오직 선악으로만 나눠 미워하는 놈 예쁜 놈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8만4천 법문을 설하시고도 우리가 법상을 지을까봐 아무 것도 설한 바 없다 그러신 것이다. 성철스님 그렇게 많이 법문 해 놓으시고도 내 말에 속지 마! 그러셨다. 그 말은 자기가 속인 것이 아니라 바보들이 속기 때문이다. 그때 그 당시 말한 것을 전혀 다른 상황에서 믿어버리니까 본인의 의도와 달리 속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렇게 속임을 당하나? 법상을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不生法相<법상 내지 마!> 그런 것이다.
36회. 우승택 금강경<일합이상분 지견불생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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