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4회 <29.위의적정분(법성게) 30.일합이상분>
오늘은 금강경 위의적정분 일합이상분 할 차례다. 부처님이 있다 없다 개도 불성이 있다 없다 말들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 세존 여래 이런 분들은 어떤 형태로 우주법계에 존재하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면 도대체 여래는 누구인가? 여래와 나는 무슨 관계가 있나? 설명해 주는 분이 위의적정분이다.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은 창조주가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시작을 찾아내려는 시도로 뭔가 하나를 반드시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란 없다 만약 하나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하셨다.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 - 기본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모든 힘의 형태와 상호관계를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
우리 역시 이런가 저런가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한다. 우리를 포함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돼 있는 것인가? 부부생활 수십 년 하고 자식이 40~50살이 되도 정말 알다 가도 모르겠다 그런 말 한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지만 안다는 것도 착각이다. 도대체 우주법계는 어떻게 돼 있을까? 그것이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이다. 원래 의상대사님께서 화엄일승법계도 만들 때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빨간 줄로 다 연결시켜 놓고 흰색 검은색 빨간색을 쓴 의미를 설명하셨다. 그래서 오늘 법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 역시 흰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에 까만 양복을 입고 왔다. 앞으로 법계의 시스템 절대 잊지 말자. 간혹 노란 색도 있지만 부처님 주로 빨간 방석 위에 앉아 계신다. 의상대사님은 빨간 색은 智正覺<바른 지혜>이라고 그 의미를 말씀하셨다. 화엄일승법계도는 法으로 시작해서 佛로 끝난다. 그렇게 쓴 유래도 있고 전설도 있다.
의상대사가 중국 화엄종 제2조인 지엄스님에게서 화엄경을 배우던 어느 날 밤 꿈에 신인이 나타나 스스로 깨달은 바를 저술해서 남에게 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일러 주었고 또 어느 날은 선재동자가 나타나 머리가 총명해지는 약을 10제나 지어 주었으며 또 하루는 청의동자가 나타나 비결을 전해 주었다. 의상대사가 이 사실을 스승에게 고하자 스승은 나는 꿈에 한 번 신인을 만났을 뿐인데 너는 3차례나 만났으니 멀리 신라에서 찾아와 공부한 것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라며 그 동안 얻은 바를 책으로 정리하라고 지시하셨고 그래서 의상대사는 대승장 10권을 편집해서 스승에게 올렸는데 스승은 이를 보고 意理는 아름다우나 문장은 옹색하다고 하여 대사는 다시 번거로운 것은 삭제하고 뜻이 통하도록 한 다음 立義崇玄이란 이름을 지어 올렸다.
이를 받아 본 스승은 대사와 함께 부처님 앞에 나아가 원컨대 이 글이 성인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불에 타지 마소서 라고 서원한 뒤 책을 태웠는데 다른 부분은 모두 불에 탔으나 화엄일승법계도 210자만은 타지 않아 스승은 이 글자를 주워서 의상대사에게 다시 화엄경의 요지를 쓰게 하였고 그리하여 대사가 며칠 동안 새로 게송을 지어 海印圖에 써 넣으니 이것이 바로 화엄일승법계도이다. 이에 스승은 경탄해 가로되 나는 72개의 해인을 그렸는데 그대는 한 개의 해인으로 다 하였노라 그대의 해인은 총체가 되고 나의 해인은 별개가 되노라 라고 하였다.
여기에 우주의 모든 진리가 다 담겨 있고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다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이 법성게를 49재나 천도재 할 때 옷 태우러 가면서 쓴다. 우리나라 절은 귀신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것 다 해 준다. 사실 귀신들은 절박하다. 몸이 없어 절박하니 요체만 가르쳐주는 것이다. 천도 법문 중 정말 좋은 말 많다. 염라대왕에게 잡혀가야 되는데 이제 급하게 빨리 알아야 하니 진수만 알려주는 것이다. 그 마지막 진수가 법성게인데 스님들 신자들 많이 하지만 법성게를 도대체 왜? 하는지 그게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른다.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본래 없고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진여의 세계로다. 無名無相絶一切證知所知非餘境 이름도 붙일수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 것 끊겼으니 깨달음의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로는 알 수 없네.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참된 성품은 참으로 깊고도 오묘하니 자기 성품을 지키거나 집착하지 않고 인연따라 이뤄지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하나 속에 일체 있고 여럿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로다.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한 작은 티끌속에 시방세계 머금었고 온갖 티끌 가운데도 또한 이와 다름없네.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른 듯 하면서도 모두가 현재의 이 마음에 함께 있어서 얽힌 듯 얽히지 않고 각각 뚜렷하게 이뤄졌도다.
진여=거울 본 바탕 진심자리.
그래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약견제상비상 하려고 금강경 불교공부 하는 것이다. 거울의 본 바탕인 법신은 화신에 따라 그렇게 응하는 것이지 거울 자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몸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이 말과 관련이 있다. 우리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법에 끌려 나온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업을 끄잡어 대면 불성이 좋은 업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나쁜 업을 끄잡어 대면 나쁜 업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진여 불성자리다. 모두 불성이 있지만 우리는 그 불성을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경은 그 불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가르쳐주는 경전이다.
하나 속에 일체 있고 작은 티끌 속에 시방세계 머금었다는 말은 저 같이 주식하는 사람에겐 바로 감이 온다. 가령 삼성전자 주식이 천 원 오르든 만 원이 오르든 오를 때는 그 가격에 수많은 정보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희망이 담겨 있는 법이다. 어떤 이는 미국을 생각하며 사고 어떤 이는 한국을 생각하면서 산다. 하나의 무엇이 움직일 때 온 세계 법계가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다. 또한 온 세계가 움직이는 것도 보면 삼천대천세계 우리 모두 각자 갖고 있는 세계가 다 담겨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중생심이 곧 법이란 말은 내 마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그리고 몸은 없지만 이 우주법계에 있는 여러 존재들의 마음 산의 마음 달의 마음 물의 마음이 사실은 다 이 법계를 만든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인데 우리는 바보 같이 자기 판만 보고 고스톱 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맨날 5광 들고 피박 쓰는 것이다.
그러면 공간만 그런가? 아니다. 지금 한 생각 난 것도 지금 난 것이 아니다. 세세생생 전 동물로 혹은 도솔천에 살았던 적도 있고 그때부터 가졌던 생각 그때부터 지어 왔던 모든 업 그런 모든 것이 이어져 지금 이 순간 나타나는 것인데 우린 깜빡 속는 것이다. 다 뿌리가 있는 데 껍데기만 항상 보는 것이다. 그처럼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 전생 현생 내생이 다 다른 듯 하면서도 모두가 지금 이 순간 현재 한 마음에 얽힌 듯 다 있지만 사실은 仍不雜亂隔別成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있다는 말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나에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오늘 같은 불행을 당한다는 것을 이해 못 하겠다는 분도 계시고 반면 내가 지금은 복력이 부족하지만 다음 세계 받을 복력을 미리 당겨 쓰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실제 따로따로 있어 시간과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한 순간 깨달으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법성게 가르침이다.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부처를 이루고자 처음 마음 낼 때의 그 마음이 곧 바로 깨달은 부처의 근본 마음이요 생사와 열반이 언제나 함께 하네.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진리의 본 체계<리>와 나타난 현상계가 한결같이 평등하여 분별할 것이 아니니 수많은 부처님과 보현보살님의 경지로다.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부처님은 고요한 해인 삼매 가운데서 온갖 불가사의한 법을 나투시네.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허공 가득한 진리의 보배가 비처럼 내리고 중생들은 저마다 자기 그룻에 따라 얻는다네.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그러므로 수행자가 이 도리를 얻어 본바탕에 이르려면 헛된 집착을 끓지 않고서는 얻을수 없네.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걸림이 없는 방법으로 여의주를 마음대로 잡아 쥐어 진리의 고향에 돌아갈 자기의 복 그릇만큼 얻는도다. 以多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신묘한 다라니의 다함 없는 보배로서 온 세상을 장엄하여 보배궁전 만드네.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마침네 실다운 진리의 세계인 중도의 자리에 앉았으니 옛부터 부동하여 움직임이 없는 움직임을 이름하여 부처라 하네.
初發心時便正覺 이 말 경전에 많이 나온다. 아 나 이제 절에 다닐래 그래서 부처님 전에 초 하나 꼿고 향 하나 올리면 초발심자라 해서 바로 깨달은 마음이란 말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발심이란 나도 없고 남도 없고 몸도 없고 다 없는 것이구나! 밤에 꾸는 꿈이 밤꿈인 것처럼 낮에 꾸는 꿈이 구나! 밤에 꾸는 꿈은 밤이 재료가 되지만 낮에 꾸는 꿈은 무명이 재료가 돼 꿈을 꾼다는 부처님 말씀이 아! 맞다 라고 감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초발심이다. 그 감 안 들어오면 초발심이 아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거울 밑바탕의 마음 법신의 마음 그것이 내 근본 마음인데 내가 지금 멍청하게 자꾸 내 생각 내 감정 내 느낌을 나라고 생각하는 그런 바보 같은 근본 무명에 빠져 있구나! 아 내가 잠들어 있구나 빨리 잠 깨야지! 바로 그것이 초발심이다. 아무 것이나 초발심이 아니다.
스님들 보면 이판승 사판승 있다. 理란 빨간 색으로 나오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事란 먹고 사는 현상계의 일이다. 보통 사판승은 총무원 행정 보는 스님들이고 이판승은 선방 스님들이다. 선방에 계시던 스님이 나중에 행정도 보고 행정 보던 스님이 나중에 선방으로도 가고 왔다 갔다 한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철스님처럼 이판만 쭉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모든 분들이 그렇게 이판만 하신다면 우리 같은 맨땅 중생들은 언제 그런 스님들이 공부하신 경지를 엿보겠나? 그런데 그런 理와 事가 사실은 다 분별할 것이 없는 무분별로 10분 부처님과 보현보살의 경지란 말이다. 우린 사실 이판 사판 왔다 갔다 잘 안 된다. 물론 스님들 중에도 왔다 갔다 잘 안 되는 스님들 많다. 그래서 맨날 참선하다 망신만 당하고 절집 시끄럽게도 만들고 그러는 것이다. 나갈 때 나가고 들어올 때 들어오는 일 부처님이나 보살의 경지에서나 그렇게 되는 일이지 범부중생의 경계에선 사실 잘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법의 본질로 볼 때는 理事冥然無分別이 맞다는 것이다.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이 말이 바로 금강경 29분 위의적정분의 핵심이다. 저 애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 불교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자꾸 나서? 불교 믿는 사람들은 다 산에 가야 하는 것 아냐? 이런 무식한 말 하는 사람들 참 많다. 모두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진짜로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법계의 진리란 하나도 움직임이 없이 모든 것을 다 하시고 하나도 사심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하나도 설하심 없이 팔만대장경을 설하신단느 진리가 바로 이 말이다.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참 중요한 말이다. 하늘에선 비가 똑같이 내리지만 큰 나무는 많은 비를 받아 크고 조그만 풀은 자기만큼만 받아 크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 법은 금생에 만난 부모 부자 집 혹은 가난한 집 잘 생긴 몸 혹은 못 생긴 몸 건강한 몸 혹은 부실한 몸 받아 이렇게 자꾸 태어나지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중생이 받아들이는 복 그릇이든 무슨 그릇이든 그 그릇을 크게 하는 가르침이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법문이고 방편이다. 금강경 가르침 이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하시는 여러분들과 저는 행자들이다. 그러나 학생도 보면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고 맨날 땡땡이 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그런 차이만 좀 있는 것뿐이지 그래도 금강경 읽고 기도하시는 분들은 다 수행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수행자가 부처님 가르침을 얻어 진실된 바탕에 이르려면 망상 내 생각 내 이익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불교의 가르침에 들어와 인연 인과로 인한 전생의 복덕으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스님들이 말씀하시지만 사실 법화경은 일승의 가르침이다. 그 이전은 삼승의 가르침이다. 성문의 길 연각의 길 보살의 길에선 복도 인도 연도 있지만 일승의 길로 오면 그런 것 다 없다 말한다. 일승법계도니까 이런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능엄경 보면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화엄성주 염불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바로 인연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승 – 모든 중생이 부처와 함께 성불한다는 부처님의 교법.
삼승 – 성문 연각 보살에 대한 3가지 교법
그렇게 인연을 만드는 것이 無緣이다. 과거 나의 행이나 업으로 지어놓지 않은 것들도 부처님의 염불로 인해서 또 인연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 복 그릇만큼 資糧 자기 식량만큼 다 얻어 간다는 말이다. 이 우주법계에 꽉 차 있는 총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어떤 것 이 다라니가 커다란 다 함이 없는 보배로 법계의 모든 보배궁전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못 봐서 못 갖고 인연이 없어 못 갖는 것이지 볼 수 있고 인연을 만들 수 있다면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근본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로 있는 것이라면 못 갖지만 근본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갖는 것이다. 여러분이나 저나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 32분에 나온다.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꿈이다. 꿈 깨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자꾸 하다 보면 꿈에서도 아! 이것 꿈이지 하고 알게 된다.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다 안다. 자기가 꿈꾸고 있는 것 다 본다. 그러면 꿈 속에서도 꿈을 즐긴다. 깰 생각 안 하고 안 꼬집어 봐도 다 안다. 그처럼 밤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낮꿈도 컨트롤 할 수 있다.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그래서 마침내 중도의 자리에 앉아 움직임이 없다. 중도란 말은 절대 중간이란 말이 아니다. 중도란 불이의 세계다. 있다 단지 내가 있다 라고 보는 것이다 없다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없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금강경 시명반야바라밀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실제 하는 것이 아니다. 조건에 의해 잠시 이뤄져 있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하고 거기 끌려가지 않는 것이 중도다. 자기 감정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것이 중도다. 괜히 빨려 들어가 좋고 싫고 즐겁고 괴롭고 그런 것이 없는 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위의적정 중도의 자리이다.
법성게 재가불자들에게는 반야심경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저 같은 월급쟁이가 몸 담고 있는 금융시장도 법계다. 야채장사 사업 선생님 세계도 다 법계다. 그 법계 속에서 어떻게 잘 생활할 것인가? 그것이 부처님의 진짜 가르침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 삶 생활과 전혀 관련이 없다면 도솔천에 계시지 이 사바세계엔 뭐하러 오시겠나? 거기서 다 그냥 염력으로 깨닫게 하면 되지.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그대로 우리 생활 그대로 거기서 불법의 진리를 찾아 쓰라는 뜻이다. 그것이 법계도에 다 나와 있다. 외우려 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 봐라. 그러면 희망이 만들어진다. 희망이 만들어지면 그 희망을 채울 수 있는 업이 발동한다. 물론 다 가짜다. 가짜니까 천억 가진 사람도 백만 원 가진 사람도 큰 기업체 가진 사람도 다 놓고 가는 것이다. 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의 화엄세계는 바로 이런 것이다.
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이 조작한 것이란 말이다. 무아 무상 고는 부처님이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이다. 우린 뭐든 그렇게 갖고 싶어 한다. 자식도 낳으면 얼마나 예뻐 하나? 저 애가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다. 행복해지긴 뭘 그리 행복해지나? 부처님은 처음 낳으면서부터 고인 줄 알고 라훌라라 이름지었다. 그렇게 모든 것의 실상을 딱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다 너희가 너희 생각으로 짓는 것이거든? 실제하는 것이 아니거든? 지금 그것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짓는 것이다. 어차피 다 가짜요 망이니 집을 다시 짓는 것이다. 내 생각 바꾸고 내 행동 바꿔 다 다시 짓는 것이다.
경봉스님 말씀처럼 이 사바세계 감인토 무대 삼아 멋지게 연극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마음을 다시 조작하는데 법계가 이렇게 돼 있으니 법성게 가르침 대로 조작해보라는 것이다. 이게 일체유심조다. 그래서 화엄경 4구게에도 나온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우리가 맨날 부처님께 귀의한다 그러지만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사람이지? 라고 궁금해 한다면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는 것이다. 중국스님들이 맞다 끝내준다고 평가한 여기 의상대사님이 다 정리해 놓으신 법성게를 보라.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 일체유심조 딱 이 한 마디로 끝난다. 갈 길은 멀지만 일단 지도는 찾은 것이다.
○ 威儀寂靜分 第二十九 - 여래의 위의는 적정하다.
須菩提 若有人 言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是人 不解我所說義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오는 듯 가는 듯 앉아 있는 듯 누워 있는 듯 하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서부터 온 것도 아니고 또한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이 죽고 난 다음에 라고 말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다. 부처님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부처님 스스로 무생법인을 얻으셨다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나신 것도 아니고 죽으신 것도 아닌 무여열반에 드신 것이다. 부처님과 우리의 차이는 결국 인식이다. 느끼고 아는 것이 인식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주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 내 집 내 우유 내 숫가락 이렇게 有病에 걸려 태어난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것 다 착각이야 네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 다 꿈이야 그러신 것이다. 여기 빨려 들어가지 말라 그래서 위의가 적정하다 그러는 것인데 부처님은 팔만대장경을 다 설해 놓으시고 나서도 나 한 마디도 설한 바 없어 내가 만약 설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비방하는 놈들이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러 중생 구제해 놓고도 나 중생 구제한 적 없어 그러신다.
무생법인<無生法印> – 태어난 적이 없는 진리의 존재
무여열반<無餘涅槃> – 모든 번뇌를 끊고 분별의 지혜를 떠나 몸까지 없애고 적정에 돌아간 경지
無我 부처님은 이 무아를 완전히 아신 것이다. 사실 세상에 나를 완전히 놓은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무서운 것이다. 부처님은 완전한 무아를 증득하신 분이기 때문에 위풍당당 하고 위의가 적정한 것이다. 그래서 함이 없이 다 하는 것이다. 3.1운동 33인 중 끝까지 마음대로 해! 나 잘못한 것 하나도 없어! 나 반성문 안 써! 그러신 분이 불교계의 만해스님과 용성스님 딱 2분뿐이다. 용성스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이렇게 끝낼 것이 아니라 빨리 조선 민중들을 가르쳐야 하겠다 그런 일념으로 옥중에서 경전을 다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하셨다. 그러니 33인의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민족대표 중 아무도 불교계의 이 두 스님을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이 몸 하나 정도야 했던 대단한 무아다. 민족대표 중엔 거사 후 울고 불고 한 사람도 많았다.
백용성 스님<1864~1940> - 한말 일제 강점기 스님 독립운동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
무아를 확실히 증득하신 분들은 주변에서 아무 소리 못 한다. 무아의 경지에 가셨거나 아니면 뜻 자체가 무아의 경지에 가 있는 스님 한 분이 천 명 만 명 몫의 일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불교 상당히 무서운 종교다. 고타마 붓다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었지만 스스로 많은 일을 하면서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아니라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이기 때문에 하나만 건드리면 쫙 퍼져나가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본성 본 마음자리 법신의 자리를 탁 건드려서 너희들 착각하고 있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부처님은 사심이 없이 모든 일을 다 하신 것이다.
○ 一合理相分 第三十 – 하나의 이치<一合之理 實無有相>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 甚多 世尊 何以故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루로 부수어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에 어떠하뇨? 이 티끌은 많다고 하겠느냐? 아주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일 이 티끌들이 그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티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미진이라는 것은 그러한 고정불변으로서의 티끌이 아니라 단지 상으로서의 티끌을 말씀하신 것이기에 이름하여 티끌일 따름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여기 우승택 있다. 황우석 박사 개 복제처럼 제 몸 세포 하나 떼어낸 것을 두고 나라 그래야 하나 아니라 그래야 하나? 아니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작은 실수가 큰 실수도 만들고 작은 복덕이 큰 복덕도 만든다. 또 한 생각이 온 우주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작다 조각이다 티끌이다 그것은 단지 네 생각이야 相이야 그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수심결 할 때 말씀드렸듯이 여기 계신 분들 일승법으로 보면 모두 다 부처다. 그런데 내가 왜 부처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 하지 말라. 세포가 시간이 지나고 성숙해져야 여러분들로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불성의 싹도 시간이 지나야 바뀐다.
보조국사께서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갈망을 죽순이라 표현하셨다. 죽순이 자라 대나무가 되고 튼튼해져야 그때 불도를 이루는 것이니 서두르지 말라 분명히 너는 부처라고 말씀하셨다. 죽순 가지고 바구니 만들 수 있나? 물 잘 주고 잘 키워야 바구니도 만들고 죽부인도 만들고 부채도 만들고 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짓이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도 부처님의 근본 법문인 일승법문을 가르쳐주지 않고 천도재 불사만 가르치는 스님들을 큰 스님들이 혼내시는 것이다. 너 왜 부처의 싹에 그런 이상한 것만 가르쳐주냐? 너야 말로 정말 불종자를 끊어버리는 나쁜 놈이라 그러시는 것이다.
서산대사 선가구감 보면 살벌하게 나와 있다. 지금도 큰 스님들 법문에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부처다. 다만 어떻게 하면 그 싹을 잘 키워서 일체유심조의 세계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을 다른 것으로 바꿔 다시 한 번 법계에서 연극을 멋지게 하는 일을 내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식에게 그리고 인연을 아직 못 맺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선가귀감 – 조선 명종 19년<1564>에 서산대사가 지은 불교 개론서
백일기도 하고 나면 꼭 회향을 하라. 백일 동안 부처님께 뭐 해달라고 기원하면 좀 미안하지 않나? 백일 동안 기도한 것이 다 성취되길 바라 듯 일체 중생에게도 그런 일이 다 같이 이뤄지도록 시간도 돈도 하루 더 써야 한다. 300일 기도하면 3일 더 회향해야 한다. 그렇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회향하라. 우린 법계의 부분 부분이다. 당장 내가 힘이 드니 자식에게 주는 것도 아깝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고 하는 짓이다. 옛날 스님들 네가 그렇게 하면 하나만 가져 가고 7개 중에 6개는 돌려주니 아낌없이 회향하라고 말씀하셨다. 회향엔 법계의 이치가 담겨 있다. 나와 너는 다 같은 한 몸이다. 한 몸은 둘 아닌 하나란 말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의 바탕은 같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회향하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꼭 회향이란 말 잊지 말라.
34회. 우승택 금강경<법성게 위의적정분 일합이상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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