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경전

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1회 <24.복지무비분>

淸潭 2011. 2. 19. 18:17

 

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1회 <24.복지무비분>

 

오늘 하는 복지무비분과 화무소화분은 금강경을 총정리 할 수 있는 분이다. 무아라지만 도대체 가족도 거느려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고도 살아야 하는데 생활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하나? 그런 내용이 화무소화분에 다 나온다. 돈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금강경을 보든 무슨 경을 보든 자꾸 제 경험으로 해석하다 보니 돈으로 많이 해석하게 된다. 오늘 할 복지무비분도 돈이 주제다. 그 동안 복과 깨달음이 주제가 되었지만 오늘은 돈이 주제가 되는 날이다. 여기 가지가지 직업들 갖고 사시겠지만 자기 직업 속 번민으로 금강경 보는 것이 제일 이해가 빠르다. 그리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즉각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불교 공부엔 자기 직업의 시각으로 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A flower does not talk 꽃은 말하지 않는다. 불교의 진리다. 집을 사든 주식을 사든 결혼을 하든 상대는 나는 어떻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는 것뿐이다. 예전 네덜란드의 튤립파동<17C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 때 튤립 한 송이가 집 10채 값보다 비쌌다. 튤립은 자기가 그렇게 비싸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달라붙어 본 것이다. 꽃은 말하지 않는다는 태극 이전의 무극의 세계를 말한다. 사람의 분별이 생기기 이전의 혼돈 상태다. 장자의 혼돈으로 아무런 분별이 없는 세계다. 꽃은 그냥 꽃일 뿐인데 사람들이 장미꽃이다 예쁘다 집에 꺾어 갔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무극 우주의 가장 근원적이며 형체도 모양도 없는 본체.

 

If the seer is a flower, The seen is a flower too. 보는 사람이 꽃이면 보이는 것도 역시 꽃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 주식을 30만원에 사도돈 벌겠다 생각하고 80만원에 사도 돈 벌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The seen 보이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다 보는 사람이 문제다. 보는 사람이 꽃으로 보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역시 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 볼 것인가? 몸도 마음도 무아라지만 어떻게 하면 오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내 심신이 상처받지 않고 제대로 살 것인가?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인데 우리는 보이는 것이 자기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안 보인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술 담배 마약이 나쁜 것이 아니다. 술 담배 마약을 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술 담배 양귀비가 무슨 죄가 있나? 그처럼 대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일 뿐이지 아무 잘못이 없다. 불교는 인연만 말하는 종교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사실 인연도 없다. 조계종은 간화선을 한다. 실제 간화선 하시는 스님들 보면 인과 다 무시한다. 왜냐하면 인과도 망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처님 공부 중 제일 중요한 말이 업을 만드는 인자인 業因이란 말이다. 돈이든 사회생활이든 어떤 것을 할 때도 업인이다. 저것이 꽃으로 보이는 것은 내가 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 바로 업 인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다 나에게 있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문제는 나부터 시작이 되니 내가 누군지 먼저 알게 되면 세상사 다 알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福智無比分 第二十四

須菩提 若三千大千世界中 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 持用布施 若人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수미산왕만큼의 칠보로 보시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반야바라밀경이나 내지 사구게를 수지독송해 남에게 이를 설명하고 가르쳐준다면 앞의 복덕은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남에게 전해주는 복보다 1/100 1/100천억만 내지는 어떤 산술적인 비유도 능히 미치지 못하니라.   <인과로 인한 복덕과 무위복의 차이! 단순 지혜가 아니다 一切智!>

복지무비분의 지혜는 일반적인 지혜가 아니고 일체지다. 이 일체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자. 부처님 오도송 벌써 3번째 이야기 한다. 이제는 여러분도 아실 때 됐다. 그냥 참 좋다가 아니고 활용할 단계다

 

부처님 오도송

태어남이 무엇인 줄 모르고 다생 동안 윤회에 헤매일 때 집 짓는 자를 찾을 수 없어 계속 태어나야 했고 태어남은 참으로 고통이었어라. 이와 같이 나는 번뇌가 소멸된 一切智의 지혜로서 집 짓는 자를 보았노라. 집 짓는 자여! 너는 참으로 욕망이었노라. 이제 너의 집은 무너져 서까래도 무너지고 기둥과 대들보도 무너져 없어져 너는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노라. 이제 나는 지극한 적멸의 길에 이르러 다시는 갈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가 되었노라.

 

우리 무아다. 이제 우리 무아인 것 다 안다. 사람들 보면 참 무식하다. 우선 나부터 무식하다. 살다 보면 여러 문제 있다. 그래서 답을 찾아다닌다. 그런데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業因이 뭔지도 모르면서 답만 찾아다닌다. 부처님 오도송으로 복지무비분을 설명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무아이지만 나란 놈이 있다 하자. 가족? 하지만 가족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데 자꾸 나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뿔뿔히 다 흩어질 것 다 안다. ? 돈 역시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데 자꾸 나라 생각한다. 직위 명예 심지어 복 다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데 나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못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인 생각? 생각은 나일까? 생각도 역시 내가 아니다. 내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지만 나의 생각 기억 감정은 절대 내가 아니다. ? 육근과 육경 인연과 인연이 부딪쳤을 때 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 가족 돈 명예 직위 복 모두 부처님이 보니 없는 것이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가질려 하면 잘 안 가져지고 사라질 때는 저 혼자 사라지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갖으려 한다. 이런 것들 다 대상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이런 대상에 빠져들고 탐착한다. 반면 남방불교 소승불교는 이런 대상을 싹 다 무시한다. 그러면 대승은? 대상은 아무 죄가 없다 술 담배 양귀비가 무슨 죄가 있나? 있는 그대로 그게 다 불국토라는 것이 대승이다. 그것이 일체지다. 이런 대상을 자꾸 나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나란 놈이 자꾸 집을 짓기 때문이다. 집 짓는 자! 부처님이 보신 놈이 바로 이 놈이다. 제것도 아닌데 자꾸 집을 짓고 착각을 일으켜 스스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집 짓는 자여 너는 참으로 욕망이었노라! 집 짓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욕망이다.

 

! 이 허망한 욕망이란 놈이 생각을 짓는구나! 이 놈 들여다 보는 것이 수행이구나! 이제 알았다. 집을 짓든 출세를 하든 공부를 잘하든지 뭐든 잘하려면 이 놈을 알아야 한다. 욕망 이 놈이 움직이는 業因은 딱 하나 행복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표시하면 이익이다. 몸도 마음도 무아라지만 이 놈들이 자꾸 집을 짓는 것이다. 부처님은 욕망을 알고 욕망에 끌려가지 않는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우리도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되면 다 안다. 그러나 순간순간 깨어 자신을 본다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 놈이 다 행복과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여기 왜 오셨나요?

 

집에 있는 것보다 행복할 것 같아 온 것이다. 앉아 있다 일어나는 것은 앉아 있는 것보다 일어나는 것이 행복할 것 같으니까 일어난 것이다 안 먹는 것보다 먹는 것이 행복할 것 같으니 먹는 것이다. 화장실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이 놈이 행복만을 쫒아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히틀러 같은 사람도 그렇다. 유태인을 다 죽여야 자신이 행복할 것 같으니까 죽인 것이다. 삼천대천세계가 다 이렇다. 아빠는 아빠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있고 엄마는 엄마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있다. 사람마다 다 자기가 보는 세계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 5천만이라면 사람만 해도 5천만 세계가 있는 것이다. 강아지 소까지 합치면 세계가 도대체 얼마나 많겠나? 그게 바로 삼천대천세계다. 그런데 그 삼천대천세계를 만든 놈들이 누구인가? 바로 욕망이다.

 

그래서 내 욕망 성취하려고 남의 욕망 누르고 남을 해치기도 하고 밟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부처님방식은 욕망을 통하지 않고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의 욕망은 행복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옛날 사람들은 이 행복과 이익을 사주팔자 혹은 주역으로 풀었다. 혹은 혈액형이나 사상의학으로 풀어 Category화시켜 통계적으로 가기도 한다. 95% 5% 법칙. 선거철 투표하면 95% 신뢰도 +- 3% 오차 범위 내의 갤럽조사로 결과를 미리 안다. 왜 이렇게 정확할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복과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난 그런 것 없어 거짓말 해봐야 소용 없다. 그래서 못 사는 것이다.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95%의 사람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5%의 사람들로 구성이 돼 있다. 95%는 감인토요 5%는 깨달음의 장소기 때문이다.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니까 맨날 그렇게 사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회사를 창업하면 5년 내 95%가 다 망한다. 그렇게 많은 회사가 창업하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그 사람들 중 95%는 다 망한다. 왜 그럴까? 자기 욕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으로만 보다 보니 사주팔자에 덜커덩 다 걸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점집이 그렇게 잘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무속인 약 60만 정도 된다. 거기다 겉 모습은 종교인이지만 무속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만 명 된다. 100만 명이 먹고 산다는 말은 거의 2천만 명은 몰려다닌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이 제일 궁금한 것이 뭘까? 돈 점 병이다. 누가 돈 벌어 준다 누가 점 잘 본다 누가 병 고쳐준다 그러면 거리에 상관없이 달려간다. 특히 95%들이. 중생들은 돈 점 병에 빨려들어가고 남방불교 소승은 이런 것들을 무시한다. 하지만 대승은 있는 그대로 본느 것이다. 줄여 말하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다. 대상은 자기가 그렇게 보니까 그렇게 보인다. 여기 이분 백의관세음보살 설명할 때 말씀드린 북관음이다. 관세음보살님은 32응신으로 나타나신다. 관세음보살님이 제석천의 모습으로 나투신 모습이다. 소위 말하는 하나님 모습이다. 무식한 사람들은 고려시대 대신의 모자를 쓰고 있다 말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생각한 관세음보살은 제석환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은 절대 이런 모습으로 안 나타나신다

    

32응신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관세음보살이 32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응하신 모습

제석천<Sakra devanam indra> - 불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

 

타 종교에서 간혹 믿~습니까? 믿습니다 한다. 불교도 간혹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보살은 사람들로 하여금 굴종하는 마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같다. 누구 한 사람 낫고 누구 한 사람 못한 것이 보살 세계엔 없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상대방이 기가 죽을 모습으로는 절대 안 나타난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났다고? 마구니다. 관세음보살은 원효나 의상대사처럼 개울가 빨래하는 사람이나 길거리 시비 거는 우리가 무시하기 딱 좋은 사람으로 나투신다. 그래야 중생들이 굴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꿈에 관세음보살이 멋지게 나타나면 내가 이제 뭐가 되나 보다 그런다. 되긴 뭐가 되나? 그냥 자기가 그린 것이다. 의상대사 백화도량발원문에 나온다. 당신 속에 나의 몸이 내 마음 속 당신 몸이 목숨 받쳐 귀의하니 그런 구절 나온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 모른다. 금강경 32應化非眞分에 나오는 화신이다.

       

화신<化身> –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는 일 또는 그 佛身

법신<法身> - 불법의 이치와 일치하는 부처의 몸

 

여러분 다 化身이다. 원래 몸과 마음이 없는데 그 화신에 욕망과 백장식이 같이 있는 것이다. 욕망과 반야가 같이 있는 것이다. 욕망은 업식으로 나타난다. 아직 여러분의 반야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화신이 있다 함은 거울의 배경인 법신이 있기 때문에 화신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종교에선 이것을 찾는데 법신을 찾는 종교는 따로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모든 것은 의타기성으로 조건지어져 일어난다 했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말씀하셨다. 따라서 법신 속에 화신이 있는 것이다. 법신은 부처요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니 우리는 부처와 관세음보살과 같이 있는 것이다. 스님들 기도할 때 들어보면 모처에 사는 화신 누구누구 지명하며 몸도 무아고 마음도 무아지만 그래도 화신이 있으니 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누가 나투어 도와주나? 법신 그 자체로 계신 아직 화신화해 나타나지 않은 관세음보살님이 화신으로 나타나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면 나타난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의 원이 하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눈 깜깜한 중생들 가르쳐줘야 하겠다고 스스로 부처가 안 되고 계속 보살의 몸으로 계신 이분들의 원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에 튜닝만 되면 딱 나타나 화신인 우리 중생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게 기도원리이고 이것이 금강경 25분 化無所化분이다. 교화하되 교화한 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학교 취직 병 돈문제 때문에 기도할 때 보자. 관세음보살이 일체 중생을 돕는 것이 화작이다. 가짜로 만들어 지어준다는 말이다. 화신은 진짜가 아니다. 몸도 마음도 없는 무아의 존재지만 관세음보살님이 화신의 몸으로 나투어 언제 누구누구의 문제점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化無所化다.

 

화작<化作> – 불보살이 가지가지 모습이나 사물을 만들어 냄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이 아니고 단지 중생의 화신이다. 그렇게 해주시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도 자신이 고정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중생의 원에 맞춰 자신의 원을 그냥 행하는 것뿐이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체 중생을 제도해도 제도한 바가 하나도 없고 나로 인해 제도를 받은 중생도 하나 없다는 말이 사실 알고 보면 여러분이나 저나 다 화신이기 때문이다. 왜 화신인가? 보이는 것이 꽃인 이유는 보는 것이 꽃이기 때문이다. 화신 이 아이가 자꾸 바뀐다. 어떨 때는 5천 원짜리 꽃으로 봤다가 어떨 때는 만 원짜리 꽃으로 봤다 어떨 때는 쓰레기로 본다. 꽃은 그냥 꽃인데 보는 Seer가 계속 그렇게 변한다. 그러니 고정불변인가? 화신이지. 이 화신이 비행기 타면 일반석보다는 비즈니스석 비즈니스석보다는 일등석이 좋다 한다. 실체는 그것이 아닌데 그렇게 자기 생각 감정 기억에 끌려다닌다. 그런데 그러지 말고 제대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부 좀 해야 한다. 95% 집단에서 5% 집단으로 가려면 보는 놈인 Seer가 바뀌어야 한다. 보는 놈의 욕망 집 짓는 자의 욕망 행복 이익의 기준이 바뀌어야 비로소 바뀐다.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는 책 한 권 소개한다. 고등학생 필독서다. 대학 수능시험에 간혹 나오기도 한다. 우리 국민학교 때부터 역사시험 얼마나 많이 봤나? 그런데 정치 권력중심의 역사만 배웠다. 그런데 만약 경제관점에서 보면 그 역사도 같은 역사일까? 달라진다. 등장인물 다 달라진다. 문화로 봐도 등장인물 다 달라진다. 역사 책엔 흔적도 없던 수많은 의사 화가 일반 민중의 삶이 다 들어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 권력의 역사만 배워놓고 역사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 대해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하고 건강 기준으로만 본다. 대부분 사람들 관점은 하나다. 그 다음 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성적으로만 본다. 보는 관점이 고정돼 있다. 그러니 애들도 그렇게 된다. 좋은 대학만 가면 평생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관점이 너무 획일화 돼 있다. 실제로 구하는 것은 다 틀리면서. 그 다음 사회에 나와 결혼하면 아무도 말하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된다. 그래서 누구나 돈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본다. 우리 집 아이도 그렇게 묻는다. 아빠는 그 동안 뭐했어요?        

 

지눌스님은 욕망을 돌로 풀을 눌러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욕망을 자기가 눌러놓은 것이다. 남방은 위파사나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 관점이 꼭 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일본은 관점이 돈이다. 처음엔 건강이었다 학교였다 성적이었다 잠깐 외모 예쁜 여자에 한 눈 팔다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잘 생긴 남자도 3개월이다 결혼식장에서 잠깐 필요하지 나머지는 생활이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생존과 타협한다. 몸이 뭔가? 일단 먹어야 한다. 그러니 돈이 엄청난 화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돈의 관점에서 뭘 봤어야지? 명문대 나와 대기업 가고 고시 되면 돈 다 잘 버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가 보니 돈하고 전혀 상관 없다. 그래서 딴 짓 하다 망신도 당하고 교도소도 가고 있는 것 다 들어먹기도 하는 이유가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돈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그런 교육 안 돼 있다. 그런 교육 불교 밖에 없다.    

 

삼천대천세계 다 욕망이 있다. 내 욕망도 있고 다른 욕망도 있다. 예전 로렉스 시계의 경쟁자가 누구였나? 오메가 시티즌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쟁자는 아르마니 구찌 샤넬이다. 왜냐하면 시계가 패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쟁자도 다 바뀐 것이다. 예전 극장의 경쟁자는 Tv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Pc방 인터넷으로 다 바뀌었다. 이렇게 달라졌다. 業因.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가 행복할 때가 있고 야외에서 볼 때가 행복할 때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으로 혼자 보는 것이 행복할 때가 있고 핸드폰으로 볼 때가 행복할 때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다 틀린 것이다.

 

전등사 앞 가면 나무 파는 할머니 교회 다니신다. 절에 다니는 사람도 교회 앞에 가서 장사하나? 아마 절에 다니는 사람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부처님 공부하면 생각이 더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5년 전 들은 말인데 우리나라 목탁공장 하는 분들 전부 크리스찬이란 소리 들었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야 된다. 관점이. 우리 아이 건강해야 할 때는 건강의 관점에서 돈이 필요할 때는 돈의 관점에서 부처님 금강경 관점에서 봐야 하겠다 하면 그 관점에서 보고 이렇게 자기의 화신을 자꾸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소원도 자꾸 틀려져야 화작을 지어주는 관세음보살님도 거기에 맞춰 지어 주는 것인데 자꾸 자기 자신을 고정불변으로 생각하고 대상을 소유하려 하니 안 된다. 왜냐하면 보는 놈이 개떡이면 보이는 놈도 개떡이기 때문이다. 복지무비분의 일체지란 바로 이런 것이다.      

31. 우승택 금강경 복지무비분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