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32회 <25.화무소화분>
오늘은 화무소화분 할 차례다.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다. 누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특히 보살님이. 이 금강경은 소승법을 대표하는 수보리존자나 우리 같은 맨땅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너희들도 보살의 삶을 살아라 가르쳐주시는 대목이다. 그래서 무아 보리심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 보고 너희가 보살의 삶을 살면 무량복덕을 받는데 이를 내가 다 지켜 보겠노라 하는 것이 금강경이다. 보살들은 어떻게 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무소화분에 나와 있다.
○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 몸도 무아고 마음도 무아라면 나는 누구인가? 應化非眞!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須菩提 如來說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수보리야 너희들은 여래가 이런 생각한다 하지 말라.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 이르지 말라. 수보리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어째서 그런가? 실제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란 없으니 만약 중생이 있어 여래가 제도한다 라고 하면 그것은 여래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내가 있다 라고 함은 내가 있다는 말이 아닌데 범부들은 아가 있다 그런다. 수보리야 범부란 것도 곧 범부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니 이름이 단지 범부이니라.
관세음보살님이 나를 구제해준다 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나를 구제 안 해준다는 말이 아니고 실질적인 존재 우리가 생각하는 다른 나를 말한다.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 라고 하면 실체가 있는 내가 실체가 있는 너를 제도하겠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소리라 그런 말이다. 전에 경봉스님 박첨지 놀이 설명할 때 但盡凡情이란 말했다. 단지 범부의 정만 내려놓으란 말이다. 내가 있다는 범부 같은 생각만 내려 놓으면 된다. 거울로 말하면 이런 법신의 몸에 조그만 화신이 있는 것이다.
但盡凡情 –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 뿐이다.
수월관음도 실제 이런 관세음보살님 안 계신다. 관세음보살님 저 좀 구해주세요 하고 관세음보살님 발 밑에 있는 남순동자 선재동자가 우리 화신이다. 보는 사람이 꽃이고 그래서 보이는 것도 꽃이다. 실제 우리는 몸도 무아고 마음도 무아인 존재이지만 화신은 욕망과 정을 갖고 있는 존재다. 만약 화신이 실제 있다면 법신은 화신을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화무소화분은 내가 너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생각과 기억과 감정을 내가 정화시켜주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자꾸 그리스 로마 신화 보고 타 종교 관념이 자꾸 머리 속에 들어와 저 하늘 높은 곳 올림프스 동산에서 하나님 관세음보살님 부처님 이런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이구 저 애가 나한테 기도하네 그러니 저 애 좀 구해줘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남순동자 – 관세음보살의 왼쪽에 있는 補處尊
다른 종교는 타력 신앙이다. 특히 이웃 종교인 기독교는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선택받아야 하는 종교다. 친히 누가 선택해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은 실제 몸이 계신 분이 아니다. 법신으로 존재하시다 우리 같은 중생들 부름에 응해 몸으로 화해 나타나살 뿐이다. 우리는 법신도 있고 화신도 있는 존재인데 부처님 말씀은 화신은 조건에 따라 있는 듯 나타나고 네가 갖고 있는 고통도 있는 듯 하지만 지나가는 것이고 네가 갖고 있는 복도 있는 듯 하지만 지나가는 것이지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란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 실체의 모습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올라서 자기 문제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화무소화의 가르침은 수행에도 도움되고 고통과 난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복 그릇이 있다는 말 이젠 이해되나? 그런데 고통의 그릇도 정해져 있다. 복 그릇도 정해져 있고 고통의 그릇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개 자기 복 그릇은 아주 작다고 생각하고 고통의 그릇은 무지 깊고 넓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통도 지나간다.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고통만 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 고통을 실체화시켜 결코 고통에서 못 벗어난다 생각하고 감당할 수 없으니 뛰어내리고 목 매달고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생이나 금생이나 다 똑같기 때문에 그런다고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처님은 제대로 보고 우리에게 스스로 답을 찾으라 그러시는 것이다. 그래서 답을 찾는다고 기도 삼매도 하고 경전 독송도 하는 것이다.
특히 신중님들이 우리 많이 도와주신다. 스님들과 우리 많이 다르다. 5대 적멸보궁<통도사 오대산 봉정암법흥사 봉암사> 경우 석가모니불 많이 찾는다. 보통 절 가면 석가모니불 잘 안 찾는다. 왠지 그분은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아 각 전각은 대부분 관세음보살 정근 한다. 관세음보살 정근하시는 분들만 해도 조금 여유가 있으신 분들이다. 정말 다급하신 분들은 산왕대신이나 화엄성중님을 찾는다. 법은 멀지만 이분들은 아주 우리 가까이 계신다. 화엄성중 기도발이 괜찮다. 부처님이 법계는 그렇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구하는 것이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구하는 것이 없는 분에게 어떻게 우리가 아부하고 뇌물을 주나? 그래서 제일 가까이 계신 분들인 화엄성중님들에게 하는 것이다. 이분들 아직 반야의 도리 잘 모르고 아직 구하는 것이 있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화엄성중님들이 제일 빨리 온다.
산왕대신<山王大神> – 절이 있는 산을 지키는 神將
화엄성중<華嚴聖衆> – 화엄경을 호지하고 불법을 받들고 옹호하는 神衆
운명이란 것이 있다. 운명은 常數로 이뤄져 있다. 주역을 보면 다 수학이다. 그런데 인생살이는 상수가 아니고 상수+변수다. 주식시장 보면 변수가 있다. 주식시장 외환시장 금리시장 선물시장 다 슈퍼컴 자료로 한다. 그런데 99번 맞다 1번 틀리면 단 한 번으로 100년 된 금융기관이 날아 가고 전세계 금융위기가 오는 이유가 다 상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은 절대 정수나 분수나 소수의 세계가 아니고 복소수의 세계다. Y=A+Bi 인데 i가 자승을 하면 -1이 된다. 이것이 허수다.
복소수<Complex number> - 실수와 허수의 합으로 이뤄지는 수
허수<Imaginary number> - 제곱하여 음수가 되는 수
부처님 무지 공부하셨지만 그중 제일 잘 하신 것이 수학 논리학 활쏘기였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이 아니다. 그때의 수학은 입시위주 수학이었다. 그런 수학 못하는 사람이 진짜 수학 더 잘 하는 사람이다. 신발장에서 자기 신발 빨리 찾는 사람 백화점 주차장에서 자기 차 위치 제일 빨리 찾는 사람 음식재료 몇가지 가지고도 제일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 그런 공간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수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계산적으로 수학 잘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별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컴퓨터나 계산기로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 중에 더 많다. 넌 어떻게 생각 주머니가 그것 밖에 안 되냐? 너 소견 머리가 그것 밖에 안 되냐? 옛날 어른들이 그러셨다. 그 말이 바로 상수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말이다.
상수의 세계를 벗어난 변수의 세계. 이 변수가 바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이것이 하늘을 감동시키며 함이 없이 하는 것이며 기도다. 대개 기도 욕심으로 하지만 법신으로 계시는 관세음보살님께 나도 법신불이지만 금생에 받은 이 화신으로 일단 이 난관은 돌파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도 다 변수의 세계다. 어느 종교나 그렇지만 이 기도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5%의 세계다. 그러면 실제 일은 안 하고 5%만 하면 되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법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무라 화신이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님이 중생을 도울 때 이렇게 변수로 돕고 우리도 남을 도울 때 이렇게 변수로 도와야 된다. 상수로는 도울 수 없다.
예로 누가 힘들다 어렵다 해서 돈으로 줘봐야 얼마나 도와주겠나?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그런다. 따라서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관세음보살님 가피 입은 사람들 만나 보면 아차 돈 받을 데 있지 그냥 한 생각 돌이켜 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여러분도 금강경 보살도를 배우는 분들이시기 때문에 복 지을 때 똑같이 화무소화분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복 짓거나 좋은 일 할 때 절대 칭찬받지 말라. 칭찬 받으면 좋은 일 한 것 바로 정산돼 버리고 안 돌아온다. 나쁜 일도 마찬가지다. 보왕삼매론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밝히려 들지 말라 몸에 병 없기 바라지 말라 그런다.
보왕삼매론 –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10가지 지침을 담고 있는 글
억울한 일 당했어도 밝히면 안 된다. 다 업장소멸되는 것이다. 한 고비만 넘어가면 아니 내가 무슨 복을 지어 이런 일이 생기지 하고 넘어가는데 거기서 밝히면 인과를 만들어버린다. 특히 기도하다 억울한 일 많이 당한다. 그런 일 많이 당하는 이유가 2가지다. 화엄성중님이나 재불보살님들이 기도하니 도와주긴 도와줘야 하겠는데 신심을 테스트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업 발동 때문이다. 아니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가다 기도성취 되면 업을 받지 못하고 빚 받을 것 못 받게 된다. 그러니까 억울한 일을 탁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인과가 다 끊어지니 못 받는다. 그러니까 한쪽에선 재불보살이 테스트를 하고 한쪽에선 자기의 업인이 빚 받으려고 계속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시면 억울한 일 많이 생긴다 그런다. 그렇지만 별 꼴이야 하면서 다 지나가야 한다.
전에 말한 법화경 주머니 속 보물 이야기나 청담스님께서 말씀하신 통장 비밀번호 이야기 하겠다. 통장 비밀번호 찾지 못하는 이유 있다. 정주영 같은 분들 눈엔 돈이 다 보이지만 우리 눈엔 안 보인다. 왜 안 보이나? 우리는 집 짓는 자=욕망인데 이 욕망의 근원인 근본 무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집 짓는자=욕망=무명. 근본 무명이 뭔가? 몸도 없는데 몸이 있다 생각하고 마음도 없는데 마음이 있다 생각하는 것이 무명이다. 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고 돈은 돈이고 나는 나고 생각은 생각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내가족 내돈 내생각 내것이라는 有病에 걸린 것이 무명이다. 있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근거없이 욕망이란 것이 생기고 그 욕망의 기준이 이익과 행복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익도 기준이 다 다르다. 자기 욕망과 무명에서 생각대로 나온 이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보니 계속 원하는 것을 못 얻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고집멸도 중 도를 이루는 8정도를 말씀하셨다. 8정도 중 처음이 정견이다. 바로 보라는 것이다. 금강경 강의하면서 6근 6경 12처 18계 4성제 3법인 3학 다 말씀드렸지만 아직 8정도만 말씀 안 드렸다. 8정도 처음이 정견이다. 제대로 보라는 말이다. 공도리다. 실제하지 않는다. 저 꽃은 내가 꽃으로 보기 때문에 꽃일 뿐이다. 이 공부 한참 하다 보면 신문에 정부의 어떤 정책 발표하면 아! 아직 깨닫지 못한 95%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겠구나! 이런 제품을 만들고 내가 이렇게 서비스를 하면 근본무명에 찌들어 살고 있는 그런 중생들이 덤벼 들겠구나! 바로 그런 일들이 전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왜 통장 비밀번호를 찾지 못했을까? – 8정도. 답: 눈이 어두워 바로 보지 못한다<정견이 없다>
1.정견: 바로 보지 못한다 - 욕망으로 본다.
2.정사유: 바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 업인이지 인연이 아니다.
3.정어: 저것이 내게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잡지 못한다.
4.정업: 문제도 모르면서 답만 찾아다녔다 - 생각도 내가 아니다.
5.정명: 해야 할 일은 못 찾고 엉뚱한 일만 한다.
6.정정진: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별하라.
7.정념: 항상 깨어 있어라 - 욕망! 그 집 짓는 자를 보라.
8.정정: 함이 없이 하라 -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라.
그래서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욕망을 먼저 보고 아! 무아인데 집 짓는 자가 또 집 짓고 있구나 하고 알아야 한다. 이 욕망이 움직이는 기준이 어떤 이익인데 과거에 이익을 산출한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이것 따라가면 또 망하는 구나 그래서 자신을 너무 믿지 말고 물어보기도 하고 선지식도 찾아가고 확인하는 것이다.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가 여자 5명만 모이면 1명의 남자 천재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양반 처음 여자 5명이 모여야 돈 빌려줬다. 자기 생각 내려놓고 다른 4명의 생각을 들으라는 것이다. 집 짓는 자가 욕망을 일으켜 근거없이 자기 이익만 가지고 들이 댔는데 이젠 그런 생각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 집 지을 때 쓰는 석가래 대들보 기왓장을 가지고 새로 집을 지으라는 것이다.
정견은 욕망으로 보던 것을 제대로 보란 말이다. 욕망의 자기 이익과 행복의 기준으로만 보니 바로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전부 대상만 탓한다. 개떡은 개떡이 아니다. 내가 개떡으로 봤기 때문에 개떡이다. 반면 꽃도 꽃이 아니다. 내가 꽃으로 봤기 때문에 꽃인 것이다. 내가 꽃이니까 상대가 꽃인 것이다. 금강경 보면 있다 없다 인연이다 아니다 막 뒤집어 엎는다. 그러다 인연도 인과도 없다 그런다. 왜 그렇게 말할까? 고정불변된 뭐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없다 라고 말하고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있다 라고 말해서 우리의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없고 남도 없는 단계까지 끌고 가다보면 아! 정말 없네 단지 인연이 됐을 때 나타나고 인연이 없을 때 흩어지네 그렇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부처님은 없다를 가르쳐주신 분도 아니고 있다를 가르쳐주신 분도 아니다.
가령 누가 내돈 천만 원 떼 먹어 자식 등록금을 못 냈다 하자. 그 사람 때문에 떼인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고 내가 저 사람에 의해 괴롭힘을 만든 것이란 말이다. 참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 내 책임이란 말이 아니라 업인 자체가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시간 좀 걸리더라도 돈 받을 수 있고 아니면 내가 전생 빚 지어 이제 갚은 것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괴로움에 시달리지만 저주하고 미워하지 말란 말이다. 요즘 어른들이 아이들 상대로 나쁜 짓 많이 한다. 그것은 대상을 미워하는 짓이다. 그 대상은 단지 인연이 그렇게 돼 그런 것이다. 하지만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미워하면 안 된다. 미워하는 인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 인을 놓아버리면 그 사람 미워할 필요도 없고 쓸데 없는 번뇌도 많이 줄어든다. 어려운 법문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나의 인이다 하는 것만 알아 두자. 부처님은 그것이 바른 생각이라고 8정도에서 말씀하셨다.
세 번째 정사유 정어도 마찬가지다. 저의 어머니도 너 방송 나가면 고운 말 좀 써라 말씀하신다. 마음이 고우면 말도 곱다. 생각이 올바르면 말도 올바르다. 그런데 저만 해도 말이 좀 거칠어 어머니로부터 많이 혼난다. 아직 제 마음에 미움과 억울함 이런 것이 많이 있단 말이다. 정어가 되면 그 다음은 정업이다. 業 Karma 이야기 많이 한다. 직업 아닌가? 일 직업할 때 쓴다. 그래서 정견이 되고 정사유가 되고 정어가 되고 그러면 정업이 떨어지는데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돈을 벌든 무슨 일을 하든 생활 자체가 바르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법에 바른 길이란 없다. 잘못된 것을 계속 고쳐가는 것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자기 욕망을 들여다 보고 집 짓는 자가 무슨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의 근간에 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계속 들여다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일 초의 오차도 없이 딱 만나게 되는 것이 은산철벽이라. 욕망이나 집 짓는 자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정말 눈으로 본다 한다. 우리는 맨날 어렴풋이 지나고 나서 봐 그렇지 생각 일어날 때 딱 보게 되면 그것이 성불이요 해탈이다.
은산철벽 – 말과 생각이 완벽하게 끊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절박함
그래서 하는 일들이 다 올바르고 생업 직업 뭐를 하든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만 되도 먹고 사는데 아무 걱정이 없다. 지금 먹고 사는 걱정하는 저나 여러분들이나 정견도 안 되고 아무 것도 안 돼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정업이 되면 정명이다. 정명은 공자님이 말씀하신 지천명이다. 금생에 이 몸 받아 해야 될 일을 나이 50이 되어 아는 것이다. 이생에 다 할 수 있나? 이번 생 이 몸 받아 해야 될 일을 내가 아는 것이다. 그 다음 그렇게 하면서 밀고 나가는 것이 정정진이다. 그런데 자꾸 사람의 욕망과 이익 행복의 가치관이 바뀌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별해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챙기는 정진이 필요하다.
그 다음 정념은 해석들이 조금씩 다르다. 정념=염원 간절한 바람 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정진할 때 간절히 바라는 것도 말 되는 것 같다.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하시든 지장보살님 기도를 하시든 원하는 것을 집중해서 하라는 소리도 있고 항상 깨어 있으라는 소리도 있다. 나의 욕망을 자꾸 들여다 보는 것이다. 자기 욕망 들여다보면 남의 욕망도 다 들여다 보인다. 저 사람이 무슨 소리 할려고 왔는지 다 보여 안다. 나는 아직 그런 수준은 안 된다. 정념 자꾸 하다 보면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선지식과 선지식이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배워야 할 사람이 있고 안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
원래 보살은 중생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중생은 누굴 미워해도 근거없이 미워하고 누굴 사랑해도 근거없이 사랑하고 뭘 바래도 근거없이 바라기 때문이다. 가령 저 친구는 어느 대학 몇 등으로 딱 붙을지 본인은 잘 아는데 그 엄마는 난리 칠 수 있다. 그처럼 보살은 중생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도 마음 공부 많이 하면 사람들에게 속는 것 많이 줄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생각인 집 짓는 자는 그 사람의 욕망에서 나왔고 그 욕망은 자기 이익과 자기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 사람 착해 보여. 착해 보이긴 뭐가 착해 보이나? 제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저 사람에게 돈 맡기면 10배는 튀길 것 같아. 제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자기 욕망을 읽지 못하니 남의 욕망은 전혀 못 읽고 알 길이 없다. 그리고 맨날 저 친구 때문에 망했다 그런다.
공부하면 선생님도 찾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악행도 막을 수 있다. 사기꾼에게 안 말려드는 것이 사기꾼의 악행을 제지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다음 正定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대상에 빨려들어 탐착하고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소승법을 공부하는 수보리 존자는 그런 것을 다 떠난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출가해서 일상무상분 보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나올 때 아란나행을 한다 나온다. 아무 것도 안 한다. 그러다 부처님께 엄청 깨진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가만히 너 혼자 있어서 뭐 할 건데? 보살은 중생처럼 빠져들지도 않고 소승법을 공부하는 사람처럼 세상을 미워하지도 않고 그냥 할 뿐 자기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도와주되 도와줌이 없고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고 중생을 제도해도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을 하나도 안 하는 것이다.
아란나행<아란야행> - 시끄러움이 없이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수행 정진하는 것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삶을 이제는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가고 싶다면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화신이다 그리고 백장식 백의관세음보살처럼 그 법신이 있기 때문에 나란 화신이 나온 것이다 이 화신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바른 안목과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정견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나는 착각 속 나이다. 그래서 불교 공부하면 사주팔자 싹 다 없어진다. 사주팔자도 욕망이다. 부처님은 욕망과 생각이 다 내가 아니란 말씀이시다. 이것이 대승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업의 그물을 새로 짜면 생각도 행동도 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자기를 자꾸 들여다 보라는 것이다.
자기를 자꾸 들여다 보면 돈을 구하는 사람은 돈을 구할 것이고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사랑을 구할 것이고 명예를 구하는 사람은 명예를 구할 것이다. 만약 박애주의자가 되고 싶다면 박애주의자가 되는 길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꽃이면 보이는 것도 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기 때문에 내 통장에 마이너스가 너무 많아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겠다 생각하면 사랑도 미움도 다 내려놓고 돈의 관점에서 보라. 그 다음 돈 벌고 난 뒤 내가 너무 인색하게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보시와 보살의 마음에서 다시 보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꾸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바뀌는 것 아무나 되는 것 아니다. 꼭 보면 차에다 염주 걸고 다니고 초파일 꼭 절에 가 등 달고 성지순례 꼭 가고 그런 사람들은 안 된다. 그런 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아주 훌륭한 불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안 바뀐다는 뜻이다.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두둘겨 패든지 찬 물을 뿌리든 자는 놈은 깨울 수 있다. 그러나 아냐 나 조금 있다 일어날래 그렇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자신의 현재 신행활동이 부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그렇게 잠자는 척 하면 금강경 백 날 읽어야 꽝이다. 초발심시변정각이란 말은 내가 아주 무식한 잠에 오랫동안 취해 있었구나 빨리 깨어나 보살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생각하고 잠에서 깨어나는 생각이다. 잠 깨는 것은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의 간절한 염원이기 때문에 깨는 방법이 우리에게 탁 오는 것이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발심할 때가 바른 깨달음이다.
성지순례 가지 말라는 말 아니다. 초파일 등도 달라. 그러나 이런 것은 다 부처님 밑반찬 같은 말씀이고 주식은 잠든 자여 깨어나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 성형수술하면 그 사람의 상수인 운명이 바뀐다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런 기도 저런 기도해서 신통력이 생기고 스님들 법문 중에도 환자도 막 고치고 하는데 그런 신통력 원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나도 처음 내 눈이 환히 밝아져 내 손님들 다 부자 만들어 주길 원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솔직히 말해 다 그런 신통력 바랄 것이다. 신통력 기적 모두 얼마나 원하나? 그러나 신통력 있었던 옛날 스님들 잘 보면 말년에 무지 고생들 많이 하신다. 무속인들도 그렇다. 신통력 기적은 사탕 같은 거야 하고 탁 버려야지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 부처님은 무아를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我를 더욱 강화시키며 산다.
그러니 자기가 성형수술해 코 세우고 쌍꺼풀 만들면 그때는 좋지만 인생 길게 총량으로 보면 이때 받았던 것 막판에 다 토해내야 한다. 재물 건강 자식 별의 별 일로 도로 다 나간다. 성형수술 하지 말라는 말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해라. 그러나 방심하진 말란 말이다. 그럴수록 좋은 일 더 많이 해야 한다. 신통력 생기면 복 더 많이 지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 신통력 생기면 돈만 더 많이 벌려고 한다.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과 완전히 반대로 가다 막판에 싹 망가진다. 우리 원하는 것 어떻게 찾아 가야 할지 모르고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부디 잠에서 깨어 지름길로 곧 바로 가기 바란다.
32회. 우승택 금강경 화무소화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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