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원담선사의 일편전지

淸潭 2008. 3. 20. 09:11

[삶과추억] 원담선사의 일편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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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를 취재하러 갔다. 마침 이판(理判)에서 사판(事判)으로 나와 수덕사 주지·종회의원을 겸임하던 원담(圓潭·사진) 스님이 발언을 하고 있었다. 단구(短軀)였다. 작은 체구가 마이크에 가리니까 더욱 작아 보였다.

발언 내용를 막 취재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악’ 하는 할(喝) 소리가 강당을 찢어놓을 듯 울려 퍼졌다. 종회의원 원담은 ‘할’로서 발언을 마치고 유유히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신기했다. ‘할’을 직접 목도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초저녁 숲 속에서 곤하게 잠자던 새가 환하게 떠오르는 달빛에 깜짝 놀라 잠을 깨듯 놀랐다고나 할까. 스님의 그때 그 ‘할’은 나의 선(禪)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 일으킨 단초였다.

내심 화상과의 인연을 깊이 간직하면서 지내왔다. 그때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어 수덕사에 들러 방장실로 인사를 갔더니 즉석에서 ‘불원(佛源)’이라는 법명을 지어주며 “잘 해보라”고 했다. 어찌하다가 화상의 유발 상좌가 된 셈이었다.

화상은 ‘곡차’를 좋아했다. 속인들과는 다른 해탈 경계의 ‘취시선(醉是禪)’이자 고급 무의식의 원시적 존재로 진입하는 입정(入定) 차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초 새배를 갈 때마다 괜찮은 술을 한 병씩 가지고 갔다.

5년 전 일이다. 화상께서 거동이 불편해 선필(禪筆)을 놓은 지 오래였다. 시골에 정자를 하나 짓고 싶어서 급한 마음에 나름으로 정호(亭號)를 지어 가서 써달라고 청을 올렸다. 인사를 드리니 “옷 맵시가 깔끔하구나” 하시고는 시자를 시켜 지필묵을 대령시켰다. ‘취옹정(醉翁亭)’이라는 정호를 보시더니 “야, 이거 참 좋다. 최고다”라며 시자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치솟는 필력으로 단숨에 일필휘지해주었다.

화상의 독대(獨對) 법문을 여러 번 들었다. 한 번은 “들고 계시는 화두가 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드시는 화두가 너무 많으신 모양이시군” 했더니 “이 놈아! 술 생각, 밥 생각이 다 화두인데 무슨 헛소리 해…”라고 했다. 결국 들고 있는 화두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란 걸 알아내긴 했지만 아주 혼났다.

화상은 언제나 담박(淡泊)하고 꾸밈이 없었다. 가슴에 와 안기는 유원(幽遠)하고 청려(淸麗)한 뒷맛을 남겨주었다. 살활자재(殺活自在)한 가풍이었고 풍격(風格)이었다. 지난해 세배를 갔더니 “어디서 자주 보던 놈 같은데…”라며 반가움을 내보였다.

이런 인연들이 화상의 천화(遷化) 후에도 내 가슴속에서 살아 뛰놀며 덕숭산 산거(山居)의 낙도가를 계속 불러주리라 믿는다. 그 때면 나는 시간표가 없는 저 청산의 다리(靑山之足)라는 열차를 타고 새삼 만행을 떠나리라.


이은윤 금강불교신문 사장 전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덕숭총림 수덕사의 방장 원담스님은 18일 입적했으며 영결식은 22일 수덕사에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