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스님의 법향이 그립습니다”
큰스님. 덕숭의 산천초목은 노래하고, 수류는 눈물을 흘립니다. 시회대중 또한 평생을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덕숭총림의 가풍을 이어온 무애의 선지식이셨던 큰스님의 덕화를 기리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스님. 삭발염의하며 출가를 결심했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수덕사에 왔을 때 헤진 다 헤진 누비옷을 입고 인삼밭을 손수 가꾸느라 퉁퉁 부어 두꺼비 같던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란 놈이 누구냐. 그것이 세상에 제일인거라”하며 큰 주먹을 저에게 내미셨습니다. 그때 주변의 대중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제 귓가에 생생합니다. “원담수좌는 정혜사까지 지게를 지는 운력을 너무 많이 해서 키가 작아진 거야”라는 것이었습니다. 큰스님 전생의 복연이었을까요. 그 같은 큰스님의 모습을 보고 저는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수행자의 본분사를 지켜 오신 큰스님. 저에게 스님의 모습은 출가생활의 지남이 되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소임을 맡고 계실 때 저녁공양이 끝나면 밤새 대중들과 용맹정진 하셨지요. 뿐만 아닙니다. 그 오랜 동안 수덕사의 주지소임을 보신 후에도 숟가락 하나까지 대중들에게 되돌리셨습니다. 큰스님 스님께서는 일구월심 경허.만공스님이 일궈놓은 덕숭총림 가풍을 실참 하셨습니다.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며 저는 때때로 무서운 전율과 용맹정진의 신심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스님 벌써 스님의 법향이 그리워집니다. 선원의 결제와 해제 때 염화실에 들러 문안을 드리면 그렇게 따스한 눈길로 “바로 이놈을 찾어 설정수좌”하시던 모습을 이 선합니다. 오늘도 그립고 내일도 그리울 큰스님.‘만법귀일 일귀하처’의 낙처는 도대체 어디에 두고 가셨습니까. 속히 사바세계로 왕림하셔서 무명에 빠진 저희들에게 불조혜명의 바른 가르침을 주십시오.
불기 2552년 3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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