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핫이슈 | |
발언 내용를 막 취재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악’ 하는 할(喝) 소리가 강당을 찢어놓을 듯 울려 퍼졌다. 종회의원 원담은 ‘할’로서 발언을 마치고 유유히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신기했다. ‘할’을 직접 목도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초저녁 숲 속에서 곤하게 잠자던 새가 환하게 떠오르는 달빛에 깜짝 놀라 잠을 깨듯 놀랐다고나 할까. 스님의 그때 그 ‘할’은 나의 선(禪)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 일으킨 단초였다.
내심 화상과의 인연을 깊이 간직하면서 지내왔다. 그때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어 수덕사에 들러 방장실로 인사를 갔더니 즉석에서 ‘불원(佛源)’이라는 법명을 지어주며 “잘 해보라”고 했다. 어찌하다가 화상의 유발 상좌가 된 셈이었다.
화상은 ‘곡차’를 좋아했다. 속인들과는 다른 해탈 경계의 ‘취시선(醉是禪)’이자 고급 무의식의 원시적 존재로 진입하는 입정(入定) 차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초 새배를 갈 때마다 괜찮은 술을 한 병씩 가지고 갔다.
5년 전 일이다. 화상께서 거동이 불편해 선필(禪筆)을 놓은 지 오래였다. 시골에 정자를 하나 짓고 싶어서 급한 마음에 나름으로 정호(亭號)를 지어 가서 써달라고 청을 올렸다. 인사를 드리니 “옷 맵시가 깔끔하구나” 하시고는 시자를 시켜 지필묵을 대령시켰다. ‘취옹정(醉翁亭)’이라는 정호를 보시더니 “야, 이거 참 좋다. 최고다”라며 시자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치솟는 필력으로 단숨에 일필휘지해주었다.
화상의 독대(獨對) 법문을 여러 번 들었다. 한 번은 “들고 계시는 화두가 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드시는 화두가 너무 많으신 모양이시군” 했더니 “이 놈아! 술 생각, 밥 생각이 다 화두인데 무슨 헛소리 해…”라고 했다. 결국 들고 있는 화두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란 걸 알아내긴 했지만 아주 혼났다.
화상은 언제나 담박(淡泊)하고 꾸밈이 없었다. 가슴에 와 안기는 유원(幽遠)하고 청려(淸麗)한 뒷맛을 남겨주었다. 살활자재(殺活自在)한 가풍이었고 풍격(風格)이었다. 지난해 세배를 갔더니 “어디서 자주 보던 놈 같은데…”라며 반가움을 내보였다.
이런 인연들이 화상의 천화(遷化) 후에도 내 가슴속에서 살아 뛰놀며 덕숭산 산거(山居)의 낙도가를 계속 불러주리라 믿는다. 그 때면 나는 시간표가 없는 저 청산의 다리(靑山之足)라는 열차를 타고 새삼 만행을 떠나리라.
이은윤 금강불교신문 사장 전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덕숭총림 수덕사의 방장 원담스님은 18일 입적했으며 영결식은 22일 수덕사에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