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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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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에미넴
킴과 에미는 1989년,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집에서 만났다. 13살과
15살이었다.
어려서 시작하여 둘은 10년간 신나게 연애라는 걸 했다. 씨를 심으면,
싹이 나는 법, 1995년, 킴(킴벌리)이 임신을 했다. 그해가 저물어 가는
추운 겨울, 바로 크리스마스 날에 딸 제이드가 태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1999년 6월 14일 미주리에서 시어머니를 포함하여 단 세사람이 참관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했다.
남편 에미는 가수이자 성우로 그레미와 오스카상을 받은 2관왕의 명사가
되어, 미시간 소재, 정원에 풀이 있는 15,000평방피트, 480만 달러의 저택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그는 명실공히 ‘수퍼스타’가 된 것이다.
아내 킴
2000년 에미의 노래가 히트를 치자 생활은 호화판으로 돌아갔다. 호화판
생활은 그러나 그들의 사이를 가깝게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유혹이 많았다.
서로가 10년간 미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쳤기 때문에 싸웠고,
싸웠기 때문에 가끔 헤어졌으나 헤어지면 또 보고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2,000년 6월, 아내 킴이 엉뚱한 ‘죤’ 이란 놈과 키쓰를 하다가 들켰다.
남편 에미가 침입자, 죤에게 폭력으로 갚아주자, 오히려 에미가 체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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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택
풀려난 남편의 거센 항의와 여죄를 추궁하며 계속된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아내 킴은 팔목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다. 에미는 그래도 분이 안풀려, 참다
못해 그해 7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의 여름은 그 두 부부에게 너무나 잔인하고 지옥같은 계절이었다.
가수 에미는 자기가 작사한 ‘킴’이라는 노래를 불러 힛송이 되었다.
그 노래는 아내를 암케라고 부르며, 너 없는 세상 살고 싶지 않다. 왜 나의
침실에 딴 놈을 데려와 그 짓을 했느냐? 사랑한다. 미워한다. 네 스스로 네
목을 끊었다. 등등 긴 가사로 욕설 섞어 부른 노래다.
결국 킴을 죽이려는 살인의 의지와 계획이 들어있는 그런 악성 가사다. 그게
음악계에 힛송으로 붕 떴다. 왜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되지 않느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https://t1.daumcdn.net/blogfile/fs7/4_blog_2007_09_27_21_48_46fba5a3aeaf5?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클레이지 러브8.jpg)
아내 킴은 그해 8월, 명예회손죄로 남편 에미에게 1천만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8월말 결국 그들은 별거에 합의하여 헤어지는 슬픔을
맛보게 되었다.
별거생활은 낙원의 기쁨이 아니었다. 슬픈 고독의 연속이었을 뿐이었다.
둘은 전화를 하고 만나고, 보고싶다고 했다. 그래 그해 말 화해하는데
성공하여 모든 소송은 취하되었다. 다시 한 침대의 부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용서란 영원한 용서여야 하는데 그들은 그게 아니었다. 언쟁이
재연되면, 상대를 흠잡는데 열이 올랐다. 2001년 3월 아내 킴은 다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사랑의 열기가 식을 때마다 폭풍이 불고, 에미에게 눈물과 한 숨이 겹겹으로
몰아쳐왔다. 그해 10월 이혼이 결정되어 서로에게 미쳐있던 두 사람은 이제
남남으로 돌아섰다.
세 딸세 딸>
에미도 킴도 혼자서는 살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을 잊을 수야
없었지만, 금방 이성친구와 만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킴은 부적절한 관계를
불사하고 동침하다가 또 임신이란 걸 해 딸을 낳았다.
에미는 분명 이혼을 해 남남이 되어놓고, 정작 킴이 딴 사람의 애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질투의 화염에 싸여 몸부림을 쳤다. 아직 사랑의 미련은
그 불꽃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혼을 한지 3년의 세월은 혼란속에서 금새 지나갔다. 에미는 수시로 킴을
찾았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고독했다. 다른 많은 여자를 만났을 때도
킴이 그 얼굴 위에 포개어 아련히 나타났다.
에미는 남의 딸을 낳아 가슴에 안고 있는 킴에게 2004년 겨울, 화해를 제의했다.
그리고 다시 데이트를 계속했다. 그 남남의 신분으로 만나는 데이트가 옛날의
뜨거웠던 정분을 다시 가슴 속에 소생시킬 줄은 서로가 알지 못했다.
2006년 1월 두 사람은 주변의 많은 친구와 친척을 초대해 놓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첫번 째는 어쩜 숨어서 한 비밀의 결혼이었으나 지금은 세상이 다 아는
명사, 그것도 이혼문제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아주 소문난 결혼식이었다.
데트로이트 방송국이 공개 방영을 해 세상의 축하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하니문은 겨울로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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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맹세한 재혼은 아니었다. 갈등의 소지가 될 문제를
안고 한 결혼이었다. 따라서 백년해로를 약속해 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의문의 재결합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재혼후 3개월 동안 부부전쟁은 다시 불이 활 활 타올랐다. 그동안
킴은 세 명의 애기를 키워왔다. 하나는 킴의 언니가 불가피 맡겨둔 질녀였다.
에미의 소생은 딸 하나 뿐이었다.
문신을 잔뜩 한 남편, 에미(에미넴)
재혼한지 겨우 3개월만에 남편 에미는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해놓고 송사를
중재자에게 위탁했다. 2006년 12월 19일 결국 두번째 이혼이 확정되고 말았다.
두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그들이 합의하여 지킨 건 딸 앞에선 절대로
싸우지 말자라는 약속이었다.
12살 짜리 딸을 서로 맡겠다고 대판 싸움이 벌어져 오랜 동안 끝날 줄 몰랐다.
킴은 양육비를 요구했다. 킴은 이혼하여 양녀가 된 질녀를 포함하여 세 명의
딸과 살게 되었다.
으리 으리하던 저택은 위자료로 넘어가고 지금은 에미넴이 작고 초라한 집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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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옛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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