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밥보다 비싼 커피, 그래도 줄까지 서며 사는 사람들

淸潭 2007. 5. 13. 11:13

그 비싼 커피를 줄까지 서가면서!

 

아침 8시. 서울 광화문 뒷골목의 한 커피 전문점은 20여명의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트북을 펼쳐 놓고 서류 작업을 하는 20대 남성, 거리로 창이 열린 흡연 코너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30대 남성 둘, 테이크 아웃(Take-out)용 종이 상자에 커피를 4개 담아 들고 빵 봉지를 챙기고 있는 20대 여성, 조각 케이크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며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

 

# ‘소비’와 ‘분위기’를 파는 커피전문점 북적 

도시의 아침은 커피숍에서 먼저 열린다.

세계 39개 나라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서울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연 지 8년. 4월 말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205호 점을 문 열었다.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중국에 이어 매장 수에서 세계 6위다. 스타벅스는 숱한 경쟁자와 동조자를 낳았다. 커피 빈, 파스쿠찌, 홀리스, 네스카페, 엔제리너스, 이디야, 티라덴테스…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난다.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비싸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백반이 4000~5000원인데, 스타벅스 커피는 가장 싼 ‘오늘의 커피’가 2500원, 헤이즐넛 캐러멜(그란데)은 5800원에 이른다. 이탈리안 커피로 고급화를 내세운 파스쿠찌는 더 비싸다. 커피 전문점의 커피값은 다른 음식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비쌀 뿐 아니라, 외국의 같은 브랜드 커피값과 비교해도 비싸다.
 

  • ▲서울 명동의 한 커피전문점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걸어가는 여성들. 이들에게 커피 전문점의 컵은 액세서리나 마찬가지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한국에서 한잔 3800원(톨·355ml)인 스타벅스 카페 라테가 미국 시애틀에선 2750원. 한국이 38% 비싸다. 역시 한국에서 4800원인 모카 프라푸치노가 호주에서는 3200원으로, 한국이 50%가 비싸다.

커피 값이 비싸다는 불평에도, 줄 서서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불편에도, 내용도 잘 모를 영어 메뉴가 황당해도, 커피 전문점은 계속 확장 일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을 차지한 것도 커피 전문점이다.

올 봄, 공시지가 기준 평당 1억9600만원을 기록한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24-2 명동빌딩. 여기에 애초 입점했던 스타벅스는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이곳을 빠져나가 다른 매장을 두 곳 더 열었고, 바로 뒤를 이어 파스쿠찌가 들어섰다. 파스쿠찌측은 임대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보증금 30억 원에 월 임대료 1억 원 선(2005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벅스는 명동에만 7곳이 있고, 커피빈도 명동에 3곳을 운영하고 있다. 강남역, 광화문, 신촌도 커피전문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비싼 커피전문점이 왜 갈수록 성업일까. 2001년 처음 문 연 커피빈은 6년 만에 94개 점포로 늘어났고, 올해 11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2004년 들어온 파스쿠찌도 고급 이탈리안 커피라는 차별화 전략을 앞세워 점포 수를 늘려가고 있다. 선발 주자인 스타벅스의 시장 전략에 열쇠가 들어있다.

먼저 ‘생활 문화’를 판다는 것. 커피 그 자체는 다음이다. 지난해 젊은 여성의 허영심과 소비성향을 비판한 ‘된장녀 파동’ 때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냐”는 비아냥이 나왔던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대학원생 최다혜(24)씨는 “미국 드라마에서 많이 보듯, 출근길, 등굣길에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동경의 대상”이라며 “커피전문점 컵은 귀고리나 모자 같은 하나의 액세서리”라고 설명한다. 대학원생 윤태홍(23)씨는 “취업도 공부도 불안하기만 할 때 친구들과 커피전문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기분이 풀어진다”며 “스타벅스 쎄라피(therapy:치료요법), 커피빈 쎄라피라고 부른다”고 했다.


 

 

# 나만의 쉴 곳을 찾아… 또 다른 ‘다방 문화’ 

서울 광화문과 신촌, 일산과 압구정동의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왜 이곳을 찾는지 물었다. “영어학원 끝나고 출근 때까지 30분이 남아요. 잠깐 쉬면서 아침도 때웁니다.”(20대 남성) “회의 끝나고 담배 한대 피러 왔어요. 흡연실이 좁은 게 흠이지만…. 어차피 회사도 금연빌딩이니까”(30대 남성들) “그룹 스터디룸 빌리면 돈 들잖아요. 여기서 리포트도 쓰고 공동 과제도 해요.”(20대 남녀) “도서대여점에서 책 빌려서 여기와 두어시간 읽다 가요. 집하고는 또 달라요.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30대 여성) “기분이 꿀꿀하면 여기 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냥 멍하니 있다 가요. 사람들 구경도 하고….”(40대 여성)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커피전문점은 회사 휴게실 대용이자 동네 사랑방이고, 세상으로 열린 창인 것이다.

그러나 커피 전문점이라는 간판과 달리 정작 커피 맛이나 품질에 대한 평가는 뚜렷한 게 없다. ‘오늘의 커피’를 비롯, 이들 커피 메뉴에서 원두가 어느 나라 산(産)인지, 어디서 로스팅(원두를 볶는 것)하는지 별도로 드러나지 않는다. 소형 커피 전문점들이 원두 산지별로 커피를 내놓는 것과 확연한 차이다.

커피전문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유를 듬뿍 타거나 향신료를 첨가한 것들. 70년 대 모닝 커피, 80년대 프림 커피와 얼마나 다른 취향인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부분이다. 2007년 한국의 커피전문점의 성업은 그 옛날 ‘다방 문화’에서 그렇게 멀리 간 것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