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스크랩] 배 중 월

淸潭 2007. 5. 12. 15:39
 

마지막 봄비일지도 모르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주말,

모처럼 부부가 마주앉았네요.

공사가 다 망하신? 관계로 평일엔 잠 잘 때만 얼굴을 보다가

날씨 때문에 주말 스케쥴이 취소돼

모처럼 느긋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니, 얼굴은 안 보고 그저 앉아 있습니다.

 

장안의 술은 다 쓸어먹는 듯한,

주중의 음주로 쌓인 피로를 잠으로 해소하던 남편이

산책길에 막걸리 한 병을 사들고 들어오면서

부침개를 부치라 합니다.

혀를 차며 아내는 냉장고 구석에 굴러다니는 야채쪼가리를 긁어모아

퓨전부침개를 부쳐 '주안상'을 차립니다.

"아직도 부족한가요" 한 마디 하니

배중월杯中月 어쩌고... 하며 술꾼다운 한 마디를 합니다.

그러더니 막걸리발이 받는지 내친김에 혀 꼬부라진 말을 하네요.

 

'Woods are lovely, Dark and cleep...'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프로스트 싯귀의 한 귀절이라는데

뭔 소린지 귀에서 뱅뱅 돌며 와닿지는 않는 그 소리에

아내는 왈칵 눈물이 솟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했던 남편의 찌그러진 지금의 모습이 안쓰러워서인가요.

그도 한 때 영롱한 눈빛을 빛내며 시를 읊조리는 꿈 많은 청년이었을 텐데

무엇이 그를 울분 많은 술꾼으로 만들었는지...

 

눈물을 훔치며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와, 멋있다..으이그, 남편이 아니라 애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불룩 나온 남편의 배를 툭 치며 아내는 말합니다.

"역시 내가 시집은 잘 왔나봐..."

 

 

malo / 희망가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아말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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