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법장스님 행 상

淸潭 2007. 3. 12. 12:45

법장스님 행 장

인곡당 법장 대종사께서는 1941년 6월 15일 충청남도 서산군 음암면 성암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 원주 김씨 김기홍金基洪 거사님과 모친 가성賈星 보살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으며, 속명은 계호界鎬입니다. 유년시절부터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시던 스님은 당당하고 여유로운 수행납자인 사촌형의 모습에 매료돼 덕숭총림 현 방장이신 원담 큰스님을 은사로 1960년에 발심, 출가하셨습니다.

1965년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의 하안거를 시작으로 1975년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5번째 하안거를 성료하셨습니다. 용맹정진을 통해 청소년 시절부터 흠모했던 수선납자의 선기禪氣 넘치는 지혜력과 온기 가득한 자비행을 두루 갖추었습니다. 내외명철한 선풍과 자타불이의 보살행이 종무행정과 사회참여활동 전반에 배어나게 되는데, 1980년대 이후의 행장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980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스님은 1981년 종회 사무처장, 1982년 총무원 사회부장을 역임하면서 불교의 사회참여와 복지활동의 절실함을 피력하고 종단의 대사회적 역할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1984년에는 재무부장을 거치며 투명한 재정관리와 원융산림의 원칙과 소신을 확고히 했습니다. 1973년에는 종무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재무행정을 수료하였습니다. 종단이 혼란에 처해 있을 때 개혁과 정화운동에 적극 동참하셨고, 1994년에는 개혁회의위원으로서, 1999년에는 법규위원으로 종단개혁에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특히 1987년 학교법인 동국학원 감사를 시작으로 1995년부터는 재단이사로 건학이념 구현과 교육 불사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탁월한 행정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종단 발전에 기여하신 스님은 출가본사인 수덕사의 중창불사를 원만히 성취하였습니다. 1992년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근대 한국불교의 선맥을 계승한 선지종찰로서의 위용을 회복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수덕사 종합불사 계획을 수립해 가람을 정비하고 수행환경 보전을 위하여 사하촌 이전불사를 추진하셨습니다. 1995년에는 수덕사에 성보박물관을 건립하여 경허·만공 스님의 유품을 비롯한 성보문화재 1000여 점을 전시하였습니다. 평생 동안 주석하시던 수덕사를 새롭게 정비하여 수행과 전법포교 전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지역사회에서 교구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1986년부터 홍성교도소의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정교화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또한 수덕사에 지역의 불우한 아이들을 모아 돌보았으며, 소년소녀가장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화두인 환경과 생명에 대한 실천운동에서 자비 원력보살인 스님의 참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창립된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회’의 활동입니다. 스님께서는 1993년 심근경색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이 때 장기기증자가 없어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고 장기기증운동을 추진하겠다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퇴원 후 바로 이 단체의 전신인 ‘생명공양실천본부’를 설립하여 1994년 3월 24일 누구보다도 먼저 사후 안구기증과 뇌사시 장기기증, 그리고 사후 시신기증을 서약하셨습니다. 스님의 솔선수범하는 실천행은 종교의 벽을 허물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의 장기기증 단체와 연대하여 범국민운동으로 확산 발전시켰습니다. 장묘문화의 인식전환 등 서약운동도 전개하셨습니다. 나아가 북한동포의 식량부족과 기아문제, 탈북자 대책, 국제난민구호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한국불교의 사회참여운동을 적극 주도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종단의 행정과 포교현장에서 인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시고 종단의 인재불사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한국의 간화선 수행풍토를 진작시키고 재가자들의 수행생활을 돕기 위해 1999년에 한국불교선학연구원을 서울 강남지역에 설립하여 일반인들을 위한 선학강좌와 시민선방을 개원하셨으며 한국선학의 전통을 학술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세미나를 수차례 개최하셨습니다. 또한 2001년에는 총무원 산하 승가교육진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여 교육제도 개선에 주력하셨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국제포교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 한·태 불교교류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불교교류에 앞장섰으며, 2001년에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지부 총재를 맡아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도모하셨습니다.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원장을 맡아 세계불교도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한국불교의 역할도 모색하셨습니다.

이사理事를 겸비한 스님은 종교 지도자로의 인류평화를 위한 비전을 분명히 하고 종단 행정의 최고 수장으로서의 역량을 축적하셨습니다. 이 결과 2003년 2월 24일 대한불교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종단 안팎의 지지를 받아 총무원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함께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이란 기조 하에 참신한 인재를 발탁하고 종단발전의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종무행정에 일대 혁신을 기했습니다. 수행종단의 면모를 강화하고자 간화선 중심의 선풍진작에 매진하셨고 승가교육개혁과 승가노후복지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나아가 신도조직 정비와 포교의 활성화 방안을 수립해 신도활동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셨고, 종무행정의 합리화 방안과 원융산림의 표본을 마련하셨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종단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 일반 사회의 흐름을 선도하셨고, 재정관리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사외감사제를 추진해 종무행정의 모범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각 교구본사에 행정권한을 이양하여 지방분권화 시대에 맞는 종무체제를 구축했으며, 책임행정과 효율행정을 위해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전결제를 도입하셨습니다.

이 밖에 총무원장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일을 기획하시고 실천하셨습니다. 그 중 구체적인 성과를 낸 업적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행과 교육면에 있어서는 수행체계정립을 위한 간화선 지침서 『간화선』과 불교 제수행법을 정리한 『수행법 연구』를 발간하였으며, 승가교육제도개선안을 준비하여 승가교육체계의 단초를 마련하셨습니다. 또한 대종사 법계품서식을 거행하여 법계제도를 재정립하고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재를 봉행하셨습니다.

- 문화와 포교면에 있어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의 준공을 목전에 두고 있고, 전통문화산업지원센터 건립 지원금을 확보하여 2004년 착공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포교역량을 확대하기 위하여 양분되어 있던 신도회를 통합하였으며, 유명무실했던 국회 정각회를 제17대 국회에서 재창립토록 하셨습니다.

- 복지분야에 있어서는 자비보험금 나눔운동을 통해 승려노후복지기금으로 쓸 약정금 20억여 원을 확보하였으며, 10개 교구에 실비노인요양시설 설립을 정부의 지원으로 추진하셨습니다. 또한 평소 수덕사에서 해오시던 소년소녀가장돕기를 확대하여 1사찰 1가정 결연 후원을 전국교구본말사로 확산하였으며 스님 자신과 부·실장스님들이 솔선수범하여 소년소녀와 결연을 맺어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활동을 확대하셨습니다.

- 남북교류와 국제참여불교 활동면에 있어서도 괄목한 만한 성과를 이룩하셨습니다. 스님의 재임기간 동안의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는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를 착수한 것입니다.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 평화통일의 초석이 될 신계사 복원불사를 시작하여 2004년 11월에 대웅전 낙성식을 거행하셨습니다.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명예대표로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 간의 화합의 마당을 마련하였으며, 북한과 미국 간의 입장 차이로 중단되어 있던 6자회담이 재개되도록 금년 5월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과 국무성 고위관리들을 연쇄적으로 면담하고 불교적 평화사상을 바탕으로 이들을 설득한 일은 국가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수해지역을 복구하고 조계종 마을을 조성했는가 하면 이라크 자이툰 부대 장병들을 위문하는 등 한국불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 대종사께서는 늘 즐겨 말씀하시던 다음의 게송을 남겨 놓으시고 2005년 9월 11일 세수 64세, 법랍 45세를 일기로 원적에 들었습니다.

我有一鉢囊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다.

受受而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스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마다 항상 이 게송을 읊으시며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내 바랑에 담아 가져가고 행복과 안락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스님은 법구조차 고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주시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원적에 드신 스님께 종단에서는 대종사 법계가 추서되었고,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