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스님들 소식

‘생명평화 탁발순례’ 4년째…

淸潭 2007. 3. 9. 21:22

‘생명평화 탁발순례’ 4년째…도법스님 다시 길을 떠나다

 

행복을 위해, 평화로운 삶을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더 가질수록, 더 편해질수록 더 많이 허전하고, 더 위험해지고,

 더 복잡하다. 앞날은 더 불안하다. 삶의 위기, 총체적인 위기의 세상이다. 어느 시대, 누구라도 생명과 평화를,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의 영원한 꿈이자, 절실한 바람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럴까,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도법 스님이 다시 길을 나섰다.

자그마한 등에는 바랑을 단단히 둘러메고, 군데군데 헐어진 신발도 새로 장만했다. 삶의 위기, 생명평화의 위기, 그 위기를 넘어설 해답을 찾자고 길 위에 섰다. 아니 우리 안에 이미 들어앉아 있는 그 답을 끄집어내 이젠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지난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대학교의 미래창조관 앞. 이 땅의 모든 생명평화를 가꾸고 실천하고자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연대인 ‘생명평화 결사’의 ‘생명평화 탁발순례단’(단장 도법 스님)이 2007년 첫 걸음을 내디뎠다.

눈발이 휘날리고, 강풍이 분다. 험악한 날씨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거지’ ‘이러다 봄은 없고 바로 여름 오는 것 아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비정상이던 것이 정상으로, 제자리를 잡는 건데 왜들 그래. 생명평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 같아 좋은데 뭘.” 스님은 오히려 허허 웃는다. 참, 그러고 보니 그렇다.

김하돈 시인(백두대간 연구소장)이 앞장서서 길을 잡는다. 도법 스님과 탁발순례단원, 순례단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인 학생, 주부, 회사원, 교수, 농민 등 충북 각지의 사람들이 뒤따른다.

청주 도심을 가로지르는 무심천. 무심천에 얽힌 옛 이야기 한 자락 없는 이는 청주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가. 무심천 다리 위를 걸어가는 순례단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지 않은가. 눈발이, 찬 바람이 오히려 보약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길 위에 나선 지 벌써 4년째다. 기존의 살아가는 방식, 의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풍요롭고, 편리해졌는데도 불만은 더 높아지는 삶을 정리하자고 나선 길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부자가 됐는데도 편안하지 않은 생활을 접자는 길이다.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한 순례의 길은 지리산 주변을 시작으로 제주도, 부산·울산과 경남 전역을 걸었다. 2005년에는 전남과 광주, 경북과 대구를, 지난해엔 전북과 대전 등 충남 땅을 모조리 밟았다.

지금까지 1만9000여리 길을 걸었고, 5만4000여명을 만났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논둑을 지나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길 한 쪽을 더듬었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나른한 봄날도, 한 폭의 그림 같은 가을 날도 걸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길 위에서 살았다. 선재동자의 구도길, ‘부처 짓 하면 부처 된다’는 불교의 진리를 스님은 생각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부둥켜 안았다. 넥타이를 맨 깔끔한 사장도, 모를 심던 흙투성이의 농민도, 해맑은 눈동자의 어린아이도,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과 아버지들, 누이와 형제를 만났다. 살아가는 것은 어느 곳이나, 그 누구나 모두 비슷했다. 인간의 터전인 자연도 가는 곳마다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고 아파하고 있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더 커지고, 모두들 삶에 헉헉대고 있었다. 사회는 발전한다는데 대립과 갈등, 이웃간의 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 진정 좋아지고, 발전하고, 잘 사는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본질과 근원을 볼 줄 몰랐다. 아니 보질 않았다. 또 자기 자신에게 너무 무지했고,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가는 곳마다 가장 중요한 생명, 그 생명의 터전인 자연이 존재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무지하면서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저 인위적인 소유의 욕구, 탐욕의 충족만이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이 욕구와 탐욕은 갈등과 다툼과 생명평화의 위기로 나타났고, 그 바탕에는 개발과 성장논리만이 판을 쳤다.”

스님이 더 안타까워 하는 것은 이런 생명평화의 위기, 삶의 위기에 대한 처방이 아직도 개발논리, 힘의 논리, 승리의 논리, 독점의 논리라는 사실이다. “50년 전과 비교해 보자. 그 때보다 더 편해지고, 더 배부르고, 더 부자가 됐는데 왜 불안하고, 사는 게 힘이 드느냐. 지난 경험만 살펴봐도 지금의 처방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순례단은 탁발을 한다. 마을회관이든, 사무실이든, 교회와 성당을 가리지 않고 잠자리로 잡고, 먹거리를 탁발했다. 사람들의 가슴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자신과 나라와 세상의 주인이 바로 자신임이라는 자각을 빌었다. 생명의 터전인 자연의 의미를, 소유와 탐욕을 물리칠 자기성찰을 탁발했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하고, 그렇게 살자고 마음을 주고 받았다.

순례단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생명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들이 지나는 곳에는 움이 트고, 꽃이 피어난다. 생명평화 서약을 한 사람들인 ‘생명평화 등불’이 늘어나고, 순례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주축이 된 청년모임,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청소년모임들이 생기고, 생명과 평화를 튼튼히 키워낼 생명평화학교가 곳곳에 들어섰다. 마산·창원·진주(마창진)의 가고파 생명학교, 광주의 빛고을생명학교, 전북의 설레임생명학교…. 그동안 생명평화결사 100배 서원 음반인 ‘온숨’, 생명평화탁발 시집인 ‘바다가 푸른 이유’도 나왔다. 2005년부터는 전국의 ‘등불’들이 참여하는 전국생명평화학교까지 열리고 있다.

도법 스님 등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지난 5일 충북 청주시내 무심천을 건너고 있다.


이번 순례에 참여한 귀농 농부 박한용씨(51·전북 진안군)는 “내가 이 순례에 참여한 자체가 탁발순례단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한없이 낮아져 보려 한다”고 밝혔다. 순례 각오를 다지기 위해 삭발까지 한 이문희씨(35·경기 안양시)는 “크게 두려울 것도 없다. ‘모든 과정이 공부’라는 생명평화결사의 말을 되새긴다”며 “부디 우리가 지나는 길에서 만나는 모두가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고 전한다.

순례단은 이날 어둑어둑해진 충북 도청 마당의 찬 흙바닥에 두 손과 이마를 대고 생명평화 서원의 100배를 올렸다. 엎드린 그들 위로 눈이 내린다. 나를 비우고, 서로간 나누고, 모시는 그런 정신, 그런 삶을 살자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서원이 눈송이들로 피어났다. 그 눈송이들이 이제 봄바람이 되어 이 땅을 덮을 것이다.

〈청주|글 도재기·사진 김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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