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정의감이 먼저냐, 의리가 먼저냐 ?

淸潭 2007. 1. 31. 09:44

[공익 제보] 버림 받는 제보자들

 


"배신자 꼬리표에 받아주는 회사 없어요"


해고·협박에 기나긴 법정다툼 만신창이… 믿었던 동료들의 왕따 보복 가장 힘들어


"그래도 불의 보면 다시 제보할 것" 55%


관련기사

• 90%가 "징계·해고 당했다"
• 버림 받는 제보자들
• 부패방지법 문제 없나
• 우리 사회 변화는
• 해외의 사례는

#1. 인천국제공항 건설 당시 감리원이었던 정태원씨는 부실공사를 문제 삼았다가 건설업체의 협박을 받고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20여 차례나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공과 무관한 전자업체에 들어갔으나 이마저도 회사 부도로 금세 접어야 했다. 부인이 벌어오는 100만원이 한달 수입의 전부이다 보니 4식구가 생활하기는 빠듯하다. 정씨는 "해마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지방 소도시로 이살 갈 계획"이라며 "생계가 막막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2. K사에 다니던 여상근씨는 2005년 회사의 국가지원예산 유용을 폭로했다가 기밀유출과 회사비방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취소해 달라"며 제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익제보자의 신분 보장과 보상을 책임지는 국가청렴위원회도 여씨가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회사 직원이라며 손을 놓았다.

여씨는 "공익제보 이후 회사가 내부고발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수면장애까지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오명 '부패공화국'.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부정부패의 악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많이 높아졌으며 '특권'과 '반칙'이 줄어들고 있다는데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사회의 청렴도를 보여주는 부패인식지수는 1999년 3.8점에서 2006년 5.1점으로 올랐다. 여기에는 온갖 불이익을 무릅쓰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법과 비리를 과감히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공익제보자가 겪는 고통은 불이익을 넘어 형벌에 가깝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1990년 이후 공익제보자 2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공익제보로 인해 징계와 해고를 당한 비율이 80%(16명)에 달했다. 이 중 11명은 지금도 무직상태다. 또 60%(12명)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다.

문제는 돈과 권력을 지닌 소속집단의 조직적인 대응, 그리고 공익제보와 이에 따른 불이익간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가 힘든 탓에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회사와 하청업체간 부품가격 커넥션 비리를 고발했던 LG전자 전 직원 정국정씨는 무려 8년간 사문서 위조, 무고와 위증교사 등의 혐의를 놓고 회사 측과 민ㆍ형사 소송을 벌였다. 그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아냈지만, 해고통지서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가 '공익제보자=배신자'라는 인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공익제보자 김봉구씨가 "인사상 불이익 처분 등의 보복행위를 당했다"며 안산시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는 취지를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상부의 압력에 따른 감사 중지 사실을 폭로한 감사원 전 직원 현준희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당해 10년째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빈 라덴처럼 비행기를 몰고 대법원으로 돌격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공익제보자가 싸워야 할 대상은 소속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된 유교적 온정주의와 공익제보자를 배신자로 보는 비뚤어진 시선"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싸움으로 가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동료 조직원들의 '왕따'다.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보복행위'라고 입을 모으는 집단 따돌림은 전체의 95%(19명)가 경험했을 만큼 흔하다. 김태진 연구원은 "후배 8명이 별다른 이유없이 휴업명령을 받았을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여상근씨도 "내부고발에 따른 회사의 보복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보직을 받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익제보자들에게 가해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신적ㆍ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공익제보자의 90%(18명)가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간염 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공익제보는 부부관계와 자녀의 학교생활에까지 피해를 준다. 교복 대리점의 '짝퉁 교복' 판매를 고발했던 한 제보자는 아들이 교복 대리점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참극을 겪었다. 사학비리를 고발했던 진웅용씨는 "할머니가 공익제보의 충격으로 숨진 이후 가족들에게서 '네가 할머니를 죽였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궁핍, 사회적 관계 악화는 자살 충동으로 연결돼 전체의 60%(12명)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대한적십자사의 감염혈액 유통 실태를 고발했던 최덕수씨는 시너를 끼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문옥 전 감사관은 "온 몸으로 우리 사회의 불법과 부정부패를 고발한 대가가 이렇게 가혹할 줄은 몰랐다"며 "잠깐일 줄 알았던 악몽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말해 심적인 갈등 정도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공익제보자의 55%(11명)는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았음에도 불구, '불의를 보면 다시 공익제보를 하겠다'고 답했다. 조직의 문제는 그 내부자가 가장 잘 아는데다 개인적 안위보다 사회적 공익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익제보자와 함께 하는 모임'의 김용환 대표는 "공익제보자를 사회적 갈등유발자로 치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공익제보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명분과 양심을 대변해준 소중한 존재인만큼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고재학(팀장)ㆍ김용식ㆍ안형영기자 new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