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산 꼭대기 태극기, 남 몰래 갈아달기 7년

淸潭 2007. 1. 21. 15:40

산 꼭대기 태극기, 남 몰래 갈아달기 7년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에 사는 김기문(54·만안구청 직원)씨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김씨는 산 꼭대기 태극기를 남몰래 돌보고 있는 우렁 아저씨. 김씨는 안양시 수리산 관모봉 정상에 있는 태극기를 한 달에 1번, 새것으로 교체하고 있다. 남이 볼까봐 새벽 6시에 일어나 인적 드문 산을 혼자 오른다. 벌써 7년, 70번이 넘는다.

덕분에 관모봉 정상에 꽂힌 태극기는 늘 말끔한 신사처럼 당당하게 휘날린다. 보통 산 꼭대기에 등산객들이 꽂아 놓은 태극기는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1개월만 지나면 먼지로 얼룩지고 올이 풀려 찢어지기 일쑤다. 김씨가 태극기 관리를 시작한 건, 1999년 봄 수리산에 올랐다가 ‘반 동강이’ 난 태극기를 보고 난 다음부터.

“처음엔 저도 별 생각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태극무늬가 완전히 반쪽이 돼 있는 것을 보니,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죠.”

작심하고, 태극기 100장을 한꺼번에 샀다. 앞으로 관모봉 태극기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였다. 김씨는 아내에게 받는 한달 용돈인 50만원을 다 쏟아 부었다. “처음엔 좀 무리했나 싶었지만, 이렇게 저질러 놓지 않으면 하다 말 것 같았어요.”

김씨는 태극기를 사느라 주머니를 터는 바람에, 두 달간 점심은 구내식장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술친구에게 ‘빈대 붙어’ 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수리산에 올라 ‘고정식’으로 돼 있는 깃대를 ‘도르래식’으로 바꿨다. 태극기 교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구청 총무과에서 일하면서 익혔던 태극기 관리 노하우가 있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가 두번째 한 일은 가로 1.5m 세로 1.2m의 태극기를 재봉틀로 박는 일. 보름만 지나도 올이 슬슬 풀리기 시작해 1개월이 넘으면 태극기가 죄다 찢겨지는 것을 보고 생각한 아이디어.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휘날리라고 태극기 테두리를 두 번씩 박는다. 그것도 김씨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50년 넘은 재봉틀로 정성스럽게 박음질한다.

그리고 주말. 인적 드문 새벽 6시에 산을 오른다. 도르래로 태극기를 내려 새것으로 바꿔준다. 누구라도 호기심을 가져볼라치면, 좌판 장사하러 왔다고 얼버무린다. 바람과 먼지에 닳은 태극기는 고이 접어 가지고 내려와, 집 근처 공터에서 소각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냐고 묻자, 신선(神仙) 같은 대답이 나왔다.

“죽은 다음 하늘에서 태극기 내려다보면서 ‘저거 내가 했지’하고 생각하면 흐뭇할 것 같아서….”

애초에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어서 두 아들에게도, 심지어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70번이 넘도록 올라갔지만, 그 흔한 사진 한 장 찍어 오지 않았다.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54)는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어휴, 어떤 땐 귀찮았죠. 근데 지금은 안 가면 이상하고 허전해요.”

김씨는 18층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멀리 보이는 해발 480m 관모봉을 가리켰다. “저게 내가 돌보는 태극기에요.” 아무리 봐도 작은 ‘점’처럼 밖에 보이지않는 태극기를 김씨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봤다. 김씨의 남다른 태극기 사랑은 그저 소박했다.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달지 않고, 닳으면 쓰레기통에 버리는 무심한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해봤다.

“예전엔 관공서에서 국기를 내릴 때 행인들 조차 걸음을 멈추고 예의를 갖췄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태극기, 무궁화, 애국가 이 세 개는 우리나라의 상징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존엄성을 갖고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류정기자 wel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