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지식을 찾아서]
설정스님
충남 예산군 수덕사 설정(雪靖.63) 스님의 말을 듣다 보니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가 떠올랐다.
세상에 불만이 가득했던 한 지방 방송사의 TV 리포터가 참된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간다는 소박한 진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우리는 남을 탓하기 일쑤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세상이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과연 그럴까. 설정 스님은 거울을 예로 들었다.
"맑은 거울이 있다고 칩시다. 거울은 파란 것이나 빨간 것이나 다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담아두지 않습니다. 그냥 거울일 뿐이죠. 모든 걸 분별하되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게 자주적 인간입니다."
스님은 중국 임제(?~867) 선사가 남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얘기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머무는 곳마다 진실되라는 말이다.
*** 자제할 줄 알아야 자유인
-독선으로 흐를 수 있겠어요.
"그게 아니죠. 내가 주인이니 모든 걸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우주만물이 내 것인데 감히 훼손할 수 있나요. 가래침도 뱉을 수 없고, 나뭇가지도 자를 수 없고, 물 한방울도 오염시킬 수 없죠."
-자기 것만 챙길 것 같은데….
"주인의식과 이기주의는 다릅니다. 최고의 자유인은 자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주인이듯 타인도 주인이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버릴 줄도 압니다. 남을 의식해야 하는 거죠. 그게 인간다운 삶입니다."
-모순처럼 들립니다.
"순금보다 합금이 강하죠? 똑같은 이치입니다. 끼리끼리 모 여사는 건 좋지 않아요. 이익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힘을 행사하는 건 가장 소극적인 삶입니다. 사람은 눈치보는 곳이 있어야 건전해집니다. 아니면 경거망동에 빠져요."
-눈치를 보라니요.
"비겁하라는 게 아닙니다. 합리적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거죠. 그걸 모르니 서로 싸우고 짓밟고, 그렇습니다."
설정 스님은 외유내강의 전형이었다. 수덕사 해탈교.일주문을 지나 스님이 10여년 전부터 머물고 있는 취송당(翠松堂)을 찾아갔을 때 아이처럼 밝은 얼굴이 문을 열고 나왔다. 주변을 제압하는 기개는 약해 보였으나 나직한 목소리와 은은한 미소로 사방을 감싸안는 포용력이 느껴졌다. 암자 주변에 무성한 '푸른 소나무(翠松)'처럼 오랜 세월 숙성된 기품이랄까.
-수덕사는 자급자족 가풍이 유명하죠.
"젊은 시절 노스님 중 벽초 스님이 있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청규를 평생 실천하셨습니다. 낮에 농사 짓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일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입산 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셨죠.
"부끄럽습니다. 그 시간에 수행에 전념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간판을 따려고 공부한 건 아닙니다. 학문의 폭을 넓히면 내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죠. 사찰 살림을 꾸려가는 데도 유용할 것 같았고요."
*** 不信이 가장 큰 문제
-선이 무엇인가요.
"매일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입을 열면 착각이 생긴다(開口卽錯)고 합니다. 유무(有無).애증(愛憎) .선악(善惡).피아(彼我) 같은 상대적 경계가 끊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검은 안경을 쓰면 만사가 검게 보이죠. 선은 그런 '마음의 안경'을 벗는 겁니다. "
스님이 평생 궁리했던 화두가 궁금했다. 스님은 한 학인이 중국 조주(778~897) 선사에게 물었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를 들었다.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라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불신입니다. 진실이 사라지고 교언영색(巧言令色)만 판을 칩니다. 국회 청문회가 대표적이죠. 지도자.종교인부터 각성할 일입니다. 집집마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은 설 수 없다(無信不立)'를 모토로 삼아야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암자에서 나왔다. 스님은 "불교는 자기 상(相.모양)을, 문자를 내세우는 게 아닌데, 그건 오히려 오물(汚物)을 끼얹는 일인데, 별 수 없이 탤런트 노릇을 해야겠네"라며 계면쩍어 했다. 수덕사를 에워싼 덕숭산 소나무가 그런 스님을 넉넉히 안았다.
예산=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 설정 스님은
불교에선 이판(수행에 정진)과 사판(행정.포교)을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둘을 두부 자르듯 가르기란 쉽지 않다. 사판에 함몰돼 이판을 멀리하는 스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사원융''이사겸수'라는 말처럼 양자는 동전의 앞과 뒤와 같다. 스님들도 공동체를 이뤄 살기 때문이다.
설정 스님은 이판과 사판을 두루 경험한 선승이다.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젊은 시절 혜인사.범어사 선방 등에서 수행했다. 수덕사 주지.조계종 중앙종회의장도 지냈다. 글을 멀리하는 수덕사 전통과 달리 30대 나이에 고검.대검에 도전,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98년 종회의장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 수행에 전념했다. 종단 고위직을 지내고도 일반 스님과 함께 하안거.동안거 등을 빠뜨리지 않았다. 종회의장 말기 췌장암에 걸렸던 그는 "죽어도 선방에서 죽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후학들에게 불경.조사어록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