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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절 중에 북한산 승가사를 꼽을 수 있다. 승가사는 삼각산 비봉과 보현봉 사이 능선에 있다. 신도들은 승합차로 절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절 입구에는 최근에 세운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 앞에 안내판의 안내도는 제법 멋을 부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중앙 안내도 왼쪽에는 영어로, 오른쪽에는 한자가 많이 섞인 한글 안내판이 걸려 있다. 당연히 한글 안내판이 왼쪽에 있어야 한다. 인천 자유공원의 한미수교에 관한 안내판이 좌우가 바뀌어 씁쓰레한 적이 있었는데. 십이지신상... 신이야, 맹수야
탑신이 모두 9개이니 9층석탑이 된다. 경천사 10층석탑의 모양을 본 딴 듯하다. 기단과 탑신의 넓이와 높이가 적당하다. 탑신 곳곳에 불상과 그 권속들이 새겨져 있다. 기단과 탑신에 새겨진 형상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냥 복잡하다는 느낌만 든다. 현대에 건립한 석탑들이 의미만 앞세우고 조잡한 것이 많은데, 이 석탑은 보통이 아니다. 화려하고 복잡하지만 속되지 않고 조잡하지 않다. 웅장하고 세련되었다. 현재의 기계를 사용한 조각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아마도 서울 불자들의 경제적 도움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 경제력의 바탕이 승가사 9층 석탑을 새롭게 탄생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범종각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마당 끝에 문 위에 세운 범종각이니 그 배경은 하늘이 된다. 그래서 범종각은 하늘 높이 떠 있는 것 같다. 모양도 깔끔하다. 좌우로 올라가는 계단과 난간이 위에 걸어둔 범종과 어울린다. 비례 감각의 소중함을 느낀다. 온통 금천지... 너무 눈이 부시네
영산전의 부처님과 보살님들 그리고 탱화들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화려해서 가까이 다가서기엔 무섭기까지 하다. 산신각은 호랑이 타고 있는 산신을 모신 집이다. 산신각의 산신과 호랑이 주변의 나무 산 모두 금으로 화려하게 입혔다.
가난한 사람은 일단 승가사에 오면 기가 죽을 것 같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일단 기가 꺾이지 않을까 싶다. 누가 저렇게 많은 돈을 냈을까? 시주한 사람들의 정성어린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심했다 싶다. 자본주의의 돈냄새가 법당 안을 진동하고 있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금옷을 입고 온천지가 금색인 세상을 바라보고 기원하면 무조건 효험이 생기는 걸까. 생각해볼 일이다. 경제적으로 제법 성장한 현대 우리나라의 불교는 법당 안을 금으로, 금색으로 채우고 말았다. 대웅전 외벽에는 석가모니불의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와 우리나라 선종불교의 진리 수양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심우도가 아래 위 쌍을 이루어 그려져 있다. 그림 형식이 현대적 감각이 반영된 것인지 상당히 사실적이다. 대부분 절간의 팔상도와 심우도가 독특한 형식에 치우쳐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대에 맞게 변화해 가는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수수한 차림의 부처가 더 좋아라
치렁치렁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고, 옷자락이 양쪽 어깨를 덮고 있다. 오른손은 검지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고 있고, 왼손은 옷 속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가부좌한 앉은 자세가 당당하다. 눈을 크게 떠서 그런지 이마에 주름이 졌다. 주변의 평범한 이웃 아줌마 같다.
나는 이런 수수한 부처님이 금옷을 걸친 부처님보다 더 좋다. 며칠 뒤에 수능시험 치는 아들의 대박을 기원해 본다. 열심히 절을 하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본다. '아들의 수능 대박'은 결국 '내 아들만 옳게 풀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틀려 버리기'를 기원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괜찮은 건가? 저 위에 큼직한 마애불이 계시니 위에 올라가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약사전 바로 옆에는 바위에 일붕 스님의 선시가 새겨져 있다. 일붕 스님이 아마 승가사 중창에 큰 역할을 하셨던 것 같다. 일붕선사의 글씨는 시원한 가을 바람 같다. 바위의 글씨 역시 시원시원스럽다. "천년불을 향해 우러러 절하고, 성서러운 이곳에서 한나절 동안 참선하고 가노라." 마애불과 백불이 있는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고 있다. 약사암 뒤로 백팔계단이 장쾌하게 위로 뻗어 있다. 하나씩 세면서 백팔번뇌를 걷어 낸다. 계단을 올라가면 점점 마애불이 크게 나타난다. 번뇌가 사라져 해탈하면 저렇게 부처님이 된다는 말인가? 인자하고 부드러운 부처님이 활짝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래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하늘 위 이상세계에 계신 부처님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전체적으로 당당하면서도 자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전체로 보는 느낌은 통일신라 때 앉아있는 부처님 모습을 닮아 매우 근엄하고 당당하다. 그러나 세부적인 처리는 단순하거나 천진난만하다. 오른쪽 가슴의 젖꼭지 표현이 앙증맞다. 옷주름은 대단히 형식화했다. 특히 왼쪽 팔뚝의 옷주름은 조잡하기까지 하다. 손모양의 처리도 조각 능력이 부족한 조잡성이 보인다. 그러나 보통의 고려시대 석불이나 마애불에 비하면 제법 월등하다. 고려시대 마애불로서는 빼어난 것에 속한다. 아들 딸 '수능대박' 기원, 이기적인 바람이지만
10세기, 고려 건국한 지 50년 안팎의 시기에 만든 것이라 여겨진단다. 그래서 이 마애불에는 통일 신라의 느낌과 고려의 느낌이 뒤섞여 있다고 보인다. 널찍한 마애불 앞 마당에 앉아 다시 나의 과제를 생각해 본다. 아들의 수능 대박 기원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좋은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 전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내 친구의 아들도 좋은 점수를, 그 친구의 친구 아들도… 이렇게 확대되면 나의 기원은 소용이 없어져버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처님 혹은 하나님이 이런 이기적인 소원을 들어줄 수 없고, 들어줘서도 안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누구는 들어주고 누구는 못들은 채 하고, 그게 무슨 부처님인가? 부처님은 절대 이런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쪽이 나빠지는 기원은 못들은 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기원할까? 특별한 기원이 없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민족 통일이 앞당겨지고, 절대 전쟁이 일어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 어렵지 않게 겨울나고, 모두가 부처님같은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주저리 주저리 생각하니 소원이 또한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속이 시원해졌다. 한껏 넓어진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면 갈수록 번뇌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욕심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들, "딸' 수느응 대바아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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