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약속
소 운 스님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뇌 구조는 보통 사람의 것과 다르다고 한다. 계속적인 거짓말로 인해 이들의 뇌 속에선 흰색 물질이 보통 사람의 뇌보다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치인의 헛된 공약에서부터 크고 작은 진실게임까지 거짓이 만연된 우리 사회의 풍토를 한번쯤 돌아보게 한다.
불교에서는 습관적 행위를 '업(業)'이라 한다. 업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행하는 행동의 결과가 인생을 만든다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결국 습관이 인생을 결정짓는 셈이어서 불교에서는 매일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열 가지 업을 참회한다. 거짓말, 번지르르한 말, 이간질하는 말, 그리고 험악한 말이 입으로 짓는 업에 해당하지만 거짓말을 가장 대표적인 구업(口業)으로 들고 있다. 그래서 진실한 말을 행하는 것은 보살이 수행해야 하는 덕목 중 하나다.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항상 진실한 말을 수행하는 수타마왕이 어느 날 성 밖에 있는 공원에서 유희를 즐기려고 성문을 나오는 도중 한 바라문을 만났다. 이 바라문은 왕을 향해 "당신은 오복을 갖추신 분입니다. 저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이에 왕은 "알겠소. 원하는 대로 보시를 행하겠소. 내가 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라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왕이 공원의 연못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을 때 금시조와 같은 새가 날아와 목욕하고 있는 왕을 낚아채어 공중을 날아 산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왕은 두 눈에서 빗물 쏟아지듯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새가 왕에게 물었다.
"대왕이여, 당신은 어떻게 아이처럼 우는가.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법이거늘." 이에 왕은 대답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의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성문을 나올 때 나에게 구걸하는 바라문에게 '돌아와서 반드시 보시하겠노라'고 말했다. 지금 죽으면 거짓말을 범하기 때문에 그것이 애석해서 우는 것뿐이다."
그러자 새가 "당신이 그렇게 거짓말을 두려워한다면 7일간의 말미를 주겠으니 돌아가서 충분히 보시를 행하고 다시 돌아오라"며 왕을 돌려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왕은 마음껏 보시를 하고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떠나려는 왕을 백성들이 군사로써 새를 막아 주겠으니 돌아가지 말라고 청하자, 왕은 "오늘 내 몸도 내 소유가 아니니 돌아가야 한다. 진실한 말은 계율 중 으뜸이다. 진실한 말은 천상에 오르는 사다리이다. 진실한 말은 조그마해도 진실로 크다. 나는 지금 진실한 말을 지키기 위해 설령 몸을 버려도 마음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산으로 향했다.
돌아온 왕을 향해 새는 "당신은 진실한 사람이오. 약속을 어기지 않았소. 사람이면 누구나 목숨을 아끼는 법이거늘. 당신은 죽음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킨 것을 보니 진정 대인이오." 이에 왕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다. 진실한 말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새를 감화시켰다고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수타마왕과 같이 완벽하게 보살행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입으로는 만인의 행복을 축원하면서도 도리어 만인의 불행을 초래하는 행위를 범하기도 한다. 스스로 행하면서도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현재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연습일 뿐이다. 완성은 없다. 연극을 연습하는 배우처럼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더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신인배우의 자세로 인생에 임해야 한다. 이 연습이 나쁜 행위가 습관으로 정착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결국 인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중앙일보 2005/10/8>
'불교이야기 > 빈 바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님 손가락에 ‘우담바라’ (0) | 2006.11.10 |
---|---|
우담바라 (0) | 2006.11.10 |
인생길은 곡선 (0) | 2006.11.10 |
[스크랩] [국악명상곡]마음의 문을 열며 (0) | 2006.11.09 |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0) | 2006.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