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길상사 법문>
인생의 길은 곡선…
끝이 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날까요
모르기 때문에 살맛 나는 것이죠
“사람의 손이 빚어낸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입니다.
인생의 길도 곡선입니다.
끝이 빤히 보인다면 무슨 살 맛이 나겠습니까?
모르기 때문에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의 묘미입니다.”
법정(法頂) 스님이 16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 스님)에서 열린 가을법회에서 ‘곡선의 묘미’를 주제로 법문했다. 마당에 색색 코스모스가 곱게 핀 극락전에서 열린 이날 법회에서 스님은 현재 거처하는 강원도 산골 소식부터 전했다.
“가을엔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햇살, 공기, 바람결, 물, 나무 모두 다 투명합니다. 산에 사는 저희 같은 사람은 귀가 밝아져 방 안에 있어도 낙엽 구르 는 소리, 풀씨 터지는 소리, 다람쥐가 열매 물고 가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스님은 이어 ‘곡선의 묘미’를 화두로 현대 사회의 조급증, 생명경시, 물질주의에 대해 경고하며 “직선이 아닌 곡선의 여유로 살자”고 권했다. 스님은 “직선은 조급, 냉혹, 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 인정, 운치가 속성”이라며 “오늘 우리가 여유롭게 사는 것은 전(前) 세대, 선인들이 어려운 여건을 참고 기다릴 줄 알았던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녀의 사랑도 서로를 길들일 시간, 뜸들일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요즘은 웬만한 식당에선 제대로 뜸들인 밥을 먹기 어렵다”며 “모든 것을 단박에 이루려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참을성 없는 세태가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자살자, 하루 평균 1000명에 이르는 낙태 등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나쁜 업(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내가 쌓은 업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라며 “지진, 해일, 태풍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잦은 것도 오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은 또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직장에서 30년간 ‘일벌레’로 살다 IMF외환위기로 졸지에 무일푼 실업자로 전락해 실의에 빠졌던 한 가장의 사연을 전했다. 그 가장은 요즘은 택시기사로 힘들게 생계를 꾸리면서도 생각을 바꿈으로 해서 온 가족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스님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 역시 곡선의 묘미”라며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어정거리고, 길 잃고 헤매면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충실히 깨닫고 사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투명한 가을을 맞아 여러분 모두 투명하고, 따뜻하고, 어질고, 선량한 이웃이 되길 빈다”며 법문을 마쳤다.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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