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불교 |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년) 여름에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이 순도(順道) 승려를 시켜 불상과 불교를 보낸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2년 뒤에 아도(阿這)가 고구려로 들어오고 다음에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세워 각각 살게 되니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었다. 391년 광개토왕때는 평양의 도성안에 九寺가 세워지고 문자왕 때는 金剛寺가 창건되니 이로부터 토속신앙과 융합하면서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평원왕 때는 學僧 義淵을 중국으로 파견시켜 대승불전을 배워 오게 하는 한편, 반야심경을 심도있게 연구해 오게 함으로써 불교를 융성케 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해 왔다. 뿐만 아니라 中觀思想을 고양시켜 고구려 불교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해 오기도 하였다. 더욱이 고구려는 일본 불교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평원왕 때 승려 惠便을 도일케 하여 태자의 스승이 되어 각종 불경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또한 성덕태자의 스승이었던 승려 慧慈와 法興寺의 벽화를 그린 승려 담징(曇徵)도 고구려인이었다. 이 외에도 혜관(慧灌), 도현(這顯)등 승려들도 일본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치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 와서는 道敎가 성행하여 왕을 비롯한 수천명이 당에서 온 도사로부터 老子의 도덕경을 청강하는 한편, 당에 유학생을 보내어 도교를 배워오게 했다 영류왕은 당에서 도사와 도덕경을 수입하고부터는 불교는 극도로 쇠퇴일로로 치닫게 되자 普德은 백제로, 玄遊는 사자국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고구려 불교가 오래도록 번영했다는 사실은, 불상만 보더라도 삼국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데다 문화예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는 데서 엿볼 수가 있다. 이뿐 아니고 탁월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마다 미적 감각이 세련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아도 고구려 불교가 영화를 누렸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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