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관련

부처님의 10대 제자

淸潭 2006. 11. 10. 16:50
부처님의 10대 제자
 (1) 사리불존자 - 지혜(智慧) 제일

석가모니의 10대제자중 첫 번째 제자. 지혜제일(智慧第一)로 불렸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근처 나라다에서 태어났다. 범어로 사리푸트라였는데 사리불다라(舍利弗多羅)라고 불렸다. 줄여서 사리불이라 한다. 여기서 사리(舍利)는 어머니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목건련(目?連)과 함께 외도(外道)인 산자야의 문하에서 수행을 했다. 하지만 완전한 영혼의 평화와 안식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제자 마승(馬勝)비구를 만나 부처님께 귀의했다. 제바달다(提婆達多)의 반역으로 교단이 수렁에 빠졌을 때 사태를 잘 수습했다.


 (2) 목련존자   - 신통(神通) 제일

목건련(目健連), 보통 목련존자(目連尊者)란 칭호가 따라 다닌다. 범어로 목갈라나. 목건라야나로 쓰며 흔히 줄여서 목련(目連)이라고 한다. 신통제일(神通第一)로 불린다.
수보리와 더불어 마가다국의 왕사성 근처 코리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던중 마승(馬勝)비구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받았다. 사리불의 권유로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더불어 죽림정사(竹林精舍)로 가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으로 부처님의 법을 지켰다.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했다.


 (3) 마하가섭존자 - 두타(頭陀) 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대가섭(大迦葉)이라고 부른다. 작은 것에 만족하여 열심히 수행하였으므로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타(頭陀)는 수행을 이른다. 마하가섭은 범어로 카사파라고 하며 카사파 3형제와 구별짓기 위해 마하카사파라고 불렸다.

마가다국의 왕사성 근처에서 태어나 8세때 바라문이 되었다. 그러나 부모의 권유로 마지못해 밧다카필라니와 결혼했다. 서로 12년 동안 살다가 모두 부처님께 귀의했다. 인고와 극기의 두타행(頭陀行)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언제나 더럽고 낡아 빠진 가사를 걸쳤다.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는 파탈과 초월의 정신력을 보였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죽은 후 마하가섭이 교단의 수장이 되었다. 부처님 입멸후 칠엽굴(七葉窟)에서 500명의 비구를 모아 부처님 말씀을 결집(結集)하였다.


  (4) 아나율존자 - 천안(天眼) 제일
 
범어로 아니루타. 지혜의 눈이 밝아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렸다. 비록 실명(失明)했지만 처절한 수행 끝에 천안(天眼)을 얻었다. 출신은 석가족의 요리사라는 설과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라는 설이 맞서 있다.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있는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졸다가 부처님께 질책을 들었다. 이후로 부처님께 참회하고 절대로 잠을 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명하였으나 지혜의 천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일심통천(一心通天)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5) 수보리존자 - 해공(解空) 제일수보리 
 
공(空)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로 불린다. 아울러 결코 남과 논쟁하지 않았다 하여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고도 한다. 신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양을 받았다 하여 피공제일(被供第一)로도 지칭되고 있다. 범어로는 수부티라 한다.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수달(須達)장자의 조카. 삼촌인 수달이 기원정사를 지어 바치는 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 그가 마가다국 왕사성에 갔을 때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이 수보리의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정사를 지어줄 것을 약속했다. 정사를 다 지었으나 지붕을 잇지 아니 하였다. 그런데도 수보리는 지붕없는 정사에서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가다국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무서운 가뭄이 든 것이다. 왕은 이 까닭이 정사의 지붕에 있음을 알고 서둘러 지붕을 완성했다. 그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무쟁제일(無諍第一)이 이긴 것이다. 불교의 위대함이 이런 곳에 있는 것이다.

 
  (6) 부루나존자 - 설법(說法) 제일
 
부처님의 제자중에서 언변과 수사가 가장 뛰어나 설법제일(說法第一)로 불렸다. 범어로 푸라나라고 한다. 부처님이 태어난 가비라성(迦毘羅城)에서 같은 날 태어났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설법으로 9만9천명을 교화했다고 한다.

그는 수나파란타로 변경포교를 떠났다. 스스로 안락과 미래가 보장된 도시를 떠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일대모험을 한 것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교화시킨 후 입적했다.


  (7) 가전연존자 - 논의(論議) 제일
십대제자중 논의제일(論議第一)로 불린다. 불교이론에 박람강기했다. 중인도 서부에 자리잡은 아반티국에서 왕사(王師)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명으로 부처님을 모시러 갔다가 설법을 듣고 감동해 출가했다. 범어로 마하카차야나. 대가전연, 마하가전연으로 불린다.

그의 가계는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아반티국의 악생왕(惡生王)을 보필하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언설과 변재로써 인도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중생교화에 힘썼다. 최고의 포교사였던 것이다.
  (8) 우바리존자 - 지계(持戒) 제일
우바리는 십대제자중 지계제일(持戒第一)로 손꼽힌다. 계율을 지키는데 최고라는 의미다. 우바리는 본래 인도의 4성계급중 가장 비천한 수드라 출신이다. 직업도 석가족의 궁중 이발사였다고 한다. 범어로는 우팔리다.

그러나 인생에 일대변화가 몰아 닥쳤다. 그가 모시고 있던 석가족의 왕자들이 출가한 것이다. 그때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하는 왕자들을 보고 우바리는 크게 깨달아 자신도 출가를 단행했다.

그러자 왕자들은 우바리를 먼저 득도케 해달라고 간청한다. 불교에서는 사성(四姓)의 차별이 없고 오로지 득도의 순서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경이로운 불교의 저력이 아닐수 없다. 우바리는 유달리 계율에 정통했다. 부처님 열반후 칠엽굴에서 부처님 말씀을 결집할 때 그가 계율을 구송하는 일을 맡았다.
 
 
  (9) 라훌라존자 - 밀행(密行) 제일
 
부처님의 아들로 밀행제일(密行第一)로 불렸다. 남이 보든 말든 자신의 수행을 묵묵히 행했다고 해서 이런 칭호가 붙었다. 나후라의 원래의 뜻은 석가모니가 아들을 놓고 한탄하면서 장애(障碍) 즉 라후라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나후라아수라왕(羅喉羅阿修羅王)이 달을 가릴 때 태어나서 나후라라고 했다고 한다. 범어로 라훌라다. 부처님은 사리불을 시켜 어린 나후라를 출가시키도록 했다. 최초의 사미(沙彌)인 것이다. 20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후일 라후라는 법회회상에서 도칠보화여래(蹈七寶華如來)의 수기를 받았다.


  (10) 아난존자 - 다문(多聞) 제일
 
불경을 보면 흔히 나오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에서 나가 바로 아난다이다. 대부분의 경전을 그의 기억에 의존할 만큼 그는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칭송을 받았다.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수려한 용모를 가졌다고 한다. 25년동안이나 부처님을 시봉했다. 그래서 아난다가 가장 많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할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 입적후 칠엽굴에서의 불경 결집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부분이 그의 기억의 창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글 : 이재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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