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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淸潭 2006. 9. 23. 16:30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前남편 선처”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교도소행을 선택한 절도범 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재판부까지 감동시켰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3단독 박순성 판사는 13일 김모씨(42·무직)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보호관찰 처분을 선고했다. 김씨는 당초 4차례나 연쇄적으로 절도를 저질러 당연히 구속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날 의외로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자 법정에서는 한 순간 술렁거림과 함께 감동의 파장이 번져나갔다.

 

김씨는 10년 전만 해도 번듯한 직장과 재롱둥이 딸(당시 2살)을 가진 단란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었다.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95년 4월 무렵. 갑작스럽게 발병한 간질로 김씨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실직자가 된 김씨는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 일거리를 찾았지만 번번이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노동판에서조차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장 역할을 다하지 못한 김씨는 아내와 자주 다투게 됐고, 결국 2001년에는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병원 치료비도 갚지 못한 김씨는 그 짐을 차마 아내에게 지우기 싫었다. 또 어린 딸에게 자신의 발작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아 마침내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혼 이후에는 누나 집에 얹혀 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술을 많이 마시는 등 자포자기한 상태로 지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김씨는 ‘누나에게 신세를 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교도소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엉뚱한 마음을 먹게 됐다. 가정집을 돌면서 4차례에 걸쳐 현금과 신용카드 등을 훔치던 그는 결국 지난해 10월 경찰에 붙잡혀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혼한 아내 박영숙씨(가명·40)는 김씨를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남이 됐지만 김씨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깊고 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박씨는 전 남편 김씨의 누나와 함께 절도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하는 한편 피해를 모두 보상했다.

 

이날 재판장에 나온 박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이 출소하면 재결합하겠다”고 말했다. 부부의 인연은 함부로 끊어질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 김씨는 최후 진술에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 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박판사는 “김씨의 범행은 실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데다 전처 등이 피해를 모두 변제했으므로 이번 한차례에 한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박판사는 “걸핏하면 이혼하는 요즘 생활고와 병마로 헤어진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것을 보게 될 줄 몰랐다”며 “판결하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뭉클해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