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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 아빠 보세요!

淸潭 2006. 9. 17. 21:03


  아빠...!
  오랜만에 아빠를 불러보는군요
  중학교 2학년, 아빠를 처음만났을 때가
  우리 네 자매가 올망졸망 할 때
  논현동에서 식품점을 할 때 였어요
  유난히 야위어서 
  키가 더 커보였던 아빠를 기억해요
  말도 없이 들어와서 
  오뎅과 소주 반 병을 드시고 나가시곤했죠.
  그때 아빠는 
  우리 엄마가 처녀인줄 알았다면서요?
  아빠가 우리 엄마에게 
  청혼을 할 때가 기억나요
  "저 네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키우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외할머니의 바가지 물세례..
  그걸받고도 아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일어서질 않으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빠를 믿지않았어요
  우리에게서 엄마를 뺐어가는 
  나쁜사람으로 만 생각했으니까요
  결혼식장에서 아빠네 가족들이 
  아빠를 납치(?)해 가고
  엄마는 집에 돌아오셔서 망연자실 
  울고만 계셨죠!
  엄마뱃속에는 이미 막내가 있었구요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죠.
  그 때,
  전 아빠 주소하나를 달랑 들고 
  아빠를 찾아 길을 나섰어요
  제겐 회수권조차 여의치 않을정도로 
  우린 가난했지만
  절망으로 울고 있는 엄마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방배동,
  시골에서 서울에 온지 몇 해가지났어도
  서울길은 참 복잡하기만 하더군요
  주소에 적힌 방배동을 물어물어 찾아서 
  아빠집을 찾았을 때
  그 때 아빠가 기적처럼 
  쪽문을 열고 나오셨어요
  아빠의 그 놀라던 눈.. 
  순간 처음으로 "아빠~"하고 외쳤죠!
  곧 돌아가겠다고,
  엄마에게 걱정말고 계시라고 말씀하시고 
  제게 500원을 쥐어주셨어요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아빠는 저를 보고 
  비로소 다시 용기를 얻어서
  엄마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빠가 돌아오셨지만 
  결국 결혼식은 치루지 못하고
  외할머니까지 일곱식구가 작은집에서 
  살부비면서 살았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했어요
  막내를 가진 엄마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엄마는 늘 배고파 하셨고 
  동생과 전 회수권을 아껴가며
  순대를 사다드렸고
  맛있게 드시는 엄마를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아빠가 지었던 건물의 대금을 
  받지 못했던 때였는데
  겨우내내 집에 계시면서 김장김치로 
  국밥을 끓여주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사진을 스크랩해서 주시고
  저희들 공부를 가르쳐주셨죠
  전 그때 참 많이 놀랐어요
  아빠가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분인지 
  몰랐거든요
  아빠가 일류대를 나왔다는것도 
  그 때 알았어요
  제가 모르는 영어 단어를 여쭤보면 
  사전처럼 줄줄 나왔을 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결국, 15평 아파트마저 팔고 궁여지책으로 
  아빠가 시작하신일은 중국집 이었죠
  우리식구 모두 배불리 먹이는 길은
  그때 생각으론 짜장면 이었나봐요
  그 냄새나던 지하 중국집!
  중국음식과는 전혀 상관도 없던 분이 
  장사를 하시려니
  고생은 말이 아니었죠?
  주방장은 툭하면 나가버리고
  배달을 가면 퉁퉁 불었다고 욕을 하고
  그 때마다 얼마나 마른침을 삼키셨을까?
  엄마보다 네살 연하였던 아빠
  그 때 아빠나이 서른 둘,
  나이보다 10년도 더 나이가 들어보이던 
  아빠의 새치머리...
  우리들이 아빠~ 하고 부르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저렇게 큰 딸들이 있나하고?
  그럴 때 마다 아빤 씽긋 웃으시며
  애 엄마랑 고등학교 때 연애했다고 
  기분좋게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늘 드시던게 있어요
  밥보다 더 좋아하던 소주였죠!
  술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엄마의 걱정은 
  늘 한결같았어요
  하루에 소주 두병을 너끈히 드셨지만, 
  늘 깡소주 였어요
  그땐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몰랐어요
  그저 술을 드시면 아빠가 기분 좋아하셨고
  그래서 술을 안드시고 
  조용히 계신 아빠보다 술을 드시고 웃는 
  아빠가 더 좋기도 했어요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15평 아파트를 팔아서 건설업체직원들에게 
  밀린월급과 퇴직금을 계산해 준 것을요
  그래서 그 지하중국집도 
  일수를 찍는 사채였다는것을요
  엄마가 하룻밤에도 수없이 2층화장실로 
  들락거리시느라 잠을 못주무시고
  늘 퉁퉁 부은 얼굴로 장사를 시작하실땐,
  장염인줄 알았어요
  그런 엄마가 
  덜컥 대장암이란 소릴 들었을 땐..
  갑자기 하늘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땐 암이라면 
  다 죽는병인줄 알았거든요
  돈도 없는데.. 우리들도 다 어린데..
  친 아빠 계실 때도 그렇게 고생만하다가 
  저 천사같은 엄마가.. 
  죽는다니...?
  엄마가 입원을 하시고 
  수술을 받으실 때 아빠는 수술실 안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시면서 그랬어요
  "별거 아냐~.. 너무 걱정하지마
  이제 괜찮아질거야"
  너무나 편안하게 
  나를 안아주시던 아빠를 기억해요
  아빠도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나중에 말씀하셨죠?
  엄마도 그 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아빠와 우리들만 생각하셨대요
  '지금 죽으면 안된다!
  지금 죽으면 저 사람들도 다 죽는다' 
  그렇게 말예요..
  약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고
  입속이 다 갈라져 
  아무것도 먹질 못할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면서 병원에서 주는 밥을 드셨대요
  엄마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아빠는 엄마를 위해서 
  중국집을 처분하고 화장실이 가까운 
  작은 집을 전세로 구하셨어요
  우린 그 때.. 너무나 좋았어요
  그 냄새나던 지하중국집..
  늘 기름냄새에 머리가 아팠던 우린
  엄마 아빠의 그 고단한 삶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나이였었나봐요
  그래도 우리들이 공부를 잘해서 
  아빠는 참 좋아하셨어요
  제가 대학을 갔을 땐. 
  동문이 되었다고 좋아하셨고
  제가 장학금을 받아왔을땐..
  그 돈으로 외할머니 
  틀니를 제일 먼저 하셨을만큼
  장모님에게도 극진한 사위셨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우린 왜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제자리만 맴돌았을까요?
  천사같은 아빠
  늘 정직하고 성실했던 아빠..!
  그런 아빠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하고 순수한 엄마...
  그런 분들이었는데 
  우리집엔 늘 절망이 찾아왔어요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고모에게 돈을 빌려 
  다시 작은 중국집을 차렸을 땐,
  아빠가 이상하기까지 했어요..
  왜 또 중국집일까 하고
  아빠의 전공대로 건축일을 하시지
  왜 또 그 지긋지긋한 중국집일까?
  늘 물에 손을 담그고 있어서 
  손등이 빵처럼 부풀어 있는
  남들이 천대하기 까지 하는 그 일을
  왜 궂이 다시 시작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건 엄마와 함께 있기 위해서 였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를 
  혼자 집에 두고 나갈 수 없어서
  하루종일 곁에서 바라보기 위해서...
  그런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파 한단을 사도 아빠가 함께 가고
  늘 엄마 이마에 뽀뽀를 하고
  엄마 머리도 감겨주시던 아빠...!
  사랑한다는 말을 
  혈서로 써서 엄마에게 주셨을 땐
  우리모두 유치하다고 웃기까지 했죠
  그런 아빠가
  결국 쓰러지셔서 혼수상태에 빠지시더니
  말 한마디 못하시고 
  49일만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49일동안 병원 중환자실에서 
  꼬박 지냈던 엄마와 우리..
  가끔 의식을 한번씩 찾으실 때 마다
  호흡유지기를 질겅질겅 씹으시면서 
  빼달라고..할말이 있다고..
  애원하시던 눈빛,
  끝없이 속에서 나오던 아빠의 피.. 
  피냄새..
  아..~...사랑하는 내 아버지
  신이 있는것일까..?
  이 착한 사람을?
  하나님 제발 우리아빠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설마?
  설마 또 이런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는 않겠지?
  절대 그러지 않을거라고 믿었고 
  신에게 빌었지만 착한 우리 아빠는 
  우리곁을 결국 떠나셨어요
  1999년 2월18일 저녁 8시0분
  세상이 끝났습니다!
  아빠. 
  아빠가 떠나신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네요
  그런데 엄마와 우린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금도 아빠가 껄껄 웃으시며 
  저희를 보고계신것 같아요
  언제 그랬냐는듯이..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내 술만 드시던 외할머니가
  결국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아빠가 이뻐하던 강아지 
  깨비마저 큰 개에게 물려서 
  죽고 말았어요
  일 년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우리가족에게 밀어닥쳤어요
  네째가 은행다니면서 만난 남자와 결혼했는데
  결국 사기결혼이었어요
  네째는 네째이름으로 대출을 받으면서 
  은행직원 그리고 우리들을 
  보증인으로 세웠는데 상대남자가 
  그 모든돈을 가지고 도망가버렸어요
  사방팔방 수소문을 하였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네째는 가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숨어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던 
  전세금마저 날아가버렸어요
  엄마는 월세방에서 힘들게 사셨어요
  둘째와 세째는 그때 보증을 서서..
  아직도 시달리고 있어요
  우린 절망했고
  신을 원망했고 세상을 조소하면서
  가족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이젠 아니예요...!
  네째도 엄마에게 돌아왔고
  비록 해결은 아직 되지 않았지만 
  애견센터에 나가서  강아지들을 돌보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어요
  엄마도 이를 악물며 
  장사를 하고 있어요
  아빠, 아빠.. 
  아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싶었어요!
  엄마를 사랑하신다면서
  그렇게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이제 알았어요
  아빠에게 받은 사랑..
  이젠 아빠에게 드려야 할 때란 것을요
  이젠 아빠에게 우리의 사랑을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딸 넷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신 
  아빠에게 보답하는 길은 엄마와 함께 
  더불어 더 사랑하고
  아껴주며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아빠!
  묘비에 엄마가 적은 글처럼
  행복한 여행하고 계신가요?
  그곳에 외할머니도 깨비도 함께 있나요?
  늘. 아빠가 우리곁에 엄마곁에 
  숨쉬고 있다는 걸 알아요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가 요즘 많이 아파요
  너무 힘들어하세요
  대장암 수술받은 후유증으로 
  매일같이 요즘도 설사하세요
  많이 말라서 
  보고있는 저희가 미칠지경이예요
  여기서 산 삼 준대요
  아빠가 좀 잘 말해서 
  엄마 드실 수 있게 해줌 안돼요?
  아빠! 우린 괜찮지만
  막내..상민이.. 고아 만들면 안되잖아?
  우린 어릴때부터 
  아빠없이 크는 설움 엄마가 있어서 
  많이 위로가 되었지만
  엄마 돌아가심 상민이는
  아빠도 엄마도 없는 고아가 되잖아요?
  아직 너무 어려요
  아빠.. 엄마 좀 도와주세요! 네?
  아빠..담에.만나요!
  꼭..만나요.. 꼭...!
  사랑해요..아빠..!
  쪽~
  - 글, 이수경 -
  어느 신문사의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그것을 깨닫고, 또 기억하기에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글이라 
  요약편집 수정하여 올립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지혜와 희망을 줍니다
  힘내세요
  건강하셔야되고, 
  용기를 갖고 힘차게 사셔야합니다
  모두 평안하시기를..
  - 사랑투정 -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사랑투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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