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노래〔六歌〕/ 홍양호(洪良浩)
이계집 제5권 / 시(詩)○삭방풍요(朔方風謠)
머나먼 변방에서 해를 보내면서 집과 도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던 와중에, 아우가 고시(古詩) 50운을 보내왔는데 감정을 흔드는 시구가 많았다. 그리하여 두보(杜甫)의 〈칠가(七歌)〉를 본떠 6장에 각 장마다 8구의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내 그리움 모친 향해 있나니 / 我所思兮在萱闈
학처럼 흰 머리털 드리우고 석양 마주하셨으리 / 鶴髮垂垂對斜暉
멀리 떨어져 있느라 혼정신성(昏定晨省) 못해 드리는데 / 晨昏起居遠離違
아득한 변방 지역엔 집안 서신 띄엄띄엄 / 關山杳杳音信稀
당 위에 오랫동안 노래자 옷 던져두니 / 堂上久拋老萊衣
고생스레 마을 문에 기대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염려하시리 / 應勞倚閭念渴饑
첫 번째 노래 부를 제 솟구쳐 날아가고 싶은데 / 歌一唱兮欲奮飛
머리 들어 남쪽 구름 보노라니 어느 때나 돌아갈꼬 / 矯首南雲曷月歸
내 그리움 임금님 향해 있나니 / 我所思兮在北闕
중천에 밝게 빛나는 일월 우러러보노라 / 赫赫中天仰日月
용광은 본디 만물에 두루 하거니와 / 容光本自普萬物
큰 덕화(德化)는 유독 말라빠진 뼈 윤택하게 하는 데 깊었네 / 大化偏深潤枯骨
해 넘겨 변방 나와 있으며 녹봉만 축내면서 / 經年出塞徒廩啜
한밤중에 북두성 바라보다 동틀 때 맞았네 / 中夜望斗至明發
두 번째 노래 바뀔 제 꿈속에 훌쩍 날아보지만 / 歌再轉兮夢超忽
만 겹의 구름 낀 산 아득해 넘기 어려워라 / 雲山萬重渺難越
우리 동생 우리 동생 한양에 있으니 / 有弟有弟在漢陽
내 머리털 성성하고 네 귀밑머린 희끗희끗 / 我髮星星爾鬢蒼
서로 몸이 떨어져 홀연 이별하게 되고 / 形分影離忽乖張
남북으로 아득히 멀리 삼상처럼 떨어졌네 / 天南地北隔參商
설산과 푸른 바다에 기러기 길게 우는데 / 雪山靑海雁聲長
명월 아래 외로운 술상 누구와 함께하리오 / 明月孤樽誰共床
세 번째 노래 뒤칠 제 가슴 깊이 사무치니 / 歌三翻兮結中腸
내가 구름 바라볼 제 너는 언덕 오르리 / 我看雲時爾陟岡
우리 손자 우리 손자 이제 겨우 다섯 살 / 有孫有孫纔五齡
외로이 품 안에서 어찌나 쓸쓸한 처지인지 / 煢煢在抱何零丁
이별할 때 마마가 온 얼굴 덮었더니 / 別時痘瘡滿面生
요즘엔 마당에서 논다는 소식 문득 들리네 / 近日稍聞戲軒庭
종이 찾아 나에게 이리저리 써서 부치니 / 索紙寄我書縱橫
점획이 때때로 과두 형상 이루네 / 點畫時成蝌虯形
네 번째 노래 마칠 제 차마 들을 수 없으니 / 歌四闋兮不堪聽
눈에는 어렴풋이 영형이 보이네 / 眼中依依見寧馨
우리 아들 우리 조카 모두 약관의 나이 / 有子有侄俱弱冠
뜰에는 옥수 나고 섬돌엔 난초 피었네 / 庭擢玉樹階生蘭
외모는 준수하고 걸음걸이 단정하며 / 眉目娟秀步趍端
문장과 서체가 파란을 일으키네 / 文詞筆翰動波瀾
배불리 먹고 편안히 거처할 것 구하지 않아야 하니 / 食無求飽居無安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슬피 탄식한다네 / 少不努力老悲嘆
다섯 번째 노래 박자 맞출 제 근심스러워 기쁠 일 없다만 / 歌五拍兮悄無歡
너희들 편지 올 적마다 마음이 풀리노라 / 汝曹書來每自寬
나의 고요한 거처가 관산에 있으니 / 我有幽居在冠山
바위 병풍 아홉 굽이요 집 세 칸이라네 / 巖屛九曲屋三間
높은 층층 봉우리 아래 천 개의 산 늘어섰고 / 層峰高下列千鬟
맑은 시내 하얀 돌은 어쩌면 그리 반반한지 / 淸流白石何斑斑
구름 낀 숲 한 번 떠나온 뒤 달 몇 번 바뀌었나 / 一別雲林月幾彎
솔 계수 가득한 산 뉘 있어 오르려누 / 滿山松桂有誰攀
여섯 번째 노래 완성할 제 맑고도 아름다우니 / 歌六成兮淸且閑
옷 떨치고 돌아갈 제 춘풍이 나를 전송하리 / 春風送我拂衣還
[주-C001] 삭방풍요(朔方風謠) :
정조의 등극 이후 홍국영(洪國榮)이 실권자로 대두하면서 노론인 홍국영과는 당색이 달랐던 이계는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어 결국 외직인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나가게 된다. 이계 역시 정조가 세손 시절일 때부터 정조를 보위하고 정조의 등극에 공이 있었으며 홍국영과는 친족관계이기도 했지만, 소론을 정계에서 몰아내고자 했던 홍국영의 계획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외직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 당시 이계의 상황과 심정은 본집 권18 〈태사씨자서(太史氏自序)〉에 자세한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조 초년에 권흉(權凶) 홍국영이 나와는 친족이면서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서 배척하여 경흥 부사에 보임되었다. 경흥은 최북단의 불모지였으나 나는 편안히 거처하면서 문을 닫고 독서하며 스스로 즐겼다. 그리고 〈육서경위(六書經緯)〉와 〈대상해(大象解)〉와 〈만물원시(萬物原始)〉와 〈삭방풍토기(朔方風土記)〉 등의 글을 저술하였다. 3년을 보낸 뒤 홍국영이 쫓겨나고서야 부름을 받아 돌아왔다.[正宗初年, 權兇洪國榮以親屬心害之, 斥補慶興府使. 慶興極北不毛之地也, 良浩居之晏然, 閉門讀書以自娛, 著六書經緯大象解萬物原始朔方風土記等書. 居三年, 國榮敗, 始召還.]” 이계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함경도 경흥으로 부임한 뒤 그곳의 풍토와 백성들의 삶을 한시로 창작하여 〈북새잡요(北塞雜謠)〉와 〈삭방풍요(朔方風謠)〉 등을 완성하였다.
[주-D001] 여섯 노래 :
이 작품 또한 앞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계가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변방에서 해를 보냈다는 말로 볼 때, 경흥 부사로 부임한 이듬해인 1778년(정조2)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계가 시서(詩序)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두보의 〈건원중우거동곡현작가칠수(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를 본떠 창작한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둘째 수에서는 임금을 향한 그리움을, 셋째 수에서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넷째 수에서는 손자에 대한 그리움을, 다섯째 수에서는 자질(子姪)들에 대한 당부를, 여섯째 수에서는 우이동(牛耳洞) 우거(寓居)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였다. 첫째 수는 평성 ‘미(微)’ 운, 둘째 수는 입성 ‘월(月)’ 운, 셋째 수는 평성 ‘양(陽)’ 운, 넷째 수는 평성 ‘청(靑)’ 운, 다섯째 수는 평성 ‘한(寒)’ 운, 여섯째 수는 평성 ‘산(刪)’ 운을 사용한 고시이다. 다른 다섯 수는 모두 평성 운을 사용하면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둘째 수에만 입성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주-D002] 두보(杜甫)의 칠가(七歌) :
두보가 48세 되던 759년(건원2) 11월부터 12월에 촉(蜀)으로 들어갈 때까지 1개월간 동곡(同谷)에 우거(寓居)하면서 지은 〈건원중우거동곡현작가칠수(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를 말한다. 첫째 수는 객중(客中)의 빈곤함을, 둘째 수는 굶주리는 상황을, 셋째 수는 아우에 대한 그리움을, 넷째 수는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다섯째 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여섯째 수는 만장담(萬丈潭)의 용(龍)을 소재로 만년의 불우함을 노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8》 두보의 이 작품은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과 함께 풍소(風騷)의 극치(極致)로 꼽힌다. 동곡현(同谷縣)은 감숙성(甘肅省) 진주(秦州) 서남쪽에 있는 지명인데, 당(唐)나라 때는 성주(成州)의 속현(屬縣)이었다.
[주-D003] 석양 마주하셨으리 :
이 말 안에는 모친이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손가(王孫賈)의 모친이, 아들이 아침에 나갔다가 늦게 돌아올 때면 문에 기대어 기다리고,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동구 밖에까지 나가서 마을 입구의 문인 여문(閭門)에 기대어 기다렸다는 고사가 있다. 《戰國策 齊策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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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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