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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하정우가 일냈다…'국내 10대 갤러리'도 반한 작품 보니

淸潭 2024. 10. 16. 19:36

'화가' 하정우가 일냈다…'국내 10대 갤러리'도 반한 작품 보니

이은주2024. 10. 16. 16:43
하정우, '무제(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193.9x259cm. [사진 학고재갤러리]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영화배우 하정우씨. [사진 학고재갤러리]

영화배우 하정우(46) 씨가 16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올해 제작한 회화 38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네버 텔 애니바디 아웃사이드 더 패밀리(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가족 외의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정우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다.

하씨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2020년 한 해를 제외하고 해마다 전시를 열어왔다. 이번이 열네 번째 개인전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좀 더 특별해 보인다. 국내 10대 갤러리 중 하나인 학고재에서 연다는 점에서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그가 기자들 앞에 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오전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하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지만, 이번 전시 제안을 받고 감회가 더 특별했다"며 "마침 올해 촬영 일정이 없어 전력투구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루틴'을 지키며 작업했다"고 밝혔다.

하씨는 이 자리에서 "단순히 그림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학 졸업하고 불투명했던 내일을 버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나를 위로해줬다. 흘러가는 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내세울 것은 아니지만, 그림 그릴 때 가장 재미있었다. 제 시간과 열정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정우, 무제,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2x130.3cm. [사진 학고재갤러리]
하정우, 무제, 2023,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2.2x 130.3cm. [사진 학고재갤러리]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하정우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학고재갤러리]

하씨는 그동안 거침없는 색과 선명한 원색으로 주변 인물이나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왔다. 이번 전시엔 가면과 한국 전통 탈을 소재로 한 '마스크' 시리즈, 기하학적인 문양의 페르시안 카펫에서 영감을 받은 '카펫' 시리즈 등을 새롭게 선보였다. 특히 카펫 연작은 2022년 모로코에서 영화 '비공식작전'을 찍던 중 시작됐다. 당시 촬영을 위해 5개월간 모로코에 머물렀던 경험은 카펫 위에 그림을 그린 작품에서 시작해 아예 캔버스에 카펫 문양 자체를 그린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특히 '카펫' 시리즈는 이전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화면 가득 채운 추상 문양과 섬세한 세부 표현이 두드러진다.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눈에 띄는 것은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하게 대비되는 색상이다.

 

하씨는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20대 중반에 문구점에서 수채화 물감과 스케치북, 4B 연필을 사고 화집을 구입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등의 그림을 보면서 따라 그리며 기법을 익혀나갔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그동안 하정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지켜봐 왔다"면서 "우리 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시를 열게 됐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업 작가가 아닌 배우로 메이저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다는 점에서 그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가 그림 그리기를 진심으로 즐기고, 열정을 지닌 것은 맞지만, 많은 사람에게 '잘 그린 그림'을 뛰어넘어 '울림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질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배우 하정우'를 넘어 '화가 하정우'로도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씨는 "2010년에 개인전을 처음 열고 15년간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안 좋은 이야기가 98% 정도 된다"며 "그래도 제가 이 작업을 이어가고 깊이를 쌓아간다면 70대 이후에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씨는 현재 직접 연출한 영화 ‘로비’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현재 새로운 연출·주연 영화 '윗집 사람들'을 준비 중이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