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물십절(詠物十絶) 병서
내가 한가한 생활 중 무료하여 언제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계절을 만나면 벌레들을 관찰하곤 하는데, 비록 지각없이 꿈틀대는 미물이긴 하지만 취하여 경계삼을 만한 점이 있기에 드디어 절구 열 수를 읊어 좌우명을 대신한다.
붉은 해가 불덩이 같건만 / 赫日方如火
매미는 계속 울고만 있네 / 蟬鳴猶不已
누가 알랴 저 푸른잎 사이에 / 誰知綠葉間
그렇게 시원한 곳 있는 줄을 / 有此淸涼地
이상은 매미
장마지면 피할 줄도 알고 / 居能避雨潦
나와서는 임금 위해 죽기도 하지 / 出而死長上
그 이름 틀리지 않고 / 命名固不爽
의(蟻)는 의(義)의 뜻을 취한 것이니, 군신(君臣)의 의리를 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슬기 또한 가상도 하지 / 其智亦可尙
이상은 개미
어두운 방에선 마음 속이기 쉽고 / 暗室易欺心
어두운 길은 더듬어 가기 마련 / 冥途又墑埴
너는 천성이 어둡지 않아 / 爾性能不昧
밤이면 꼭 등불을 밝혀 다니누나 / 夜行必以燭
이상은 반딧불
파리 색이 흑백으로 변하는 것은 / 靑蝿變白黑
먹이가 그렇게 만드느니라 / 由食使之然
파리 자체가 흰 놈이 검은 놈이 되고 검은 놈이 흰 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놈이 흰 것을 먹으면 똥이 희고 검은 것을 먹으면 똥도 검게 나온다.
참소 좋아하는 소인배들은 / 小人好讒慝
마음이 원래 비뚤어져 있지 / 一心元自偏
이상은 파리
동쪽 정원에 봄기운이 오면 / 東園春氣至
복사꽃 오얏꽃이 활짝 피는데 / 桃李正芳菲
꽃 위를 날아다니는 저 나비들 / 紛紛花上蝶
꽃이 지고 나면 어디로 가려나 / 花落更何歸
이상은 나비
그물을 치고 또 치니 / 結網密復密
마음 씀이 어찌 그리 깊은가 / 用意一何深
경륜이 비록 뱃 속에 가득하나 / 經綸雖滿腹
그 모두가 교활한 마음이지 / 都是機巧心
이상은 거미
하룻밤에 갈바람이 불면 / 秋風一夕吹
들창 가에 귀뚜라미가 울지 / 蟋蟀鳴窓壁
미물도 저렇게 때를 아는데 / 微物亦知時
흐르는 광음 아낄 줄 알아야지 / 流光當自惜
이상은 귀뚜라미
천지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니 / 飛翔天地間
걱정이 따르지 않아야 하련만 / 患害宜無及
어디서 오척의 어린애가 나타나 / 何來五尺童
끈끈이를 가지고서 덮치고 마네 / 膠絲奄相襲
이상은 잠자리
오래 썩은 두엄 속에 있을 때엔 / 久在腐草裏
볼썽사납게 더럽기만 하더니 / 醜穢不可見
때가 되어 매미로 변하자 / 時至化爲蜩
도리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네그려 / 翻爲人所羡
이상은 굼벵이
온종일 똥덩어리 속에서 / 終日糞壤中
배 채우려고 분주히 골몰하며 / 營營爲口腹
그칠 줄 모르고 왔다갔다 하다가 / 轉轉不知止
마소에 짓밟혀 죽고 말지 / 殞身牛馬迹
이상은 말똥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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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암선생문집 제1권 / 시(詩) / 안정복(安鼎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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