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기침
서울 지하철 몇 호선에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지만 한 노인이 지하철에 올라타고 기침을 몇 번 하였다고 하여 어떤 젊은이가 그 노인을 향해 “어서 내리세요”라고 한마디 호령을 했는데 그 노인은 전혀 대꾸도 하지 않고 그 다음 역에서 내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노인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
옛 글에 ‘장유유서’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연장자와 젊은 사람 사이에는 서열이나 순서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그런 모욕적인 한마디를 들은 노인이 당장 그 젊은이를 향해 “불편하면 자네가 내려야지 왜 내가 내려야 하나”라고 반박을 했어야 하겠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어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기보다는 업신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진 건 사실 아닌가.
젊은 사람을 전혀 꾸짖지 않고 스스로 다음 전철역에서 내린 그 노인은 오늘의 시대를 알고 있는 교양 있고 식견 있는 어른일 수도 있다. 그 젊은이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면서까지 전철을 같이 타고 갈 필요는 없었다고 느꼈을 게 틀림없다.
옛 어른들이었으면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배우지 못한 이 한심한 젊은 놈아. 자네가 내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라고 하셨을 것만 같다. 나도 그 젊은이를 괘씸하게 생각한다. 어쨌건 노인이 살만한 세상은 아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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