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詩,시조

四時 詞 /허난설헌

淸潭 2019. 12. 5. 10:06

春(춘) 
 
院落深沈杏花雨(원락심침행화우)  깊숙하여 고요한 뒤뜰 살구꽃에 비 내리고  
流鶯啼在辛夷塢(류앵제재신이오)  목련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네. 
流蘇羅幕襲春寒(류소라막습춘한)  수실 늘인 휘장 안에 봄기운 차가운데  
博山輕飄香一縷(박산경표향일루)  박산향로*에선 한 줄기 향 연기가 하늘거리네. 
 
美人睡罷理新粧(미인수파리신장)  미인이 잠에서 깨어나 새 단장을 매만지니 
香羅寶帶蟠鴛鴦(향라보대반원앙)  향그런 비단 띠에는 원앙이 수놓였네.  
斜捲重簾帖翡翠(사권중렴첩비취)  겹발을 걷고서 비취 이불도 개어 놓고 
懶把銀箏彈鳳凰(뇌파은쟁탄봉황)  시름없이 은 거문고를 안고 봉황곡*을 타네. 
 
金勒雕鞍去何處(금륵조안거하처)  금굴레에 안장 타신 임은 어디 가셨나. 
多情鸚鵡當窓語(다정앵무당창어)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이네. 
草粘戱蝶庭畔迷(초점희접정반미)  풀섶에 날던 나비 뜰로 날아간 뒤 
花?遊絲?外舞(화견유사란외무)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에서 춤추네. 
 
誰家池館咽笙歌(수가지관열생가)  뉘 집 연못가에 목메이게 생황* 소리 흐느끼는데 
月照美酒金?羅(월조미주금파라)  좋은 빛깔의 맛난 술 담긴 술잔에는 달이 비치네. 
愁人獨夜不成寐(수인독야불성매)  시름 많은 여인네는 밤새 홀로 잠 못 이뤘으니 
曉起鮫?紅淚多(효기교초홍루다)  새벽에 일어나면 명주 수건에 눈물 자국만 가득하리라. 

*박산향로: 중국 산둥성에 있는 박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향로. 
*봉황곡: 조선 시대의 가사(歌辭). 남녀의 금실을 노래했으며, 제목은 중국의 사마상여가 지은 「봉구황곡(鳳求凰曲)」을 본떠서 지음. 
*생황: 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의 하나. 큰 대로 판 통에 많은 죽관(竹管)을 돌려 세우고, 주전자 귀때 비슷한 부리로 불게 되어 있음. 
夏(하) 
 
槐陰滿地花陰薄(괴음만지화음박)  느티나무 그늘 아래 꽃 그림자 어두운데 
玉?銀床敞珠閣(옥점은상창주각)  대자리에 앉았보니 고운 누각 시원하네. 
白苧衣裳汗凝珠(백저의상한응주)  새하얀 모시 적삼 땀방울이 구슬 같고 
呼風羅扇搖羅幕(호풍라선요라막)  비단 부채 부채질에 비단 휘장 흔들리네. 
 
瑤階開盡石榴花(요계개진석류화)  돌층계의 석류꽃은 피었다가 다시 지고 
日轉華?簾影斜(일전화첨렴영사)  햇살은 처마 옮겨 발 그림자 비꼈구나. 
雕梁晝永燕引?(조량주영연인추)  들보에선 낮이 길어 제비는 새끼와 놀고 
藥欄無人蜂報衙(약란무인봉보아)  인적 없는 약초밭엔 벌들만이 윙윙대네. 
 
刺繡?來午眠重(자수용래오면중)  수를 놓다 나른하여 그만 잠시 졸았던지 
錦茵敲落釵頭鳳(금인고락차두봉)  꽃방석에 누웠더니 봉황비녀 떨구었네. 
額上鵝黃?睡痕(액상아황이수흔)  이마 위에 노란 거위 낮잠 잔 자국이고 
流鶯喚起江南夢(류앵환기강남몽)  꾀꼬리 울음소리 강남 꿈을 깨웠어라. 
 
南塘女伴木蘭舟(남당여반목란주)  남쪽 연못 아가씨들 목란배에 몸을 싣고 
采采荷花歸渡頭(채채하화귀도두)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오네. 
輕橈齊唱采菱曲(경뇨제창채릉곡)  천천히 노를 저어 채릉곡*을 불렀더니 
驚起波間雙白鷗(경기파간쌍백구)  물결에서 흰 갈매기 한 쌍 놀라 날아가네. 

* 채릉곡 :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악부체의 노래. 
秋(추) 
 
紗?寒逼殘宵永(사주한핍잔소영)  새벽은 멀었지만 비단 휘장에 찬바람 드니  
露下虛庭玉屛冷(로하허정옥병랭)  빈 뜨락에 이슬 내려 병풍이 차가워라. 
池荷粉褪夜有香(지하분퇴야유향)  연꽃은 시들어도 밤새 향기 퍼지는데 
井梧葉下秋無影(정오엽하추무영)  우물가 오동잎 지니 그림자가 사라졌네. 
 
丁東玉漏響西風(정동옥루향서풍)  물시계 소리만 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簾外霜多啼夕?(렴외상다제석충)  발 밖에는 서리 내려 밤벌레만 구슬프네. 
金刀剪下機中素(금도전하기중소)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玉關夢斷羅幕空(옥관몽단라막공)  옥문관* 임의 꿈 깨니 비단 휘장 적막하여라 
 
裁作衣裳寄遠客(재작의상기원객)  먼 길에 부치려고 임의 옷을 지어내니 
??蘭燈明暗壁(초초란등명암벽)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히누나. 
含啼寫得一封書(함제사득일봉서)  눈물을 머금으며 써두었던 편지 한 장 
驛使明朝發南陌(역사명조발남맥)  내일 아침 남쪽 가는 역인에게 전하려네. 
 
裁封已就步中庭(재봉이취보중정)  옷과 편지 챙겨 놓고 뜰에서 서성이니 
耿耿銀河明曉星(경경은하명효성)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았어라. 
寒衾轉輾不成寐(한금전전불성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니 
落月多情窺畵屛(락월다정규화병)  지는 달이 다정하게 병풍 안을 엿보는가. 

* 옥문관 : 옥관(玉關). 만리장성에서 서역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사신이나 군사들이 한 번 나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다고 함.
冬(동) 
 

銅?滴漏寒宵永(동곤적루한소영)  구리병* 물소리에 추운 밤은 깊어 가고 
月照紗?錦衾冷(월조사위금금랭)  휘장에 달 비추어도 금침은 차가워라. 
宮鴉驚散??聲(궁아경산로록성)  궁궐의 까마귀는 두레박에 놀라 흩어지고 
曉色侵樓窓有影(효색침루창유영)  새벽 먼동에 다락 창가 그림자가 어른거리네. 
 
簾前侍婢瀉金甁(렴전시비사금병)  주렴 앞 계집종이 금병에 물 쏟으니  
玉盆手澁?脂香(옥분수삽연지향)  찬물에 손 담기 어려워도 분내는 향기롭네. 
春山描就手屢呵(춘산묘취수루가)  시린 손 호호 불며 눈썹을 그리노니 
鸚鵡金籠嫌曉霜(앵무금롱혐효상)  새장의 앵무새는 새벽 서리 싫어하네. 
 
南隣女伴笑相語(남린여반소상어)  남쪽의 벗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玉容半爲相思痕(옥용반위상사흔)  임 생각에 고운 얼굴 반쯤이나 여위었군. 
金爐獸炭暖鳳笙(금로수탄난봉생)  숯불 지핀 화로 위로 피리소리 울려나고 
帳底羔兒薦春酒(장저고아천춘주)  장막 밑의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리라. 
 
憑?忽憶寒北人(빙란홀억한북인)  난간에 기대어 변방의 임 문득 그리니 
鐵馬金戈靑海濱(철마금과청해빈)  말 타고 창 들며 청해* 물가 달리겠지. 
驚沙吹雪黑貂弊(경사취설흑초폐)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옷은 닳았을 테고 
應念香閨淚滿巾(응념향규루만건)  향기로운 아내 방을 그리워해 수건 적시리라. 

* 동곤 : 구리병으로 만든 물시계. 
* 고아주 : 새끼양을 잡아 고아서 만든 물로 빚은 술.  
* 봄술 : 겨울에 빚어 봄에 익히는 술. 
* 청해 : 중국 청해성의 호수로 변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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