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칸카납 호수 침전물 조사 결과 800년, 950년께에 심각한 가뭄 부족한 식량이 도시간 전쟁 부추겨 ◇ 중앙아메리카에서 눈부신 문명을 꽃피웠던 마야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는 심각한 가뭄이 있다는 새 연구 결과가 2일(미국 현지시각) 나왔다.마야는 현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 벨리즈 등의 지역에서 번창한 고대 문명이다. 화려한 도시가 도로와 수로 등으로 정교하게 연결됐고 전성기 인구가 수백만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900년대에 짧은 시간에 갑자기 사라졌으며, 아직도 그 정확한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 사진:> 멕시코 퀸타나 루(Quintana Roo)에 남아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미국 플로리다 대학 공동 연구진이 당시 발생한 심각한 가뭄이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연구진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치칸카납(Chichancanab) 호수의 석고 성분과 산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이 호수 위치는 고대 마야 왕국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수 바닥의 침전물을 분석하면 과거 이 지역의 기후를 시기 별로 추정할 수 있다.산소 동위원소와 석고는 당시 강우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과거 강우량을 추정하는 데 쓰이는 대표적인 성분이다. 무거운 산소 동위원소는 다른 성분에 비해 쉽게 증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성분의 비율이 높게 남아있으면 당시 가물었으며 다른 성분들이 많이 증발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석고는 황이 호수 바닥에 침전되면서 생기는데 이 역시 호숫물이 증발한 증거로 볼 수 있다.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 800년께와 950년께에 이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 이때 강우량은 평상시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며 가장 심각한 시기에는 무려 70%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950년은 마야 문명이 멸망한 시기로 추정된다.이런 급격한 기후 변화는 농경 중심 사회였던 마야 문명에 치명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 최소 13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6~8세기에 번성한 마야제국 ‘뱀 왕조’의 비밀을 밝혀줄 왕가의 고분이 발굴됐다. 최 ○··· 가장 번성했을 때 마야 문명 중심지에는 해당 지역의 농산물로만 유지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선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수로를 통해 옮기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가뭄이 발생하면서 농작물 수확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말라붙은 수로로 운송까지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식량 위기를 맞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동시에 이미 종종 다퉈왔던 각 도시 사이의 전쟁도 이를 계기로 격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뭄은 여기에 더해 나무를 말라서 죽으면서 많은 땅이 더 열에 노출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경작지는 더 줄고 가뭄의 악영향은 더욱 심화하였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 논문은 2일 치 <사이언스>에 실렸다.하지만 이것이 사라진 마야 문명의 수수께끼에 대한 온전한 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리 매거진>은 “역사상 번창한 다른 문명들은 대부분 (신흥) 문명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다. 반면 마야 문명이 번창한 자리에는 (다른 문명이 들어서지 않고) 정글만 남았다”며 가뭄이 이런 이례적인 현상에 완전한 설명이 될지 의문을 던졌다. 또 “향후 라이다(레이저 레이다) 스캔 등을 이용한 이 지역 밀림에 대한 정밀 조사가 (멸망 원인에 대한) 당시 상황의 보다 종합적인 그림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 원본글: 한겨레| Click ○←닷컴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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