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慶州金氏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淸潭 2017. 5. 15. 11:40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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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文武大王)은 평소 유언하기를 “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수호 하리라.” 라고 했으며, 또한 동해변(경주시 양북면)에 가람을 세워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했으나, 그 절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승하(昇遐)하여 그의 아들인 신문왕(神文王)이 절을 완공하고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답니다.








감은사 복원도



가람의 배치는 남쪽으로부터 중문(中門), 금당(金堂), 강당(講堂)이 놓이고, 중문과 금당 사이 양 옆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쌍탑식가람(雙塔式伽藍)으로 동, 서 삼층석탑이, 또 강당의 동, 서 양측에는 장방형 건물이, 이 건물의 양끝에서부터 남, 북 및 동, 서로 회랑(回廊)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감은사의 금당(金堂) 밑으로는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의 넋이 내왕할 수 있게 구멍을 뚫었다고 하며, 교량 구조와 같은 돌로 된 기단을 형성하여 공간을 두고 그 위에다 건물을 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은사의 기단 특성은 기단 위에 건물이 설 자리는 초석과 보를 걸어 이 위에 장대석으로 마루처럼 총총히 깐 상판석(床板石)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초석을 배열하여 기둥을 세웠으며, 기단의 동북쪽에는 기단 밖에서 건물 밑 지하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가 시설되어 있어 배수나 환기를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감은사지는 사적 제 31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국보 제 11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삼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졌고, 동, 서 두 탑 공히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여주며, 아래 층 기단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을 같은 돌로 만들어 12장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갑석(甲石) 또한 1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층 기단은 면석을 12장의 돌로, 갑석은 8장의 돌로 구성하였고, 탱주(撑柱)의 수는 아래층 기단에 3개, 위층 기단에 2개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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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탑신(塔身)은 우주(隅柱)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 탑신은 각 면에 한 돌씩, 3층 탑신은 전체가 한 돌로 되어 있고, 옥개석(屋蓋石)과 받침돌은 딴 돌로 하여 각각 4장씩으로 하였으며, 받침은 층마다 5단의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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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부(相輪部)는 두 탑 모두 노반(路盤)만 남아 있을 뿐, 그 위의 돌들은 없어졌으나, 높이 3.9 미터의 철제 찰주(刹柱)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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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서탑(西塔)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3층 탑신 윗면에서 창건 때에 안치하였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보물 제366-1호)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동탑(東塔)은 1996년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치와 유사한 사리장엄구(보물 제1359호)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