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
[요약] (爲: 할 위. 彼: 저 피. 猶: 오히려 유. 己: 자기 기)
남을 위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말로, 남과 나를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고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의미.
[출전] 《묵자(墨子) 겸애하(兼愛下)》
) -->
[내용] 이 성어는 자기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자신에 대해서와 같이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다툼은 없어지고 인간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가 있다고 주장한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어진 이가 할 일은 천하의 이익을 마련해 주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는 데 힘쓰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천하의 해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 대국(大國)의 소국(小國)에 대한 공격, 대가(大家)의 소가(小家)에 대한 교란, 강자의 약자에 대한 겁박(劫迫), 다수의 소수에 대한 횡포, 교활한 자의 우둔한 자에 대한 속임수, 귀한 자의 천한 자에 대한 멸시, 이러한 것들이 천하의 해(害)이다. (曰 : 大國之攻小國也, 大家之亂小家也. 强之劫弱, 衆之暴寡, 詐之謀愚, 貴之傲賤, 此天下之害也,)
......그러면 이 害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이 害는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생겨났는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천하에서 남을 미워하고,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분리시켜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는 그들을 함께 한다라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따로 논다라 불러야 하는가(分名乎天下惡人而賤人者, 謙與別與)? 반드시 따로 논다(別)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 따로 노는 자(交別者)는 과연 천하에 커다란 해로움을 일으키는 자가 아닌가? 그러므로 ‘따로 노는 것’은 잘못이다(是故別非也).”
) -->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반드시 거기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묵자는 ‘따로 노는 것’을 ‘함께 한다’로 바꾸라 했다. ‘따로 논다’를 ‘함께 한다’로 대치시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 -->
“모든 사람이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 위하듯 하면 누가(혼자 자기 백성을 동원하여) 남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 상대방(彼)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남의 도성(都城)을 자기 도성처럼 위한다면 누가(혼자 자기 도성 사람을 동원하여) 남의 도성을 정벌하겠는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으며(爲彼猶爲己也), 남의 집을 자기 집 위하듯 하면 누가(혼자 그 집안을 동원하여) 남의 집을 어지럽히겠는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다. 曰 : 籍爲人之國, 若爲其國. 夫雖獨擧其國, 以攻人之國者哉? 爲彼者由爲己也. 爲人之都, 若爲其都, 夫雖獨擧其都, 以伐人之都者哉? 爲彼猶爲己也, 爲人之家, 若爲其家. 夫雖獨擧其家, 以亂人之家者哉? 爲彼猶爲己也.
[출처] 함께 아끼는 겸애兼愛_펑유란 중국철학사(馮友蘭 中國哲學史)|작성자 붕정만리
) -->
) -->
이하 서울경제신문 [고전 통해 세상읽기] 묵자의 위피유위기의 글.
전국시대 사상가 묵자(墨子)는 사람이 절실히 바라는 것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 사이의 어긋남을 깊이 있게 통찰했던 사람이다. 전쟁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것이다. 묵자는 전쟁의 밑바탕에 나와 남을 차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봤다. 자신이 자신을 때리고, 한 나라가 같은 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 그리고 공격하는 나라와 공격당하는 나라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자는 '다른 사람 대우하기를 자신과 똑같이 하라'는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를 주장했다.
) -->
묵자의 동시대 사람들은 '위피유위기'가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남보다 자기 자신을 챙기기 마련이므로 나와 남을 똑같이 대우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묵자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듣고 생각해볼 문제를 한 가지 제안했다.
) -->
어떤 사람이 나라의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사신으로 먼 나라를 향해 떠나게 됐다. 교통이 불편하고 도적이 출몰하던 시절이므로 사신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 위험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신은 외국으로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가족을 돌봐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가'는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이고 '나'는 나와 남을 차별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사신은 누구에게 자기 가족의 안위를 부탁할까.
) -->
묵자는 사신이 '가'의 성향이든 '나'의 성향이든 모두 가족을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게 된다고 봤다. 사신이 평소 '가'를 믿고 있었다면 길을 떠날 때 '가'에게 가족을 부탁할 것이고 사신이 평소 '나'를 믿고 있더라도 가족을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피유위기'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급할 경우 누구나 채택하게 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위피유위기'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조건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소중해 지키고자 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사람으로서 동일한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직급·직무·직업·소유·취미·외모 등 많은 측면에서 각기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함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글,문학 > 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내정치 및 사자성어 (0) | 2017.01.03 |
---|---|
응작여시(應作如是) (0) | 2017.01.03 |
생심해정(生心害政) (0) | 2017.01.01 |
가련촉망(可憐觸網) (0) | 2016.12.31 |
달기노심(達其怒心) (0) | 2016.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