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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訥齊) 박상(朴祥)

淸潭 2016. 11. 10. 18:14

눌재(訥齊) 박상(朴祥)

 

신라, 고려, 조선 삼대조에 걸쳐 대대로 문벌(門閥)이 높은 집안을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한다.

 

삼한갑족으로 오르내리지는 않지만 행주 기씨, 장흥 고씨, 충주 박씨 등 광주에도 이름난 가문들이 있다. 광주를 '(), (), ()의 고을'이라 이르는 이유이다. 기고박은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눌재 박상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기대승은 우리 역사에서 유학이란 학문으로 문화적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시절, 이황과 벌인 '찬란한 사상 로맨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으로 익히 알려졌다.

 

광주 광산구 압보촌에서 태어난 고경명은 후학을 양성하던 중 임란이 발발하자 60세의 고령에 의병을 일으켰다. 고경명은 금산에서 차남 인후와 함께 순절했고, 장남 종후는 진주성 혈전에 참전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광주 서창동 절골마을이 탯자리인 조선조 문신 눌재 박상은 평생을 강직하고 올곧은 처신으로 청백리에 녹선됐다. 그는 시문에도 뛰어나 1300여 수의 방대한 시를 남겼고,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을 문하에 두었다. 박상은 담양부사 시절 강천사 삼인대에서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상소, 진노를 사 유배되기도 했다. 이는 훗날 기묘사화의 단초가 된다.

 

박상과 고양이에 얽힌 전담도 흥미롭다.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이 팔도에 채홍사를 보내 미색을 구하던 중 나주골 천민 우부리의 딸이 뽑혔다. 그 딸이 연산의 총애를 받자 우부리는 제 세상 만난 듯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해 원성이 자자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박상은 전라부사를 자원했고 우부리를 장형으로 쳐죽였다. 연산이 대노하여 사약을 내렸고, 박상은 우부리의 죄상을 알리려 한양길에 올랐다. 박상이 장성 입암산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난데없이 고양이가 나타나 바

지 가랑이를 물어 채기에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따랐다. 같은 시각 사약을 가진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려 목숨을 부지했고 곧바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화를 면했다.

 

눌재가 나고 자란 광산구에는 박상의 문집을 새긴 눌재집과 위패가 모셔진 송호영당( 松湖影堂)이 있고, 주변에는 후손인 용아 박용철의 생가가 있다. 기고박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지역 자산이다. 젊은 세대에게 널리 알려 전승해야 할 종요로운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출처; 전남일보 최도철 부국장의 글.

 

 

금묘(金猫)

() 나라 함평(咸平)순화(淳和) 연간에 합주(合州)에서 공물(貢物)로 바친 도화견(桃花犬)이라는 개는 늘 어탑(御榻) 앞에서 길들여지게 되었다. 태종(太宗)이 병석에 누웠을 때는 그 개가 밥을 먹지 않고, 태종이 죽을 때에는 울부짖고 눈물을 흘리면서 파리해지기까지 하였다.

장성(章聖)이 즉위할 때는 그 개가 슬픈 모습으로 앞에 다가와 인도하면서 머뭇거리는데, 불안한 생각이 있는 듯하다가, 태종을 장사지내던 날에는 꼬리를 설설 치면서 비로소 전일과 같이 밥을 먹었다. 조칙(詔勅)으로 큰 철롱(鐵籠)을 만들고 그 속에 흰 요를 깐 다음, 개를 들여앉혀서 노부(鹵簿) 속에 두도록 했는데, 보는 자마다 눈물을 떨어뜨렸다. 나중에 개가 죽으니, 희릉(熙陵) 곁에 장사지내 주었는데, 그 당시 사대부(士大夫)들은 모두 도화견시(桃花犬詩)를 읊어서 그를 찬양했던 것이다.

 

우리 숙종대왕도 일찍이 금묘(金猫) 한 마리를 길렀었는데,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그 고양이 역시 밥을 먹지 않고 죽으므로, 명릉(明陵) 곁에 묻어주었다.

대저 개와 말도 주인을 생각한다.’는 말은 옛적부터 있지만, 고양이란 성질이 매우 사나운 것이므로, 비록 여러 해를 길들여 친하게 만들었다 해도, 하루아침만 제 비위에 틀리면 갑자기 주인도 아는 체하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묘 같은 사실은 도화견에 비하면 더욱 이상하다.

 

[1]함평(咸平)순화(淳和) : 함평은 제3대의 임금인 진종(眞宗)의 연호, 순화는 제5대의 임금인 태종(太宗)의 연호.

[2]장성(章聖) : 이름은 항(), 즉 송 진종(宋眞宗).

[3]노부(鹵簿) : 천자(天子)가 행차할 때의 모든 의장(儀仗).

[4]희릉(熙陵) : 송 태종(宋太宗) 광의(匡義)의 능호.

[5]곁에 장사지내 주었는데 : 이상은 고금시화(古今詩話)에서 간추려 인용한 것이다. 참고로 다음과 같이 소개함.“古今詩話曰 淳化中 合州 貢羅江犬 甚小而意慧 常馴擾於御榻之前 每坐朝 犬必掉尾先吠 人乃肅然 太宗不豫 犬不食 及上仙 犬號呼涕泗以至疲瘠 章聖初卽位 左右引令前導鳴吠徘徊 意若不忍 章聖令諭以奉陵 卽搖尾飮食如故 詔造大鐵籠施素裀置鹵簿中 行路見者隕涕 後因以斃 詔以敝蓋葬於熙陵之側淵鑑類凾 狗

[6]명릉(明陵) : 숙종(肅宗)의 능호.

출처;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