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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청학동에 가면 두 사람이 마주앉아

淸潭 2016. 10. 17. 12:22

남주 

출처 : 지봉유설 (권18)


남주는 곡성 사람인데, 젊어서 학업을 닦는 동안 배우지 않아도 다 알았다.

부친이 책을 읽으라 하면 읽지 못하는 책이 없었다.

하루는 남주가 나이 많은 노인 몇 사람과 바위 위에 앉아서 글을 읽고 있어서 기이하게 여겼다.


하루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 주면서,

“지리산 청학동에 가면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을 테니 이 편지를 전하고 답장을 받아 오라.”고 말했다.

아이가 편지를 가지고 청학동으로 가니 높고 큰 화각()이 있고, 한 도사와 늙은 스님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면서, 올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는 하룻밤을 자고 답장과 옥 바둑알 하나를 받아 나왔는데, 들어갈 때 9월 낙엽질 때였는데 나오니 이듬해 2월 새싹이 돋고 있었다.

남주는 급제하고 관직이 전적()으로 끝났고, 사망하자 아이가 받아 나온 바둑알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청학동에 앉아 있던 도사는 최치원이고 스님은 검단선사라고 말했다. 아마 남주는 신선 사람인 것 같고, 이 얘기는 허탄()에 가까운 얘기 같지만 남부지역 사람들은 많이 말하고 있다.


모인

출처 : 파수록 (김8)


한 선비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날이 저물어 바위에 풀자리를 깔고 앉아 있으니, 털이 많이 난 무엇이 옆에 와 앉는 것이었다.

선비가 본래 힘이 세어 그 다리를 꼭 잡으니, 그것이 사람의 말을 하면서 아프다고 소리쳤다.

그래서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람이라고 하면서 다리를 놓아주면 내력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선비가 잡고 있던 다리를 놓아주니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본래 서울 살던 사족()인데, 추노()의 일로 영남에 갔다가 5년 만에 돌아왔는데, 식구들이 자기가 죽은 줄로 알고 장례 지낸 다음, 오늘이 상기일()이어서 제사를 모시고 있어서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 열매를 먹고살았는데, 몸이 가벼워지면서 온몸에 털이 났으며, 추위와 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 선비가 혼자 산속에 있는 것을 보고 보호해 주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선비가 서울의 당시 일을 물으니 다 알고 있었고, 다만 자기 집안에 관한 말은 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밤새 같이 있다가 아침에 산을 빠져나가는 길을 일러주고는, 울며 나는 듯이 사라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