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패
천하의 노랑이 황첨지 머슴살러 들어온 억보에게 골패를 가르치더니
점점 내기가 커지는데…

황 첨지는 천하의 노랑이다. 제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자물통을 꽉 채워 땡전 한푼 나오는 법이 없다. 황 첨지는 머슴이 몸이 아파 일하지 않는 날은 치부책에 일일이 적어놨다가 세경을 깎았다.
“첨지 어른, 이틀째 앓아누워 일을 못한 건 맞는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깝니까요?” 머슴이 물으면 “네놈 때문에 파종이 이틀 늦어져 소출이 많이 줄었어!” 이런 소문이 퍼져 더 이상 황 첨지네 집에 머슴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리숙한 젊은이 하나가 제 발로 찾아왔다. 좀 모자란 듯이 항상 비실비실 웃는 ‘억보’라는 청년인데 어깨가 떡 벌어져 일은 잘했다.
비 오는 날은 황 첨지가 약조한 대로 억보가 쉬는 날이다. 억보가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황 첨지가 억보 방에 들어왔다.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억보야, 너 골패할 줄 아냐?” “골패라니, 알밤으로 골 때리기 하는 거예요?” 황 첨지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황 첨지는 무슨 꿍꿍이속인지 부지런히 억보에게 골패를 가르쳤고, 억보는 열심히 배웠다. “첨지 어른, 이것 참 재미있네요. 윷보다도 몇배 재미있네. 이히히히.”
황 첨지의 골패 전수는 억보뿐이 아니다. 밤이 되면 안방에서 재취 임포댁을 앉혀놓고 골패를 가르쳤다. 조강지처를 석녀(石女)라며 몇해 전 쫓아내고, 쉰이 넘은 나이에 자기보다 거의 서른살이나 어린 임포댁을 돈을 주고 사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새 마누라에게 골패를 가르쳐줬으면서도 그녀를 판에 끼워주지는 않았다.
어느 천둥 치고 비 오는 날, 골패판을 두고 억보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황 첨지가 한숨을 토하며 “내가 졌다. 네놈이 스승을 잡아먹는구나.” 요즘 들어 억보가 이기는 일이 부쩍 잦아지자 황 첨지의 시름이 깊어졌다. 어느 날 분을 참지 못한 황 첨지가 “억보야 너무 싱겁다. 조그마하게 내기를 걸자.” “좋아요! 좋아.” 깨엿 몇가락 내기가 청포묵 내기로 커지더니 급기야 엽전이 오가기 시작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억보는 세경을 받았고, 그동안 황 첨지로부터 골패로 딴 돈이 세경의 삼할은 되었다. 또 한해 머슴을 살기로 한 억보는 늦가을부터 황 첨지와 본격적인 노름판을 벌였다. 밤이 깊도록 골패에 빠져 있을라치면 황 첨지의 새 마누라가 생긋이 웃으며 식혜를 들고 와 “개평 좀 뜯읍시다.”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억보의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 농사철에 틈틈이 따서 모았던 돈이 다 나가고 세경 받은 피 같은 돈이 나가기 시작하자 억보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둘 다 식은땀을 흘리며 판을 점점 키워나갔다. 그때 새 마누라가 인절미와 조청을 들고 들어왔는데 웬일인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시무룩했다. 억보가 힐끗 쳐다봤더니 왼쪽 눈에 멍이 들어 있었다. 닭이 울 때 노름이 파하고 억보가 제 방으로 돌아가 남은 돈을 헤아려봤더니 끗발이 안 오르면 다음날 밤에 전대가 바닥을 드러낼 참이다.
팔깍지를 베개 삼아 한숨을 토하며 누워 있는데 똑똑 문을 두드리고 황 첨지의 새 마누라가 들어왔다. 호롱불을 끄더니 억보 곁에 바짝 다가앉아 “전부 사기도박이에요. 새참을 들고 들어간 내가 억보씨의 패를 보고, 서로 짜놓은 신호로 황 첨지에게 알려준 거예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와락 껴안았다.
아랫도리가 흥건해진 황 첨지의 새 마누라는 억보의 힘찬 절구질에 감청이 고함이 되었다. 억보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자 “골골하는 노랑이는 옷도 안 벗고 쓰러져 하늘이 무너져도 모를 거요.”
두판을 연이어 치르고 나서 “눈의 멍은 왜 들었소?” “방물장수한테 쌀 두됫박을 퍼주고 박가분 하나 샀다고 내 눈이 밤탱이가 됐어요.”
이튿날 밤, 억보와 황 첨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또 붙었다. 끗발의 추는 급격히 억보에게로 기울어졌다.
“다 식습니다. 이것 좀 들고 하세요.” 새 마누라가 호박죽을 권해도 본체만체다.
삼경이 깊었을 때 돈이 다 털린 황 첨지가 다락 속의 금덩어리까지 끄집어냈다. 그것마저 털린 황 첨지가 고꾸라져 자다가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 신호를 어긋낸 마누라를 족치려고 그녀를 찾았더니 없어졌다. 억보도.
“첨지 어른, 이틀째 앓아누워 일을 못한 건 맞는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깝니까요?” 머슴이 물으면 “네놈 때문에 파종이 이틀 늦어져 소출이 많이 줄었어!” 이런 소문이 퍼져 더 이상 황 첨지네 집에 머슴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리숙한 젊은이 하나가 제 발로 찾아왔다. 좀 모자란 듯이 항상 비실비실 웃는 ‘억보’라는 청년인데 어깨가 떡 벌어져 일은 잘했다.
비 오는 날은 황 첨지가 약조한 대로 억보가 쉬는 날이다. 억보가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황 첨지가 억보 방에 들어왔다.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억보야, 너 골패할 줄 아냐?” “골패라니, 알밤으로 골 때리기 하는 거예요?” 황 첨지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황 첨지는 무슨 꿍꿍이속인지 부지런히 억보에게 골패를 가르쳤고, 억보는 열심히 배웠다. “첨지 어른, 이것 참 재미있네요. 윷보다도 몇배 재미있네. 이히히히.”
황 첨지의 골패 전수는 억보뿐이 아니다. 밤이 되면 안방에서 재취 임포댁을 앉혀놓고 골패를 가르쳤다. 조강지처를 석녀(石女)라며 몇해 전 쫓아내고, 쉰이 넘은 나이에 자기보다 거의 서른살이나 어린 임포댁을 돈을 주고 사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새 마누라에게 골패를 가르쳐줬으면서도 그녀를 판에 끼워주지는 않았다.
어느 천둥 치고 비 오는 날, 골패판을 두고 억보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황 첨지가 한숨을 토하며 “내가 졌다. 네놈이 스승을 잡아먹는구나.” 요즘 들어 억보가 이기는 일이 부쩍 잦아지자 황 첨지의 시름이 깊어졌다. 어느 날 분을 참지 못한 황 첨지가 “억보야 너무 싱겁다. 조그마하게 내기를 걸자.” “좋아요! 좋아.” 깨엿 몇가락 내기가 청포묵 내기로 커지더니 급기야 엽전이 오가기 시작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억보는 세경을 받았고, 그동안 황 첨지로부터 골패로 딴 돈이 세경의 삼할은 되었다. 또 한해 머슴을 살기로 한 억보는 늦가을부터 황 첨지와 본격적인 노름판을 벌였다. 밤이 깊도록 골패에 빠져 있을라치면 황 첨지의 새 마누라가 생긋이 웃으며 식혜를 들고 와 “개평 좀 뜯읍시다.”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억보의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 농사철에 틈틈이 따서 모았던 돈이 다 나가고 세경 받은 피 같은 돈이 나가기 시작하자 억보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둘 다 식은땀을 흘리며 판을 점점 키워나갔다. 그때 새 마누라가 인절미와 조청을 들고 들어왔는데 웬일인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시무룩했다. 억보가 힐끗 쳐다봤더니 왼쪽 눈에 멍이 들어 있었다. 닭이 울 때 노름이 파하고 억보가 제 방으로 돌아가 남은 돈을 헤아려봤더니 끗발이 안 오르면 다음날 밤에 전대가 바닥을 드러낼 참이다.
팔깍지를 베개 삼아 한숨을 토하며 누워 있는데 똑똑 문을 두드리고 황 첨지의 새 마누라가 들어왔다. 호롱불을 끄더니 억보 곁에 바짝 다가앉아 “전부 사기도박이에요. 새참을 들고 들어간 내가 억보씨의 패를 보고, 서로 짜놓은 신호로 황 첨지에게 알려준 거예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와락 껴안았다.
아랫도리가 흥건해진 황 첨지의 새 마누라는 억보의 힘찬 절구질에 감청이 고함이 되었다. 억보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자 “골골하는 노랑이는 옷도 안 벗고 쓰러져 하늘이 무너져도 모를 거요.”
두판을 연이어 치르고 나서 “눈의 멍은 왜 들었소?” “방물장수한테 쌀 두됫박을 퍼주고 박가분 하나 샀다고 내 눈이 밤탱이가 됐어요.”
이튿날 밤, 억보와 황 첨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또 붙었다. 끗발의 추는 급격히 억보에게로 기울어졌다.
“다 식습니다. 이것 좀 들고 하세요.” 새 마누라가 호박죽을 권해도 본체만체다.
삼경이 깊었을 때 돈이 다 털린 황 첨지가 다락 속의 금덩어리까지 끄집어냈다. 그것마저 털린 황 첨지가 고꾸라져 자다가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 신호를 어긋낸 마누라를 족치려고 그녀를 찾았더니 없어졌다. 억보도.
출처; 농민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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