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많은 중 '동윤
(어우야담)
동윤(洞允)이라는 자는 재주 있는 승려로, 글에 능하고 배우 노릇을 잘했으며, 또 새와 짐승 소리를 교묘하게 흉내냈다.
일찌기 촌마을을 지나는데 한 집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무녀를 맞이해 죽은 자의 혼령을 부르며 굿을 하고 있었다. 동윤이 그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주인이 그를 꾸짖었다.
동윤은 화가 나서 몰래 마을 아이를 꾀어 죽은 사람의 나이, 음성, 용모, 친척 및 평생 했던 일 등을 매우 상세히 묻고는 드디어 굿하는 곳으로 들이 닥쳤다. 그는 얼굴빛을 바꾸어 붉으락 푸르락하며 온몸을 떨고 흔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와 어지러운 말로 주인을 꾸짖으며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냈다. 죽은 자가 행한 일을 낱낱이 진술하고 친척의 성명을 지목하며, 형제, 처첩, 자손들을 분별해 내는데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슬프고 애처로운 말투로 길흉화복을 섞어서 거침없이 쏟아 내는 말이 입술과 혀에서 물 흐르듯 나왔다.
온 집안이 놀라서 들썩이며 슬퍼하고 애처로워했으며, 듣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훔치며 통곡했다. 모두 죽은 자의 혼령이 강림했다고 여긴 것이다. 무녀는 기운이 꺾이고 말도 막혀 한마디도 따질 수 없었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윗자리로 맞이하여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재물을 주어서 보냈다. 훗날 조정에서 선교(禪敎)양종의 제도를 만들어 팔도의 명승들을 뽑았는데, 동윤이 선발되어 장차 판사(判事)에 제수되려 했으나 이때의 일이 말썽이 되어 배척되었다.
또 달밤에 촌마을을 지나는데, 나이 젊은 협객들이 창기들을 끼고 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요승(妖僧)이 정사를 어지럽히는 것을 분하게 여겨 중들만 보면 반드시 배척하고 욕보였다. 평소에 동윤의 소문을 들었던 터라 배우 놀음과 새. 짐승 소리를 흉내내도록 시키니 동윤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온갖 기예에 능하지만 가장 잘 하는 것은 꽃을 찾는 벌 나비의 놀이다."
협객들이 즐거워하며 그것을 보고자 원했다. 동윤이 그들에게 각자 손바닥을 펴서 꽃모양을 만들게 하고, 마치 꽃술을 점찍어 따려는 듯이 하였다. 두 개의 지팡이를 허리 아래에 끼어 벌 나비의 다리를 만들고, 양 소매를 펼쳐 그 날개를 만들고는 벌 소리와 나비가 나는 모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는 듯이 열 걸음을 갔다가 되돌아오고, 또 수십 걸음 갔다가 되돌아 왔다. 또 백 걸음 갔다가 되돌아 오매 협객들이 모여서 바라보고는 웃으며 멀리 가든 가까이 가든 내버려 두었다. 동윤은 수백 보를 간 뒤 그들이 쫓아올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지팡이를 버리고 소매를 휘저으며 달아났다. 협객들이 쫓아갔으나 잡을 수 없었다.
중국 사신이 오게 되자 도감에서 동윤에게 승군을 통솔하여 홍제교(弘濟橋)를 보수하도록 했는데, 일이 조금 지체되자 새끼줄로 동윤의 목을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동윤이 목소리를 높여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자 온 들판의 소들이 일시에 응하였다. 또 밤에 서울에 들어갈 때 초저녁에 소맷자락을 치면서 닭소리 내니, 뭇 닭들이 일시에 날개를 치면서 울었다. 호음(湖陰)정사룡(鄭士龍)이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재능 많고 환술 잘 함이 그의 일이라,
소 울음, 닭 울음 소리 매우 핍진하였네.
*요승(妖僧)----<청패본>에는 보우(普雨)'라는 주(註)가 달려 있다.
[출처] 160회. 재주 많은 중 '동윤'(어우야담)|작성자 lkst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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