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8)
고3 학생들 "야 저 아가씨 예쁘다 해치우자"며 동시에…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03/04/2015030403954_0.jpg)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사건 내용은 학생들이 대학입시 연합고사 시험 준비를 하느라고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과외 수업을 하고 밤늦게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중 마침 추풍령 휴게소에서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스물넷된 처녀를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다섯명 중 누군가가 “야 저 아가씨 예쁘다. 해치우자”고 소리치자 다른 학생들은 앞뒤 가릴 틈도 없이 “좋다”고 합창했다. 동시에 다섯명이 그 처녀에게 달려들어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땅에 눕히고 강간하려 했다가 처녀의 기지로 미수에 그쳤다. 이 와중에서 온몸에 상처가 나는 바람에 모두 강간치상죄로 구속된 것이다.
사건 내용을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학생 다섯명이 처녀 한 명에게 달려들어 강간하려고 산 속 바닥에 넘어뜨리고 옷을 벗기고 성폭행하려 했고 피해자가 저항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하지만 처녀는 묘책을 내 위기를 벗어났다.
처녀는 “야 잠깐 내 말을 들어보고 덤비든지 해라.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다 아는데, 이렇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 너희가 정 생각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 대기하고 한 명씩 와야 너희가 원하는 짓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신없이 덤벼들던 학생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그럴 듯했던 모양이다. 처녀 말대로 한 사람씩 덤벼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잠시 처녀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학생 다섯명이 저희끼리 순번을 정했다. 나머지 네명은 그곳에서 약 30m 떨어진 언덕 아래에 가서 대기하고 1번으로 뽑힌 학생이 처녀에게 다가가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다. 그러자 처녀가 “야! 너 보아하니 고등학교 3학년 학생 같은데 대학 안 가느냐, 너는 나 같은 누나도 없느냐, 네가 정 원한다면 이런 산중에서 말고 조용한 장소에서 만날 용의가 있으니 생각해 봐라”고 타일렀다.
이 말을 들은 순진한 학생은 제정신을 차리고서는 자기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후회했다. “누님 죄송합니다”란 한 마디 남기고 자기 가방을 챙겨서 자기 친구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뛰어 도망가 버렸다. 그 다음 두 번째 순번을 받은 학생이 다가가자 그 처녀는 먼저 학생에게 한 말을 되풀이하여 학생을 설득시켰다. 그 학생도 즉시 잘못을 깨닫고 도망갔다. 결국 다섯명 모두 그 처녀의 지혜로운 설득에 넘어갔다. 처녀는 천만다행으로 몸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 학생들이 덮치면서 긁힌 약간의 상처가 나고 옷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별 피해 없이 귀가할 수 있었다. 어쨌든 다섯명의 학생들은 처녀의 기지로 더 큰 죄를 짓지 않고 귀가했다.
처녀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야수같이 덤볐으나 자신의 설득에 굴복하여 순순히 물러난 점과 동생 같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하여 영원히 사건을 묻어두려 했다. 하지만 밤늦게 상처투성인 채 옷매무새까지 헝클어진 모습으로 귀가한 딸을 보고 부모들이 화들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추궁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귀가 중 당한 사실을 그대로 말하였다. 부모는 분을 못 참고 경찰에 곧바로 고소했고 학생들은 모조리 구속됐다.
나를 안타깝게 한 것은 구속된 다섯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적도 상위 그룹에 속했고 심성도 착한 데다 순진한 모범생들이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군중심리에 이끌려 아무 판단 없이 저질렀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젊은 혈기라도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런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다만 몇 초도 생각했더라면 그런 행동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 부모들은 어떠하겠는가.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식만큼 대학 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뒷바라지 해온 터었다. 그런데 두어 달 후면 대학 입학 시험을 치러야 할 시기에 죄를 짓고 구속돼 시험도 못 치르게 되었으니 그 절망감과 슬픔은 얼마나 컷겠는가.
학생들에게 “야 이놈들아 너희 부모님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너희를 대학에 보내려고 뒷바라지 하느라 애쓰시는데, 너희는 생각 없이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느냐. 너희가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느냐? 왜 일을 치르기 전에 단 일 초라도 생각해 보지 않고 무턱대고 덤벼들었느냐?”고 야단치자 어쩔줄 몰라했다.
이제 두어 달 후면 검찰에서 기소유예 하기 어려운 소년사건에 대하여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기로 방침이 서 있던 때였다.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두어 달만 먼저 앞당겨졌어도 저들을 구제하여 대학입학 시험을 보게 할 수 있을텐데 하고 고민하다가 검사장실에 올라가서 검사장에게 사건내용을 설명했다. 검사장에게 “두 달 후에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시행되지만 아직 선도위원을 임명하지 않은 단계입니다. 담임선생을 선도위원으로 지정하여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건의했다.
그랬더니 검사장께서도 한참 생각하시더니 아직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시행 안 됐지만 남 검사 의견대로 담임선생을 선도위원으로 지정하여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해서 대학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쾌히 승낙하는 것이었다.
즉시 담임선생과 부모들을 불러 학생들의 장래를 위하여 대학입학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를 해 줄 것이니 서류를 갖추어 내라고 했다. 담임선생과 부모들은 모두 감사하다 인사하고 각 구비서류를 제출했다. 학생들한테 단단히 훈계하고 서약서를 받고 다음 날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하여 학생 전원을 석방했다. 그 후 그들이 대학시험을 치렀는지 또 합격하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는지 확인을 못 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때의 뼈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훌륭한 동량이 되어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기여하고 있기를 빌어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게시판 등)] ▒☞[출처] 조선일보
※ 고교 선배이신 남문우 검사님 이야기임
'글,문학 >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0) | 2015.03.26 |
---|---|
茶山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0) | 2015.03.24 |
간통한 여인의 속죄 (0) | 2015.03.04 |
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0) | 2015.03.04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0) | 2015.03.01 |